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실세와의 커넥션 드러날까
  • 김지영 (young@sisapress.com)
  • 승인 2011.02.28 20:5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의혹의 사나이’ 한상률 전 국세청장 돌연 귀국…폭발적 사안 많아 검찰 수사에 관심 집중

 

▲ 지난 2009년 1월13일 일본 방문을 마치고 귀국해 기자의 질문을 받고 있는 한상률 당시 국세청장. ⓒ연합뉴스

 2009년 1월12일 전군표 전 국세청장의 부인 이미정씨가 한상률 당시 국세청장의 ‘그림 상납’ 의혹을 폭로했다. 그는 “남편이 국세청장으로 재임하던 2007년 초 한상률 당시 국세청 차장 부부와 시내 모처에서 만나 식사를 하며 그림을 선물로 받았다”라고 밝혔다. 한상률 전 청장이 자신의 인사 로비를 했다는 것이다. <학동마을>로 알려진 이 그림은 당시 시가로 3천만원을 호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한 전 청장은 당시 “전혀 사실무근이다”라며 여권 일각에서 나오는 사퇴 요구를 일축했다.

 하지만 이튿날 한 전 청장을 더욱 궁지에 몰아넣는 또 하나의 메가톤급 진실이 밝혀졌다. <시사저널>은 1월13일 본지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한상률 청장의 경주 골프 사건’을 특종 보도했다. 2008년 12월 경북 경주에 내려간 한 전 청장이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과 친분이 있는 포항 지역 인사들 및 이대통령의 동서 신 아무개씨 등을 만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대통령 친·인척을 대상으로 한 한 전 청장의 인사 청탁 의혹은 일파만파로 확대되었다. 한 전 청장과 관련한 의혹의 불길이 대통령 주변에까지 옮겨붙자 사태를 주시하던 여권 핵심부는 한 전 청장의 사퇴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한 전 청장은 버텼다. 1월15일 국세청 해명 자료를 통해 “사의를 표명할 계획이 없다”라고 발표했다. ‘무언가’를 손에 쥔 채 청와대와 맞서고 있다는 설이 파다했다. 그 ‘무언가’가 터지는 것이 아니냐는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팽배할 무렵인 그날 오후 한 전 청장은 청와대에 사의를 표명하고 ‘침묵’에 들어갔다. 당시 여권의 한 핵심 인사는 ‘한상률이 쥐고 있는 카드’와 관련해 “한 전 청장이 세무조사 과정에서 현 정권 실세와 관련한 메가톤급 내용을 확보한 것으로 안다”라고 전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주목되는 것은 크게 세 가지이다. 우선 ‘돈’이다. 그가 정권 교체 와중에서도 살아남기 위해 유력 인사에게 금품 로비를 했다는 의혹이다. 둘째는 ‘그림 로비 의혹’이다. 전군표 전 청장 말고 현 정권 실세에게도 그림 로비를 했다는 의혹이다. 셋째는 세무조사 과정에서 현 정권의 실세나 최고위층과 관련한 ‘비밀’을 확보했을 가능성이다.

 한상률 전 청장은 사퇴한 지 두 달 후인 2009년 3월15일, 느닷없이 미국으로 출국했다. 그는 “공부하러 간다”라고 했지만 당시 그의 출국 배경을 놓고 구구한 해석들이 쏟아졌다. 그 가운데 ‘박연차 게이트’와 관련되었기 때문에 출국했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공교롭게도 그의 출국 시점이 대검 중수부가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에 대한 정·관계 로비 사건을 본격적으로 수사하던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검찰이 박연차 사건을 수사하게 된 계기는 국세청이 제공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은 한 전 청장이지만, 이명박 정부에서 계속 ‘연임’할 목적으로 여권 실세들과 접촉했다. 그런 와중에 “박연차 회장과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라는 ‘첩보’를 입수했다. 국세청이 2008년 7월부터 태광실업에 대한 강도 높은 특별 세무조사에 들어갔던 것도 그 때문이다. 그로 인해 박 전 회장은 그해 12월 검찰에 구속되었고,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막’을 내린 ‘박연차 게이트’의 서막이 올랐다. ‘친노’ 진영에서 “한상률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내몰았다”라고 성토하며 이를 가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한상률 전 청장은 지난 2월24일 오전, 전격적으로 귀국했다. 그동안 국세청과 사정 당국 안팎에서는 ‘한상률 귀국설’이 끊임없이 나돌았다. 6·2 지방선거 전인 지난해 3월과 5월에 특히 한 전 청장 귀국설이 사정 당국 안팎에서 확 퍼졌다. 하지만 그는 끝내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지난해 8월 말 기자가 만난 사정 기관의 한 간부는 “검찰의 7월 인사가 끝난 직후인 8월 초에 한 전 청장의 대리인이 서울중앙지검을 방문해 한 간부를 만났다. 그 자리에서 두 사람은 한 전 청장과 관련해 이야기를 나누었다”라고 귀띔했다. 지난해 9월 초에 만났던 세무 당국의 핵심 관계자는 “당시 한 전 청장의 대리인은 서울중앙지검의 한 고위급 인사에게 ‘한 전 청장이 미국 생활을 무척 힘들어 하고 있으며, 체류 비용도 거의 없다. 그래서 6개월 안에 입국할 계획을 갖고 있다’라는 입국 의사를 전달했다. 이에 이 검찰 인사는 ‘가급적 빨리 귀국해서 조사를 받는 편이 낫다’라며 귀국을 재촉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시사저널> 2010년 10월19일자). 그로부터 정확히 6개월 만인 지금 한 전 청장이 귀국했으니, 결과적으로 이 인사의 전언은 적중한 셈이다.

뇌관, 내년이나 내후년에 터질 가능성 커

 한상률 전 청장이 귀국 시점을 지금으로 잡은 데에는 여러 가지 정치적 고려가 있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우선 자신의 손에서 시작되었던 박연차 사건 재판이 거의 마무리되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또한 여권 핵심부와 이미 사전 조율을 마쳤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국세청의 한 관계자는 2월25일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한 전 청장이 입국할 때 검찰과는 사전 교감이 없었던 것으로 안다. 하지만 여권 핵심부와 조율하지 않은 채 귀국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한상률 전 청장의 귀국에 따른 파장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민주당에서는 벌써 ‘특검’이 거론될 정도이다. 하지만 국세청과 사정 당국에서 바라보는 관점은 또 다르다. 우선 한 전 청장과 연루된 대표적인 의혹 세 가지는 △국세청 차장 시절 청장을 노리고 당시 전군표 청장에게 그림 로비를 했는지 △현 정권에서 연임하기 위해 여권 실세들에게 로비했는지 △태광실업 세무조사 과정에 직권을 남용한 것은 없는지 등이다. 이는 민주당과 참여연대가 고발한 내용들이다. 검찰 수사도 이를 중심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그 밖에도 2004년 조사국장 시절 신성해운 금품 수수설 등 몇 가지가 더 있지만, 이는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 가운데, 연임 로비와 직권 남용 부분에 대해 검찰이 얼마나 제대로 규명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검찰 안팎에서는 벌써부터 “검찰이 직권 남용으로 처벌한 사례는 그리 많지 않다”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관건은 그림 로비 의혹이지만 이마저도 제대로 밝혀질지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정보 관련 사정 당국의 한 관계자는 “오히려 한 전 청장이 갖고 있는 ‘뇌관’은 지금보다는 내년이나 내후년 정권 교체 후 터질 가능성이 더 클 수도 있다”라고 전망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