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봉준호·박찬욱 ‘장군 멍군’작품이 ‘힘’을 말한다
  • 김진령 (jy@sisapress.com)
  • 승인 2010.10.18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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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감독, 박감독 제치고 정상에 올라…<마더> 호평이 영향 미친 듯

 

국내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차세대 영화계 인물로 전문가들이 뽑은 이는 봉준호 감독(41)이었다. 봉준호 감독은 지난 몇 년 동안 박찬욱 감독(47)과 더불어 이 분야에서 1, 2위를 다투어왔다. 2008년과 2009년 박찬욱 감독이 각각 26%, 22%의 지목률을 기록해 1위를 했고, 같은 기간 봉감독은 18%, 20%의 지목률로 2위를 기록했다. 그러다 올해 봉감독이 40%의 지목률로 1위로 뛰어오르면서 2위 박감독(지목률 24%)과 차이를 크게 벌렸다. 지난 3년간 조사 기록 중 가장 높은 1위 지목률이기도하다. 지난해와 올해 어떤 일이 벌어졌기에 봉감독에게 표가 몰린 것일까.

두 감독은 지난해 나란히 <박쥐>(박찬욱)와 <마더>(봉준호)를 개봉했다. <박쥐>는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을 받는 등 해외 쪽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국내 관객이나 국내 평단은 <마더> 쪽에 좀 더 우호적이었다. 또, 박감독의 차기작 행보가 답보상태인데 반해 봉감독의 차기작인 <설국열차>가 다국적 프로젝트로 구체화되고 있는 점도 차이라면 차이이다. 기대가 되는 대목은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두 감독이 <설국열차>를 위해 손을 잡았다는 점이다. 박감독은 제작사 모호필름 대표로, 봉감독은 연출로 참여하고 있어 <설국열차>에 대한 영화 팬들의 기대치가 한껏 높아지고 있다. 두 감독 모두 이전 작품에서 할리우드산 영화를 능가하는 상상력과 만듦새, 흥행 감각을 보여주었기에 더욱 그렇다. 영화계에서는 국제적으로 판을 벌이고 있는 강제규 감독의 신작 <마이웨이>와 <설국열차>의 완성도와 흥행 여부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김지훈 감독·배우 김지석 첫 진입

올해 순위권에 새로 등장한 인물은 <화려한휴가>의 김지훈 감독(39)과 배우 김지석(29)이다. 김감독은 조만간 SF액션 대작 <제7광구>를 선보일 예정이어서 주목되고 있다. 그는 30대 감독으로는 처음으로 순위권에 진입했다. 배우 김지석은 지난해 영화 <국가대표>와 TV드라마 <추노>로 각광받으면서 배우로서 자신의 이름을 또렷이 각인시키기 시작했다. 송강호, 설경구와 함께 한국 영화 중흥기의 대표 배우로 각인된 최민식(48)이 올해 순위권에 진입한 것도 눈에 띈다. 최민식은 <친절한 금자씨>(2005년) 이후 긴 슬럼프에 빠졌다가 올해 <악마를 보았다>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치면서 부활을 알렸다.


배우 장동건은 <워리어스 웨이>의 개봉만을 마냥 기다리면서 올해 순위권에서 사라졌다. 배우 송강호와 설경구, 윤제균 감독(41)은 지난해 순위를 지켰다. 윤제균 감독의 경우 제작자로서의 역량도 평가받아야 할 부분이 있다. 지난해 그가 감독한 <해운대>가 1천만 관객을 동원했고, 그가 만든 JK필름이 제작한 <하모니>와 <내 깡패 같은 애인>이 올해 흥행에 성공하면서 과거 강우석 감독이 제작자와 감독으로서 누렸던 영광에 접근하고 있다. JK필름의 향후 라인업에는 <제7광구><퀵><템플 스테이> 등의 블록버스터급 상업 영화가 포진하고 있다.

 

김지운, 박찬욱, 봉준호. 이들은 한국의 영화감독 중에서 당장 영화를 찍겠다고 했을 때 제작사가 시나리오나 캐스팅에 토를 달지 않고 군말 없이 돈을 대는 대표적인 감독들이다. 이름 자체가 이미 한국 영화계의 질과 양을 상징하는 인물들이다. 이들 가운데서도 봉준호 감독은 질과 관객 동원 수에서 고르게 인정받은 행복한 경우이다.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2000년)를 빼고 2003년 <살인의 추억>, 2006년 <괴물>, 2009년 <마더>에 이르기까지 그의 영화는 영화 팬과 영화 배급업자에게 더할 수 없이 큰 선물이 되었다. 영화계 차세대 리더로 뽑힌 그를 만났다.

신작 소식이 궁금하다.

지난 9월15일에 차기작 <설국열차>의 시나리오를 탈고했다. 수정 작업에 들어갔고, 내년에 촬영해 2012년에 개봉한다.

작품을 너무 적게 만드는 것 아닌가?

그래도 3년에 한 편씩은 만든다.(웃음) 시나리오를 직접 쓰다 보니 더 빨리할 수가 없다. 직접 시나리오를 쓴다는 원칙이 있는 것은 아닌데, 하다 보면 그렇게 된다. 좋은 작가를 파트너로 만나서 하고 싶은데 아직….

<설국열차>는 다국적 프로젝트라고 하던데.

영어 대사가 50~60% 정도이다. 북미 시장에서는 영어 영화로 이해할 수도 있다. 배우도 그 정도 비율로 갈 것이다. 제작은 박찬욱 감독의 모호필름이 맡고, 한국 감독이 연출하고, 주요 배역 중 일부는 한국 배우가 맡는 국제적인 프로젝트라고 보면 된다. 미국이나 일본의 메이저 스튜디오가 투자나 공동 제작사로 섞일 가능성이 크다. 그쪽에서 워낙 관심을 보이고 있어서….

흥행에 대한 스트레스는 없나?

많은 기대를 받으니까 부담은 되지만 복에 겨운 부담이고, 즐거운 부담이다. 아무런 관심 없는 상황에서 영화를 찍어본 경험이 있다. 그런 썰렁함보다는 부담감이 낫다.

<마더> 같은 경우는 메이저 영화치고는 굉장히 어두웠다.

예상보다는 관객이 많아서 놀랐다. 욕망을 다룬 영화는 많았는데, ‘엄마’라는 존재가 욕망을 가진 인간임을 드러내는 영화가 별로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그 영화를 더 하고 싶었다. 모험을 하겠다고 만든 영화는 아니고, 내가 하고 싶어서 만든 것이다.

영화화를 결심하게 되는 원칙이 있나?

어느 시점에 어떤 영화를 하겠다는 계획이 있어서 만들지는 않는다. 그때그때 내면의 충동에 따라 만든다. 나는 3년에 한 번씩 만들기 때문에 트렌드를 의식하기도 불가능하다. 개봉될 시점에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모르는 것이니까.

내면의 충동?

단순하다. <마더>도 엔딩의 버스에서 춤추는 장면을 꼭 찍고 싶었다. <괴물>은 자전거 타고 다니던 한강공원 둔치에서 괴물이 뛰어다니는 것을 너무나 찍고 싶어서 만든 영화이다.

그런 한 장면에 영감을 받아서 영화를 만드는 것인가?

전체적인 구조도 짜지만 내적인 충동은 한 장면에서 비롯되고 점화되는 경우가 많다. 작지만 뜨거운 그 한 장면.

<설국열차>는 어떤 충동으로 시작하게 되었나?

원작이 인류에게 기후 재앙이 오고 나서 벌어지는 미래 사회에 대한 묵시론적인 내용이다. 그것보다는 기차라는 공간이 주는 강렬한 매력에 끌렸다. 남자에게는 기차에 대한 로망이 있다. 기차라는 폐쇄적인 일직선의 공간에서 치고받고 싸우는 이야기이다. 갈등이나 대립이 큰 SF액션 영화이다. 인간과 인간이 대결할 때 뿜어나오는 에너지는 대단하다. 1번에서 3번 칸으로 갈 때 반드시 2번 칸을 통과해야 한다. 그 일직선의 구조가 강력한 충돌을 만들어 낸다. 게다가 그 공간이 무서운 속도로 달리고 있고…. 내가 해 온 영화 중 가장 강렬한 영화가 될 것이다. 피도 많이 나오고 액션도 크고.

요즘 영화계는 자본의 통제가 크다고 하던데.

정치·제도적 압박은 없어졌지만, 대형 자본에 의한 압박이 많아졌다. 투자사에서 신인 감독의 시나리오를 일반인에게 나누어주고 장면별로 모니터링 점수를 매기더라. 누군가의 막대그래프를 직접 본 적도 있다. 정말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 스튜디오와 조금씩 비슷해지고 있다.

내 세대에서는 그런 일 없었다. 운이 좋았다. 데뷔할 때 한국 영화가 호황기였고, 가장 역동적으로 돌아가던 시기였다. 차승재·심재명 같은 힘 있는 프로듀서들이 감독과 투자사 사이에 있으면서 보호막이 되어주기도 하고, 도전적인 프로젝트에도 의욕을 보였다. 요즘은 제작·투자사가 모든 것을 직접 한다.

대형 자본들이 만만한 신인 감독을 선호한다는데.

그런 틈바구니에서 어떻게든 창의적인 영화를 찍어야 한다. 그런 긴장은 넓게 보면 영화 산업에서 항상 있었던 문제이다. 상대적으로 봤을 때 한국은 요즘 그런 경향이 심해지고 있는 것뿐이다. 영화에 투자를 하는 분도 존중받아야 한다. 영화는 미술이나 소설에 비해서 엄청난 자본이 들어간다. 창작자는 돈을 위해서 일하지는 않지만, 대신 자기가 소모하는 돈에 대해서 존중하는 예의는 있어야 한다. 자신의 상상력을 위해 타인의 자본을 소모하는 일이라 그런 고민도 해야 한다. 한국은 투자사와 배급업자, 극장 체인이 수직 계열화 되었다. 미국은 제작사가 배급에 관여하지 못하게 법으로 이런 것을 쪼개 놓았다. 한국은 젊은 감독이 옴짝달싹 못하는 구조이다.

감독은 어떤 자리인가?

일단 영화는 보고 듣는 것이다. 철저하게 시청각적인 것이다. 시나리오를 운반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시각화하는 것이 감독의 가장 큰 본업이다. 시각화시키는 그 작업 안에 감독의 역할이 들어 있다. 타인의 시나리오이든, 자신의 것이든 그것을 시각화해서 장면을 만들어내는 것이 감독의 본질 작업이다. <살인의 추억>의 경우 미제 사건이었지만 그 사건을 어떻게 봐야 할까,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를 먼저 고민하고 정리하니까 시각적인 부분이나 영화적인 부분이 자연스레 해결된 경우였다.

시점이나 관점이 시각화 작업보다 먼저인가?

<살인의 추억>은 1980년대를 다룬 영화이다. 1980년대는 범죄보다 어두운 시대였다. 그런 화두가 정리되니까, 그에 필요한 등화 관제 같은 그 시대의 분위기와 고증, 빛과 어두움에 대한 미술 프로덕션을 어떻게 할지 정리가 되었다. 완벽한 고증이나 미술 프로덕션에 집착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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