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 실체’를 보고 또 보라
  • 노진섭 (no@sisapress.com)
  • 승인 2010.09.06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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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질환자 등 항응고제 복용 ‘적어도 탈, 많아도 탈’…돌연사 막으려면 월 1회 점검 필수

 

ⓒ시사저널 박은숙

분당 1백20회를 오르내리는 부정맥으로 고생해 온 이태곤씨(가명 39)는 올해 초 심장 수술을 받았다. 부정맥의 원인이 피가 역류하지 않도록 막아주는 심장 판막에 이상이 생겼고, 심장이 비대해져서라고 진단되었기 때문이다. 이씨는 인체 판막을 제거하고 인공 판막으로 교체했다. 심장 박동은 안정되었지만 이씨에게는 또 다른 고민거리가 생겼다. 수술 후 부작용을 예방하기 위해 약을 먹은 후부터 코피라도 한 번 흘리기 시작하면 멈추지 않는 것이다. 칫솔질을 할 때에도 출혈을 경험했고, 병원 응급실을 찾을 만큼 심각했던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이씨가 먹는 약은 항응고제이다. 인공 판막으로 교체하면 피가 잘 뭉치는데, 이것이 혈관을 막아 심각한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피가 응고되지 않도록 막는 약물이 항응고제인데 피가 끈적거리고 굳어져 혈전(피떡)이 생기지 않도록 억제하는 효과를 낸다. 심근경색증, 심부정맥 혈전증, 폐색전증 등 심장질환뿐만 아니라 뇌졸중 등 뇌혈관질환을 치료 또는 예방할 목적으로 사용한다. 국내에 항응고제를 먹는 사람은 5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서구화된 식습관과 고령화로 인해 심혈관질환이 늘어나는 만큼 장기간 항응고제를 복용하는 사람도 계속 증가하고 있다.

"휴대용 자가 측정기로 1~2주일마다 검사하면 좋아"

항응고제는 평생 먹어야 한다. 그런데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이 약의 부작용이다. 이 약을 많이 먹으면 피가 너무 묽어져서 잇몸·위장관·뇌혈관 등에 출혈이 발생하고 작은 상처에도 과다 출혈이 일어난다. 반대로 너무 적게 먹으면 효과가 없어져서 혈전이 생길 수 있다. 이 핏덩어리가 심장혈관이나 뇌혈관을 막으면 돌연사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항응고제를 먹을 때는 복용량을 정확하게 지켜야 한다. 항응고제의 복용량은 혈액이 응고되는 시간을 나타내는 ‘혈액 응고 수치(INR)’에 따라 결정한다. 건강한 사람의 혈액 응고 시간(1.0)을 기준으로 2.0이면 혈액 응고 시간이 두 배, 3.0이면 세 배 길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수치가 낮을수록 혈전이 생길 위험성이 커진다. 대다수 환자는 2~6개월에 한 번씩 병원에서 이 수치를 점검해 항응고제 복용량을 처방받는다.

혈액 응고 수치는 수시로 변한다. 전문의들은 수시로 이 수치를 측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박표원 삼성서울병원 흉부외과 교수는 “현재 대부분의 환자는 2~6개월마다 한 번씩 병원에 들러 이 수치를 점검하고 항응고제 복용량을 처방받는다. 그러나 혈액 응고 수치가 수시로 변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측정 기간이 너무 길다. 이 기간을 최소한 한 달에 1회로 해야 한다. 최근에는 환자가 병원에 오지 않고도 이 수치를 측정할 수 있는 기계도 나와 있으니 활용할 가치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른바 ‘휴대용 자가 혈액 응고 측정기’로 시간과 장소에 상관없이 환자가 수시로 자신의 혈액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자가 혈액 응고 측정기를 이용해 1~2주일 단위로 정기적으로 검사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박표원 교수는 “수시로 자신의 혈액 응고 수치를 측정한 환자의 사망률과 합병증 발병률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크게 낮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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