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지붕 세 고을’ 인맥도 ‘핵융합’
  • 이춘삼│편집위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1.03.14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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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신 인맥 지도 | 통합 창원시

 

▲ 창원공단 ⓒ연합뉴스

생활권이 같은 창원시, 마산시, 진해시의 이른바 ‘마·창·진’ 통합에 대한 논의가 꾸준히 이어져오다가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본격화되었다. 2009년 마산·진해 시의회의 행정 구역 자율 통합 찬성 표결에 이어 창원 시의회에서도 통합안이 가결되었고, 2010년 3월2일 국회에서 3개 시를 창원시로 통합하는 ‘창원시 설치에 관한 특별법’이 통과됨에 따라 2010년 7월1일 통합 창원시가 출범했다. 이에 따라 기존 창원시는 의창구와 성산구로 분구되고 마산시는 마산합포구와 마산회원구로, 진해시는 진해구로 새롭게 태어났다. 통합 창원시의 현재 인구는 1백8만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국회의원 선거구별로 본 현 18대 의원은 의창구에 해당하는 창원 갑의 권경석 한나라당 의원, 창원 을(성산구)의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 마산 갑(마산합포구)의 이주영 한나라당 의원, 마산 을(마산회원구)의 안홍준 한나라당 의원, 진해(진해구)의 김학송 한나라당 의원이다. 창원 을의 민노당 권영길 의원을 제외한 4개 지역구를 한나라당 의원이 차지하고 있다.


지역 명문 마산고 출신들 약진 두드러져

권경석 의원은 산청 출신으로 부산중·고와 육사를 졸업한 후 소령 때까지 군에 몸담았다가 환직(換職) 사무관으로 부산시에 들어가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부산시 보건사회국장, 영도구-사하구청장을 거쳐 경남도 행정부지사를 지냈다. 이후 한나라당으로 적을 옮겨 17대와 18대에서 2선을 기록했다. 당내 제1정책조정위원장, 경남도당 위원장을 지냈다.

권영길 의원은 본적이 산청이며 부산에서 초등학교와 경남중·고를 마치고 서울대 잠사학과를 졸업했다. 서울신문 기자로서 언노련 위원장과 민노총 위원장을 역임한 노동운동가이다. 정계에 들어가서는 민주노동당 대표와 원내대표를 지냈다. 15, 16, 17대 대선에 출마했고 16대 총선에서 낙선했지만 17대와 18대에 금배지를 단 2선 의원이다. 그의 선거구에 속해 있는 창원공단에서 입지가 탄탄하다는 평이다. 민노당 소속의 도의원과 시의원도 다수이다.

율사 출신이며 현재 국회 예산결산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주영 의원은 마산에서 태어났다. 마산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다 서울로 전학해 중앙중과 경기고를 졸업했다.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판사-부장판사를 지냈다. 한때 민주당 창원 을 지구당 위원장을 맡았으나 한나라당으로 바꿔 16대 국회에 첫발을 디뎠으며, 17대에는 마산 선거구에서 재·보궐 선거를 통해 당선되었다. 한나라당 정책위 의장을 지낸 후 마산 갑에서 득표율 72%의 높은 지지를 받으며 18대 국회에 들어간 그는, 법사위원과 국회 사법제도개혁특위 위원장을 맡는 동안 실력을 인정받았다.

안홍준 의원은 함안 출신으로 마산중·고와 부산대 의대를 졸업했다. 마산에서 중앙자모병원을 하면서 마산-창원-진해 부산대 총동문회장, 마산-창원-함안 향우회장, 마산고 총동창회 부회장을 맡아 일찌감치 터를 닦았다. 17대 마산 을 총선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당선되었고, 이후 당 제4정조위원장과 대외협력위원장을 지냈다. 18대 총선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김학송 의원은 진해 출신이다. 마산중·고와 건국대 정외과를 졸업했다. 개인 사업을 하며 경남지구 청년회의소 회장 등을 맡으며 지역 사회에 얼굴을 알렸다. 15대 총선에서 고배를 마셨지만 16~18대까지 3선을 기록했다. 18대 국회 전반기 국방위원장을 맡았으며 천안함 사건 진상조사특위 위원장으로도 활동했다.


이 지역의 민주당 지역위원회 위원장은 다음과 같다. 창원 갑의 김지수 위원장은 현재 마산약사회 의료보험위원장으로 있으며 제5회 동시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경남도 광역의원 비례대표 후보로 등재된 경력이 있다. 창원 을을 맡고 있는 허성모 위원장은, 부산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노무현 대통령 시절 청와대 민원제도개선 비서관을 지냈으며 현재 중앙당 정책위 부의장이다. 마산 갑의 김성진 위원장은 경남대 총학생회장을 지냈으며 역시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청와대 행정관 출신이다. 마산 을을 맡고 있는 하기남 변호사는 18대 총선에 출마한 경력이 있다. 진해의 강신철 위원장은 인하공전 기계과를 졸업했으며 3년 전부터 민주당 지역구를 맡아왔다. 진해 선거구에서는 진해시장을 세 차례 지낸 무소속의 김병노씨를 포함해 야권 단일화가 논의되고 있다.

출마를 염두에 두고 있는 이곳 야권 인사들은 대체적으로 노 전 대통령과의 인연을 앞세우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한편 권영길 의원의 창원 을 선거구에는 강기윤 위원장이 한나라당 당원협의회를 맡아 극적인 반전을 노리고 있다. 7, 8대 경남도의회 의원을 지낸 강위원장은 창원 출신으로 창원 상남초-창원남중-마산공고-창원대 행정학과를 다닌 토박이이다.


월의 변화에 따라 이제는 창원시로 통합되었지만 전통적으로 마산은 중·서부 경남의 중심을 이루어왔던 곳이고 명문 마산고의 아성이었다. 경상남도를 통틀어 부산의 경남고, 부산고를 비롯해 마산고, 진주고가 지역의 명문 고등학교로 명성을 떨쳤다.

1936년 3월16일 마산공립중학교로 설립 인가를 받은 마산고는 75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올봄 70회 졸업생을 배출함으로써 총 동문 숫자는 3만1천명에 이른다. 이런 동문의 세를 과시하듯 마산고 출신들이 사회 각계의 요직에 폭넓게 자리 잡고 있다.

한때는 부산시에서 허남식 시장과 설동근 교육감(현 교육과학기술부 1차관), 박용수 지방법원장(현 법무법인 국제 대표변호사)이 재직해 지검장을 포함한 4대 기관장 중 세 자리가 마산고 동문이었다고 해서 화제가 된 적도 있다.


4·19와 부마 항쟁에서 시민 저력 분출

한 중앙 일간지가 올 초에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13개 주요 기업 그룹(자료를 제공하지 않은 삼성그룹과 SK그룹 제외)의 전년도 말 임원 승진자 8백12명 중에서 출신 고교별로 볼 때 경기고와 마산고가 각 12명으로 최다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 뒤를 이어 경복고(11명), 경동고(11명), 서울고(10명), 계성고(10명)가 10명 이상을 낸 고교 대열에 합류했다.

마산은 정치 의식이 상당히 앞서가는 고장이었다. 4·19를 폭발시킨 김주열 열사의 죽음과 부마 항쟁이 바로 그것을 입증한다. 4·19 혁명의 도화선은 1960년 2월28일 대구에서 불붙었다. 민주당 정·부통령 후보 유세가 벌어지던 그날, 일요일이었음에도 대구 시내 모든 초·중고생들에게 등교 지시가 내려졌다. 야당 유세장에 가는 것을 막기 위해 저질러진 무모한 강압이 거꾸로 “학생들을 정치에 이용하지 마라”라는 시위를 촉발했다. 이후 학생 시위가 전국적으로 이어졌고 구호는 ‘부정 선거 규탄’으로 확대되었다. 3·15 부정 선거가 자행되고 이에 저항하는 시위가 격화되자 무자비한 탄압이 가해졌다. 이런 분위기 속에 4월11일, 행방불명이었던 마산상고 학생 김주열군이 눈에 최류탄이 박힌 채 시체로 발견되자 시민들의 흥분은 극에 달했다.

1979년 부마 항쟁 역시 독재 체제에 반기를 든 부산·마산 시민들의 봉기였다. YH 사건에 이은 김영삼 신민당 총재의 직무 집행 정지 가처분-의원직 박탈 등 일련의 사건이 부마 항쟁을 불러왔고, 이는 결국 유신 정권의 명을 재촉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 지역의 인물을 꼽을 때 흘러간 인물로 기억되는 박종규 전 대통령 경호실장을 빼놓을 수 없다. 박정희 정권 시절 “울산에 이후락이 있다면 창원에는 박종규가 있다”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위세가 대단했다.

고 박종규 전 실장은 재임 중이던 1970년 경남대 전신인 삼양학원 이사장에 취임하고 이듬해 마산대를 인수해 정식으로 경남대를 세웠다. 이 학교는 1982년 3월 종합대로 승격했다. 국내 최장 기록인 10년3개월 동안 대통령 경호실장의 자리에 있으면서 ‘피스톨 박’이라는 별칭과 함께 권력의 한 축으로 군림했던 그는, 1980년 신군부 등장 후 부정 축재자로 지목받았고 1985년 12월3일 사망했다.

경남대는 동생 박재규 총장이 이어받았다. 박총장은 미국 유학 후 군 복무를 위해 귀국해 경남대 정외과 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경남대 총장, 이사장, 통일부장관 등의 공직을 번갈아 맡았다. 북한 문제를 다루는 극동문제연구소를 경남대 부설로 만들어 이끌어오고 있다.

박종규 전 이사장의 아들이자 박재규 총장의 조카인 박 아무개씨가 숙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재판에 회부되어 지난해 말 징역 10월의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가 언론을 상대로 “숙부에게 부친이 설립한 학교 경영권을 돌려달라고 하자 돈을 주고 학교를 샀다는 증거로 영수증을 보여주었는데 학교를 빼앗기 위한 음모였다”라고 주장한 것이 명예훼손에 해당한다는 판단을 받은 것이다.

출향 인사 중에는 윤증현 기획재정부장관이 있다. 윤장관은 서울고, 서울대 법대를 나와 10회 행시에 수석 합격했다. 국제금융과장, 은행과장, 금융과장 등 옛 재무부의 핵심 직책을 거치며 승승장구했다. 1997년 재정경제원 금융정책실장 시절 외환위기의 한복판에 섰으며 그 여파로 1999년부터 5년간 아시아개발은행(ADB) 이사를 맡는 등 변방을 떠돌아야 했다. 2004년 금감위원장으로 컴백해 2007년 8월3일 임기를 마쳤다.


윤장관은 이수성 전 국무총리의 매제로 이 전 총리의 동생인 고 이수인 의원을 통해 꼬마 민주당 시절 이의원과 절친했던 노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이명박 대통령과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자문위원을 맡아 일하는 동안 짧은 시간에 큰 신임을 얻었다는 평을 듣는다.

강삼재 전 신한국당 사무총장(현 대경대 총장), 강제규 영화감독, 김성찬 해군참모총장, 노재봉 전 국무총리, 박재완 고용노동부장관, 송광수 전 검찰총장,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도 있다.

이색적인 인물로는 원로 작사가 겸 가수인 반야월(본명 박창오)옹이 있다. 70년 넘게 가요계에서 활동하는 동안 <울고 넘는 박달재> <산장의 여인> <단장의 미아리고개> <무너진 사랑탑> <열아홉 순정> <소양강 처녀> 등의 무수한 히트곡을 작사하고 <불효자는 웁니다> <꽃마차> 등을 불러 청중의 심금을 울렸다. 자작 예명 ‘반야월(半夜月)’에는 “수줍은 반달처럼 50점짜리 인생밖에 안 된다”라는, 가족에게 제대로 못한 후회와 겸양의 의미가 담겨 있다.  


 발표 명단은 구(舊) 마산·창원·진해 출신들을 비롯해 출신지는 다르지만 마산고에서 수학한 인물들을 함께 포함해 정리했음(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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