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경은 중국 것보다 진화된 짝퉁, 1천년 전 소통과 혁신의 상징으로 읽어야”
  • 소종섭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11.02.14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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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윤희 전 고려대장경연구소장 인터뷰 / “전쟁·종교·민족·문화재라는 틀에서 벗어나 제대로 이해하자”

“해인사에 있는 고려대장경은 짝퉁이다. 중국 것보다 진화된 짝퉁이다. 그래도 짝퉁은 짝퉁이다!” 이렇게 말하는 이가 있다. 참 용감하다. 지난 1995년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우리 민족의 자랑인 고려대장경이 짝퉁이라니! 왜? 정말 이렇게 말해도 되는 것일까? 

지난해 말까지 고려대장경연구소장을 맡았던 오윤희씨. 20년 이상 고려대장경 연구에 몰두한 전문가이다. 그가 없었다면 고려대장경 전산화는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지난 2월10일에 최근 <대장경, 천년의 지혜를 담은 그릇>(불광출판사)이라는 책을 낸 그를 만났다. 지난밤의 취기가 채 가시지 않은 상태였지만 대장경에 대해 말할 때 그의 눈은 빛났다. 그 깊은 눈 속에 박제화된, 판전에 갇힌 대장경이 아닌 정신과 혼의 결집체로 지금도 살아 숨 쉬는 대장경이 있었다. 그는 “고려대장경은 숱한 사람들의 모험담이자 공동 창작물이고 기억의 바다이다”라고 말했다. 올해는 초조대장경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지 1천년이 되는 해로 이른바 ‘대장경 천년의 해’이다.

▲ ⓒ시사저널 유장훈

고려대장경이 짝퉁이라니….

좀 자극적이기는 하다. 순한 표현을 쓸까 생각도 했었는데…. 고려대장경은 중국 송나라의 개보대장경을 엎어놓고 그대로 새긴 것이다. 베낀 것은 베낀 것이다. 송나라 대장경, 요나라 대장경, 금나라 대장경 등에 이어 새겨진, 2백년 이상 차이가 나는 대장경이다. 1011년 처음 만들기 시작한 초조대장경, 1094년 만들어진 속장경에 이어 세 번째 만든 대장경이다. 초조대장경과 속장경은 불타 없어졌고 해인사 대장경만 남았다. ‘대장경 천년의 해’를 맞아 이제는 고려대장경에 대한 과도한 민족적인 오해와 편견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 고려대장경은 우리만의 것이 아니라 동아시아의 학술적인, 지적인 역량의 총결집체이다. 목판 인쇄는 10세기 아시아에서 일어난 매체 혁명이었다.

베꼈다면 대장경의 가치가 낮아지는 것이 아닌가?

베낀 것을 인정한다고 가치가 낮아지는 것은 아니다. 그냥 베낀 것이 아니라 한 단계 더 진화시켰기 때문이다. 우리 대장경이 뛰어난 이유를 나는, 세 가지 키워드로 설명하고 싶다. 첫째는 교정과 편집이다. 송나라 대장경보다 오류가 훨씬 적다. 그만큼 교정을 철저하게 해 텍스트가 정확하다는 반증이다. 목차를 만들고 글자 모양을 바꾸는 등 편집도 혁신했다. 초조대장경을 만들기 시작한 1011년부터 재조대장경을 완성한 1251년의 2백40년 동안 당시 고려인들의 지식과 지혜, 기술이 모아진 것이다. 둘째는 속장경이다. 대각국사 의천은 5천권 규모로 기존 대장경 6천여 권에 대한 주석서들을 모아 목판에 새겼다. 처음으로, 대단한 일을 한 것이다. 이것이 지금은 사라진 속장경이다. 이로 인해 대장경의 규모가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의천은 내게 ‘슈퍼스타’와 같은 인물이다. 셋째는 정신이다. 소통, 원융의 정신이 그 안에 있다.

무엇을 대장경이라고 하는가. 불경을 모아놓은 것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 경(經)이라는 글자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인도와 서역에서 저술한 문헌들도 많이 포함되어 있고 다른 종교의 문헌들도 있다. 그리스 철학과 불교 철학의 논쟁 내용, 기독교 한 일파의 성경 등도 담겨 있다. 대장경은 이처럼 오랜 세월에 걸친 다양한 지식과 이야기, 논쟁들의 총합이다. 지금 만약 대장경을 만든다면 기독교의 신약성서라든지, 이슬람의 코란 등도 포함될 것이 틀림없다. 너무 불교와의 관련성 속에서만 대장경을 보아서는 안 된다.

대장경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할 것 같다.

맞다. 기존의 잘못된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크게 보아 네 가지이다. 우선 전쟁이라는 틀이다. 대장경을 새기는 일이 작은 일이 아니었기에 전쟁과 같은 주요한 계기가 일정한 역할을 했을 수 있다. 그런 정황들을 굳이 무시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대장경을 만든 목적을 시종일관 전쟁과 연결시키는 일은 분명 잘못이다. 둘째는 종교라는 틀이다. 불교라는 틀, 종교적인 신비성의 틀에 대장경을 가두어서는 안 된다. 셋째는 민족이라는 틀이다. 대장경은 고려만의 것이 아니다. 우리 민족이나 대한민국만의 소유가 아니다. 대장경은 아시아인들의 공동 창작물이다. 우리가 민족적인 우월감을 앞세우며 덮어놓고 고려대장경을 자랑할수록 송나라 개보대장경의 후예들에게는 가소롭고 불편한 마음만 더해줄 것이다. 넷째는 문화재라는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문화재’ 하면 죽은 것, 박제화된 것을 떠올리게 된다. 대장경은 그렇지 않다. 대장경이 갖고 있는 열린 정신은 오늘에 살아 숨 쉰다. ‘목판 인쇄’로 상징되는 대장경의 매체 혁신은 현재 진행되는 미디어의 대격변과 닮았다.

대장경에 대해 일반인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들은 무엇인가?

한 글자 한 글자 새길 때마다 세 번 절을 하고 새겨 한 사람이 쓴 것처럼 정교하다느니, 웅혼한 구양순체라느니 하며 찬탄하는 경우가 많다. 말이야 사실인지 몰라도 베낀 것이기에 그 찬탄은 송나라 대장경에게 돌아가야 할 말이다. ‘고려대장경에는 오자가 없다’라는 얘기도 있는데 이것은 그야말로 전설이다. 고려대장경 안에 교정을 한 기록인 <교정별록>이라는 책이 있다. 그 안에도 오자가 있다. 대장경 안에는 많은 학자가 가짜라고 공언하는 경전들도 들어 있다. 또 팔만대장경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대장경이라는 말도 있는데 오리지널보다 오래된 짝퉁도 있나. 고려대장경은 ‘온전하게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판 대장경’이다. 너무 국수적이고 민족적인 관점에서만 팔만대장경을 보면 오히려 그 가치를 제대로 살릴 수 없다.

우리의 대장경 연구는 어디까지 왔나?

주로 문화재 측면에서 연구하는 것이 주류였다. 내용과 관련해서는 이제 자리를 잡아가는 정도이다. 한국 학자가 초조대장경 1천8백여 권의 존재를 확인한 것은 1965년 일본 남선사에서다. 그 이후 국내에서도 3백여 권의 초조본이 확인되었다. 20여 명의 연구원이 남선사에 가 한 달 동안 초조본을 연구하고 작업했다. 지금은 초조대장경이나 속장경에 대해 제대로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었다.

올해는 ‘대장경 천년의 해’이다.

지금은 매체가 뒤집히는 시대, 디지털 시대이다. 고려대장경은 매체가 뒤집히던 시대의 산물이었다. 손으로 써서 전달하던 시대에서 대량 인쇄 시대가 열리던 대혁명의 상징이었다. 대장경은 소통과 혁신의 상징이었다. 이어령 선생은, 고려대장경은 우리의 천년, 아시아의 천년이어야 한다고 했다.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고 강조했다. 대각국사 의천은 교장을 만들 것을 다짐하면서 이 일을 천년을 이어온 지혜와 지식을 결집해 미래 천년으로 넘겨주는 일이라고 했다. 고려대장경이 지닌 보편적인 가치를 함께 따져 보고 의논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이 마련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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