“먹는 샘물도 이제 안심할 수 없다”
  • 경기 연천·포천·조현주 기자 (cho@sisapress.com)
  • 승인 2011.03.28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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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역 매몰지, 생수 공장에서 불과 100m 거리에 있기도…침출수로 인한 지하수 오염 우려 제기

 

▲ 구제역이 발생한 경기도 연천군 백학면 전동리 지역의 돼지 축사(오른쪽) 옆으로 생수 공장(왼쪽)이 보인다. ⓒ시사저널 박은숙

“이제는 먹는 물이 걱정이다.”

지난해 11월부터 전국을 휩쓴 구제역에 대한 공포는 아직도 누그러지지 않았다. 구제역 매몰지에서 흘러나오는 침출수로 인한 ‘2차 오염’ 우려가 제기되면서 식수 걱정을 하고 있는 주민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3월22일 <시사저널> 취재진이 경기도 연천군의 한 축산농가 마을에 찾아갔을 때, 마을에 있던 사람들은 입을 모아 ‘먹는 물’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았다. 연천군 백학면에 살고 있는 주민 서 아무개씨는 “구제역이 터지고 나서 마을 여기저기에 돼지며 소가 파묻혔다. 처음에는 밤 사이 살처분 작업을 하는 통에 어떻게 처리를 하는지 알지도 못했다. 그동안 매몰지에서 나온 침출수가 행여 지하수에 섞이지 않을까 걱정이 많았다. 직접 의뢰해서 수질 검사를 해야겠다는 생각까지 할 정도였다”라고 말했다.

▲ 축사 인근에 있는 구제역 매몰지. ⓒ시사저널 박은숙

경기도 연천군만 해도 구제역 발생 이후 지난해 12월 초부터 올해 2월 중순께까지 총 11만4백64마리의 가축이 1백59개의 매몰지에 묻혔다. 곳곳의 살처분 매몰지를 보면서 주민들은 ‘침출수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서씨는 “이 마을에 지하수가 있다고 마음대로 먹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 지자체에서도 이제야 구제역 발생지에서 5백m 반경 안의 주민에게는 상수도를 설치해주겠다며 수질 조사를 나왔다. 하지만 우리 바로 옆집은 반경 5백m를 조금 넘는다는 이유로 상수도 설치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이래저래 마을에서 물 걱정을 하는 이들이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 생수를 사 먹기 시작한 사람도 많다”라고 말했다.

구제역 파동 이후 생수를 찾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침출수로 인해 매몰지 주변의 지하수 등 상수원 오염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그렇다면 ‘모든 생수’를 안심하고 마실 수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해 김을동 미래희망연대 의원은 최근 충격적인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김의원실이 지난 2월 말 경기도 일대 현장 조사를 벌인 결과, 경기도에 취수원을 둔 생수업체 14곳 가운데 8곳이 생수공장의 수원지와 구제역 매몰지가 같은 마을에 있어 구제역 침출수 오염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자료의 전문에 따르면, 매몰지 근처에 있는 여덟 개 생수업체 가운데 두 개 업체는 생수를 퍼 올리는 공장과 매몰지와의 거리가 불과 수백 m 정도인 것으로 드러났다. 경기도 연천군에 있는 ㄹ사의 경우 생수를 취수하는 취수정으로부터 4백m 거리에 매몰지가 있었고, 포천시 이동면에 있는 ㅍ사 역시 취수정과 매몰지 사이 거리가 7백m 정도에 불과했다. 게다가 자료에 따르면, ㄹ사 공장 주변에는 돼지 3천5백80마리와 소 1백53마리가 묻힌 두 곳의 매몰지가 있었다. 또 ㅍ사 주변에는 총 37개나 되는 매몰지가 있는데 여기에 묻힌 가축의 수만 해도 돼지 14만43마리, 소 2천3마리, 염소 30마리, 사슴 2마리 등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생수업체 “취수정 심도 아주 깊어 문제 없다”

일반적으로 가축을 매몰한 뒤 나오는 침출수의 양은 소는 마리당 1백60ℓ, 돼지는 마리당 12ℓ, 그리고 사슴과 염소 등은 마리당 6ℓ로 알려져 있다. 이를 바탕으로 ㄹ사와 ㅍ사의 생수 공장 주변 매몰지에서 발생 가능한 침출수의 양을 계산해 보면 각각 67.6t과 4백89.1t에 이른다. 만약 이 방대한 양의 침출수가 주변의 토양과 지하수까지 오염시키게 된다면 이 지역의 생수 공장에서 생산되는 생수의 안전성에도 문제가 생길 우려가 있는 셈이다.

<시사저널> 취재진은 문제가 되는 두 개 업체의 현지 공장을 직접 찾아가 보았다. 실제 ㄹ사는 공장에서 직선거리로 불과 100m 정도 떨어진 곳에 돼지 3천여 마리가 살처분된 매몰지가 있었다. 게다가 ㄹ사 공장 주변의 수백 m 반경 내에는 돼지와 소 축사가 위치해 있어 ‘어떻게 이런 장소에 생수 공장이 들어설 수 있는가’ 하는 의문마저 들 정도였다.

ㄹ사 공장 주변에 살고 있는 한 주민은 “사실 공장이 들어올 때부터 말이 많았다. 인근에 축사도 있는데 웬 생수 공장이 들어서느냐고 의문을 품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군인공제회에서 운영하는 회사라 맞서서 대항할 사람들도 없었다. 이 마을은 군부대의 힘이 크게 작용하는 곳인데, 군인공제회에서 일을 벌이면 세상에 못할 것이 없다고 할 정도이다”라고 말했다. 마을 주민들에 따르면, 당초 공장이 들어설 때부터 주민들과 공장 간에 갈등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생수 공장 취수정의 오염 가능성에 대해 ㄹ사측은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취수정과 공장 사이의 거리가 상당하기 때문에 공장 자체가 매몰지와 가깝다고 해서 문제될 것은 없다는 입장이다. ㄹ사의 한 관계자는 “우리 회사의 취수정은 공장과 약 2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어서 문제되지 않는다. 또 지난 2월 말과 3월 초, 네 번에 걸쳐 경기도청과 환경부측에서 원수와 제품수를 추출해 오염 정도를 조사한 적이 있다. 구제역 침출수가 섞인다면 총 대장균군이나 질산성 질소, 암모니아성 질소 등의 수치가 높아지는데 조사 결과 별다른 특이점이 발견되지 않았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ㄹ사의 주장에 대해 동네 주민들의 의견은 달랐다. 마을 주민 유 아무개씨는 “공장이 들어서고 난 후에 마을의 관정이 말라가고 있다는 얘기들이 들려온다. 마을 관정이 공장 취수정과 연결되어 있다고 의심하는 목소리가 많다. 마을 내에 관정이 몇 개 있는데 그중 하나는 바로 옆에 구제역 매몰지가 있다”라고 전했다.

“ㄹ사의 취수정이 매몰지가 있는 인근 마을을 벗어난 것이 확실한가”라는 취재진의 물음에 대해 ㄹ사의 관계자는 “(아마도 문제 된다면) 1단계 취수정일 것이다. 이 1단계 취수정은 구제역 매몰지가 있는 마을 내에 있었다. 1단계 취수정 바로 옆이 매몰지였다. 이 1단계 취수정은 (구제역 오염 우려 때문에) 지난 2월28일에 폐쇄했다”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공장 주변에 축사가 위치한 배경에 대해서도 “생수 공장이 허가를 받기 위해 준비하기 시작한 것이 2004년도 무렵이다. 이 당시만 해도 축산농가가 없었다. 공장이 가허가 신청을 받고 난 이후, 공장이 만들어지고 그 와중에 바로 옆에 돼지 축사가 들어선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공장에서 1단계 취수정을 사용하고 있는지 여부에 관해서는 주민들과 공장 관계자 사이의 의견이 엇갈려 아직 정확한 판단이 어려운 상황이다. 마을 주민 유씨는 “오죽하면 마을 관정에 색소를 넣어서 생수 공장으로 들어가는지 여부를 확인하자는 말까지 나오겠느냐.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도 이것을 확인할 방법은 없다”라고 계속 의혹을 제기했다.

경기도 포천시의 ㅍ사 역시 ㄹ사와 마찬가지로 공장 생수가 침출수에 오염되었을 가능성에 대해 강하게 부인하고 나섰다. ㅍ사의 취수정과 약 7백m 떨어진 거리에 매몰지가 있는데, 이 때문에 이미 환경부의 조사를 받은 적이 있다는 것이다. ㅍ사측은 “환경부에서 검사 기관에 의뢰해 수질 조사를 한 바 있고, 그 결과 이상이 없다는 판정이 나왔다”라고 밝혔다.

생수업계에서 매몰지 침출수 우려에 대해 부인하고 있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매몰지의 깊이와 취수정 심도의 차이가 상당하므로 매몰지 침출수가 취수정에까지 영향을 미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생수업계나 이번에 경기도 생수업체 조사에 나선 환경부측은 “매몰지의 깊이는 보통 5m 정도인 데 반해, 해당 생수 공장의 취수정은 심도가 1백60m에서 2백2m에 이르러 침출수가 파고들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견해는 또 다르다. 여전히 침출수 오염 우려에 무게를 두고 있다. 김한승 건국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생수 공장의 영향 반경 안(대형 생수업체의 경우 1~3km)에서 대형 환경 사고가 발생하면 오염원은 토양을 오염시킨 뒤 그 아래로 스며들어 지하수까지 오염시키게 된다. 매몰지 바로 옆에 수원지가 있다면 거리에 따라 생수 공장 가동을 중단할 필요가 있다”라고 주장했다. 남궁은 명지대 환경생명공학과 교수 또한 “지역의 지질 구조에 따라 침투하는 속도의 차가 매우 크기 때문에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가령 제주도의 경우 지류 특성으로 하루만에도 지표의 침출수가 지하로 침투할 수 있다. 지역별로 다양한 변수가 있기 때문에 (침출수로 인한 지하수 오염 우려가) 없다고 보기는 힘들다”라고 말했다. 

 

 

김을동 의원 “생수 개발 허가 시 조사 허술”

경기도 일대 생수 공장에 대한 조사에 직접 나선 김을동 의원실의 한 관계자는 “물론 생수 공장 지대 옆에 무자비하게 매몰을 한 정부의 잘못이 더욱 크다. 이번 조사에 나서면서 가장 우려스러웠던 점은 생수 개발 허가 조사 자체가 허술하게 이루어진다는 사실이었다. 먼저 5년마다 개발 허가 조사가 이루어지는데 업체측에서는 1년 전 혹은 2년 전에 이미 조사가 이루어졌다는 식으로 대응하는 곳도 있었다”라고 지적했다.

김의원은 지난 3월17일 ‘생수 개발 허가 시 구제역 매몰지 등 오염 유발 시설의 오염 영향을 조사하도록 하는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환경부에서도 생수 공장 주변 매몰지에서 발생하는 침출수는 뽑아내 하수처리장으로 이송해 처리하도록 하는 등 생수 공장 주변의 구제역 매몰지 관리를 더욱 철저히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환경부는 전국 생수 공장 취수정 수질 조사 모니터링을 전국 시·도에 지시했으며, 현재 시·도별로 전국 68개 생수 공장의 취수정 수질 조사가 진행 중이다.


ⓒ시사저널 박은숙

제주산 생수가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구제역 매몰지에서 발생하는 침출수에 대한 공포가 낳은 이례적인 현상 가운데 하나이다. 침출수로 인해 상수원이 오염될 것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생수업체는 때아닌 호황을 누리고 있는 셈이다.  

특히 국내에서 거의 유일한 구제역 청정 지역인 제주에서 만들어진 생수 ‘제주 삼다수’는 “없어서 못 판다”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인기가 높다. ‘제주 삼다수’는 제주특별자치도개발공사에서 생산하고 농심이 독점 판매권을 따내 전국에 팔고 있다. 실제로 구제역 파동 이후에 ‘제주 삼다수’의 매출은 눈에 띌 정도로 늘어났다. 대개의 생수업체가 매년 10~20% 가까이 성장하고 있는데 비해, ‘제주 삼다수’는 올 1~2월 동안 지난해에 비해 40%가량 매출이 느는 등 급격한 신장세를 보였다. 

이에 대해 농심 홍보팀의 장재근 차장은 “최근 먹는 샘물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좋아져 생수업계가 꾸준히 성장세를 보이고 있었는데 올해는 유난히 매출이 급증하고 있다. 여기에는 여러 변수가 있겠지만, 제품 자체가 구제역의 영향을 받지 않는 제주도에서 생산되고 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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