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응찬 ‘승리’냐, 동반 퇴진이냐
  • 이석 (ls@sisapress.com)
  • 승인 2010.09.13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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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입가경’ 신한금융지주 신상훈 사장 고소 사태 / ‘라응찬 왕국’ 해 저무나

 

▲ 일본 나고야에서 재일동포 주주와 이사들을 대상으로 열리는 설명회에 참석하기 위해 9월9일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신한금융지주 라응찬 회장·신상훈 사장·이백순 신한은행장(왼쪽부터). ⓒ연합뉴스

라응찬 신한금융지주 회장이 최대 위기를 맞았다. 그는 신한은행 ‘성공 신화’의 주역이다. 지난 1982년 창립 때부터 20년 동안 신한은행 CEO(최고경영자) 자리를 지켜왔다. 올 3월에는 회장 4연임에도 성공했다. 금융권에서는 ‘신한금융=라응찬’이라는 인식이 공식처럼 여겨지고 있다. ‘라응찬 왕국’이라 부르기를 서슴지 않는다. 

그런 ‘라응찬 신화’가 최근 신상훈 사장 고소 사태를 계기로 삐걱거리고 있다. 검찰 고소가 내부 ‘권력 다툼’으로 비화하면서 주가가 급락했다. 금융권을 중심으로 경영 파행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일부 주주들은 ‘라응찬 책임론’을 거론하면서 압박을 가했다. 신사장에 대한 공격이 부메랑이 되어 라회장에게 되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보다 못한 라회장이 직접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는 지난 9월9일 일본 나고야에서 열린 재일교포 주주 설명회에서 신사장을 검찰에 고소할 수밖에 없었던 불가피성을 역설했다. 하지만 주주들은 “누구의 손도 들어줄 수 없다”라면서 이사회에 공을 넘겼다. 결국 이사회의 표 대결로 ‘라응찬 왕국’의 운명이 갈리게 된 것이다. 

표 대결로 가면 신사장보다 라회장 쪽에 승산이 있다는 것이 금융권의 전반적인 견해이다. 신한금융지주의 이사회 구성원은 총 12명. 이 중 과반수인 7명이 참석해 4명이 찬성하면 안건을 통과시킬 수 있다. 현재 라회장과 이행장이 신사장 해임을 주장하고 있다. 4명의 재일교포 사외이사와 신사장은 해임안을 반대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나머지 5명은 류시열 신한금융지주 이사(비상근)와 전성빈 서강대 교수, 윤계섭 서울대 명예교수, 김병일 한국국학진흥원장, 필립 아기니에 BNP파리바 아시아 리테일부문 본부장 등이다. 이들이 현재 키를 쥐고 있다. 국내파 사회이사의 경우 신한은행으로부터 충분한 언질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필립 아기니에 본부장이 중립 의견을 표명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라회장이 승리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점쳐진다.

이 경우 라회장은 검찰 조사 결과와 무관하게 조직 재정비에 나설 수 있다. 주주들의 재신임을 통해 후계 구도를 더욱 탄탄하게 다질 수 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아무리 빨라도 두 달 안에는 조사 결과가 나오기 힘들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신사장의 해임안 처리가 지지부진할 경우 이때까지도 내분이 장기화될 수 있다는 얘기이다. 하지만 이사회가 라회장에게 힘을 실어줄 경우 권력 누수에 따른 경영 파행을 조기에 진압할 수 있다. 일본 주주들도 현재 사태의 조기 진화를 주문하고 있다. 위성호 신한지주 부사장은 설명회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재일교포 주주들 사이에서 이번 사태를 조기에 수습해달라는 주문이 많았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라회장이 일본 주주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해임안을 강행할지 여부는 미지수이다. 신한은행에서 재일교포 주주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하다. 사외이사는 네 명이지만, 일본 주주들이 17%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이런 상징성을 무시하고 표 대결을 강행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신한은행측도 “표 대결은 무의미하다”라고 강조했다. 일본 주주들이 9월9일 전권을 위임하면서 이사회 조기 개최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구체적인 일정이나 안건 내용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향후 이사회 구성원들이 사전 모임을 통해서 정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사외이사들 간에 적지 않은 진통이 예상되고 있다. 이 관계자는 “표 대결은 말 그대로 최후의 수단이다. 이사회를 앞두고 사전 모임 과정에서 어떤 합의를 이끌어내느냐가 관건이다”라고 말했다.

▲ 서울 중구 태평로2가에 있는 신한은행 본점. 최근 내부에서 불거진 사건으로 이미지에 적지 않은 타격을 입었다. ⓒ시사저널 우태윤

라회장의 금융실명제법 위반 혐의 조사 결과도 변수

라회장이 이사회를 통해 재신임을 받는다고 해도 변수는 여전히 남는다. 금감원은 최근 라회장의 차명 계좌에 대한 조사를 재개했다. 금감원은 금융실명제법 위반 검사를 마친 뒤, 이르면 10월 안에 제재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현행법상 금융회사 직원이 3억원을 초과하는 비실명 거래를 할 경우 정직 이상(업무정지)의 제재를 가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결과를 예단할 수는 없지만, 라회장의 금융실명제법 위반 혐의가 확인될 경우 신한지주는 또 한 번 격랑에 휘말릴 수 있다. 주주들의 재신임이나 라회장의 경영 능력을 떠나 물리적으로 회장직을 수행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금융권에서는 라회장과 신사장이 동반 퇴진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두 사람 모두 내부 권력 다툼으로 조직에 혼란을 주고 주가를 떨어뜨렸다는 책임론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태이다.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두 사람이 동반 퇴진할 경우 신한 사태는 조기에 마무리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대승적인 차원에서 동반 퇴진이 이루어질 경우 상황은 의외로 빨리 마무리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물론 이 경우 KB금융과 같이 파행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 민주당은 현재 신사장 고소 사건의 배후 세력으로 ‘영포라인’을 지목하고 있다. 향후 국정감사를 통해 배후 세력을 밝히겠다는 뜻도 명확히 했다. 우제창 민주당 의원(정무위)은 최근 “이번 사태의 이면에는 보이지 않는 세력이 분명히 있다. KB금융에 이어 신한금융까지 손아귀에 넣으려는 권력 투쟁이 확실하다”라고 말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경영진 공백이 생긴다면 정부 인사들이 신한은행의 경영권을 휘어잡을 수 있다.

이와 관련해 김종창 금감원장은 지난 7일 카이스트 최고경영자 과정 조찬 강연 후 기자들과 만나 “인사권 개입은 불가하다”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은행 역시 공공성이 크다는 점에서 언제까지 지켜볼 수만은 없을 것으로 금융권에서는 바라보고 있다. 특히 현 정부 들어 금융권이 낙하산 인사로 몸살을 앓은 사례가 적지 않은 터여서 설득력을 얻고 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이정환 한국거래소 이사장을 비롯해 상당수 금융권 인사들이 현 정부 들어 쫓겨나듯 빠져나왔다. 신한금융에서도 이같은 사태가 재현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결과가 어떻든 이번 일로 신한금융의 이미지는 적지 않은 타격을 입었다. 이와 관련해 신한지주측은 이사회 결과를 지켜보아달라는 입장이다. 지주사 관계자는 “고소 초기만 해도 일본 주주들의 반응이 격앙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9일 설명회 이후 오해가 상당 부분 풀린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해명했다. 파행에 파행을 거듭하고 있는 신한금융 사태가 어떤 쪽으로 가닥을 잡게 될지 주목된다. 분명한 것은 이번 사태로 ‘라응찬 왕국’의 해가 저물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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