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유산균’으로 면역력 키운다
  • 노진섭 (no@sisapress.com)
  • 승인 2011.03.28 18:3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감염 질환 예방에 효과…감기·설사·복통 등 증상 완화시켜

지난겨울 전국이 구제역으로 들썩일 때, 경기도 광주는 조용했다. 단 한 건의 구제역 감염 신고도 없었다. 유산균과 구연산을 혼합해서 만든 복합제를 사료에 넣어 가축에게 먹였고, 물에 타서 축사를 소독하는 방역 활동을 펼친 것이 주효했다.

이처럼 장에 사는 좋은 균 정도로만 여겼던 유산균의 새로운 효과가 밝혀지고 있다. 세균 하면 항생제를 떠올릴 정도로 항생제는 박테리아 킬러로 통한다. 그런데 항생제는 가축의 장에 사는 유익한 균도 함께 파괴하므로, 결국 면역력을 떨어뜨려 새로운 균에 취약하게 만든다. 득보다 실이 많은 항생제를 대신할 물질을 찾던 인류는 프로바이오틱스(probiotics)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프로바이오틱스는 몸에 좋은 균을 말하는데, 흔히 김치·된장·요구르트 등 발효 식품에 들어 있는 유산균(젖선균)을 말한다. 발효 식품에서 시큼한 맛을 내는 프로바이오틱스를 세계보건기구(WHO)는 ‘충분한 양을 섭취했을 때 건강에 좋은 효과가 있는 살아 있는 균’이라고 정의했다.

 

▲ 서울의 한 대형 마트 유산균 음료 진열코너에서 한 주부가 제품을 고르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건강한 장에서 발견한 ‘LGG’, 산성에 강해

여기서 ‘살아 있는 균’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아무리 좋은 균이라도 죽어 있는 상태(사균체)라면 장에 도달해서 유해균과 싸울 수 없다. 기존 유산균은 대부분 위산과 담즙에 의해 전멸해 장까지 도달하지 못했으므로 유산균에 캡슐을 씌우기도 했다. 그러던 중 1985년 건강한 장에서 LGG라는 유산균을 발견했다. 식품에 사용하는 프로바이오틱스 균은 약 20종인데, 그중에서도 LGG 유산균이 세계적인 관심을 끌고 있는 이유는 산성에 강하기 때문이다. 위산(pH2)보다 조금 약한 pH3 정도의 산도에서 4시간 동안 관찰해보니 다른 유산균(불가리쿠스)은 거의 전멸했지만, LGG 유산균은 상당수가 생존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그 이후 세계적으로 5백건이 넘는 연구 결과가 나올 정도로 이 유산균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 ① 락토코커스속: 단일, 쌍 또는 연쇄상구균 형태로 존재, 치즈나 발효 버터에 주로 존재 ② 락토바실러스속: 간균(막대기 모양 )③ 류코노스톡속: 쌍구균. 균체가 두 개씩 연결되어 있는 모양, 김치나 치즈에 주로 존재 ④ 스트렙토코커스속: 연쇄상구균(공 모양) ⓒ매일유업  

연구 결과 중 눈에 띄는 것은 유산균이 감염 질환 예방에 효과를 보인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주로 변비로 고생하는 사람이 유산균 음료와 식품을 찾았다. 그러나 앞으로는 감기에 잘 걸리는 사람도 유산균을 섭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영국 러프보로 대학교 체육보건대학의 마이클 글리슨 운동생화학 교수는 사이클, 철인 3종 경기, 육상, 수영 등 상당한 지구력이 필요한 종목의 선수 84명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실험했다. A그룹에게는 매일 프로바이오틱스를 섭취하도록 했고, B그룹에게는 가짜 유산균을 제공했다. 그 결과 B그룹은 감기와 같은 상기도 감염증이 1주일 이상 나타난 비율이 90% 정도인 반면, A그룹은 66%에 머물렀다. 또 심한 운동을 장시간 지속할 때 감소하는 ‘면역 글로불린A’ 수치도 유산균을 섭취한 A그룹에서 높게 유지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글리슨 교수는 “유산균 음료를 매일 마시면 상기도 감염증 발생을 낮출 뿐만 아니라 면역 항체를 떨어뜨리지 않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라고 결론지었다.

매년 노로 바이러스 감염으로 수많은 사람이 설사와 구토로 고생한다. 이런 때, 대부분은 지사제를 먹거나 병원을 찾아 진료를 받는다. 하지만 앞으로는 발효유로 해결하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발효유에 들어 있는 유산균이 설사 증세를 호전시키기 때문이다. 영국 스완지 의대의 스테판 앨런 교수는 8천명을 대상으로 한 63건의 연구를 재분석하면서 유산균이 하루 정도 설사 증상을 완화시킨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앨런 교수는 “유산균 음료나 식품을 섭취하면 장염을 일으키는 세균(클로스트리듐 디피실리)과 맞서 싸우는 효과를 본다. 이 효과가 하루 정도 유지되므로 급성 설사 증상이 완화될 수 있다. 당장 의사의 도움을 받기 어려울 때는 유산균 제품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유산균이 위장의 점막 선점해 병원균 막아”

▲ ⑤ 비피도박테리움속: 다형성 간균  ⑥ 페디오코커스속: 사연쇄상구균. 균체가 4개씩 연결된 연쇄상구균, 김치나 절임 식품에 주로 존재 ⓒ매일유업

과민성 대장증후군으로 복통과 복부 팽창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다. 이런 사람에게 5~6개월간 유산균을 섭취하도록 했더니 증세가 호전되었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 유산균을 섭취한 기간이 길수록 더 효과적이라고 한다. 이처럼 세균 감염 질환을 예방하고 증세를 호전시키는 효과가 꾸준히 알려지면서 LGG 유산균 등 프로바이오틱스는 이른바 ‘슈퍼 유산균’으로 통하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단순히 원활한 장 운동에 도움을 주어 변비 예방에 좋을 것으로 알려졌던 유산균에서 진일보한 것이다.

도대체 유산균은 우리 몸에서 어떤 작용을 하는 것일까? 호흡기와 위장의 점막은 세균의 진입 관문이다. 세균이 점막 표면에 달라붙으면서 병이 생긴다. 따라서 병원균이 점막에 붙지 못하도록 하는 방어 시스템이 중요하다. 그 역할을 LGG 유산균과 같은 프로바이오틱스가 하는 것이다. 최근 한국을 찾은, 세계적인 유산균 전문가인 리타 코펠라 헬싱키 대학 바이오의약연구소 교수는 “유산균이 점막을 선점해서 병원균이 붙을 만한 곳이 없게 만든다. 그만큼 LGG 유산균은 점막에 잘 붙는다. 또 유산균은 항염증 물질(사이토킨)을 촉진해 항염증 효과를 낼 뿐 아니라 면역세포(T세포)를 강화하는 역할도 한다. 한마디로 신체 면역이 떨어지지 않도록 유지해주는 좋은 균이다”라고 설명했다. 

유산균의 효과는 그뿐이 아니다. 위암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진 헬리코박터 균에도 유산균이 억제 작용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명확한 효과가 있다고 단정하기에는 이르지만, 결장암 등 특정 암에도 유산균이 억제력을 발휘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손상된 조직을 재생하고, 콜레스테롤과 혈압을 낮춰주며, 스트레스로 인한 새로운 세균의 성장을 억제한다는 보고도 있다. 프로바이오틱스를 둘러싼 신비의 껍질이 하나 둘 벗겨지면서 유산균에 대한 연구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실제로 2010년 이후부터는 유산균의 게놈 지도까지 만들면서 유산균의 효과를 규명하려는 노력이 세계 각국에서 진행되고 있다.

한편, 발 빠른 기업들은 ‘슈퍼 유산균’을 이용한 발효유 제품을 앞다투어 선보이고 있다. 약품보다는 발효유와 같은 기능성 식품이 개발·유통·판매에 손쉽기 때문이다. 20년 전 핀란드에서 세계 최초로 LGG 유산균 제품이 나온 이래 세계 각국은 발효유 제품을 쏟아내고 있다. 한국도 몇 년 전부터 발효유 시장이 급팽창하고 있다. 연간 1조5천억원 규모로 추정되는 발효유 시장에는 한국야쿠르트, 남양유업, 빙그레, 매일유업 등이 진출해 있다. 한국야쿠르트는 5년간 50억원의 연구비를 투자한 R&B(알앤비)라는 발효유 제품을 매치니코프에 이어 17년 만에 내놓았다. 매일유업도 김연아를 앞세워 퓨어(pure)라는 유산균 제품으로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최근에는 롯데칠성음료까지 이 시장 진출을 선언하면서 경쟁이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시사저널 임준선
유산균 하면 빠지지 않는 사람이 헬싱키 대학 바이오의약연구소의 리타 코펠라(Ritta Korpela) 교수(사진)이다. 세계적인 유산균 연구자인 그녀는 LGG 유산균 섭취가 감염 질환과 위장 건강을 지키기 쉬운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성인보다 어린이에게 효과적이라고 주장하는 그녀를 <시사저널>이 최근 서울에서 열린 국제 심포지엄 자리에서 만났다.

프로바이오틱스가 아이들에게 미치는 효과를 연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어린이에게 감기와 같은 호흡기질환은 매우 흔한 건강 문제이다. 성인이 한 해에 1~5회 감기에 걸린다면 아이는 5~10회 정도이다. 따라서 성인보다 어린이 감염 질환을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들 감염 질환에 효과가 있는가?

성인보다 아이들에게서 효과가 크게 나타난다. 어린이집 18곳의 1~6세 아이 5백71명을 대상으로 7개월간 연구한 적이 있다. 두 그룹으로 나누어, LGG 유산균 우유와 일반 우유를 각각 먹였더니 LGG 유산균 우유를 먹은 아이들에게서 중이염 등 감염 질환 발병이 현저히 낮았다. 슬로베이나에서 2백80여 명의 어린이를 대상으로 13개월 동안 시험한 결과도 같았다. 이런 연구들의 공통점은 LGG 유산균이 어린이가 호흡기질환에 걸릴 위험성을 상당히 줄인다는 것이다.

설사를 멎게 하는 데에도 도움을 주는가? 

1~36개월 아이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유산균이 들어 있는 약과 가짜 약을 각각 투여했다. 유산균이 함유된 약을 먹은 아이들의 설사율이 낮게 나타났다. 2002년 이후 쏟아진 관련 논문을 종합해보면 5세 미만 어린이의 급성 설사에 LGG 유산균이 효과를 보인다. 또 3~36개월 아이들 100명에게 닷새 동안 매일 유산균이 함유된 약을 투여했다. 그 결과 로타 바이러스 감염률이 61%나 감소했으며 설사도 40%나 줄었다. 로타 바이러스는 유아에게 잘 감염되며 설사·복통·구토 증세를 보이는 장염을 일으킨다.

호흡기와 위장 감염 질환 외에 다른 감염 질환에도 좋은가?

성인들과 관련해서는 아직 결론을 내리기가 쉽지 않지만, 어린이 중이염에는 효과가 있다. 항생제를 쓰지 않고도 아이들의 중이염 증세를 약화시킬 수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