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아픔 씻는 ‘대화의 발견’
  • 도쿄·김세원 | 편집위원 ()
  • 승인 2010.08.30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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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에서 한·일 지방의원 평화세미나 열려…다문화 사회와 저출산·지자체 재정 문제 등 폭 넓게 다뤄

 

▲ 일본 도쿄 게이오플라자 호텔에서 한·일 지방의원 2백10명이 참가해 ‘평화세미나’를 하고 있다.

한·일 강제 병합 100년을 맞아 한·일 지방의원 2백여 명이 참석하는 평화세미나가 8월24일부터 나흘간의 일정으로 일본 도쿄 게이오플라자 호텔에서 열렸다. 한·일 평화대사협의회(회장 김민하 전 중앙대 총장, 황선조 전 여수일상 회장)가 주최하고 생활정치아카데미(원장 추성춘 전 MBC 앵커)가 주관해 열린 이번 세미나에는 한국 지방의원 1백60명과 일본 지방의원 50명이 참석했다.

“1995년 1월 발생한 고베 대지진은 수많은 희생자를 낳은 천재지변으로 알려져 있지만 일본 국내적으로는 다문화 사회의 현실을 인식하게 된 중요한 계기였다. 당시 일본 전국 각지는 물론 해외에서 많은 자원봉사자가 고베로 모여들어 벌인 지진 재해 구호 활동이 한동안 언론에 집중 보도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고베 지역에 많은 외국인이 거주한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되었다. 그 후 외국인 지진 피해자를 돕기 위해 시작한 자원봉사 활동이 이력서 작성법이나 면접 방법 등 취업을 위한 기본 지식을 알려주는 긴급 취업 지원 강좌나 외국인 고령자에게 개호보험(의료보험) 이용법을 알려주는 커뮤니케이션 서포터 파견 같은 정주 외국인들을 위한 일상적인 생활 지원 활동으로 바뀌게 되었다.” 

 8월25일 한·일 지방의원 평화세미나 둘째 날 ‘다문화 가정과 지방자치단체 정책’ 분과회의에서 후지마가리 타카히로 시즈오카(靜岡) 현 아타미(熱海) 시의회 의원은 “2009년 말 현재 일본의 외국인 등록자 수는 2백18만명으로 일본 총 인구의 1.71%를 차지하고 있다. 일본 지방 행정에서 정주 외국인의 자립 지원과 지역 공생은 빠뜨릴 수 없이 중요한 고려 사항이 되었다. 여기에는 ‘다문화 공생 사회의 마치즈쿠리(주민이 주체가 되는 새로운 지역사회 만들기)’ 이념이 깔려 있다”라고 강조했다. 후지마가리 의원은 이어 재일 한국인이 많이 살고 있는 가와사키 시의 경우 1996년 일본 최초로 일반 사무직원 채용 시험에서 국적 조항을 폐지했으며, 그 이후 도쿄 도(東京都) 23개구를 제외한 모든 제령(制令) 지정 도시에서 국적 조항이 폐지되었다고 소개했다.

이에 대해 경기도의회 김경표 의원은 “1990년대 중반부터 증가하기 시작한 국제결혼으로 한국 사회는 급격하게 다문화·다인종 사회로 이행하고 있다. 1990년 2천7백10건이었던 국제결혼은 2000년 1만2천3백19건, 2008년에는 3만6천2백4건으로 급증하고 있다. 결혼이민자의 출신국은 중국 조선족(30.4%)·중국 한족 등 기타 민족(27.3%), 베트남(19.5%), 필리핀(6.6%), 일본(4.1%) 등의 순이다”라고 덧붙였다.

김의원은 “국내 최초 다문화마을 특구로 지정된 경기도 안산시의 경우 전국에서 유일하게 외국인 주민센터를 개관해 인권 침해 임금 체불 등의 민원 상담, 한글 교육을 하고 있으며 다문화 작은 도서관에서는 중국·태국·인도네시아·베트남·필리핀 등 7개국 도서 열람이 가능하고 외국어 자판의 컴퓨터를 설치해 자국어로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게 했다”라고 소개했다.

▲ 한·일 지방의원들은 마쓰시다 정경숙을 방문해 원장의 강의를 들었다.
양국 의원들, 일대일 자매 결연식 등 가지며 ‘가까운 이웃’ 실천 다짐

김의원은 “2006년부터 범정부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결혼 이민자를 위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나 정책 대상이 결혼 이민자 본인에게 집중되어 자녀 및 배우자 등 가족 전체를 대상으로 한 통합적 정책이 미흡하다. 초기 적응을 위한 한국어 교육 등 일부 사업에 집중되어 지역·출신국별 다양한 수요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두 의원의 발표가 끝난 뒤 회의장에서는 “다문화 교육 프로그램에 외국인 며느리를 참석시켰더니 자기주장이 강해지고 이혼을 요구하는 사례가 많아 시부모와 남편이 지자체가 주최하는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것을 반대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자민당은 물론 민주당 의원들까지 재일 한국인에게 참정권을 부여하는 것에 반대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등의 의견과 질문이 쏟아졌다.   

양국 지방의원들은 8월24일 저녁 만찬을 함께하며 일대일 자매결연식을 가진 데 이어 25일에는 한·일 양국의 지방자치단체들이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지자체 재정 위기 문제와 저출산 대책, 다문화 가정 정책 등에 대해 심도 있는 토론을 벌였다. ‘한·일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위기와 대안’ 분과 세미나에서 도쿄 시나가와(品川) 구의 이토 마사히로 의원은 15년간 구 직원을 1천3백40명 감축하고 의원들도 스스로 보수를 삭감한 개혁 노력을 한국 의원들에게 소개해 관심을 모았다.

‘저출산 문제와 정책 대안’ 분과 세미나에서 정상혁 충청북도 보은군수는 “저출산은 생산 인구 감소, 잠재 성장률 저하, 사회보장 재정 부담 급증 등을 초래하는 새로운 사회적 위험 요소이다. 세계적으로 저출산 국가들은 대개 남성은 생계를 책임지고 여성은 주부로서 자녀 양육에 전념하는 전통적인 가족 제도 규범을 유지하고 있다. 가족수당 등 양육 비용 보조 정책에 많은 재원을 투입하고도 직장과 자녀 양육을 병행할 수 없는 사회 분위기로 인해 여성들이 출산을 기피하고 있는 실정이다”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출산율을 높이려면 여성의 자아 실현과 결혼·출산·양육의 양립이 가능하도록 사회 인프라를 새롭게 구축하고, 육아는 여성의 전담이 아니라 가족과 사회, 국가가 함께 아이를 낳고 키운다는 방향으로 국민의 인식을 개선하는 것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한편 호리 유이치 치바(千葉) 현 나가레야마(流山) 시의회 의원은  “보육사 자격증을 가진 사람을 가정에 파견하는 보육 마마 사업, 출근길에 부모가 역 주변에 유아를 맡겨놓으면 시내 각 보육원으로 데려다주는 역전 보육 서비스, 방과 후 초등학교에서 1~3학년 어린이를 보육하는 학동 클럽 운영, 육아 지원 센터 설치, 아동 단기 보호 사업 등 저출산율 극복을 위해 시가 발 벗고 나섰음에도 우리 시(市)의 20~24세 여성의 미혼율이 91.2%로 전국 최고 수준인 것을 보면 소자화(저출산율) 극복을 위한 해답은 다른 데 있다”라고 강조했다.

스스로를 안티 페미니스트로 소개한 호리 의원은 “저출산율 대책을 수립·집행하고 있는 일본 정부 내 남녀공동참가국(한국의 여성가족부에 해당)을, 여성의 사회 진출을 우선시하고 전업주부를 적대시하는 페미니스트들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저출산율 추세는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호리 의원은 “미혼자를 대상으로 결혼과 출산, 육아의 가치와 필요성을 올바로 이해시키고 홍보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저출산 대책이다. 일본 정부가 사단법인 청소년육성국민회의가 펼쳐온 ‘가정의 날’ 운동을 수용해 11월 셋째 주 일요일을 ‘가족의 날’, 그날을 전후한 1주일간을 ‘가정 주간’으로 정한 것은 적절한 결정이다”라고 덧붙였다.

이에 앞서 황선조 생활정치아카데미 이사장은 ‘동북아 시대를 향한 한·일 관계의 신패러다임’을 주제로 한 개막 연설을 통해 “다국화되고 있는 세계 질서에서 한·중·일은 아시아의 공영과 세계 평화를 선도해야 할 책임이 있으며, 한·일 관계는 과거 100년의 아픔을 넘어 가깝고도 가까운 이웃으로 발전적 변화를 이루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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