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수익률, 왜 낮을까
  • 정승혜 | 타워스왓슨 투자컨설팅 수석연구원 ()
  • 승인 2010.08.10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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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 대부분이 원리금 보장 상품에 쏠려 있어…특정 펀드에 자금이 집중된 것도 원인

퇴직연금 제도가 시행된 지도 벌써 5년이 되었다. 기대했던 것보다 성장이 더디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다. 그러나 2011년 1월1일부터는 법인세 감세 혜택을 퇴직연금을 통해서만 받을 수 있게 되므로 퇴직연금 시장이 급팽창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퇴직연금 사업을 하고 있는 금융 기업(사업자)이 때로는 역마진을 감수하고서라도 퇴직연금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퇴직연금 시장이 금융 영역의 중요한 성장 동력으로 주목받기 때문이다. 퇴직연금 시장은 해마다 두 배 이상씩 급성장하고 있다. 지난 5월 말 기준으로 퇴직연금의 자산 규모는 17조9천억원에 불과하다. 그러다 보니 시장 참여자들의 관심은, 어떻게 운용되고 있는가보다 얼마나 빨리 커질 것인가 하는 ‘성장’ 문제에 집중되어 있다.

 

▲ 서울 구로디지털단지에서 노동부가 고령 사회에 대비한 퇴직연금의 효용성을 알리기 위해 마술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시장 크기는 작지만 퇴직연금을 도입한 사업장 수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7만개가 넘었다. 퇴직연금에서는 사업장에 속한 종업원 개개인의 노후를 위한 ‘자산 굴리기’가 가장 주요한 관심사가 되어야 한다. 투자를 잘하기 위해서 퇴직연금 제도를 설계(plan design)하고, 좋은 사업자(service provider)를 선정해야 하는 것이다. 이에 비해 투자의 본령인 자산 운영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는 듯하다.

그렇게 해석되는 이유로는 제일 먼저 퇴직연금 자산이 원리금 보장 상품에 쏠려 있는 것을 들 수 있다. 자산 배분은 투자 수익을 결정짓는 가장 큰 요인이다. 지난 5월 말 기준으로 확정급여형(DB)에는 95.5%가, 확정기여형(DC)에는 71.1%가 예·적금 등 원리금 보장 상품에 집중되어 있다. 타워스왓슨이 발표한 세계연금자산연구(Global Pension Asset Study 2009)에 따르면, 퇴직연금을 도입한 선진국 11개국의 연금 자산 중 주식 관련 자산이 평균 45%이다. 2008년 글로벌 위기 이후 줄어든 것이 이 정도이다. 즉,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절반 이상이 주식 자산과 같이 적극적인 투자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다.

퇴직연금 자산은 곧 풍족한 노후 생활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손실에 대한 인내도가 낮아지는 것은 이해될 수 있다. 게다가 퇴직연금을 처음 접하게 되는 사람 입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예·적금 수준의 금리만으로는 인플레이션을 따라가기에도 급급한 상황에서 퇴직연금 자금이 원리금 보장 상품에 쏠려 있는 현상은 바람직하지 않다.

▲ 투자컨설팅회사 타워스왓슨 직원이 퇴직연금 수익률을 높일 수 있는 전략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업자 선정시 투자 조언자로서의 자질과 운용사 선정 능력 따져야

또 다른 쏠림 현상은 펀드를 운용하는 자산 운용사 선정에서도 나타난다. 타워스왓슨이 발표한 올해 한국 연금 보고서(Korea Pension Report) 2분기 자료에 따르면, 퇴직연금 관련 펀드 상품 규모는 6월 말 현재 순자산 총액 기준으로 1조2천5백50억원가량이 된다(실적 배당형 보험 상품 제외). 퇴직연금 펀드 상품을 제공하는 자산 운용사 35곳 중 상위 5개 운용사의 시장 점유율은 무려 68.4%에 달한다. 특정 펀드에 자금이 몰리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지금은 규모가 워낙 작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지만, 퇴직연금 시장이 크게 성장할수록 특정 펀드로 자금 집중이 빠르게 진행될 것이고, 결국 운용 성과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예측도 가능하다. 대형사가 갖고 있는 많은 장점을 인정한다고 해도 운용사에 대해 정성적인 리서치를 하는 입장에서 보면, 작지만 양질의 운용 능력을 갖추고 있는 운용사는 이 게임에서 소외되어 있는 듯해 안타깝다.

더군다나 운용사 또는 펀드 선정이 대부분 과거 수익률에 근거해 이루어진다. 그러나 과거의 성과가 미래 성과를 보장할 수 없기 때문에, 운용사가 장기 자산을 운용할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를 평가하는 것이 중요한데도 말이다. 실제로 퇴직연금이 자리를 잡은 선진국에서는 운용사에 대한 정성적인 리서치를 통해 운용사를 선정한다.

사업자 사이에서도 쏠림 현상이 벌어진다. 5월 말 기준으로 퇴직연금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업체는 총 51개인데, 이 중 상위 5개 사업자의 시장 점유율은 52.5%이다. 각 사업자의 투자 상품 가운데 적극적으로 투자되는 상품 수는 제한적이다. 사업자들이 관계사 상품 외에 외부 전문 기관에서 개발한 상품을 함께 판매하는 ‘오픈 아키텍처(open architecture)’ 공급 정책을 지향하지만, 제대로 관리할 수 있는 상품 수는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위 몇 개 사업자를 통해 제공되고 있는 상품이 몇 개 운용사의 펀드에 집중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사업자를 선정할 때는 사업자의 서비스, 재무 건전성 등이 주요 기준이 된다. 그러나 투자 가이드를 제공해야 하는 사업자를 선정할 때 막상 투자 능력은 상대적으로 가볍게 여기는 것이 현실이다. 기업과 사업자 간의 비즈니스 이해관계가 더 중요하게 작용하기도 한다. 퇴직연금 제도 설계를 한 뒤 사업자를 선정하는 지루하고 힘든 과정이 끝나면, 투자 의사 결정이 남게 된다. 전자가 일시적인 과정이라면, 후자는 영구적인 과정이다. 종업원이 퇴사하거나, 은퇴할 때까지 계속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업자를 선정할 때는 투자 조언자로서의 자질과 운용사 선정 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지표를 포함시키는 제도적인 보완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운용사 선정 기준이 무엇인지, 어떤 기준으로 모니터링을 실시하고 펀드를 관리하는지 간단한 질문을 통해서도 사업자의 자질을 짐작할 수 있다. 과거 성과만을 운운한다면 재고해보아야 할 것이다. 사업자가 관리하는 자산이 어디에 투자되고 있는지, 주로 어떤 상품에 집중되어 있는지 살펴보는 것도 사업자의 성향과 투자 조언의 객관성을 판단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지금까지 퇴직연금 도입을 미루고 있던 기업들은 마음이 급하다. 정보가 부족하면 늘 군중 심리가 작동해 사업자 선정, 자산 배분, 상품 선정 과정 모두에서 비슷한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남과 다르게 했을 때 더 나은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기회조차 상실하게 된다. 다양성이 사라진다는 것은 투자 기회의 폭이 좁아진다는 것이고, 결국 퇴직연금 가입자 개인의 손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상기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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