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핏줄’마저 마비시키는 게임 중독
  • 송진영│국제신문 기자 ()
  • 승인 2010.11.22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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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이 어머니 살해하고 자살한 사건 ‘충격’…인터넷 게임의 역기능에 대한 대책 시급

부산의 한 중학생이 컴퓨터 게임을 하지 말라고 꾸짖는 어머니를 목 졸라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이 학생은 매일 새벽까지 컴퓨터 게임을 하는 심각한 게임 중독에 빠져 있었지만, 학교의 컴퓨터 게임 중독 학생 명단에 포함되지 않아 제때에 적절한 조치를 받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11월16일 오전 7시께 부산 남구 대연동의 한 빌라에서 B씨(여·43)가 안방 침대에 숨져 있는 것을 그녀의 딸(11세)이 발견했다. 친정어머니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집 내부를 확인하던 중 B씨의 집 보일러실 가스 배관에 전깃줄로 목을 매 숨져 있는 아들 A(15)군의 시신을 추가로 발견했다.

경찰에 따르면 A군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컴퓨터 게임에 빠졌는데, 이후 이를 나무라는 어머니와 자주 충돌한 것으로 밝혀졌다. 사건이 발생하기 전날인 15일 밤 11시께에도 컴퓨터 게임 문제로 어머니와 심하게 싸웠다고 한다. B씨의 딸은 경찰 조사에서 “평소에도 컴퓨터 게임 문제로 오빠와 엄마가 자주 다투었는데 어젯밤에도 소리가 들려서 평소처럼 또 다투는 줄 알고 그냥 잤다. 학교에 가기 전 엄마에게 아침밥을 달라며 안방 문을 열었는데 엄마가 침대에 숨져 있었다”라고 말했다.

부검 결과 숨진 모자는 모두 경부 압박에 의한 질식사로 밝혀졌다. B씨는 15일 밤 11시께, A군은 16일 새벽 6~7시께 숨진 것으로 확인되었다. A군의 방 책상에서는 ‘할머니, 게임을 한다고 어머니한테 야단을 맞은 뒤 해서는 안 될 짓을 했습니다. 죄송합니다’라는 메모가 발견되었다. 경찰은 B씨 가족의 진술과 A군이 적은 것으로 추정되는 메모 그리고 부검 결과 등을 바탕으로 컴퓨터 게임 문제로 어머니와 다툰 A군이 홧김에 우발적으로 어머니를 살해하고, 밤새 죄책감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숨진 A군은 평범한 중3 남학생이었다. 지난 1월 경남 김해에서 부산으로 전학 온 뒤 아주 가깝게 지내는 친구는 없었지만, 같은 반 친구들과 등하교를 함께하는 등 교우 관계도 무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오히려 교무실을 찾아가 각 과목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나눌 정도로 적극적인 성격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가족 이야기는 숨겨왔다. 친구들과도 항상 집 근처에서 헤어졌고, 학교에도 정확한 주소를 말하지 않았다. 학교 관계자는 “지금 생각해 보면 A군이 친구들과 학교에 자신의 가정생활을 들키고 싶어 하지 않은 것 같다. 정말 평범한 학생이었는데 이런 사건이 터져 가슴이 아프다”라고 말했다.

집에서도 게임 문제로 어머니와 다툴 때 이외에는 폭력성을 보이지 않았다. 컴퓨터 게임 문제로 어머니와 다툰 뒤, 하루 2시간만 게임을 하겠다고 약속하는 등 평범한 모습이었다. 올 초 외할머니가 심장 수술을 받았을 때는 “나를 키워준 할머니가 오래 사셔야 한다”라며 외할머니 곁을 지키기도 했다.

A군의 외할머니는 “게임에 빠지고부터 폭력적인 성향을 보이기 시작했지만 할머니 걱정, 동생 걱정에 눈물을 흘리는 착한 아이였다. 부모가 헤어진 뒤 제대로 돌봐주지 못해 이런 일이 일어난 것 같아 가슴이 답답하다”라고 말했다. 이어 “어쩌다 어머니를 살해했어도, 자신은 살아남아야지 자살을 왜 하느냐. 혼자 남은 손녀가 걱정이다”라고 눈시울을 붉혔다.

한편 숨진 A군의 어머니 B씨와 아버지는 10년 전부터 별거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A군의 경우 아버지를 잘 따랐는데, 아버지와 점차 멀어지게 된 초등학교 3~4학년 무렵부터 서서히 컴퓨터 게임에 빠져들었다. A군 스스로도 게임 중독을 고민하기도 했다. 초등학교 5학년 겨울방학 때 쓴 일기장에는 “게임에 푹 빠졌다. 엄마가 게임을 하지 말라고 부탁해 게임을 자제하기로 했다. 엄마가 꼭 안아줬다. 게임도 좋지만 공부를 많이 해야겠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A군은 초등학교 졸업 후부터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이런 데서 내가 왜 태어났느냐”라며 푸념을 늘어놓기도 하고 “세상이 더럽다”라며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

A군 어머니는 10년 가까이 남편과 별거하면서 별도의 생활비를 지원받지 못해 식당에서부터 사진관에 이르기까지 생활비를 벌 수 있는 일은 다해왔다. A군은 밤늦도록 일하는 어머니의 사정을 알고 어머니를 위로하기도 했다. A군은 지난 11월2일 어머니의 생일을 맞아 ‘매번 힘들게 해서 죄송해요. 비록 철없는 아들이지만 서서히 바뀔 테니 기운 차리세요. 동생 잘 보살필게요. 생일 축하해요, 엄마’라는 내용의 감사 글을 남기기도 했다.

 

ⓒ시사저널 유장훈

 

컴퓨터 못 쓰게 하면 ‘야수’로 돌변하던 아이

A군의 책상에서는 ‘화내지 말자. 포기하지 말자. 후회 없는 삶을 살자’ 같은 메모가 발견되기도 했다. 스스로 올바른 생활을 하자고 다짐을 해 온 것이다. 하지만 어머니가 컴퓨터를 못 쓰게 하면 평범한 중학생이 무서운 야수로 돌변했다. 지난 4월 게임 문제로 어머니와 심하게 다툰 뒤 이틀간 등교를 거부하기도 했고, 하루 컴퓨터 사용 시간을 제한하려고 하자 어머니를 폭행했다는 것이 주변의 전언이다.

이번 사건으로 청소년들의 인터넷 게임 중독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여실히 드러났다. 특히 인터넷 게임 중독은 이제 일부 취약 가정이나 사회성이 결여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시각이 확산되고 있다. 게임에 방해가 된다면 부모나 자식도 매정하게 버리고, 수시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올해 들어서만 부산 등지에서 게임 중독자들이 친어머니를 살해하고, 생후 3개월 된 딸을 굶어 숨지게 하고, PC방에서 며칠씩 밤을 새우다 돌연사하는 극단적인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한국정보화진흥원이 발표한 ‘인터넷 중독 실태 조사 결과’를 보면 국내 인터넷 중독률은 8.5%, 중독자 수는 1백91만3천명에 달한다. 특히 청소년의 인터넷 중독률은 12.8%로 더 높다. 이 가운데 고위험군은 2.6%, 잠재적 위험군은 10.2%이다. 올해 1~10월 부산정보문화센터에 접수된 인터넷 중독 상담 건수도 1천6백26건으로 이미 지난해의 1천4백60건을 넘어섰다.

대인기피증, 사회공포증, 불안장애, 섭식장애 등을 겪는 게임 중독자들은 갈수록 사회 적응에 실패하고 쉽게 범죄의 유혹에 빠져들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이를 개인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다. 김정구 인제대 해운대백병원 정신과 교수는 “게임 중독은 일종의 ‘충동조절장애’로서, 원하는 것이 즉각적으로 충족되지 않으면 행동화하는 경향이 있다”라며 “게임에 중독된 아이들은 충동 조절이 어렵거나 현실 감각을 잃기 쉽기 때문에 현실 세계 속에서 친구나 가족들과의 지속적인 대화와 격려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정부 역시 게임 산업을 법적으로 육성하고 장려하면서도, 이에 따른 부작용과 사회적 병폐에 대해서는 ‘개인의 의지’만을 강조해왔다. 전문가들은 “인터넷 게임 중독은 심각한 질병이다. 개인의 문제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전문가의 체계적인 치료를 받아야 한다. 이들을 음지에서 적극적으로 건져내고 제도적으로 보호할 대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지난 2008년 보건복지가족부가 ‘셧 다운제’ 도입, 게임 사이트 가입 때 부모 동의 의무화 등을 골자로 한 청소년보호법 개정안을 마련했지만 문화체육관광부와 게임업계의 반발로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한 상태이다. 문화부는 게임 산업 육성을 중시하는 탓인지 개정안에 반대하다 14세 미만(여성부는 19세 미만 모든 청소년)에게만 ‘셧 다운제’를 적용하자고 입장을 수정했다. 백희영 여성가족부장관도 사건 당일 오후 부산 수영구의 한 병원에 마련된 빈소를 찾아 유족들을 위로하고, 심야 시간 게임 제한 등 청소년 보호법 개정에 박차를 다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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