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배급 ‘타이밍’에 흥행 희비 엇갈렸다
  • 최광희│영화 저널리스트 ()
  • 승인 2011.03.07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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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성> 이준익 감독 은퇴와 <조선명탐정> 성공이 남긴 것

 

▲ ⓒ영화사 아침 제공

지난 2월26일 이준익 감독은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평양성, 2백50만명에 못 미치는 결과인 1백70만명. 저의 상업영화 은퇴를 축하해주십시오”라고 말했다. 앞서 이준익 감독은 <평양성> 개봉 전에 “만약 이 영화의 손익분기점을 못 넘기면 상업영화에서 은퇴하겠다”라고 선언했었다. 이준익 감독은 <라디오 스타> 이후 전작인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까지 최근 연출한 네 편의 작품이 흥행에서 연달아 고배를 마셨다. 2005년 <왕의 남자>로 1천만 관객을 동원한 바 있는 흥행 감독의 패퇴라는 점에서 이준익 감독의 은퇴 선언은 영화계 안팎에 씁쓸함을 남겼다.

이준익 감독의 은퇴는 영화 흥행에서 기획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역설적인 사례로 남게 되었다. 설 연휴 대목을 노리고 개봉한 <평양성>은 지난 2003년에 빅히트를 기록했던 <황산벌>의 흥행 전략을 시대 배경과 인물들만 살짝 바꾸고 거의 그대로 가져왔다. 그렇다 보니 새로운 웃음을 선사하는 데 이르지는 못했다는 평가를 들었다. 잔재미는 있는데, 배꼽이 빠질 정도로 포복절도할 코미디로 탄생되지는 않았다는 얘기이다. 검증된 흥행 코드를 재활용하려다 보니 흥행에서도 쓴맛을 본 대표적인 사례가 된 것이다.

반면, 4백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설 연휴 극장가의 최종 승자로 남게 된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은 기획의 힘에 의해 흥행 성공을 거둔 사례로 꼽힌다. <미녀는 괴로워>의 제작자 원동연 리얼라이즈 대표는 “<조선명탐정>은 모처럼 기획이 보이는 영화이다”라고 평가했다. 이 영화를 제작한 청년필름의 김조광수 대표는 “기획 단계에서 유쾌한 사극을 만들어보자는 콘셉트를 가졌고, 캐릭터가 잘 살아 있는 코미디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우스꽝스러운 조선 시대 탐정으로 분한 김명민의 변신은 이 영화의 핵심적인 흥행 포인트로 작용했다. 그가 연기한 탐정 캐릭터를 시리즈물의 주인공으로 삼아 후속 작품을 만들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라는 평가였다. 한 번 시장에서 입증된 기획으로 이른바 프랜차이즈 영화들을 만드는 것은 할리우드에서는 관행적인 흥행 전략이다. 적지 않은 영화인들은 <조선명탐정>이 바로 그런 한국형 프랜차이즈 영화의 가능성을 내비쳤다는 점에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시대극 안에 웃음 코드를 가미한 것도 주효했다. 김조광수 대표는 “관객들이 지난해 잇따랐던 잔인하고 무거운 스릴러 영화들에 식상해 있다가 웃고 싶은 욕망을 만족시켜준 게 흥행 이유인 것 같다”라고 자평했다. 이송희일 감독의 <후회하지 않아> 등 그동안 주로 독립영화를 제작해 온 김조광수 대표는 “상업영화와 독립영화를 오가는 것이 청년필름이 추구하는 색깔이다. <조선명탐정>의 성공에 힘입어 준비 중인 독립영화도 많은 힘을 받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기획이 살아 있는 상업영화로 돈을 벌어 의미 있고 작품성도 강한 독립영화를 제작하는, 일종의 이중 전략인 셈이다.

콘셉트 확실한 마케팅 포인트 찾아낸 뒤 제작해야

지난해 말 개봉한 <황해>와 <헬로우 고스트>도 기획이라는 측면에서 희비가 엇갈렸던 사례이다. 차태현 주연의 <헬로우 고스트>는 영화 말미에 가족 영화로서의 강력한 눈물 코드를 배치해놓았다. 그때까지의 스토리 전개가 비교적 지루했음에도 관객이 원하는 가족 휴먼 드라마적인 감정을 적절하게 건드려주었기 때문에 흥행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반대로 <황해>는 100억원 이상의 제작비가 투입된 대작이라는 점에서 치밀한 기획이 뒷받침되어야 함에도 그렇지 못해 흥행에서 실패한 사례이다. 이 영화는 나홍진 감독의 연출 색깔을 지나치게 밀어붙인 탓에 제작 과정이 당초 계획보다 지연되었다. 그래서 이런 영화에는 걸맞지 않은 연말 시즌에 개봉한 것이 가장 큰 패착으로 꼽힌다.

결국 적절한 기획과 배급의 타이밍 그리고 콘셉트가 확실한 마케팅 포인트인 것이다. 이 삼박자를 두루 갖춘 영화들이 흥행에서 성공한다는 것을 최근의 영화 흐름이 보여주고 있다.   



ⓒCJ E&M 제공

 낙하산에 떠밀려 해고당한 뒤, 구사일생으로 메이저 방송사 재취업에 성공한 프로듀서 베키(레이첼 맥아담스). 시청률 꼴찌 모닝쇼 <데이브레이크>에 배치받지만 어째 분위기가 수상하다. 오합지졸 팀원 구성에 베테랑 여성 앵커 콜린(다이앤 키튼)의 까탈은 시어머니 저리 가라이다. 시청률을 위해 새로 섭외한 전설의 앵커 마이크 포머로이(해리슨 포드)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사악한 인간’이라는 별명답게 사사건건 시비이다. 매사에 까칠한 독설로 일관하는 이기적인 왕년의 전설 앞에, 멋진 프로그램을 만들겠다는 베키의 꿈은 시시각각 좌절에 가까워진다. 모두의 좋은 아침을 위해 달리는 베키의 아침은 그렇게 지옥이 되어 간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작가와 <노팅힐> 감독의 만남으로 화제를 모은 영화 <굿모닝 에브리원>은 젊은 직장 여성의 연애와 성공을 다룬 일종의 칙릿 영화이다. 연애보다는 성공에 방점을 찍고 간다는 면에서 기존의 작품과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직장 생활의 고난 속에 성장해가는 주인공의 면면은 일견 고개가 끄덕여지지만, 걸출한 작가와 감독이 만든 최선의 결과물인가를 묻는다면 쉽게 긍정하기는 어렵다.

단점이 꽤 많은 탓이다. 이야기의 흐름은 매끄럽지 못하고 캐릭터의 감정 변화는 급작스럽다. 연애할 시간도 없이 쫓겨다님에도 늘 말끔한 풀메이크업에 9㎝ 하이힐로 무장한 주인공의 외양이나 더없이 순조롭기만 한 그녀의 로맨스는 비현실적이다. 전하려는 교훈은 뻔하고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의식한 듯한 장식적 영상도 가끔 튄다.

그럼에도 <굿모닝 에브리원>은 꽤 볼만한 코미디물이다. 방송가의 이면을 포착한 상황의 디테일은 훌륭하고 주요 캐릭터는 자기 개성을 유지할 때 꽤 흥미롭다. 당대의 팝음악을 선곡한 사운드트랙도 즐겁다. 무엇보다 신구 배우가 펼치는, 특히 중견배우가 보여주는 연기의 앙상블은 최고이다. 해리슨 포드와 다이앤 키튼은 자칫 평범해질 뻔한 영화를 완벽히 구제한다. 시종일관 폭소를 자아내고 활력을 불어넣는 이들의 연기는 영화 <굿모닝 에브리원>이 지닌 최대의 강점이다. 온몸을 던진 그들의 연기 앞에 웃다 보면 깨닫게 된다. 좋은 배우는 종종 대단한 일을 해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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