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스포츠’ 향한 꿈, 그녀들이 쏘았다
  • 김동훈 | 한겨레신문 스포츠부 기자 ()
  • 승인 2010.07.26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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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회 세계여자주니어핸드볼선수권대회 / 한국 핸드볼의 ‘야심찬 도전’ 엿볼 수 있어

 

▲ 7월21일 제17회 세계여자주니어핸드볼선수권대회 한국과 아르헨티나의 경기에서 류은희 선수가 공격하고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지난 7월17일 제17회 세계여자주니어핸드볼선수권대회 공식 개막 행사가 전남 광주 염주체육관에서 열렸다. 9천100명을 수용하는 염주체육관에 무려 7천명 가까운 관중이 들어찼다. 개막 행사로 최태원 대한핸드볼협회 회장과 프랑스에서 온 조엘 데프란트 국제핸드볼연맹 사무총장 그리고 강운태 광주시장이 차례로 시구(7m 던지기)를 선보였다. 최회장은 7m 거리에서 빨랫줄 같은 슛을 쏴 관중들의 감탄사를 자아냈다.


■ ‘한데볼’ 설움, 이제 안녕

우리나라에서 핸드볼 세계 대회가 열리는 것은 무려 20년 만의 일이다. 1990년 서울에서 세계여자선수권대회가 열린 것이 마지막이다. 그동안 올림픽 성적도 내리막길을 걸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 때 여자 팀이 구기 종목 사상 첫 금메달을 땄고, 남자 팀은 은메달을 일구어냈다.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다시 여자 대표팀이 금메달을 목에 걸며 역시 구기 종목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2연패의 위업을 달성했다. 그 뒤 한국 핸드볼은 금빛 사냥에 거듭 실패했다. 여자 핸드볼은 1996년 로스앤젤레스올림픽 은메달, 2004년 아테네올림픽 결승전 때 2차 연장전도 모자라 승부 던지기까지 가는 명승부를 펼쳤지만 또다시 은메달에 머물렀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는 노르웨이와의 준결승전에서 오심으로 눈물을 흘리며 동메달에 그쳤다. 국민들은 ‘올림픽 핸드볼’에만 열광했다. 선수단이 비행기 트랩을 밟고 우리 땅에 내딛는 순간, 국민들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핸드볼을 잊어버렸다.

■ 핸드볼이 10년 뒤 ‘3대 국민 스포츠’?

‘망각’은 국민들 책임만은 아니었다. 핸드볼에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이기 위한 인프라가 없었다. 그런데 핸드볼계에 뜻하지 않은 ‘박’이 터졌다. 국내 4대 재벌에 꼽히는 SK그룹이 핸드볼협회를 맡겠다고 나선 것이다.

2008년 말,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대한핸드볼협회 회장에 취임한 뒤 한국 핸드볼은 빠르게 변해가고 있다. 지난 5월17일 서울 올림픽공원 안 펜싱경기장에서 열린 핸드볼 전용 경기장 기공식에서 정면의 대형 스크린에 ‘55년 숙원 풀었다’라는 글귀가 나타났다. 전용 경기장을 학수고대하던 핸드볼인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말이었다. 기공식에서 김종하 대한핸드볼협회 명예회장은 건배사를 통해 “마치 꿈을 꾸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너무도 아끼던, 핸드볼 선수를 형상화한 조각상 애장품을 최태원 회장에게 전달하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내년 9월 완공될 예정인 핸드볼 전용 경기장은 지하 1층, 지상 3층에 총 5천42석 규모로 꾸며진다. 관중석과 코트가 가까워 빠르고 박진감 넘치는 핸드볼 경기를 더욱 흥미 있게 즐길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전용 경기장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핸드볼협회는 ‘퍼도 퍼도 마르지 않는’ 우물을 만들었다. 지난해 4월, 25억원의 기금으로 한국핸드볼발전재단을 설립한 것이다. 재단은 해마다 10억원이 넘는 거액을 핸드볼 발전을 위해 쓰고 있다. 그냥 돈만 주는 것이 아니다. 사용처를 보면 고민의 흔적이 나타난다. 예를 들어, 전국 10개 교육 대학 핸드볼팀 창단 경비로 4백만원씩 총 4천만원을 지원했다. 교대를 택한 이유는 이들이 졸업한 뒤 일선 초등학교에서 어린이들에게 핸드볼을 가르치는 ‘미래의 핸드볼 교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핸드볼을 소재로 한 재미있는 텔레비전 광고도 내보내고 있고, 핸드볼 논픽션도 공모하고 있다. 핸드볼을 ‘국민 스포츠’로 만들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대한핸드볼협회와 최태원 회장은 앞으로 10년 안에, 즉 2020년까지 핸드볼을 야구, 축구와 함께 ‘3대 국민 스포츠’로 육성하겠다는 야심찬 꿈을 차근차근 실현하고 있다.

▲ 7월21일 제17회 세계여자주니어핸드볼선수권대회 한국과 아르헨티나의 경기가 열린 광주 염주체육관에서 이은비 선수가 슛을 날리고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 스포츠 외교의 개가, 20년 만의 세계 대회 유치

지난해 6월 초, 이집트 카이로에서 열린 국제핸드볼연맹 정기총회. 제17회 세계여자주니어선수권대회를 유치하려는 한국 유치단은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결국 한국은 체코를 압도적인 표차로 제치고 개최지로 선정되었다. 지난해 12월8일 저녁에는 중국 창저우 시 트레이더스 푸두 호텔에서 핸드볼협회가 2009 세계여자선수권대회에 참가한 국제핸드볼연맹(IHF) 관계자 및 각국 임원 등 1백30여 명을 초청해 ‘국제 핸드볼 친선의 밤’이라는 만찬을 열었다. 만찬을 주관한 최태원 회장은 하산 무스타파 국제핸드볼연맹 회장과 헤드테이블에 나란히 앉았다. 무스타파는 쿠웨이트 왕자인 아메드 알파하드 알사바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의장 겸 아시아핸드볼연맹(AHF) 회장의 지원을 받아 10년째 세계 핸드볼계를 쥐락펴락하는 인물이다. 한국이 2008년 베이징올림픽 아시아 예선전 등에서 중동 팀들의 편파 판정에 희생양이 된 것은 한마디로 알사바의 농간을 무스타파가 묵인한 결과였다. 이날 행사에서 보여준 모습은 핸드볼 외교에 무기력했던 한국이 국제 핸드볼계에서 주도적으로 나설 것임을 알리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 주니어대회 첫 우승 노리는 한국 낭자들

요즘 세계여자주니어핸드볼선수권대회가 한창이다. 조별 리그를 끝내고 결선 리그가 서울 고려대 화정체육관과 광주 염주체육관에서 뜨거운 열기 속에 펼쳐지고 있다. 만 20세 이하 선수들이 참가하는 이 대회에서의 전적은 2년 앞으로 다가온 런던올림픽의 예비 성적표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핸드볼협회는 우승과 흥행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사활을 걸고 인기 몰이에 나서고 있다.

성인 대표팀은 역대 올림픽에서 금메달 2개 등 구기 종목 최고의 성적을 일구었다. 하지만 주니어 대회에서는 준우승 세 차례, 3위 네 차례에 그치며 한 번도 정상을 밟지 못했다. 한국과 우승을 다툴 팀으로는 노르웨이, 헝가리, 러시아 등이 꼽힌다. 러시아는 큰 키와 힘을 갖춘 정통 유럽 스타일의 핸드볼을 구사하지만 노르웨이와 헝가리는 한국의 트레이드마크인 속공 능력까지 갖추었다.

한국 선수 중에는 이미 성인 국가대표로 발탁되어 지난해 중국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활약한 유은희(20·벽산건설)와 이은비(20·부산시설관리공단)가 돋보인다. 왼손잡이 유은희는 1백80㎝의 큰 키를 활용해 위력적인 슛을 쏘고, 1백62㎝의 단신 이은비는 빠른 스피드를 이용한 과감한 돌파가 장점인 재간둥이이다. 또 레프트윙 조효비(19·벽산건설)와 피봇플레이어 남영신(20·경남개발공사)도 맹활약 중이다.

 한국은 7월27일 결선 리그 마지막 경기를 갖는다. 결선 리그를 통과해 4강 토너먼트에 오르면 29일 준결승, 31일 대망의 결승전을 치른다. 기세가 오른 한국 핸드볼을 위해 주니어 선수들이 어떤 선물을 내놓을지 기대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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