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무섭게 ‘능력’ 키운 한국형 좀비 영화들
  • 라제기│한국일보 문화부 기자 ()
  • 승인 2010.11.15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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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능력자> 개봉 ‘눈길’…<이웃집 좀비> <피플 어택> 등 제작 중

11월11일 개봉하는 한국 영화 <초능력자>는 소재만으로도 흥미롭다. 눈빛만으로 초능력을 발휘하는 한 초인(강동원)과 그에 대항하는 임규남(고수)의 이야기가 충무로에서는 낯설기 때문이다. 초능력은 미국 할리우드에서 흔한 소재이다. 음지에서 정의를 위해 인류에 봉사하는 인물들을 다룬 <슈퍼맨>은 고전적인 초능력자 영화. 최근의 <엑스맨> 시리즈와 TV 드라마 <히어로>는 별난 능력을 지닌 여러 사람을 등장시켜 흥미를 돋우었다. 이에 반해 <초능력자>는 한국적 초인 영화의 첫발을 내디딘다는 점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소재 확대와 그에 따른 장르영화의 정착은 충무로의 산업적 기반을 다지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 ⓒ영화사 집 제공

초인물의 외피를 두른 <초능력자>가 눈길을 끄는 점은 또 있다. 초인의 조종에 따라 살인을 하기도 하고, 고층 건물에서 스스로 몸을 던지기도 하는 사람의 모습은 좀비 영화의 전형이다. <초능력자>는 좀비 영화의 불모지인 국내에서도 좀비 캐릭터를 활용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B급 영화’에 대한 반감 때문에 잘 도전 안 한 영역

좀비 영화는 할리우드 등 서구를 중심으로 공포영화의 하위 장르를 형성하며 꾸준히 인기를 얻어왔다. 조지 로메로의 <살아 있는 시체의 밤>(1968년)이 대표작으로 꼽힌다. 좀비 영화는 적은 제작비로 공포를 극대화하면서 상업적 성공을 거둘 수 있는 B급 영화로 여겨지기도 한다. 1990년대 국내에서도 인기를 모은 <황혼에서 새벽까지>도 좀비 영화의 장르적 자장 안에 있다. 지난해 <슬럼독 밀리어네어>로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작품상을 거머쥔 대니 보일 감독의 <28일 후>도 흥행에 성공한 좀비 영화로 종종 거론된다. 그러나 좀비 영화는 서구인 정서가 강한 데다 B급영화에 대한 국내 관객의 반감 때문에 충무로에서는 금단의 영역처럼 남아 있었다.

국내에서는 최근 독립영화계를 중심으로 좀비 영화가 싹을 틔우고 있다. 젊은 층에서 B급 영화의 대표 장르인 좀비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이다. 좀비와 관련된 여섯 개의 옴니버스를 묶은 <이웃집 좀비>가 올해 2월 개봉하며 한국형 좀비 영화의 출발을 알렸다. 에피소드별로 들쭉날쭉한 완성도를 보이는 이 영화는 지난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심사위원특별상과 관객상을 수상했다. 지난 8월 극장에 선보인 <미스터 좀비>는 좀비 영화의 장르적 특징을 이용해 보잘것없는 중년 남성의 정체성 고민을 파고든다. 이 영화가 장편 데뷔작인 이수성 감독은 앞으로도 계속 좀비 영화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기존 한국 공포물은 한을 주로 다뤄 새 소재 절실”

주류 영화계에서도 좀비 영화 제작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영화사 보경사가 <피플 어택>(가제)이라는 한국형 좀비 영화의 제작을 추진 중이다. 심보경 보경사 대표는 “기존 한국 영화는 귀신이나 한을 주로 다뤘기에 새로운 공포영화를 만들고 싶다. 좀비라는 존재 자체는 유령보다 더 큰 공포감을 안겨줄 수 있다”라며 기대를 표시했다.

그러나 아직도 넘어야 할 장벽은 높다. 충무로의 주요 투자자는 좀비라는 이름을 내건 영화에 지갑 열기를 꺼리고 있다. CJ엔터테인먼트와 쇼박스, 롯데엔터테인먼트 등 대기업 계열 투자배급사는 시장의 검증을 받지 않은, 위험도 높은 작품을 회피한다. 좀비 영화로 대변되는 B급 영화의 제작은 충무로의 장르적 외연을 키우며 산업적 토대를 튼튼히 할 수 있지만 경제적 이유로 제작이 쉽지 않다. 충무로의 아이러니이다.

 



ⓒ데이지 엔터테이먼트 제공

 영화의 계몽성은 경찰 커플에 의해 잘 드러난다. 경찰(신하균)은 공격적인 섹스로 남성성을 과시하며, 성기의 크기에 집착한다. 그는 동거녀(엄지원)가 자신과의 섹스보다 바이브레이터를 이용한 자위를 더 즐기는 것에 충격을 받는다. 남근 중심적인 그의 사고는 성의 복잡성에 관해 사유하지 않는 대개의 평범한 남성들의 성애관이기도 하다. 영화는 남근중심주의가 ‘변태’ 못지않은 비정상적 사고이며, 사실은 열등감에서 기인한 반편향임을 알려준다.   

흔히 ‘커밍아웃’이라는 말은 동성애자들이 자신의 성적 지향을 밝히는 것을 지칭한다. 그러나 벽장 속에 숨어 있는 것은 동성애자들만이 아니다. 자신의 독자적인 욕망을 들여다보지 않고 그저 ‘정상적인 이성애자려니’ 생각하는 대개의 안일한 일반인들 모두 ‘커밍아웃’의 대상이다. 영화는 당신의 성적 욕망은 무엇인가, 당신의 성적 판타지는 무엇인가, 당신은 어떤 ‘변태’인가를 묻고 대답하는 과정을 통해 인생을 더 풍요롭게 살 수 있다고 일깨운다. 그러나 영화가 ‘변태’의 사례만 열거할 뿐, <숏버스>나 <원 나잇 스탠드>에서 볼 수 있었던 내면적 성찰을 보여주지 못한 점은 못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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