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 ‘본업’, 제작 ‘부업'‘투잡’ 뛰는 흥행 감독들
  • 라제기│한국일보 문화부 기자 ()
  • 승인 2010.10.25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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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제균·장진·류승완 등 ‘겸업’ 성공…올해 유난히 눈에 띄어

흥행 감독으로 꼽히는 강우석·박찬욱·윤제균·장진·류승완의 또 다른 공통점은 제작자라는 점이다. 사실 감독이 영화 제작을 겸업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감독은 제작을 통해 물적 토대를 다지고 인맥을 형성한다. 국내에서도 1960~70년대 신필름이라는 자신의 영화 왕국을 건설한 신상옥 감독의 사례가 있고, 1990년대에는 강우석 감독이 시네마서비스를 통해 숱한 히트작을 제조해내면서 충무로 넘버원 파워맨으로 통하기도 했다.

올해는 유난히 감독이 제작한 영화가 많이 쏟아져 나왔다. 감독이 메가폰을 들고 흥행 다툼을 벌이는 것을 넘어 촬영장 밖에서도 흥행 열전을 벌이는 형국이다. 감독들이 제작하는 영화만으로도 충무로의 현재 권력 지형을 그려볼 수 있을 정도이다.

지난해 <해운대>로 1천만 관객 영화 클럽에 가입한 윤제균 감독의 종횡무진이 가장 눈에 띈다. 윤감독은 상반기에만 자신이 제작자로 크레딧을 올린 <하모니>와 <내 깡패 같은 애인>을 개봉시켰다. <하모니>는 3백10만 관객을 모으며 올해 히트작 명단에 올랐다. 평단에서 호평을 받은 <내 깡패 같은 애인>은 70만명이 보았지만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현재 진행 중인 대형 프로젝트도 윤감독의 영향력이 만만치 않음을 보여준다. 내년 여름 시장을 겨냥한 <7광구>와 <퀵>은 윤감독의 지휘 아래 제작되고 있다. 두 작품 모두 제작비 100억원대의 블록버스터이다. 윤감독이 메가폰을 들 한·미 합작 영화 <템플스테이>의 제작비도 수백억 원대이다. 한국 영화계를 흔들 화제작 세 편을 윤감독이 쥐락펴락하고 있는 셈이다. “지금 충무로는 윤제균 시대이다”라는 영화인들의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충무로 파워맨 강우석 감독은 주춤하고 있는 형국이다. 올해 <용서는 없다>와 <주유소 습격사건2> <퀴즈왕> 등을 잇달아 개봉시켰지만 흥행 성적은 그리 좋지 않았다. 자신이 연출한 <이끼>만이 3백만 관객을 넘기며 체면치레를 한 수준이다. 그러나 탁월한 흥행 감각과 승부사 기질을 지닌 강감독이기에 여전히 그의 행보는 주목할 만하다. 강감독은 휴먼 드라마 <글로브>를 연출 중이며, 내년 설 연휴 개봉을 목표로 하고 있다.

▲ ⓒ필름있수다 제공

박찬욱, 국제 무대에서도 제작자 활동 ‘주목’

2005년 <웰컴 투 동막골>로 성공한 제작자 대열에 들어선 장진 감독은 지난 10월21일 개봉한 <된장>으로 흥행 전선에 나섰다. 2007년 <바르게 살자>도 흥행시켰던 그가 <된장>으로 3연타석 흥행 안타를 치게 될지도 주목된다. 그는 <된장>에 이어 자신이 연출하는 <로맨틱 헤븐>으로 권토중래를 노린다.

충무로 재주꾼 류승완 감독은 지난 추석 연휴 개봉한 <해결사>로 제작자 공식 데뷔식을 치렀다. 류감독은 2005년 아내 강혜정씨와 영화사 외유내강을 설립해 자신의 영화 제작을 겸해왔다. <해결사>는 손익분기점을 훌쩍 넘는 1백90만명가량의 관객을 모았다. 류감독이 흥행에서는 성공적인 데뷔식을 치른 셈이다.

또 한 명 눈여겨보아야 할 영화감독 출신 제작자는 박찬욱 감독이다. 박감독이 설립한 영화사 모호필름은 봉준호 감독의 차기작 <설국열차>의 제작을 진행 중이다. 다국적 프로젝트로 추진 중인 <설국열차>는 수백억 원대의 프로젝트가 될 전망이다. 차기작을 미국 할리우드에서 진행 중인 박감독은 국제 무대에서도 제작자로 활동하고 있다. 박감독의 해외 인지도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는 사례이다.  


▲ ⓒ외유내강 제공
동일범 소행으로 추정되는 연쇄 살인 사건의 충격이 온 나라를 흔들자 대통령까지 나서 수사를 독려한다. 경찰은 가짜 범인을 만들어 사건을 종결하기로 하고 광역수사대의 에이스 최철기(황정민)를 전면에 내세운다. 승진을 보장한다는 상부의 제안을 받아들인 최철기는 스폰서인 건설업자 장석구(유해진)를 이용해 ‘배우’를 세워 이벤트를 마무리하지만, 역시 건설업자의 후원을 받고 있는 검사 주양(류승범)이 끼어들면서 상황은 갈수록 꼬여간다.  

착한 사람은 없는 세계, 서로를 물고 무는 먹이사슬 속에 검찰과 경찰, 스폰서와 언론이 뒤엉키고 부정한 뒷거래가 횡행한다. 거래 배경에는 기업의 후원을 받는 검찰, 수사권을 둘러싼 검찰과 경찰의 반목, 조직 내 학연·지연에 의한 끌어주기 인사에 언론과 검찰, 경찰, 기업 간의 밀월 관계 그리고 아동 대상 범죄가 얽혀 있다. 올 한 해 대한민국 뉴스 헤드라인의 총정리 판본이냐고? 감독 류승완이 본 세상, 영화 <부당거래>의 이야기이다.

액션 장르의 영화를 통해 독자적 세계를 구축해 온 감독 류승완의 신작 <부당거래>는 모두가 알고 있는 이 사회의 ‘불편한 진실’에 대한 박진감 넘치는 삽화이다. 기존의 작품들과는 달리 액션의 비중이 현저히 줄었고, 드라마가 대폭 강화되었다. 나름의 변신이라 할 만한 변화이지만 어색하지 않다. 비교적 꽉 짜인 이야기가 흥미롭고, 빠른 전개는 이야기에 흡인력을 더한다. 줄어들기는 했으나 액션 장면들이 주는 임팩트는 강렬하고, 후반 작업에 공을 들인 듯 전체적인 그림의 ‘때깔’도 좋다.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세 주역 황정민·류승범·유해진이 보여주는 연기 호흡은 두말할 것 없는 수준이다. 송새벽·천호진 등 영화의 구석구석을 채운 조연들의 연기 밸런스도 일품이다. 묵직하고 시사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류승완 감독 특유의 코미디 감각도 살아 있다. 충분히 오락적이고 넘치게 시사적이다.
 
어쩌면 누군가는 이 영화를 보고 불편해할 수도 있겠다. 설령 불편해지지는 않더라도 마지막 장면을 보고 일어서는 뒷맛이 마냥 유쾌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만들고 보니 다큐멘터리가 되었다”라는 감독의 말처럼 영화가 현실과, 아니 현실이 영화와 너무 닮아 있는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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