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인물 이영호 전 청와대 비서관, 어디서 무엇하고 지내나
  • 반도헌 (bani001@sisapress.com)
  • 승인 2010.12.20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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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택에서는 한 달 전쯤 마지막으로 목격돼”…현재 다른 곳에서 지내는 듯

▲ 12월14일 이영호 전 청와대 비서관이 살고 있는 송파구 방이동 H아파트를 기자가 찾아가 보았다. ⓒ시사저널 윤성호
지인 “불같은 성격으로 노조 활동 당시에도 저돌적이었다”

이인규 지원관이 사찰 내용을 보고한 것으로 알려진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의 행적은 언론과 정치권에서 초미의 관심사이다. 이 전 비서관은 민간인 불법 사찰 사건이 불거진 이후 철저히 몸을 숨기고 있다. 8월6일 검찰에 한 차례 소환되어 조사를 받은 것이 외부 활동의 전부이다. 국정 감사에서 법사위와 정무위에 증인으로 채택되었지만 국정 감사를 앞두고 10월6일 해외로 출국했다가 같은 달 27일 조용히 귀국한 이후 행적이 묘연하다. 기자는 12월14일 이 전 비서관을 만나기 위해 서울 송파구 오금동에 있는 그의 자택을 찾았지만, 만날 수는 없었다. “부인과 자녀들은 집에 계속 살고 있지만, 이비서관을 마지막으로 본 것은 약 한 달 전쯤으로 기억한다”라는 아파트 관계자의 설명으로 봐서, 귀국해서 한동안 자택에 머무르다가 최근 들어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긴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가운데 최근 정치권 일각에서 “이 전 비서관을 다시 해외로 출국시키려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어 주목된다. 현 정부 후반기의 아킬레스건이 될 수도 있는 그의 입을 막기 위해 도피형 출국을 종용하는 세력이 있다는 것이다. 민간인 불법 사찰이 국정 조사와 검찰 재조사로 이어질 경우 이 전 비서관에 대한 수사는 필연적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이 전 비서관이 정치권에 등장한 것은 2007년 이명박 대선 캠프에 참여하면서부터다. 그는 이대통령과 동향인 경북 포항 출신임을 내세우며 대선 캠프에 자발적으로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비서관은 대선 이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에 임명되면서 현 정부 노동 정책의 핵심 인물로 성장했다. 구룡포종합고등학교와 계명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그가 노동계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90년대 후반 평화은행 노조위원장을 맡으면서부터다. 외환위기 당시에는 전국금융산업노조 조직본부장을 역임했다. 평화은행이 우리은행에 합병되면서 은행을 떠나고 노조 활동도 그만두었다. 금융노조에 있으면서 쌓은 이용득 전 한국노총 위원장, 양병민 전 금융노조위원장, 양정주 한국노총 대외협력본부장 등과의 인맥은 한국노총과 한나라당의 정책적 연대를 이끌어내는 데 큰 힘으로 작용했다. 이 전 비서관이 청와대 비서관으로 임명될 당시 그의 공식 직함은 경원대 외래교수였다. 연세대 경제대학원을 다닌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노조 운동 경력이 전부인 그의 이력과 잘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경원대의 한 관계자는 “학교에 근무하면서 이영호씨를 본 적이 없다. 수업을 하지도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냥 적을 두고 있었다고 보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금융노조에서 함께 활동하던 김재율 SC제일은행 노조위원장은 이 전 비서관이 불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ROTC 출신에 다혈질로 돌출적인 성격이었다. 사측과 교섭하다가 마음에 안 들면 성질 확 내고 나가버리곤 했다. 한 번은 시위 현장에서 단독으로 머리를 삭발하고 쳐들어간다고 달려나간 적도 있었다”라고 말했다. 돌출적인 성격은 청와대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지난해 10월 이 전 비서관은 업무 관련성이 있는 사안에 대해 자신과 상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다른 비서실 행정관에게 큰소리로 나무라며 소란을 피운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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