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거대한 첩보 전쟁터
  • 홍순도│중국 전문 칼럼니스트 ()
  • 승인 2011.03.14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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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국 대사관·외신기자·기업인 대상 ‘공작 활동’ 치열…잘못 걸려들어 횡액 당하는 사례도 많아

 

▲ 베이징의 자금성을 지키고 있는 중국 공안들. ⓒAP연합

중국은 첩보 전쟁에 관한 한 세계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다. 아니, 지구촌에서 유일무이하게 첩보전의 텍스트나 매뉴얼을 불문(不文)으로 남긴 원조라고 해도 옳다. 진시황이 대륙을 통일한 기원전 221년 이전인 춘추 전국 시대 때부터 이미 요즘 말로 하면 첩보원인 이른바 ‘세작(細作)’들의 천하일 정도였으니 말이다. 오죽했으면 진시황이 천하 통일을 위해 주변 6국에서 스카우트한 인재들이 모두들 세작일지 모른다는 의혹 하나 때문에 쫓겨날 뻔했을까.

이런 전통과 역사는 말할 필요도 없이 지금도 중국에 면면히 남아 있다. 아니, 체제 자체가 사회주의인 탓에 오히려 음지에서 더 만연하고 있다. 특히 외국인 대상의 첩보전은 미국의 CIA, 러시아의 KGB, 영국의 MI5나 MI6, 이스라엘의 모사드 등을 완전히 제압한다. 한국은 아예 게임조차 되지 않는다. 그래서 실제 중국 현지에서 한국인들이 많이 당하기도 하는 것이다.

대사관 고용원 등으로 위장 침투시키기도

중국의 1차적인 주적은 말할 것도 없이 미국이다. 그러나 타이완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위협적이지는 않으나 반드시 흡수 통일을 해야 하는 대상인 탓이다. 그래서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국가안전부’의 15국이 매년 3천명 이상의 공작원을 훈련시켜 타이완으로 침투시켰다.

흐물흐물 스스로 무너지게 만들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런데 최근 양안(兩岸) 관계의 호전으로 인해 굳이 이렇게 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자연스레 인력이 남아도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더구나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을 공작 대상으로 해 양성한 에이전트와 주로 이들이 개인적으로 고용하는 프락치 인력의 규모도 만만치 않다. 중국으로서는 자체의 첩보전에 더욱 전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중국의 첩보 공작은 주로 각국 대사관을 대상으로 이루어진다. 가능하면 신분을 위장한 고용원이나 허드렛일을 하는, 남의 눈에 잘 띄지 않는 이들을 에이전트로 침투시킨다. 또 대사관 직원들이 개인적으로 고용하는 보모나 운전기사로도 들여보낸다. 대사관이나 대사의 관저, 고위 간부들의 주택 외곽에서도 공작은 이루어진다. 휴대전화나 유선전화 도청은 거의 기본에 속한다. 이 때문에 베이징의 각국 대사관들은 기를 쓰고 공관 공사를 자신들이 직접 한다. 도청을 막기 위해 온갖 첨단 기술을 다 동원하기도 한다. 그러나 구멍은 곳곳에서 날 수밖에 없다.

한국 대사관이라고 예외가 될 수 없다. 보조 직원들을 채용할 때 주로 조선족을 대상으로 철저하게 신원을 파악해서 고용하지만 그래도 믿을 수가 없다. 처음에는 순진한 직원으로 들어왔다가 중국 공안의 공작에 넘어가 에이전트나 프락치로 변신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지금 한국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상하이 마타하리’로 불리는 덩신밍 씨 역시 이럴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도 주변에서 들려온다.

대략 5백명에 이르는 외국 언론사 특파원들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완전 ‘밥’이라고 보아야 한다. 때문에 운전기사나 보모는 기본이고 우연을 가장한 채 주변에 얼쩡거리면서 접근하는 이들은 항상 경계 대상 1호가 된다. 귀중한 정보를 주는 척하며 환심을 산 다음 공작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인해 외신 특파원들은 슬프지만 주변의 모든 사람을 의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운명을 감수해야 한다. 자칫하면 자신이 공작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 또 명심해야 하는 것이다.

첨단 기술을 비롯한 고급 정보를 다루는 위치에 있는 각국의 기업인들은 더욱 훌륭한 먹잇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에 대한 공작이나 정보 절취는 고도의 전문성을 요하는 만큼 해당 분야에 정통한 교육을 받은 수준 높은 스파이나 프락치가 동원된다.

중국이 자국에 장·단기적으로 체류하는 전세계의 유력 인사들이라고 가만히 놓고 볼 이유가 없다. 어떻게 해서든 이들을 통해 귀중한 정보를 빼내려 한다. 그것도 안 되면 중국을 위해 유리한 활동을 하도록 공작을 적극적으로 펼친다.  

공작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으로도 이루어진다. 대개 이런 경우는 이성(理性)을 마비시킬 만한 수준의 이성(異性)이 개입한다. 아예 작심하고 공작을 하는 경우도 있으나 대체로 프락치를 동원하는 경우가 더 많다. 2004년 자살한 주상하이 일본 영사관의 전신관이 당한 횡액은 바로 후자에 속한다. 별 생각 없이 하룻밤을 즐긴 가라오케의 호스티스가 프락치로 변신해 그의 목줄을 죄어온 탓에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스파이·프락치가 ‘물 반, 고기 반’?

중국에서 활동하는 스파이나 프락치들이 노리는 것은 다양하다. 우선 자국에게 유리할 수 있는 각종 정보들을 수집하는 것이 1차적인 목적이다. 특히 사회주의 국가인 만큼 체제 유지에 도움이 되는 정치·국방 문제와 관련한 정보는 웬만하면 거의 수집한다. 또 첨단 기술이나 관련 정보 역시 차츰 그 중요도가 높아지고 있다. 외국의 간첩 내지 외국 정보기관에 고용된 자국민 스파이나 프락치를 색출하는 이른바 반탐(反探) 공작도 이들의 중요한 임무 가운데 하나이다.

공안을 비롯해 국가안전부, 보밀국(保密局) 등이 심심하면 꼼짝 못하도록 증거를 제시하는 간첩 사건을 빵빵 터뜨리는 것은 바로 이런 현실을 반영한다. 분명한 사례도 있다. 지난 2005년 4월 타이완을 위해 간첩 행위를 한 혐의로 체포되어 3년 동안 징역을 산 홍콩 출신의 싱가포르 스트레이츠 타임스의 청샹(程翔) 특파원의 경우가 그렇다. 최고의 중국 변호사까지 동원해 어떻게든 혐의를 벗으려 했으나 확실한 증거를 들이대는 데에는 방법이 없었다.

한국인이 걸려들어 횡액을 당할 뻔한 사례도 많다. 특파원 출신인 ㄱ씨의 경우가 그 대표적 예이다. 필자와도 친한 그는 금세기 초에 사업을 한다는 명목으로 베이징으로 다시 돌아갔다. 이때 필자는 그와 빈번하게 교류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갑자기 사라졌다. 백방으로 찾았으나 연락이 되지 않았다. 이유는 나중에 알 수 있었다. 중국 공안 당국에 빌미가 잡힐 만한 모종의 일을 한 탓에 체포될 위기에 몰리자 칭다오(靑島)에서 배편으로 탈출한 것이다. 이후 그는 5년 동안 중국 입국이 금지되었다.

이외에 스파이나 프락치의 활동에 의해 중국에서 외국인이나 중국인이 횡액을 당한 경우는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때문에 베이징을 비롯한 중국의 주요 도시에서 일하게 되는 외국의 외교관, 특파원, 기업체 고위 임직원들은 주변에 스파이나 프락치가 물 반, 고기 반이라는 생각으로 항상 각별히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 여리박빙(如履薄氷), 즉 얼음 위를 걷는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다친다. 때문에 국내를 떠들썩하게 만든 상하이 스캔들은 바로 이런 교훈을 망각해 발생한 한국 외교의 대참사라고 해도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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