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열의 길 나선 일본 민주당‘동지’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 도쿄·임수택 | 편집위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0.09.06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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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자와 전 간사장의 당 대표 출마 선언으로 세력 양분…하토야마 전 총리도 ‘오자와 지지’로 돌아서

 

▲ 지난 9월1일, 일본 민주당 당 대표 선거에서 맞설 간 나오토 총리(오른쪽)와 오자와 이치로 전 간사장이 담소하고 있다. ⓒAP연합

지난 8월30일, 일본 정가는 긴박하게 돌아갔다. 하토야마 전 총리가 중재해 간 나오토 총리와 오자와 이치로 전 간사장이 극적으로 회동했다. 하토야마 전 총리가 중재한 이유는, 두 사람이 당 대표 선거에 나가 싸우게 되면 당이 분열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여기에는 간 총리와 오자와 전 간사장 그리고 하토야마라는 3인의 트로이카 체제를 구축하고자 하는 의도도 깊이 깔려 있다. 지난해 7월에 정권 교체를 이룬 주요 주주들의 지분을 인정해서 당을 운영하자는 의미이다.

총리 취임 이후 줄곧 오자와와 일정 거리를 유지해왔던 간 총리도 하토야마가 제안한 ‘3인이 정권을 공동으로 운영하자’는 정신을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그동안 오자와와 그의 세력을 철저히 배제하는 과정에서 의외로 많은 의원이 오자와에게 동정심을 보인 현실을 모른 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3자 간의 합의는 거의 정리되는 듯했으나 마지막에 오자와가 당직 배분을 구체적으로 요구하면서 회담이 틀어지기 시작했다. 오자와가 반(反)오자와 세력의 선봉장인 에다노 간사장과 센 코쿠 관방장관을 계속 기용하는 것에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한 것도 간 총리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간 총리의 한 측근이 “밀실에서 이상한 타협을 하면 당신은 간다. 국민을 믿고 가라”라고 한 충고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간 총리의 변심(?)에 오자와 전 간사장은 “거당 일치의 태세를 만들고자 하는 생각이 없는 것 같다”라고 간 총리를 비난하며 출마를 선언했다. 간 나오토가 총리가 된 이후 줄곧 자신과 자신의 지지 세력을 배제한 앙금을 가감 없이 토로하기도 했다. 하토야마도 간 총리의 변심에 불만을 품고 오자와를 지지하기로 했다. 양자 간의 대결에서 누가 당선되든 당이 갈라져 분열과 갈등이 생겨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간 나오토가 총리가 된 이후 거의 모든 요직에서 자파 의원들이 배제되자 오자와는 배수진을 쳤다. 정권 교체를 이룩한 일등 공신이 자신인데 간 총리 체제에서는 마치 당의 이미지에 먹칠하는 구세력처럼 취급받아왔기 때문이다. 8월31일 총궐기대회에서 오자와를 지지하는 1백20명 정도의 의원들이 모여 세를 과시했다. 해외에 나가 있어 참석하지 못한 의원들까지 감안하면 숫자는 더욱 많다는 것이 오자와 진영의 주장이다. 주로 오자와 전 간사장의 공천으로 당선된 의원들이다. 특히 ‘오자와 걸스(girls)’로 불리는 신진 의원들이 전면에 나섰다. 올림픽에서 2회, 세계선수권에서 7회 금메달을 딴 일본 여자 유도의 영웅인 타니료코 의원 등이 전면에 나서 오자와의 리더십만이 흔들리는 민주당과 일본을 구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자와 진영은 하토야마 전 총리의 지지 선언으로 한층 고무되어 있다.

한편, 간 나오토 지지 그룹은 오자와 지지 의원들이 대규모로 모이자 내심 당황하는 모습이었다. 간 나오토 진영은 궐기대회에 50명 정도 모일까 하는 위기감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1백14명이 모이는 의외의 결과가 나타났다. 마에하라 국토교통장관, 노다 재무장관 등 주로 개혁 성향의 의원들이다. 간 나오토 총리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이로써 양 진영 간의 격전이 막을 올렸다. 민주당의 당 대표 선거인단은 국회의원 4백12명, 지방의원 2천3백82명 그리고 당원과 서포터 34만2천4백93명으로 구성된다. 결정적 열쇠는 양 진영에 나타나지 않은 1백78명 의원들에게 달려 있다.

여론은 간 나오토 편…일반 국민들은 대체로 무관심

 간 총리의 선거 공약은 깨끗한 정치와 재정 건전화를 위한 소비세 문제를 공론화하는 것이다. 깨끗한 정치를 실현하겠다는 것에 방점이 실렸다. 정치 자금 문제로 더 이상 정치가 혼란에 빠지고 우왕좌왕하는 것을 막겠다고 역설했다. 정치 자금 스캔들에 발목이 잡혀 있는 오자와의 아킬레스건을 정조준했다. 많은 국민이 정치 자금 스캔들의 주인공인 오자와를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배경을 등에 업었다. 이에 반해 오자와는 지난해 7월 중의원 선거 때 약속했던 매니페스토(정권 공약)를 반드시 지키겠다고 강조했다. 정권 공약대로 오키나와 후텐마 미군 비행장 기지의 오키나와 현 이외 지역 또는 국외로의 이전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이 문제는 간 총리 정부에서 미국과의 협의 속에 어느 정도 가닥을 잡아가고 있는 상황이어서 향후 논란의 소지가 크다.

오자와의 출마에 대해서는 민주당뿐만이 아니라 야당 쪽에서도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오자와는 정권 공약을 지키기 위해 중학교 졸업까지 매월 1인당 2만6천 엔(약 33만8천원)의 자녀수당 지급, 고속도로 무료화 같은 문제를 다시 실시하겠다고 공언했다. 이 문제는 간 총리가 현실적으로 재원이 부족해 수정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들이다. 자민당도 간 총리라면 이런 문제에 대해 협의할 여지가 있으나 오자와와는 입장 차이가 워낙 커 정책적 대립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그동안 기지 이전 문제로 봉합되는 듯했던 미·일 간의 관계가 오자와의 주장대로라면 다시 한번 심한 갈등을 겪을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런 연유로 자민당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는 간 나오토가 계속 총리직을 지켜주기를 내심 기대하는 미묘한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심지어는 오자와의 절친한 바둑 친구인 요사노 ‘다치아가레 일본(일어나라 일본)’의 대표조차도 정책적으로는 간 총리 노선을 지지했다. 오자와의 정책 노선을 지지하는 당이 없는 것도 아니다. 사회당이 그에 해당한다. 사회당이 주장하는 내용과 오자와의 주장이 큰 틀에서 맞기 때문이다.

오자와 진영은 하토야마 전 총리 그룹의 지지로 기세가 등등하지만 역효과도 만만치 않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지도력의 부재와 정치 자금 문제로 여론의 뭇매를 맞아 총리직을 사임한 지 겨우 3개월밖에 되지 않았는데, 그런 그가 그동안의 책임을 통감하지 않고 전면에 나서 트로이카 체제 운운하는 데 대해 여론이 곱지 않다. 그리고 자신이 총리직을 수행할 때 간사장이었던 오자와의 당권 전횡(?)으로 깊은 갈등 관계에 있었는데 1백80˚ 태도를 바꿔 다시 오자와와 손을 잡는다는 사실에 대해 일반 여론은 부정적이다.

오자와는 17년 전 정치 개혁을 내걸고 자민당을 탈당했다. 이번 당 대표 선거가 오자와에게는 총리가 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 그동안 당정 운영에서 소외받아온 자파 그룹과 하토야마 전 총리의 지지가 있기는 하지만 결코 낙관적이지 않다. 체력도 그리 좋지 않다. 여론의 지지도도 간 총리에 비해 압도적으로 낮다.

당 대표가 총리가 되는 제도하에서 3개월 만에 또다시 총리가 바뀔 것인지, 선거 이후에도 당이 일치단결해 갈 것인지, 총리가 바뀌는 경우 정계 재편은 이루어질 것인지, 일본 정국은 지금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 빠져 있다. 지난 7월 참의원 선거에서 대승한 ‘민나노당(모두의 당)’의 와타나베 대표는 선거 후 “민주당은 반드시 분열한다”라고 말했다.

엔화 강세와 주식 가격 하락 그리고 경기 악화로 인한 장기 침체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국민들에게 민주당의 당 대표 선거는 관심 밖이다. 선거 이후 민주당의 미래가 녹녹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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