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을 장악하는 별난 중국 방식
  • 조홍래│편집위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0.11.29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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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군 등 미국의 ‘퇴조’ 흐름에 따른 ‘빈자리’ 노려…도덕·상식 넘어 ‘독재 국가’에 우선 접근하기도

 

▲ 지난 10월8일 터키를 방문한 원자바오 중국 총리(왼쪽)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총리가 기자회견에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경제력을 바탕으로 한 중국의 패권주의가 갈수록 도를 더해가고 있다. 지난 11월 중순 중국 베이징에서는 터키와 중국의 외무장관 회담이 열렸다. 이보다 1주일 전에는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의 고위 보좌관이 시리아를 5일간 방문해 경제 협정을 체결했다. 이런 움직임은 미국의 영향력이 쇠퇴하는 중동에서 중국이 맹주 지위를 노리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중국의 힘은 이제 극동에서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에 이어, 마침내 중동에까지 미치고 있다. 패권의 촉수는 너무 광범위하고 집요해 기정사실화되었고, 그래서 놀랍지도 않다. 중국은 중동에서 석유 수요의 4분의 1을 수입하고 이란 유전에는 수십억 달러를 투자했다. 최근 들어 부쩍 눈에 띄는 중국의 중동 진출은 이라크 철군 등에서 감지되듯이 중동에서 퇴조하는 미국의 정책과 맞물려 더욱 관심을 끈다. 미국 내 중동 전문가들은 미국이 남긴 여백을 대신 차지해 중동의 맹주가 되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국의 중동 진출이 가시적으로 시작된 것은 1990년대였다. 당시 소련의 철수로 공백이 생기자 중국은 시리아에 대량의 미사일을 공급했다. 그 결과 시리아의 바사르 아사드 대통령은 아시아를 향한 ‘동진’ 야망을 실현했고, 결과적으로 중동에서 서방의 영향력은 줄었다. 중국은 시리아가 필요로 하는 무기를 공급했을 뿐만 아니라 이 나라의 에너지 현대화 프로젝트에도 거액을 투자했다.

터키와 ‘밀착’…경협에 군사 유대까지

특히 이목을 끄는 것은 중국과 터키가 밀착하고 있다는 점이다. 원자바오 총리는 지난 10월 중국 총리로서는 8년 만에 처음으로 터키를 방문했다. 그는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총리와 여덟 건의 협정을 체결했다. 협정의 핵심은 터키와 중국을 잇는 옛 ‘실크로드’를 현대화된 철도로 대체하는 것이다. 경협보다 더 주목할 사항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인 터키와 중국 간 군사 유대를 강화한 것이다. 10월에 실시된 터키의 군사 훈련에는 중국 전투기들이 참가했다. 과거 이 훈련에 참가하던 미국과 이스라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양국의 군사 관계는 어느새 ‘전략적 동반자’로 격상되었다.

중국이 이란, 시리아, 터키에 눈독을 들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들 3국은 미국과 갈등을 빚는 나라들이다. 이 틈새로 베이징이 들어왔다. 이들 세 나라는 미국과는 갈수록 멀어지면서 중국과는 유대를 강화하고 있다. 중국의 다음 목표는 이라크이다. 이라크를 영향권에 넣는다면 기존의 중동 교두보도 공고히 할 뿐만 아니라 또 하나의 파트너를 확보한다는 점에서 금상첨화이다. 중국은 이라크의 석유 및 천연가스 분야에서 주도적인 투자국이다. 중국은 투자한 자산을 보호하기 위해 다시 수백만 달러를 추가 투자했다. 이라크에 진출하기 위해서도 면밀하게 준비했다. 사담 후세인 시절에 이라크가 중국에 진 부채에서 60억 내지 80억 달러를 탕감했다. 이라크에 등장한 새 정부에는 1억 달러 이상의 무기를 판매했다.

중국의 중동 진출 속도는 외교적·도덕적 상식선을 능가한다. 따라서 중동에서 중국의 패권 야망을 어느 정도까지는 저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워싱턴의 기대는 순진하다. 국익 극대화에 혈안이 된 중국은 미국의 기준으로는 독재 국가로 분류되는 중동 국가에 우선적으로 접근한다. 중국의 포섭 대상이 된 중동 국가들은 그들 나름대로 서방에 대한 견제 수단으로 베이징을 선택한다.

중국이 이처럼 빠른 속도로 중동에 진출하는 배경에는 미국이 중동에서 떠나고 있다는 일부 중동 국가들의 인식이 상당한 작용을 하고 있고, 이런 분위기는 점점 심화되고 있다. 중국과 미국은 무역에서 경쟁자이자 파트너이다. 경제 관계에서만 보면 양국은 불가분의 교역국이지만 세계사를 바라보는 가치관에서는 상극이다. 중국과 미국이 종국에는 주요 세계 문제에서 전략적 파트너 관계로 승화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런 희망적 관계가 정착될 때까지는 미국은 중동에서의 가시적 ‘존재’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미국이 이를 간과한다면 중국의 중동 진출에는 가속도가 붙을 것이 뻔하다. 중동에서 중국의 패권 기반이 확고해진 후에 미국이 다시 중동으로 복귀하기는 어렵다.

중동에서 중국에 자리를 빼앗기는 미국의 입장에서는 호랑이 새끼를 키운 셈이다. 세계 경제에서 G1과 G2로 상징되는 미국과 중국은 글로벌 경기 회복, 기후 변화, 핵무기 확산 방지, 세계의 분쟁 조정 등 주요 이슈에서 한동안 잘나갔다. 그러나 미국발 금융 위기가 닥치면서 밀월 시대는 지나갔다. 미국의 실업률이 10%일 때 중국 경제는 10% 성장했다. 미국의 시장주의 경제가 일당 독재의 중국 경제와 충돌하면서 곳곳에서 파열음을 낸다. 경제적 갈등은 지정학적 충돌로 비화되었고, 마침내 중동의 패권 경쟁에서도 양국은 대립한다.

북한·이란 핵 문제 등이 발목 잡을 수도

▲ 지난 5월6일 시리아 다마스커스의 오페라하우스에서 중국 전통 오페라 가 공연되고 있다. ⓒEPA

중국의 패권 확대는 한반도의 미래와 무관하지 않다. 중국은 한국에 대한 북한의 잇따른 도발을 묵인해왔다. 그러나 뉴욕타임스는 역설적으로 세계 전역에서 힘 자랑을 하는 중국이 이번 연평도 포격 사건을 계기로 딜레마에 빠졌다고 보도했다. 북한의 대남 대결 정책의 종점이 어디냐에 대해 중국이 가장 걱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그동안 중국의 전폭적인 지원에도 핵을 포기하고 대결 정책을 종식하라는 중국의 주문은 거의 묵살해왔다. 그러나 연평도 포격으로 중국의 인내는 한계에 도달했다. 세계사를 좌우하는 중국 지도자들의 자존심은 북한 때문에 상처를 받았다. 도대체 북한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느냐가 베이징 지도자들의 최대 고민거리이다. 중국은 북한을 설득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중국 지도자들을 괴롭히는 일은 또 있다. 중동으로 진출하는 중국의 그림자 뒤에 숨어서 북한은 중동의 여러 국가에 대량살상무기를 수출했다. 시리아, 리비아, 이란이 그 대상국이다. 미얀마에도 무기를 팔았다. 북한이 최근 공개한 원심분리기는 이란 또는 중국에서 수입했다는 설이 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중국의 세계화 전략은 명분을 잃는다. 자신들의 성장이 ‘평화적 등장’이라는 주장이 허위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미국 헤리티지 재단의 리 에드워즈 선임연구원은 중국이 무서운 호랑이로 변한 배경에 마오쩌뚱(毛澤東)이 있다고 지적했다. 마오는 중국 사회주의 건설을 위해 6천5백만명을 죽였다. 히틀러와 스탈린의 살육을 능가한다. 그의 후손들은 마오쩌뚱주의를 여전히 신봉한다. 서구 문명과 가치를 사회주의의 적으로 간주한다. 노벨평화상을 받은 반체제 인사 류샤오보의 수상을 금지하는 것도 그 연장선에 있다.

이래저래 중국의 패권 추구는 자체 모순과 충돌한다. 북한과 이란의 핵 개발을 저지하지 못하는 한, 그리고 인권과 민주주의의 대의를 수용하지 못하는 한 세계화도 중동 진출도 물거품이 될 수 있다. 중동의 맹주가 되려는 중국의 야망이 혹시 북한 때문에 빛을 잃는다면 중국 지도자들에게는 낭패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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