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방전에 ‘리베이트’도 담았다
  • 신정철│경남신문 기자 ()
  • 승인 2011.01.10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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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시 공중보건의와 제약업체 직원 등 14명 입건…약가 연동제·약사법과 맞물려 주목

 

ⓒ시사저널 전영기

경남 거제시가 발칵 뒤집혔다. 공중보건의들과 ㄷ사 등 대형 제약업체 직원들이 짜고 특정 의약품을 처방하는 대가로 거액의 리베이트를 주다 적발되었기 때문이다. 거제경찰서가 제약업계의 리베이트 커넥션을 처음 수사한 것은 지난해 9월이다. 경찰은 지금까지 공중보건의와 제약업체 직원을 포함해 총 14명을 입건했다. 현재 수사는 막바지에 이르고 있다.

서영천 거제경찰서 지능수사팀 팀장은 “거제 지역에서 횡행한 리베이트 수수 사건에 대한 조사는 거의 마무리되었다. 곧 수사 결과를 발표하는 동시에 입건 대상자 가운데 1~2명 정도에 대해 의약품 리베이트 근절 차원에서 담당 검사의 지휘를 받아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라고 말했다.

이 사건에 연루된 제약회사들은 거물급 변호사들을 선임하는 등 적극 방어에 나서고 있다. 이 사건은 지난 2009년 9월부터 시행된 약가 연동제(리베이트 수수가 적발될 경우 의약품값의 20%를 내리는 것)와 지난해 11월28일부터 시행된 약사법 개정안(종전에는 리베이트를 준 자만 처벌했으나 개정안은 받은 자도 처벌함)과 맞물리면서 전국적인 관심사로 떠올랐다.

약국 운영자가 방송국에 호소해 ‘발각’

지난해 9월 경찰이 수사에 착수할 당시만 해도 단순한 사건처럼 보였다. 거제시 일부 병·의원에서 의약품 리베이트가 성행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수사가 시작된 것은 거제 지역에서 약국을 경영하던 사람이 다른 지역으로 떠나면서 한 방송국에 ‘리베이트 근절’을 호소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경찰은 우선 거제시보건소에서 병역 의무 대체복무 중인 공중보건의(계약직 공무원)들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병·의원이나 약국이 없는 거제시 둔덕면 등 다섯 개 면 지역(의약분업 예외 지역)에 근무한 전·현직 공중보건의 28명을 대상으로 한 약품 납품 내역을 바탕으로 금융 계좌와 통신 내용을 추적했다.

소문이 사실로 드러났다. 제약회사 직원들과 공중보건의들이 통화를 하거나 만나고 난 뒤에는 그 제약사의 약품이 타 제약사의 약품보다 갑자기 많이 처방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면 지역의 환자들은 주로 고혈압과 당뇨병이었는데 이에 대한 약품의 처방에서 업계 선두권인 동아제약을 비롯해 4개사의 약품이 독식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경찰은 공중보건의 네 명을 2008년부터 최근까지 동아제약 등 제약사 영업사원으로부터 각각 3백만~1천2백여 만원(총액 2천4백여 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입건했다.

경찰은 이들 공중보건의에게 뇌물을 전달한 제약회사 영업사원 네 명에 대해서도 같은 혐의로 입건하고 동아제약 마산지점을 압수수색한 결과 약 11억원 상당의 기프트 카드를 발행한 혐의를 포착하고 수사를 확대했다. 이 지점은 지난 2년간 5만원에서 3백만원까지 기프트 카드를 발행해 영업비로 사용했으며 기프트 카드를 직접 주거나 상품권 판매점이나 주유소 등지에서 대부분 현금화해 의료업계 종사자들에게 리베이트 명목으로 제공했다. 경찰에 확인된 금액만도 3억6천여 만원에 달한다.

공중보건의들이나 병원에서는 “돈거래는 개인 간의 채권·채무나 투자금이다”라고 부인하고 있으나, 경찰은 “금융 거래 자료 및 뇌물 수수 시점의 특정 약품 처방 내역, 약품 납품 내역, 상호 통화 내역 등 관련 증거를 충분히 확보했다”라고 밝혔다. 거제경찰서 지능수사팀 관계자는 “의약품 리베이트는 국민의 부담으로 고스란히 되돌아올 수밖에 없는 구조적 부조리이다”라고 강조했다.

경찰은 거제 지역 병원 다섯 곳을 비롯해 통영 두 곳, 고성 두 곳, 진주 한 곳, 하동 두 곳 등 경남도 내 10개 병원을 샅샅이 뒤져 리베이트 수수를 입증하고 동아제약 마산지점장 등 여섯 명을 추가로 입건했다. 다만 지난해 11월28일자로 개정된 약사법이 시행되었지만 이번에 적발된 의사들은 법 개정 이전의 사건이어서 처벌이 불가능하다.

이번 수사에서 일곱 명의 공중보건의가 현행 복무 규정에 따라 근무 명령을 받은 장소 외 영리 목적으로 종사할 수 없음에도 야간이나 공휴일에 근무지를 무단 이탈해 거제 시내 및 인근 통영, 고성 등지 병·의원에서 진료 행위를 해 2억4천여 만원을 부당 수수한 혐의도 밝혀냈다. 이들 공중보건의는 농어촌 등 보건의료에 관한 법률 제9조 위반으로 근무지 외에서 종사한 일수의 다섯 배 이상 대체복무 기간이 연장되거나 의사 면허가 정지되면 현역병으로 입대 조치되는 처벌을 받게 된다.


최상위급 제약사 임원들 사법 처리 여부 주목

제약업계 관계자는 “최근 인천 계양경찰서가 리베이트를 수수한 국공립 병원 의사 22명과 제약사 영업사원 38명을 사법 처리하고 제약사 대표이사 및 영업본부장까지 형사 입건한 전례 때문에 국내 최상위급 제약사 고위 임원들의 사법 처리 여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거제경찰서가 수사를 종료한 후 리베이트를 제공한 약품과 제약회사의 부당 행위를 보건복지부에 통보해야 하고, 보건복지부는 이를 토대로 영업정지를 비롯해 각종 행정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번에 적발된 고혈압이나 당뇨병 약값은 전국적으로 보면 워낙 천문학적 숫자여서 제약업체의 부담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라고 말했다. 정부가 최근 리베이트 근절을 선언한 마당에 범정부적 협조 체계를 가동해 ‘리베이트-약가 연동제’로 해당 품목의 약값 인하는 물론 공정거래위원회 등이 적발 품목의 전체 매출액에 비례한 과징금도 부과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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