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에서 ‘잃고’ 밖에서 ‘건진’ KBS
  • 반도헌 (bani001@sisapress.com)
  • 승인 2010.12.27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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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편과 사내 반발로 궁지 몰린 김인규 사장, 방통위로부터 수신료 인상·중간광고 허용 등 선물받아

공영방송 KBS가 안팎으로 시끄럽다. 하지만 안과 밖의 양상은 판이하다. 내부적으로는 내홍에 휩싸였다. 12월8일 방송될 예정이던 간판 시사 프로그램 <추적 60분>의 ‘사업권 회수 논란, 4대강의 쟁점은?’ 편이 연기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12월10일 부산지법에서 열린 ‘4대강 낙동강 사업 시행 계획 취소 소송’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사측이 방송 연기를 지시한 것이다. 결방 다음 날인 12월9일 제작팀의 김범수 PD는 사내 게시판을 통해 김인규 KBS 사장에게 공개적으로 “선배님 나가달라”라는 글을 올려 또 한 차례 파장을 던졌다.

청와대 관계자가 KBS 기자에게 예산안 단독 처리를 암시하며 반정부적 이슈를 다룬 <추적 60분> 방영에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는 정보보고 문건이 12월14일 전국언론노조 KBS본부(새 노조)에 의해 공개되면서 파문은 더욱 커졌다. 12월15일에는 사측이 새 노조 집행부와 구성원 60명을 인사위원회에 회부하면서 내부 분위기는 한층 흉흉해졌다. 지난 7월에 있었던 총파업에 대한 책임을 5개월이 지난 시점에 물은 것이다. KBS의 한 관계자는 “<추적 60분> 방송 연기 논란을 무마하기 위한 카드가 아니겠나”라는 추측을 내놓기도 했다.

▲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오른쪽)이 지난 7월30일 방송업계 간담회에서 김인규 KBS 사장(왼쪽)과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추적 60분> 문제로 새 노조 징계 착수해

결방되었던 프로그램은 결국 12월22일 방영되었다. 사측과 제작진이 일부 내용을 수정하기로 합의한 결과이다. 제작진 관계자는 “낙동강 사업에 대한 판결 내용을 반영했고, 형평성을 고려한다는 측면에서 정부측 인터뷰를 추가하고 경상남도측 인터뷰는 몇 개 빠졌다. 내용상으로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방송계 일각에서는 프로그램 내용 못지않게 방영 시기의 문제에 주목하고 있다. 국회 예산안 단독 처리로 인해 정치적으로 시끄러운 상황에서 민감한 프로그램을 내보내는 것을 피할 의도가 있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는 “<추적 60분> 결방 사태는 KBS가 정부에 의해 장악되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적절한 사례로 보인다. 정부 비판적이라는 관점을 떠나 한국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는 4대강 사업에 대한 여론 형성을 부정하는 것은 민주주의 원칙을 파괴하는 행위이다. 시간적 흐름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산 처리 문제가 방송 불가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추적 60분>이 방영된 다음 날 KBS 인사위원회는 새 노조 징계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이에 대해 권오훈 새 노조 정책실장은 “최근 일련의 인사위원회 결과를 보니까 징계도 많고 수위도 높다. 인원이 많아 시간은 걸리겠지만 그간의 징계 경향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로서는 회사 내 결정보다는 사법부 판단이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긴 싸움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어수선한 내부 분위기와는 달리 밖에서는 연일 좋은 소식이 들린다. KBS의 숙원 사업인 수신료 인상안에 대해 방송통신위원회가 논의 과정에 착수했고, 12월17일 열린 방통위의 청와대 업무보고에는 지상파 다채널 방송 서비스(MMS)와 중간광고 허용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1천원을 인상하는 수신료 인상안 통과에 대해 긍정적 관측이 나오고 있는 데다, 여유 주파수를 이용해 추가 채널을 확보할 수 있는 지상파 MMS 논의까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다채널 시대를 맞아 유료 방송 채널과 곧 도입될 종합편성 채널 등으로 힘든 시기를 맞고 있는 KBS로서는 반가운 일이다.

“이번 성과로 차기 방통위원장 노린다” 소문

이 모든 것이 김인규 KBS 사장의 힘과 배경에서 나왔다는 데에는 KBS 안팎에서 이견이 없어 보인다. 김사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후보 캠프에서 방송전략실장을 지낸 인물이다. 정권 초기부터 KBS 사장 후보로 하마평에 올랐지만 ‘낙하산’ 논란으로 한 차례 좌절을 맛보았다가, 지난해 11월 결국 KBS 사장 자리에 올랐다. 이번 <추적 60분> 결방 사태 배후에 김사장이 있다는 것은 KBS 내부에서 공공연한 비밀이다. 권오훈 새 노조 정책실장은 “KBS는 사장 결재 없이 어떤 조치를 내리기 어려운 구조이다”라며 김사장 배후설에 힘을 실어주었다.

KBS 내부에서는 “김인규 사장이 차기 방통위원장에 선임되기 위한 행보에 들어간 것이 아니냐”라는 얘기까지 나돌고 있다. 그가 내년 3월로 임기가 끝나는 최시중 방통위원장의 후임 자리를 노리고 있다는 것이다. 김사장이 수신료 인상에 전력을 다하는 것도 업적을 중시하고 정권 친화적인 성향의 연장선이라는 평가이다. 시사 프로그램 제작을 담당하고 있는 KBS 교양국의 한 PD는 “김사장이 정권 민감도가 높은 사장임은 분명하다. 업적을 중시해 KBS 사장 재임 기간 동안 수신료를 올렸다는 업적을 무척 가지고 싶어 한다. 반면, 내부 잡음은 최소화하려고 한다. 대규모 징계안도 잡음이 커지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종편으로 불편해진 지상파를 달래기 위해 나온 것으로 보이는 MMS 허용안은 김사장의 행보에 힘을 실어줄 것으로 보인다. 김사장은 방통위 발표 전 이미 영국의 프리뷰를 벤치마킹해 디지털 전환에 따라 추가로 생기는 채널을 이용해 24시간 뉴스 전문 채널, 드라마 전문 채널 등 5~7개 채널을 추가로 늘리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는 “MMS 도입은 찬성하지만 공공성이 담보되어야 한다. 방통위 발표에서 채널 구성에 대한 부분은 없었다. 원칙에는 동의하지만 방식에서는 공공성과 형평성을 훼손할 수 있는 위험한 측면이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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