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리코박터, 죽이거나 살리거나
  • 노진섭 (no@sisapress.com)
  • 승인 2010.12.06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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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십이지장 궤양 환자는 제균 치료 필수…“위암 예방 목적으로 박멸할 필요는 없다” 주장도

 

▲ 전자현미경으로 확인한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동물에도 헬리코박터 균이 살지만 사람 몸에만 살면서 전염되는 균을 헬리코박터 파일로리라고 부른다. 사람 몸 중에서도 위장 외에 소장이나 대장 등 다른 소화기 장기에는 살지 않는 특성을 보인다. ⓒ Health University School of Medicine

내과 질환으로 동네 의원이나 대학병원을 찾는 환자 가운데 헬리코박터 균이 있는지 검사하거나 치료를 받는 이들이 있다. 검사 결과, 위에 헬리코박터 균(helicobacter pylori)이 있다면 치료해야 할까? 이 균이 위염이나 위암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없애야 한다는 의사들이 있다. 헬리코박터는 항생제를 투여해 제거한다. 이에 따라 항생제 내성이 생길 수 있어 무조건 치료하는 것에 회의적인 시각도 만만치 않다. 의사들은 헬리코박터 관련 학회 등을 통해 이미 치료 지침을 만들어두었다. 위궤양과 십이지장궤양이 있는 사람은 헬리코박터를 박멸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 지침을 뒤집어 말하면, 위에 특정 질환이 없거나 위염만 있는 상태라면 굳이 헬리코박터를 없앨 필요는 없다는 의미가 된다. 그러나 위암을 일으킬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으므로 예방 차원에서 헬리코박터를 치료해야 한다는 주장도 최근에 힘을 얻고 있다. 

위에서는 강한 산성의 위액이 분비된다. 이 때문에 위에는 세균이 살 수 없다는 시각이 최근까지 정설로 통했다. 호주의 병리학자와 소화기내과 의사가 1982년 위에서 생존하는 세균을 발견하면서 이 정설은 뒤집혔다. 이 세균이 헬리코박터이다. 이 균은 다른 장기에는 살지 않고 위에서만 생존하는 특징을 보인다. 헬리코박터 균이 강한 위산도 견뎌내는 이유는 요소 분해 효소(urease)를 분비해 위산에 대한 방어막을 만들기 때문이다. 강력한 생존 능력 때문에 세계 인구의 절반을 감염시킬 정도로 인류에게 가장 흔한 감염균이다. 한국에서도 성인 10명 중 7~8명이 이 세균에 감염되어 있다. 20대부터 감염자가 급격히 증가해 40대에서는 최고 80%에 달한다.

헬리코박터를 확인하는 방법은 다양하며 각각 장단점이 있다. 예컨대, 혈청 검사는 비용 면에서 가장 저렴하지만 헬리코박터를 치료한 후에도 양성 반응이 나오므로 정확도가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이 검사에서 양성 반응이 나왔다고 해서 헬리코박터를 치료하지 않는다. 손쉽고 효과적인 진단 방법은 내시경 검사이다. 헬리코박터가 있다면 요소 분해 효소도 있게 마련이므로 내시경 검사로 이를 확인하는 방법이다. 위내시경으로 위 조직의 일부를 떼어낸 후 배양물질(배지)에 집어넣어 관찰한다. 요소 분해 효소가 있으면 24시간 내에 노란색의 배지가 빨간색으로 변한다.

국제보건기구는 발암 인자로 간주해

헬리코박터에 감염되면 위에서는 염증 관련 물질이 생겨서 점막이 손상된다. 균은 점막에 침투하고 위산과 펩신(단백질 분해 효소) 분비량이 늘어나게 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궤양이 발생하기 좋은 위 환경이 만들어진다. 또, 위점막에 림프 조직이 증식하면 림프종에 걸린다. 이런 이유로 위궤양, 십이지장궤양, 림프종이 있는 사람은 헬리코박터 유무를 진단하고 치료해야 한다. 특히 위궤양과 십이지장궤양은 치료를 해도 재발이 흔한 질환이다. 치료 후 1년 내에 재발할 확률이 50% 이상이다. 그렇지만 헬리코박터를 박멸하면 재발률이 10% 정도로 감소한다. 궤양의 재발 방지를 위해서도 헬리코박터 치료는 필수적이다.

▲ 한 환자가 병원에서 헬리코박터 진단을 위해 내시경 검사를 받고 있다. 내시경으로 떼어낸 위 조직을 검사해서 헬리코박터가 있는지 확인한다. 이 검사법을 CLO 검사(요소 분해 효소 검사)라고 한다. © 연세세브란스병원

최근 헬리코박터 감염 유무를 확인하고 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을 찾는 사람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 균으로 인해 위암에 걸리지 않을까 우려하기 때문이다. 헬리코박터 감염이 흔한 국가에서 위암 발생률이 높고, 위암 환자에게서 이 세균이 흔히 발견되는 것이 사실이다. 국제보건기구(WHO)는 헬리코박터를 발암인자로 간주하고 있다. 그러나 헬리코박터 감염자 모두가 위암에 걸리지도 않는다. 헬리코박터에 감염된 사람이 일생 동안 위암에 걸릴 확률은 1~2%라고 보고되어 있다. 또 헬리코박터를 없애도 위암의 발생이 감소한다는 뚜렷한 증거가 아직까지 없다.  

헬리코박터를 발견한 지 30년째를 맞고 있지만 아직도 위암과의 직접적인 관계를 규명하지는 못하고 있는 셈이다. 다만 헬리코박터와 위암의 간접적인 관계는 어느 정도 추정이 가능하다. 헬리코박터는 위암이 생기기 좋은 위 환경을 만든다. 헬리코박터로 인해 염증세포가 생기고, 이는 위축성 위염과 장상피화생을 거쳐 위암으로 발전할 수 있다. 장상피화생은 매끈한 위점막이 염증으로 인해 대장이나 소장의 표면처럼 울룩불룩하게 변한 상태를 말한다. 장상피화생이 있는 사람이 모두 암에 걸리는 것은 아니지만 암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일반인에 비해 높은 것은 사실이다. 장상피화생이 위암의 전 단계라고 불리는 이유이다.

헬리코박터 균에 지속적으로 감염되면 위벽이 얇아지는 위축성 위염도 생긴다. 그렇지만 헬리코박터를 죽여도 위염 증상이 호전된다는 뚜렷한 증거가 부족하다. 현재로서는 치료 성공률이 50%이다. 치료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애매한 수치이다. 그래서 위염 증세를 완화하고 위암을 예방할 목적으로 헬리코박터 유무를 진단하거나 치료할 필요는 없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그러나 헬리코박터에 대한 연구 결과를 종합하면, 이 균이 위암이나 위염을 일으키는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지만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만큼 적극적으로 치료해야 한다고 말하는 의사도 있다. 이런 경우 환자의 의지에 따라 치료 여부를 결정한다.

헬리코박터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3~4가지 항생제를 1~2주일 동안 복용해야 한다. 문제는 항생제의 부작용은 접어두고라도 균이 항생제에 내성을 가진다는 점이다. 이용찬 연세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특정 항생제에 대해 헬리코박터 내성이 10년 전 2~3%에서 지금은 15%로 늘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이 때문에 헬리코박터 치료 성공률도 과거 90%에서 현재는 80%에도 미치지 않는다. 이대로라면 항생제가 듣지 않는 이른바 슈퍼 헬리코박터가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다. 무조건 항생제를 처방하는 것은 문제이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할 시점이다”라고 말했다.

감염 경로 확인해 차단하는 방법이 최선

헬리코박터 감염을 줄이기 위해 신체 면역력을 높이는 백신을 개발하는 방법, 궤양이 잘 생기는 고위험군 환자만 치료하는 방법 등이 연구 중에 있다.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균의 감염 경로를 확인해서 차단하는 방법이다. 불행하게도 아직까지 확실한 감염 경로가 밝혀지지 않았다. 음식에도 이 균이 살지 않아 여러 사람이 음식을 나눠 먹는 것으로 전파된다고도 볼 수 없다. 다만 배설물, 침, 구토물 등을 통해 사람 간에 전파될 것으로 추정한다. 다행스러운 점은 국내 소아의 헬리코박터 감염률이 성인에 비해 현저히 낮다는 점이다. 이를 근거로 일부 학자는 수십 년 후에는 국내 헬리코박터 감염률이 낮아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문답으로 알아본 헬리코박터의 진실

Q. 위질환은 없는데 헬리코박터가 있을 경우 치료해야 할까?

A. 이 균이 있다고 꼭 치료할 필요는 없다. 특히 위암과 위염은 치료 효과에 대한 뚜렷한 증거가 없다. 환자가 치료를 고집하면 항생제로 치료를 해야 하는데, 항생제 내성이 생길 수 있다. 의사의 판단에 따라 치료받을 것을 권한다.

Q. 위암 예방 차원에서 이 균을 없애야 할까?

A. 위암과 헬리코박터의 연관성은 존재한다. 균에 감염된 환자들이 위암에 많이 걸리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그러나 헬리코박터 균을 치료한 환자와 보균 환자 간의 위암 발생률에 큰 차이가 없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즉, 위암과 연관성은 있지만 치료 효과에 대해서는 의미 있는 연구 결과가 없기 때문에 치료를 권하지 않는다.

Q. 헬리코박터 감염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A. 아직까지 확실하게 밝혀진 감염 경로가 없기 때문에 예방법으로도 권할 것이 없다. 현재의 생활 패턴을 크게 바꿀 이유가 없다.

Q. 시중에 판매되는 유산균 음료는 헬리코박터 치료나 예방에 효과가 있을까?

A. 헬리코박터 균 수를 조금 줄일 수는 있지만 완전히 박멸하지는 못한다. 균은 금세 증식하므로 의미가 없다는 말이다. 이 세균의 박멸은 항생제로 해야 한다.

Q. 헬리코박터 균은 어떻게 발견했을까?

A. 1700년 전 남미의 미라에서 발견될 정도로 헬리코박터 균은 인류와 ‘동거’기간이 오랜 세균이다. 이 세균은 1875년에야 독일의 연구가에 의해 처음 밝견되었으나 학계로부터 인정받지 못했다. 이 균의 존재가 확인된 것은 1983년 호주 병리학자 워런과 소화기내과 의사 마셜에 의해서이다. 이들은 이 세균을 발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5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다. 강력한 위산에서 이 세균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제안한 사람은 워런 박사였다. 이 사실을 학회에 보고하자 거짓말쟁이라는 오명을 쓰기도 했다. 마샬 박사가 워런 박사의 주장을 입증했고 진단과 치료법도 발견했다. 그는 치료법을 찾기 위해 헬리코박터 균을 스스로 먹기도 했다. 급성 위염이 생겼고 여러 가지 항생제를 한꺼번에 먹고 제거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도움말·김재준 삼성서울병원 소화기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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