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 될까 두려워진 ‘이민자 천국’
  • 조명진│유럽연합집행이사회 안보자문역 (v)
  • 승인 2010.11.01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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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민주주의 모델’ 스웨덴, 극우 정당 의회 진출 이후 외국인 총격 사건까지 벌어져 ‘충격’

지난 10월21일 스웨덴의 세 번째 도시 말뫼에서 외국 이민자에 대한 총격 사건이 벌어졌다. 지난 9월 스웨덴 역사상 처음으로 극우 정당인 민주당(Sweden Democrats)이 의회에 진출한 지 한 달 만에 일어난 일이어서 그 충격이 더욱 커지고 있다.

스웨덴은 복지 국가로서 뿐만 아니라 사회민주주의의 모델로서 인종 차별이 거의 없는 사회라는 부러움을 받아왔다. 그런데 2010년 9월 총선에서 이민을 반대하는 극우주의 정당인 스웨덴 민주당이 국회 의석을 차지함으로써 종전의 이미지에 손상을 주게 되었다. 그리고 이번에 말뫼에서 외국 이민자들에 대한 테러가 자행됨으로써 스웨덴이 더 이상 이민자들의 천국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 10월21일 스웨덴 말뫼의 한 아파트 지역에서 외국 이민자에게 총격을 가한 사건이 발생해 경찰이 현장을 조사하고 있다. ⓒAP연합

말뫼에서 외국 이민자들을 상대로 벌어진 두 번의 총격 사건은 도시 전체를 패닉 상태로 몰아넣었다. 부엌 창문을 뚫고 들어온 총탄에 여성 두 명이 부상을 입었고, 같은 날 같은 도시에서 백주에 스쿠터를 타던 10대가 총격을 받았지만 다행히 다치지는 않았다. 문제는 이번 총격 사건이 지난 1년간 말뫼에서 일어난 15건의 총격 사건이 아직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벌어졌다는 점이다. 말뫼에서 벌어진 외국인 이민자들에 대한 연쇄 총격 사건은 1991년에서 1992년 사이에 스톡홀름 근교에서 11명이 총격을 당한 사건의 악몽을 되살아나게 만들었다. 그 당시 범인은 체포되어 현재 무기징역을 살고 있다. 

스웨덴의 인구 9백40만명 가운데 외국인의 비중은 14%이다. 스웨덴에 이민 온 외국인들의 상당수는 핀란드, 이라크, 옛 유고슬라비아 그리고 폴란드 출신들이다. 그리고 2000년에서 2009년 사이에 스웨덴의 비(非) 유럽계 이민자 가운데에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외국인은 8만2천명인 이라크인과 2만4천명인 소말리아인이다. 스웨덴에서 벌어진 이민자들에 대한 폭력의 역사를 보면 1920년대와 1930년대는 유대인이 주 대상이었고 지난 10년간은 정치 망명자들이었는데, 최근 수년 사이에는 무슬림이 주된 공격 대상이 되고 있다.

테러 위험과 이슬람과 서구 문명의 충돌에 따른 혼란이 극우 정당이 득세하는 배경이다. 이와 더불어 스웨덴 사회주의 정의당의 의장인 페르 베스투룬드의 말처럼 스웨덴에서 극우 민주당이 의회 진출에 성공한 이유는 일반 스웨덴 국민들이 맞닥뜨린 경제적인 불확실성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실직·자녀 교육 걱정도 유권자 마음 돌려

현재 유럽연합 27개국 가운데 무려 14개 회원국(오스트리아, 독일, 이탈리아, 영국, 스웨덴, 네덜란드, 벨기에, 그리스, 포르투갈, 덴마크, 헝가리, 불가리아, 슬로바키아, 라트비아)에 극우정당이 존재하고, 비(非)EU 회원국 노르웨이와 스위스를 포함하면 유럽의 16개국 극우주의자들이 정치 세력화에 성공한 상태이다. 이들 극우 정당 중에서 아직 최대 정당이 나오지 않았지만, 제2당으로 혹은 연정에 참가하는 형태를 띠고 있어 그 세력은 확산 일로에 있는 것이 사실이다. 

재정 위기로 유럽의 상당수 국가가 긴축 정책을 펴며 예산을 줄이고 있는 상황에서 유권자들은 실직과 자녀 교육에 대해 걱정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이 자국민 우선주의라는 기치하에 외국 이민자들을 도외시하는 극우파가 지지를 얻고 있는 배경이 되고 있는 것이다.

스웨덴 보수 신문인 스벤스카 닥블라뎃 9월20일자는 ‘모든 언론이 이민 정책을 반대하는 극우 민주당이 의회에 진출한 것에 대해서 놀라워 하고 있다. 더불어 모든 정치인도 충격에 휩싸였다’라고 민주당의 예상 밖 선전을 보도했다. 더불어 “인종 차별주의와 싸워야 한다는 의식이 여전히 스웨덴의 전체적 분위기이지만, 이번에는 당혹감을 감출 수 없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그렇다”라고 논평했다. 스웨덴 민주당은 1988년에 지미 오케손에 의해서 창설되었다. 오케손 당수는 민주당이 민족주의를 표방하지만 인종 차별주의는 지양한다고 주장한다.

스웨덴의 프레드릭 라인펠트 총리의 중도 우익 연립 정부는 3백49석 가운데 1백72석을 차지함으로써 과반수에 3석이 부족하다. 하지만 라인펠트 총리는 스웨덴 의정 사상 처음으로 20명의 의원을 배출한 민주당과의 연정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이라고 일축했다.

스웨덴 민주당이 의회 진출에 성공함에 따라 이웃 국가인 덴마크의 국민당, 노르웨이의 진보당과 함께 스칸디나비아에 극우 정당 3인방이 등장하게 되었다. 하지만 다른 두 스칸디나비아 극우 정당이 범죄 예방과 소득세에 대한 불만을 업고 창립된 반면, 스웨덴 민주당은 처음부터 모든 이민자와 외국 정치 망명자들을 쫓아내려는 인종주의적 동기에 따라 만들어졌다. 그나마 스웨덴의 여당이 이웃 스칸디나비아 국가인 덴마크와 노르웨이와 다른 점은 극우 정당과 연립을 구성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참고로 덴마크 극우당인 국민당(Danish People’s Party; DPP)은 2001년 총선에서 득표율 12%와 국회 22개 의석수를 차지함으로써 제3당이 되었다. 현 중도 우익 연정에서 DPP은 정치 망명자에 대한 엄격한 정책과 개발도상국에 대한 원조비를 삭감하는 정책을 도입하는 데 앞장섰다. 한편, 노르웨이에는 카알 하겐이 이끄는 진보당(Progress Party)이 극우주의를 표방한다. 지난해 10월 선거에서 근 한 세기 동안 노르웨이 정치를 주도해 온 노동당이 실권함에 따라 진보당이 우익 연정에 참여했다. 진보당은 14.7% 득표율과 총 의석수 1백65석인 국회에서 26석을 차지했다.

▲ 지난 9월 총선 직후의 지미 아케손 스웨덴 민주당 대표(가운데). ⓒ연합뉴스

스웨덴 사회민주당은 1932년 이래로 압도적인 집권당이었다. 1990년대 중반까지 사민당의 득표율은 45%에 가까웠는데, 이번 선거에서 30.9%로 2006년 선거 결과보다 5%나 하락한 최악의 결과를 빚었다. 이를 두고 스웨덴 유수 일간지 다겐스뉴헤테르는 “사민당은 그동안 왜 인기가 있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라고 논평한 바 있다. 사회민주당은 지난 78년 중에 65년을 집권해 오면서 스웨덴을 관대한 복지 국가로 만들었다는 평을 받아왔다.

극우 정당인 민주당의 의회 진출과 인종적인 모티브를 지니고 있는 연쇄 총격 사건은 스웨덴 사회도 다른 유럽 국가처럼 되어가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사실 스웨덴은 어떤 형태의 차별도 용납하지 않는, 유럽 국가 중 사회 정의를 가장 잘 실천해 온 유럽 도덕성의 표본이자 보루로 인정받아왔다. 이제 그 보루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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