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 연대’ 곁눈질하며 각개약진
  • 김영화│한국일보 정치부 기자 ()
  • 승인 2011.01.03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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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권 ‘잠룡’ 5인의 대권 전략 / 개인 몸값 올리기 치중하며 ‘정중동’ 행보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대선 레이스 스케줄을 앞당기면서 여권 내에 ‘대항마’ 경쟁이 촉발된 가운데, 자연스럽게 야권의 잠재적 대선 주자들의 행보는 과연 어느 수준까지 와 있는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야권 대선 주자들은 아직 정중동(靜中動) 행보를 보이고 있다. 현재 야권이 처한 외부 환경이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우선 차기 대선까지는 2년이나 남아 있는데 섣불리 박 전 대표를 따라 대선 후보 흉내를 냈다가는 “예산안 날치기 무효화 투쟁에 당력을 집중해도 모자랄 판에 대권 놀음이나 한다”라는 비판을 자초할 수 있다.

▲ 불법 정치 자금을 받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한명숙 전 총리가 첫 공판에 참석하기 위해 법원 청사로 들어서고 있다. 손학규 대표(오른쪽), 유시민 원장(맨 왼쪽)도 동행했다. ⓒ시사저널 임준선

또 야권에는 지지율 10%를 넘는 후보가 드물다. 야권의 대선 ‘잠룡’들은 공통적으로 ‘야권 연대 없는 대권 비전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딜레마를 갖고 있다. 만약 야권 연대 흐름을 거스르고 섣불리 독자적으로 대선 행보를 했다가는 집단적 견제를 받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대선 고지를 염두에 둔 주도권 경쟁은 결국 시간문제일 뿐 언젠가는 가시화할 수밖에 없다. 특히 민주당 내부에서는 ‘예산 날치기 무효화’ 장외 투쟁이 정리되는 시점이 대선 경쟁의 출발선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다.

우선 민주당 ‘빅3’ 가운데서는 손학규 대표의 행보가 가장 주목을 받고 있다. 손대표가 지난해 10·3 전당대회에서 “유력한 대선 주자가 당의 간판이 되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던 만큼, 평소 그의 대표 활동 자체를 광의의 대선 행보로 볼 수도 있다. 지난 12월8일 한나라당의 예산안 강행 처리에 항의하며 거리로 나섰던 손대표는 12월28일 서울 지역 규탄대회를 마지막으로 3주간의 장외 투쟁을 접었다. 30년 만의 혹한에도 전국 16개 시·도를 누비며, 천막에서 칼잠을 잤던 그의 행보는 이명박 정부에 맞서는 강인한 야당 투사 이미지를 불어넣었다. 또, 새해 시작하는 2단계 장외 투쟁은 2백34개 시·군·구 바닥을 저인망식으로 훑으며 현장 목소리를 직접 듣고 대안을 제시하는 형태로 바뀐다. 측근들은 “이런 행보가 손대표에게 수권 정당·대안 야당을 이끄는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을 것이다”라고 기대하고 있다.

특히 최근 예산안 장외 투쟁을 계기로 손학규 대표가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당에 착근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은 주목할 만한 변화이다. 야권 대선 주자로서의 취약점이 어느 정도 보완된 만큼 본격 대선 행보를 시작할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다. 손대표의 한 측근은 “대표 취임 100일째를 맞는 1월10일 연두 기자회견이 ‘손학규 정치’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수 있다”라고 귀띔했다. 또 다른 측근은 “야권의 확실한 대선 주자가 되기 위해서는 ‘100일 민심 대장정’ 같은 행보를 한두 번 더 가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민주당 ‘빅3’에 유시민·한명숙도 ‘후보군’

▲ 민주당 정동영 최고위원(오른쪽)과 정세균 최고위원이 지난 12월13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손대표가 본격적으로 제 색깔 내기를 시도하면 ‘빅3’ 간 경쟁이 이른 시기에 점화할 가능성이 크다. 10·3 전당대회에서 2위에 올랐던 정동영 최고위원의 경우, 탈당 전력을 딛고 사실상 정치적 지위를 회복했다는 평가를 받지만 대권 행보에는 ‘일부러’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손대표가 뛴다면 최대 경쟁자인 그도 날을 세우기 시작할 것이 분명하다. 특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햇볕 정책 등 당의 정체성이 걸린 정책 현안을 두고 손대표를 견제했던 터라 복지와 평화를 두 축으로 본격적인 선명성 경쟁을 가속화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정최고위원의 한 측근은 “정동영 최고위원이 당 남북평화특위 위원장 자격으로 이끌게 될 미·중·일·러 4개국 방문에서 성과를 내면 그의 대권 행보는 더 빨라질 것이다”라고 전했다.

정최고위원은 그동안 약점으로 지적되어온 정책과 비전을 다듬는 일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지난 전당대회 때 새 기치로 내걸었던 ‘담대한 진보’를 구체화하는 작업이다. 한 측근은 “복지 이슈는 차기 대선의 핵심 화두가 될 전망이다. 전당대회 때 제기했던 부유세 도입을 포함해서 ‘보편적 복지’ 재원 마련을 위한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직전 대표를 지낸 정세균 최고위원의 경우 후발 주자이고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다는 점을 고려해 대선 행보를 서두르는 편이다. 그는 우선 오는 1월 중순쯤 사실상의 대선 캠프 역할을 할 싱크탱크 출범식을 가질 예정이다. 싱크탱크는 그의 학계 모임인 ‘미래정치경제연구회’를 비롯해 정·재계 인맥까지 아우르는 매머드급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에서는 10·3 전당대회 때 캠프 좌장을 맡았던 김진표 전 최고위원을 필두로 이미경·박병석·강기정·최재성·김유정 의원과 윤호중·김교흥·한병도 전 의원 등이 참여할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전당대회 캠프 소속 의원들은 지금도 ‘오징어(오랫동안 징그럽게 어울리자)’ 모임을 통해 친목을 다지고 있다. 정세균 최고위원은 이와 함께 지난 6·2 지방선거 당시 연합 공천 논의에 참여했던 야 5당 대표 모임인 이른바 ‘5인 모임’을 정례화함으로써 야권 연대의 촉매제 역할을 한다는 구상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손대표와 더불어 야권 대선 후보 지지율 선두 경쟁을 벌이고 있는 국민참여당 유시민 참여정책연구원장은, 아직은 눈에 띄는 행보를 보이지 않고 있다. 군소 야당 후보로서 야권 연대의 큰 틀이 정해져야 운신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는 저간의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당분간은 릴레이 정책 토론회를 개최하는 등 정책 행보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다만, 유원장이 지속적으로 민주당과 차별화하려고 하는 움직임은 자못 의미심장하다. 그는 최근 야권 통합 전망과 관련해 “왼쪽(민주노동당과 진보정당)으로는 열려 있고, 오른쪽(민주당)으로는 닫혀 있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국민참여당이 당의 노선과 위상을 민주당 쪽이 아니라 진보정당 쪽으로 옮기고 있는 것은 향후 야권 연대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야권의 한 관계자는 “지분이 적은 국민참여당이 야권의 맏형인 민주당에 맞서려면 진보 정당들을 배경으로 해야 더 유리할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야권의 또 다른 잠재적 대선 주자로는 한명숙 전 총리도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한 전 총리의 대선 출마는 현재로서는 하나의 가설에 불과하다. 설령 그가 출마를 결심하더라도 “주변으로부터 대선 후보로 추대되는 것을 바라지 않겠느냐”라는 관측이 많다.

만약 여러 가지 현실적 제약에도 한 전 총리가 출마한다면 ‘친노’ 지지 기반이 겹치는 유시민 원장과의 교통정리가 관심사로 부상하면서 야권 연대의 판도를 크게 뒤흔들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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