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인물 / 의혹·공분 키운 수상한 ‘자물통 입’
  • 반도헌 (bani001@sisapress.com)
  • 승인 2010.12.20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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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규 전 공직윤리지원관 |민간인 불법 사찰 실무 책임자로서 ‘모르쇠’ 일관해 의문 더 증폭시켜

‘집권 3년차 증후군’이라는 말이 있다. 역대 정권마다 집권 3년차에 접어들 때쯤이면 반드시 권력 주변에서 무언가 비리가 터졌고, 그것은 곧 정권의 약화로 이어졌다. 현 정부 역시 이를 피해가지 못했다. 지난 6월 말부터 불거지기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 사찰’ 의혹은 현 정부의 아킬레스건으로 계속 남아 있다.

민간인 불법 사찰 의혹 파문으로 인한 국민들의 실망과 분노는 그 실무 책임자인 이인규 전 공직윤리지원관을 <시사저널>이 선정한 ‘2010 최악의 인물’ 자리에 올려 놓았다. 김정일·김정은 부자를 지목한 의견도 많았고, 성폭행범 김길태를 꼽은 독자들도 많았다. 아예 ‘공직윤리지원관실’ 그 자체를 ‘최악의 인물’로 꼽은 의견도 상당수 있었다. 검찰을 질타하는 목소리도 눈에 띄었다. 민간인 불법 사찰 수사를 부실하게 진행했다는 비판적 시각이었다. 

ⓒ시사저널 임준선


민주당 “충분한 증거 자료 있다” 재공격 별러

지난 7월5일 서울중앙지검에 특수수사팀이 꾸려지면서 민간인 불법 사찰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되었다. 검찰 수사는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수사팀이 꾸려지고 4일 만에 압수수색을 실시했지만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이미 주요 하드디스크를 지워버린 후였다. 검찰이 건진 것은 주요 자료가 빠진 빈껍데기뿐이었다. 결국 검찰 수사는 이 전 지원관을 비롯한 당사자들의 진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고, 침묵으로 일관하는 그들에게서 만족스러운 답을 끌어내지 못한 채 검찰 수사는 종결되었다. 11월15일 서울중앙지법 재판부는 1심에서 민간인 불법 사찰을 주도한 이 전 지원관에게 징역 1년6월, 김충곤 전 점검1팀장에게 징역 1년2월, 원충연 전 조사관에게 징역 10월을 선고했다. 증거 인멸을 주도한 진경락 전 기획총괄과장과 장진수 주무관에게는 각각 징역 1년과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되었다.

검찰 수사와 법의 심판에도 의혹이 가라앉지 않는 이유는 광범위한 불법 사찰을 주도한 배후 세력이 여전히 은폐되어 있다는 의심 때문이다. ‘BH 지시 사항’이라고 적혀 있는 원충연 전 조사관의 수첩, 최종석 청와대 행정관에 의해 개설되어 하드디스크 폐기 작업에 사용된 ‘대포폰’ 등이 이석현 민주당 의원의 폭로로 드러나면서 청와대의 개입 가능성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검찰측은 “이미 조사했지만 뚜렷한 혐의점을 발견하지 못한 내용으로 새로울 것이 없다”라는 설명으로 일관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 내부에서조차 “국민들이 (그런 설명을) 납득할 수 있겠느냐”라는 비관적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최근에는 이인규 전 지원관이 청와대를 출입하면서 이영호 전 고용노사비서관 등을 여러 차례 만났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민간인 불법 사찰 의혹은 12월8일 국회 예산안이 날치기로 통과되면서 잠시 가라앉았다. 하지만 언젠가 주머니를 찢고 나올 송곳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민주당측은 “민간인 불법 사찰의 배후에 청와대가 있고, 박영준 지식경제부 1차관과 이영호 전 비서관 등 이른바 ‘영포(영일·포항) 라인’이 개입되어 있다는 의혹을 반드시 밝혀낼 수 있다”라고 자신하고 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국정 조사와 재조사 요구를 반드시 관철시킬 충분한 근거 자료를 확보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예산안 정국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민주당은 다시 이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며, 전방위적으로 움직일 것으로 보인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불법 사찰 활동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 자료 대부분은 이미 사라졌다. 국민들이 불법 사찰 당사자들의 입을 주목하는 이유이다. 이 전 지원관이 최악의 인물로 선정된 것은 민간인 불법 사찰이라는 행위를 자행한 것도 이유 중 하나이겠지만, 진실을 알고자 하는 국민들의 열망을 무시하고 닫아버린 그 ‘입’ 때문일 것이다.


▲ 12월14일 이영호 전 청와대 비서관이 살고 있는 송파구 방이동 H아파트를 기자가 찾아가 보았다. ⓒ시사저널 윤성호
이인규 지원관이 사찰 내용을 보고한 것으로 알려진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의 행적은 언론과 정치권에서 초미의 관심사이다. 이 전 비서관은 민간인 불법 사찰 사건이 불거진 이후 철저히 몸을 숨기고 있다. 8월6일 검찰에 한 차례 소환되어 조사를 받은 것이 외부 활동의 전부이다. 국정 감사에서 법사위와 정무위에 증인으로 채택되었지만 국정 감사를 앞두고 10월6일 해외로 출국했다가 같은 달 27일 조용히 귀국한 이후 행적이 묘연하다. 기자는 12월14일 이 전 비서관을 만나기 위해 서울 송파구 오금동에 있는 그의 자택을 찾았지만, 만날 수는 없었다. “부인과 자녀들은 집에 계속 살고 있지만, 이비서관을 마지막으로 본 것은 약 한 달 전쯤으로 기억한다”라는 아파트 관계자의 설명으로 봐서, 귀국해서 한동안 자택에 머무르다가 최근 들어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긴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가운데 최근 정치권 일각에서 “이 전 비서관을 다시 해외로 출국시키려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어 주목된다. 현 정부 후반기의 아킬레스건이 될 수도 있는 그의 입을 막기 위해 도피형 출국을 종용하는 세력이 있다는 것이다. 민간인 불법 사찰이 국정 조사와 검찰 재조사로 이어질 경우 이 전 비서관에 대한 수사는 필연적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이 전 비서관이 정치권에 등장한 것은 2007년 이명박 대선 캠프에 참여하면서부터다. 그는 이대통령과 동향인 경북 포항 출신임을 내세우며 대선 캠프에 자발적으로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비서관은 대선 이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에 임명되면서 현 정부 노동 정책의 핵심 인물로 성장했다. 구룡포종합고등학교와 계명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그가 노동계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90년대 후반 평화은행 노조위원장을 맡으면서부터다. 외환위기 당시에는 전국금융산업노조 조직본부장을 역임했다. 평화은행이 우리은행에 합병되면서 은행을 떠나고 노조 활동도 그만두었다. 금융노조에 있으면서 쌓은 이용득 전 한국노총 위원장, 양병민 전 금융노조위원장, 양정주 한국노총 대외협력본부장 등과의 인맥은 한국노총과 한나라당의 정책적 연대를 이끌어내는 데 큰 힘으로 작용했다. 이 전 비서관이 청와대 비서관으로 임명될 당시 그의 공식 직함은 경원대 외래교수였다. 연세대 경제대학원을 다닌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노조 운동 경력이 전부인 그의 이력과 잘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경원대의 한 관계자는 “학교에 근무하면서 이영호씨를 본 적이 없다. 수업을 하지도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냥 적을 두고 있었다고 보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금융노조에서 함께 활동하던 김재율 SC제일은행 노조위원장은 이 전 비서관이 불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ROTC 출신에 다혈질로 돌출적인 성격이었다. 사측과 교섭하다가 마음에 안 들면 성질 확 내고 나가버리곤 했다. 한 번은 시위 현장에서 단독으로 머리를 삭발하고 쳐들어간다고 달려나간 적도 있었다”라고 말했다. 돌출적인 성격은 청와대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지난해 10월 이 전 비서관은 업무 관련성이 있는 사안에 대해 자신과 상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다른 비서실 행정관에게 큰소리로 나무라며 소란을 피운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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