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투수 구본준, 구세주 될까
  • 이석·이은지 기자 ()
  • 승인 2010.11.01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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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전자 부회장으로 구본무 회장과 ‘형제 경영’ 나서…남용 부회장 경질 이면에 가족 간 합의설도

 

ⓒ시사저널 윤성호

“LG전자 임직원이 피하고 싶은 시나리오이다.” 구본준 부회장이 공식 업무를 시작한 지난 10월1일, LG그룹 주력 계열사의 한 임원은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는 “구본준 부회장이 대표로 임명되자 임직원들은 앞으로 많은 변화와 혼란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한다”라고 귀띔했다. 반대 의견도 있다. 조성은 KB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패밀리(구본준 부회장)의 복귀로 좀 더 큰 그림의 의사 결정이 가능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LG전자의 CEO 교체는 추석 선물이다”라고도 했다. 증권가에서 조애널리스트는 LG전자의 ‘저격수’로 통한다. LG전자 출신이라는 이력을 바탕으로 남용 부회장에 대한 냉혹한 보고서를 잇달아 쏟아냈다. 구본준 부회장에 대한 평가는 달랐다. 그는 “현재의 위기는 남용 부회장의 성과주의가 만든 과오이다. 오너 경영인의 등장으로 회사 방향성과 신규 성장에 대한 확신을 보여줄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투자 의견도 기존의 매수를 유지했다.

남용 부회장이 최근 경영 부실에 대한 책임을 지고 LG전자에서 낙마했다. 지난 2007년 1월 CEO에 오른 지 3년8개월 만이다. 오너 일가인 구본준 부회장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구부회장은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둘째 동생이다. 구본준 부회장의 경영 스타일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구부회장이 LG필립스LCD(현 LG디스플레이) 대표이사로 재임하던 시절, 100명에 가까운 직원들과 회식하는 자리였다. 여기에 나온 소주의 라벨이 시판용과 달랐다. 구부회장이 말을 타고 손을 앞으로 뻗으며 ‘진격’을 외치는 모습의 그림을 소주 라벨 위에 붙여 왔던 것이다. 직원들에게 ‘나를 믿고 따르라’는 구부회장의 의지를 보여주기 위한 퍼포먼스였던 셈이다. 그만큼 구부회장은 저돌적이고 공격적인 리더십의 소유자이다. 성격도 급하다. 결과 보고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있든 말든 해당 임직원을 심하게 나무란다. 대신 뒤끝이 없다. 뒤에서 세심하게 챙기는 배려심도 갖고 있다. 이를 두고 한 애널리스트는 “원래 뒤에서 사람을 챙기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런 구부회장을 보고 형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많이 야단을 쳤다. 경영 수업을 받으면서 사람을 다루는 법을 배운 것으로 안다”라고 귀띔했다.

▲ 구본준 LG전자 부회장(당시 LG상사 부회장·오른쪽 첫 번째)이 구본무 LG그룹 회장(왼쪽 세 번째)와 함께 지난 2008년10월 LG U 신사옥 준공식에서 테이프커팅을 하고 있다. ⓒ뉴시스

그룹 안팎의 인물평 극명하게 갈려

사람을 만나면 먼저 말을 건네고 대화를 이끌어가는 적극적인 성격답게 운동을 잘한다. 야구는 강속구를 던질 정도이고, 골프는 싱글 수준이다. 구부회장은 미국 시카고 대학 MBA(경영학 석사) 출신이다. 시카고 대학 동문 총무인 강성민 가톨릭대 경영학부 교수는 “숫자에 밝고 논리를 펼쳐가며 논쟁하는 것을 체질적으로 즐긴다. 머리가 비상하다”라고 그를 기억했다.

그룹 안팎의 평가는 현재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구부회장은 공격적인 투자와 의사 결정으로 LG필립스LCD(현 LG디스플레이)를 세계 유수 기업으로 키웠다. 그러나 그는 지난 2006년 과잉 투자로 회사를 위기에 빠뜨리기도 했다.

구부회장의 경영 전면 등장에 대한 시각이 극명하게 엇갈리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지난 25년간 전자업계에 몸담았지만, 경영 능력에 대해서는 여전히 물음표가 떠나지 않고 있다. 오히려 구본무 LG그룹 회장과 함께 형제 경영에 나서면서 형제간의 ‘나눠 먹기’가 아니냐는 비판이 일고 있다.

영국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근호에서 LG그룹을 북한의 권력 세습 구조에 비유해 주목을 받았다. 이 매체는 “구본준 부회장이 무능력한 것은 아니지만, 참신한 인재는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LG그룹이 지주회사를 세우고, 전문경영인에게 LG전자를 맡겨온 것에 높은 점수를 주었던 2년 전의 평가와 대조적이다.

그룹 안팎에서는 실적 부진을 이유로 남용 부회장이 사퇴한 것에 우선 의문을 제기한다. 남부회장은 구자경 명예회장의 비서실장 출신이다. 구본무 회장의 신뢰 또한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부회장은 지난 2006년 IMT-2000 사업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LG텔레콤 대표에서 물러났다. 구회장은 전략사업 담당 사장 자리를 별도로 신설해 남부회장을 앉혔다. 인사철만 되면 남부회장 교체설이 불거져 나왔지만, 연임을 하며 굳건히 자리를 지켰다. 그런 남부회장이, 그것도 인사철도 아닌 시기에 교체되었다는 점에서 뒷말이 나오고 있다.

퇴임 직전 남 전 부회장이 스마트폰 사업본부를 꾸렸다는 점도 선뜻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다. 경쟁사에 비해 늦기는 했지만, 조직 재정비를 위해 열을 올리고 있었다. 스마트폰 사업부의 총괄 책임자를 부사장급으로 임명했다. 이같은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돌연 사표를 제출했다는 점에서 각종 소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 김운호 한화증권 애널리스트는 “LG전자의 실적 부진 이면에는 스마트폰 공급을 요구하지 않은 시장 탓도 있다”라고 지적했다. LG전자의 최대 고객사인 미국 통신업체 브라이존은 그동안 한 단계 앞선 피처폰 정도면 충분하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지난 2009년 하반기 마케팅 담당자가 바뀌면서 전략이 바뀌었다. 갑자기 스마트폰을 달라고 하니까 LG전자의 대응이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김애널리스트의 설명이다. 

“오너 경영 통한 체질 개선에 목적”

▲ 구본준 LG그룹 부회장 ⓒLG전자 제공
때문에 구회장이 친·인척들의 요구에 떠밀리듯 남부회장을 경질했다는 이야기 또한 설득력 있게 나오고 있다. 이런 정황은 여러 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남부회장은 그동안 외국인 경영진을 대거 영입했다. 이 과정에서 구씨 일가 친·인척들이 경영하는 협력업체와 제휴관계를 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른 불만이 나오면서 남부회장의 경질설이 떠돌았다. 이어 구본준 부회장이 LG전자 대표이사로 온다는 이야기가 나돌았다. 당시 외국인 투자자들은 “구부회장이 오면 LG전자 주식을 모두 팔겠다”라면서 엄포를 놓았다. 그러나 구부회장이 지난 10월1일 대표이사에 내정되자 LG전자 주가는 4%대까지 반등했다. 외국인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이승혁 우리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남용 부회장의 경우 LG텔레콤에서 경영 능력을 검증받았다. 2007년 취임과 함께 외국인 투자자들의 움직임도 컸다”라고 말했다. 구부회장의 경우는 반대이다. 그가 내놓는 전략에 따라 움직이겠다는 것이 외국인 투자자의 반응이다. 이연구원은 “구부회장 체제로 바뀌면서 LG전자의 기초 체력이 가시적으로 좋아지지 않는다면 외국인 역시 쉽게 반응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라고 전망했다.

이렇듯 구부회장의 경영 능력은 여전히 시험대에 놓여 있다. 체질 개혁을 통한 실적 개선을 이루지 못한다면 회사는 돌이킬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회사를 정상 궤도에 올려놓는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일각에서는 구부회장이 LG전자를 넘어 그룹 경영까지도 넘볼 수 있다고 바라보고 있다.

구본무 회장은 지난 1995년 구자경 명예회장의 뒤를 이어 총수에 올랐다. 은퇴 당시 구명예회장은 70세였다. 구본무 회장 역시 “70세에 물러나겠다”라고 공언했다. 올해 구회장이 66세인 점을 감안할 때 4년 정도 여유가 남은 셈이다. 장남인 광모씨(32)가 대권을 승계받기에는 촉박한 시간이다. 광모씨는 2004년 구회장의 양자로 입적되었다. 이후 그룹 지주회사인 (주)LG 지분을 꾸준히 매입했다. 현재 4.67%까지 지분을 확대한 상태이다. 구본무 회장(10.51%), 구본준 부회장(7.58%),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5.01%)에 이어 4대 주주인 셈이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그가 경영권을 넘겨받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으로 바라보고 있다.

때문에 삼촌인 구본준 회장이 당분간 중간 다리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실적이 악화된 LG전자의 경영을 맡으면서 광모씨가 일정 수준까지 올라오도록 ‘멘토’ 역할을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구본준 부회장은 구본무 회장을 포함한 4형제 중에서 유일하게 그룹 경영에 관여하고 있다. 구회장의 바로 아래 동생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은 일찌감치 독립한 상태이다. 막내 동생인 구본식 희성전자 사장 역시 그룹 경영과는 무관하다. 구회장과 구부회장만이 그룹 경영에 관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같은 시각에 무게가 쏠리고 있다.

그룹 일각에서는 구본준 부회장의 등장 이면에 가족 간 합의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시각도 나오고 있다. 구본준 부회장을 밀어주기 위해 정기 이사회도 거치지 않고 남용 부회장을 서둘러 물러나게 한 것이 아니냐는 얘기이다. LG그룹이나 LG전자측은 구부회장의 등장을 후계 구도와 연관 짓는 데 대해 부담스러워하는 모습이다. LG전자의 한 관계자는 “오너 일가의 일에 대해 일일이 알 수는 없다. 다만 이번 인사는 오너 경영을 통해 LG전자의 체질을 개선하는 데 목적이 있다”라고 강조했다.

▲ 구본준 부회장(왼쪽 세 번째)이 LG필립스LCD 대표이사를 지낼 때 구본무 LG그룹 회장(왼쪽 네 번째)과 함께 LCD공장 시설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현재까지의 경영 성적은 ‘1승 1무 1패’

구본무 회장과 구본준 부회장의 형제 경영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재계에서는 바라보고 있다. 이 과정에서 LG전자의 가시적인 실적 변화가 이어질 경우 구부회장의 그룹 내 입지 또한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재계의 중론이다.

현재까지 구부회장의 성적은 1승(LG상사), 1패(LG디스플레이), 1무(LG반도체)이다. 구부회장은 지난 1998년 LG반도체(현 하이닉스)를 통해 경영에 입문했다. 하지만 이 회사는 1년 만에 하이닉스반도체에 합병되었다. 이듬해 LG필립스LCD(현 LG디스플레이) 대표이사를 맡았다. 과감한 투자와 공격 경영으로 취임 3년 만에 LCD 업계 1위 자리를 차지했던 것이 ‘공’으로 거론된다. 당시 LCD 업계는 공급 과잉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구부회장은 무리하게 투자를 늘리면서 2006년 기준으로 8천억원에 가까운 누적 적자를 기록했다는 점이 ‘과’로 평가된다. 김운호 한화증권 애널리스트는 “과감한 투자는 누구나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시장을 내다보다 적기에 투자하는 것이다. 구부회장은 시장 리스크를 감안하지 않은 과다 투자로 화를 좌초했다”라고 평가했다. 그는 적자 경영에 대한 책임을 지고 LG상사로 옮겼다. 이후 괄목할 만한 성과를 기록하면서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구부회장의 향후 행보에 따라 시장의 평가 역시 갈릴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세습 경영에 대한 비판을 잠재울 정도의 확실한 경영 실적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부담까지 더해졌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오는 11월 중순, 구부회장은 구회장과 계열사 최고경영자들이 함께하는 컨센서스 미팅(CM)에 참석할 예정이다. 이 자리에 어떤 카드를 들고 나오느냐에 따라 첫 번째 희비가 엇갈릴 전망이다. LG전자가 그동안 겪었던 시련 가운데 가장 힘들고 어려운 싸움이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노근창 HMC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IT 산업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얼마나 효과적으로 결합하느냐에 승패가 달려 있다. LG전자 직원들이 똘똘 뭉쳐서 삼성전자나 애플과는 차별화되는 제품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LG CNS, LG U+ 등 계열사와의 제휴를 통해 다양한 사업 모델을 만들어내야 할 때이다”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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