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충무로에 ‘큰 놈’들이 몰려온다
  • 라제기│한국일보 문화부 기자 ()
  • 승인 2011.01.03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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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연휴부터 <글로브> <평양성> <조선 명탐정> 등 대작 잇따라

신묘년 충무로가 대작들 다툼을 예고하고 있다. 흥행사로 불리는 강우석 감독을 필두로 이준익·강제규·최동훈 감독 등의 이름을 단 화제작들이 꼬리를 잇는다. 지난해와 달리 제작비 100억원대 영화 2편이 최대 시장인 여름을 정조준하고 있다. 지난해 충무로 제작 경향이 ‘경박단소’였다면 올해는 ‘중후장대’라 할 수 있겠다. 스타 감독의 명성과 규모로 승부하려는 작품들이 어느 때보다 눈에 띈다. 전쟁영화가 유난히 많다는 점도 큰 특징이다.

설날 연휴가 올 첫 격전지이다. 주말이 이어지는 5일 연휴여서 시장 크기도 만만치 않다. 강우석 감독의 <글로브>와 이준익 감독의 <평양성>, 김석윤 감독의 퓨전 사극 <조선 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이 출사표를 던진다.

▲ ⓒ영화사 아침 제공

<글로브>는 설날 연휴 2주 전인 1월20일 개봉하며 시장 선점을 노린다. 당초 27일 개봉하며 <평양성>과의 정면 대결을 예고했으나 강감독이 “한국 영화끼리의 출혈 경쟁을 막자”라며 개봉 시기를 조정했다. 1천만 영화를 만든 두 스타 감독이 흥행 다툼을 벌이는 점만으로도 충무로의 시선이 집중되어 있다. 사실 두 사람은 막역한 사이이다. <왕의 남자>(2005년)의 감독(이준익)과 투자자(강우석)로 1천만 관객 신화를 합작해내기도 했다.

청각장애 야구부원들의 눈물겨운 이야기를 웃음과 함께 전할 <글로브>는 강감독이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1989년) 이후 오랜만에 도전하는 휴먼 스토리이다. <평양성>은 이감독의 이름을 알린 <황산벌>(2003년)의 속편이다. 백제군 출신 신라군 거시기(이문식)의 수난을 통해 나당 연합군이 평양성을 함락시키는 것을 해학적으로 그려낸다.

<조선 명탐정…>은 김명민이 처음 코미디에 도전한다는 점만으로도 화제이다. <올드미스 다이어리:극장판>(2006년)으로 연출력을 인정받은 방송국 PD 출신 김석윤 감독이 조선 정조 시대를 배경으로 펼쳐질 탐정극을 전한다.

<7광구>와 <고지전>, 뜨거운 여름 전쟁 예고

다음 격전지는 여름 극장가이다. <7광구>와 <고지전>, 100억원대 블록버스터 영화 두 편이 여름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7광구>는 망망대해에 떠있는 석유 시추선에 나타난 괴생물체와 사람들의 사투를 그린 3D 영화이다. <화려한 휴가>(2007년)로 데뷔를 한 김지훈 감독이 메가폰을 들었다. 안성기·하지원·오지호가 주연이며 괴생물체가 어떤 식으로 그려질지 주목된다.

<고지전>은 <영화는 영화다>(2008년)와 <의형제>(2010년)로 단번에 충무로 주요 감독으로 떠오른 장훈 감독의 신작이다. 고수와 신하균이 주연으로, 휴전 협상 중 고지 쟁탈전을 벌이는 남북한 군인의 처절한 모습을 스크린에 담았다. 신예 감독끼리 한 해 최대 시장인 여름 시장을 놓고 흥행 고지 쟁탈전을 벌이는 셈이다.

여름 시장을 예열시킬 영화도 눈길을 끈다. 5월 개봉할 가능성이 큰 <퀵>도 제작비가 100억원을 넘는다. <뚝방전설>(2006년)의 조범구 감독이 폭발물을 배달하게 된 오토바이 퀵서비스 직원을 통해 장쾌한 액션을 전달하려 한다.

겨울, 강제규냐 최동훈이냐

겨울 시장에도 강력한 흥행 후보작이 대기하고 있다. <태극기 휘날리며>(2004년)의 강제규 감독이 7년 만에 선보이는 전쟁 서사극 <마이웨이>와, 범죄극으로 되돌아간 최동훈 감독의 <도둑들>(가제)이 그것이다. <마이웨이>는 제작비가 충무로 역대 최고인 3백억원대에 이를 것으로 예측되는 초대작이다. 일본군에 징집되었다가 소련군 포로를 거쳐 독일군으로 노르망디 전투에 참가했던 한 사내의 모진 운명이 독일, 중국 등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장동건과 일본 배우 오다기리 조가 호흡을 맞춘 점도 눈길을 끈다.

최감독의 <도둑들>은 어느 도둑 집단이 자신들을 배신한 전설적인 대도와 함께 싱가포르 카지노를 터는 과정을 한바탕 소동극으로 그릴 예정이다. 중국인 절도 기술자와 대도의 옛 애인, 한국·중국 경찰들이 동원될 이 범죄극은 최감독 특유의 리듬감 있는 연출이 기대된다.  

  

ⓒ영구아트제공

한국 코미디에서 ‘영구’는 일종의 역사적 아이콘이었다. 그런 영구가 대부의 숨겨둔 아들이 되어 돌아온다고 했을 때, 누군가는 분명 추억을 되짚었을 것이다. 물론 이후 웃음의 코드는 달라졌고 영구와 심형래를 잘 모르는 이들도 많아졌으니, 또 누군가는 불안을 느꼈을 수도 있겠다. <디워> 이후 3년 만에 돌아온 심형래 감독의 신작 <라스트 갓파더>는 그렇게 추억과 불안 사이 어디쯤에 존재하는 영화이다.

때는 1951년, 한국에서는 남북 간의 전쟁이 그리고 뉴욕에서는 마피아 계파 간의 전쟁이 한창이던 그 시절. 마피아 보스 돈 카리니(하비 케이틀)는 은퇴를 결심하고 조직의 모든 것을 숨겨 두었던 아들 영구(심형래)에게 물려주기로 한다. 그러나 모자란 아들을 보스로 만드는 것이 쉬울 리는 없을 터, 영구는 끊임없는 사고로 돈 카리니를 실망시키고 믿고 의지하던 2인자 토니(마이크 리스폴리)는 “외람된 말씀이지만…”이라며 내내 안 되는 일임을 강조할 뿐이다. 천운이 따른 덕분에 영구는 라이벌 조직 본판테의 외동딸 낸시(조슬린 도나휴)를 위기에서 구하지만, 그로 인해 두 조직 간 전쟁을 도모해 뉴욕의 암흑가를 접수하려는 음모에 휘말리게 된다.

2 대 8 가르마와 배바지, 커다란 구두로 돌아온 영구는 뉴욕 일대를 휘저으며 해피엔딩을 향해 달린다. 남달리 모자란 그의 행각은 좌충우돌 그 자체이며, 영화는 바로 그 좌충우돌에 기대 웃음을 도모한다. 그러나 이야기는 평범하고 웃음은 분절되어 있다. 영구 특유의 리액션들은 어디서 본 듯한 모습이고, 섹스와 폭력을 주된 모티프로 삼은 웃음 코드는 지나치게 뻔해서 뻔뻔해 보인다. 야심차게 준비한 것이 분명해 보이는 1950년대 뉴욕 세트 프로덕션은 그 자체로 훌륭하지만, 영화 전체의 완성도를 끌어올리지는 못한다. 영화 <대부>의 메인 테마를 패러디한 음악이나 찰리 채플린을 떠올리게 하는 영구의 패션과 개그도 마찬가지. 그 자체로는 흥미롭지만 흥미 유발 이상의 역할은 하지 못한다. 추억을 품고 대면한 스크린은 그렇게 관객에게 낭패감을 안긴다.

하긴, 추억에 무슨 힘이 있겠는가. 결국 완성도를 좌우하는 것은 영화 자체가 지닌 힘, 연출자가 품은 내공인 것을. 추억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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