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국, 또 안갯속으로
  • 도쿄·임수택 | 편집위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0.07.20 20:4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참의원 선거 참패한 민주당, 9월 당 대표 선거 후 정계 개편에 승부…간 나오토 총리에게는 기회 될 수도

 

▲ 7월12일 새벽 간 나오토 일본 총리가 참의원 선거 개표가 진행되는 동안 도쿄 민주당 선거본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앞서 인사하고 있다. ⓒAP연합

 지난 7월11일 실시된 일본 참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은 기존 의석 수에서 10석을 잃어 총 1백6석으로 과반인 1백21석에 못 미치는 성적을 거두었다. 한마디로 참패했다. 간 나오토 총리도 인정했듯이 ‘당돌’하게 소비세 인상 문제를 전면에 내건 탓이 컸다. 경기 침체로 고통을 겪고 있는 국민들은 소비세를 인상하기 전에 행정 개혁, 낭비성 예산 발굴, 의원 정수 감축, 의원 세비 절감 등을 해결하는 데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원했으나 그는 인상을 택했다. 지난해 7월 중의원 선거 때 약속했던 매니페스토(정책 공약)를 하나 둘 폐기하거나 변경하는 무책임성을 보인 것도 참패의 큰 원인 가운데 하나였다. 대표적으로 변질된 공약이 고속도로 무료화이다. 재원 확보에 대한 충분한 검토 없이 발표한 공약이었다. 또, 당내 불협화음을 보는 시선도 곱지 않았다. 간 나오토 총리가 소비세 인상을 주장한 데 대해 오자와 전 간사장은 공개적으로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민주당은 참의원 선거 참패와 함께 중의원에서도 3분의 2 의석을 확보하지 못해 정책을 실현할 동력을 잃었다. 연립 정당인 국민신당은 이번 참의원 선거에서 한 석도 건지지 못했다. 자민당을 비롯한 야당이 동의하지 않으면 법안 하나 제대로 통과시킬 수 없는 형국이 되었다. 간 총리는 선거 직전 각종 여론조사에서 패색이 짙자 정당 간의 연합을 제안했으나 어느 정당도 흔쾌히 받아주지 않았다. 현 시점에서 정당 간 연립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 대안은 정책 연합의 모색이다. 민주당은 이번 선거에서 국민들로부터 아낌없는 지지를 받은 민나노당(모든 이들의 당)에 먼저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민나노당은 와타나베 요시미가 자민당의 정치에 염증을 느끼고 탈당해 만든 정당이다. 그동안 행정 개혁, 공무원의 낙하산 인사 금지 등의 공약을 일관되게 주장한 결과 이번 선거에서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얻었다. 민주당은 민나노당과의 정책 연합을 염두에 두고 공무원 개혁 프로젝트 팀을 구성했다.

우회적인 정책 연합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연립 정권인 국민신당이 나서서 사회당에 정책 연합을 구애하기 시작했다. 사회당은 지난 5월까지 민주당과 연립 정권을 형성했다. 오키나와 후텐마미군 기지 이전 문제를 둘러싸고 연립 정권에서 탈당했으나 정책적 접점은 아직도 남아 있다. 가베이 시즈카 국민신당 대표가 우정성 개혁 법안을 두고 사민당에 정책 협조를 기대하고 있다. 사민당 입장에서도 자기 당에 중요한 노동자 파견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서는 여당인 민주당과 연립 정권인 국민신당의 지원이 필요하다. 그러나 정책적인 측면에서 보면 사민당은 민나노당과 사회당보다는 공명당과 가까운 부분이 많다. 공명당은 현재 자민당과 같은 길을 걸어가고 있지만, 여당인 민주당과 정책 연합을 해서 얻을 수 있는 프리미엄을 어떤 식으로든 검토할 수 있다.

▲ 7월11일 밤 다니가키 사다카주 일본 자민당 총재(왼쪽)가 참의원 당선이 확정된 후보의 이름에 꽃을 달며 기뻐하고 있다. ⓒAP연합

여론조사 결과 총리 사임과 지도부 퇴진 주장은 힘 못 얻어

문제는 오자와 전 간사장과 그의 지지 세력들이 이번 선거 참패에 대해 지도부에 책임을 묻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이번 선거의 총 지휘자인 에다노 간사장을 간 총리가 재신임한 데 대해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낙선한 치바 케이코 법무대신을 재신임한 것에 대해서도 의견이 구구하다. 그럼에도 간 총리는 자신과 현 지도부는 9월 당 대표 선거까지 현 체제를 유지해갈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간 총리에게 불행 중 다행인 점은 각종 여론조사 결과 총리직을 사임할 필요가 없다는 여론이 높아지면서 지도부 퇴진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힘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간 총리는 당내·외 주요 인사 및 단체를 방문해 선거에서 참패한 데 대해 이해를 구하기 시작했다. 내각 특별고문인 교세라의 이나모리 명예회장, 지지 단체인 전국노조의 고가 부아키 회장 등을 만났다. 매우 불편한 관계에 있는 오자와 전 간사장에게도 만남을 청했다. 한편, 국민들이 원하고 있는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서도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공무원 제도 개혁을 비롯해 사회 보장 및 세제 발본 개혁을 위한 프로젝트 팀을 설치하고 중·장기적인 과제로 정치개혁조사회·헌법조사회 등을 만들었다.

자체적으로 법안 통과 능력이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각종 정책을 실현시킬 수 있을까 하는 것이 민주당의 고민이다. 각종 법안이 야당이 과반을 차지한 참의원에서 부결되어 중의원으로 넘어 올 경우 현재의 민주당만의 의석 수로는 통과시킬 수 없다. 중의원에서 재가결시키기 위해서는 3분의 2 이상의 의석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과반수는 넘지만 3분의 2에는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중의원에서 각종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서는 연립 정권인 국민신당은 물론 민주당에 가까운 무소속 그리고 사민당의 일곱 석을 더하면 3분의 2 이상이 된다. 가장 이상적인 협력 관계가 이루어질 때의 얘기이다. 하지만 최근 오키나와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로 사민당과 결별한 것에서 보듯 연립 정권은 언제든지 깨질 수 있다.

따라서 오는 9월 민주당 대표 선거 이후에 정계 재편이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번 참의원 선거에서 나타난 것처럼 자민당에도 소비세 인상을 지지하는 세력이 있다. 민주당에도 이념이 다른 세력이 공존하고 있다. 당장 9월 당 대표 선거에서 권토중래를 노리고 있는 오자와 전 간사장과 그를 지지하는 세력들의 움직임이 관심거리이다. 정치 자금 문제에 대한 검찰심사회의 결정에 따른 장애물이 남아 있어 신중하게 움직이고 있지만, 오자와는 9월 당권 선거를 염두에 두고 있다.

정계 재편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는 이유 중의 하나는 이번에 참패한 소수 정당들의 존립과도 관계가 있다. 이번 선거에서 약진한 민나노당, 차기 총리감으로 국민적 지지가 높은 마쓰조에 요우이치가 자민당을 탈당해 만든 개혁신당, 나카다 전 요코하마 시장이 중심이 되어 만든 일본창신당 등의 공통점은 개혁 성향이 강하다는 점이다. 따라서 민주당의 현 지도부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

한편 자민당을 탈당한 히라누마 타케오 전 경제산업대신, 요사노 가오루 전 재무대신,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지사 등이 중심이 되어 만든 타치아가레(일어서라)일본당은 강한 보수 색채를 띠고 있다. 오자와 전 간사장은 한때 이들 일부 세력과 교감해 합당을 하려다 당내 반발로 당 대표직을 사임하는 사건이 있었을 정도로 거리가 가깝다.

일본 국민들이 바라는 것은 지속적인 개혁과 경제 살리기이다. 이를 위해서는 각종 개혁 법안이 국회를 통과해야 한다. 강한 재정, 강한 경제, 강한 사회보장 제도 실현을 내세운 간 총리의 국정 지표를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숫자도 문제이지만 정책의 신념을 이해하고 협력할 세력이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보면, 간 나오토 총리는 이번 선거에서 소비세 인상 문제를 제기해 참패했으나 결과적으로 자신의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서 여러 세력과 연합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국민들은 소비세 문제 논의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라는 데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각종 조사에서 보듯이 소비세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는 의견이 63%에 이른다. 소비세 문제로 참패한 간 나오토 총리와 민주당에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는 아이러니컬한 정국이 펼쳐질 가능성이 있다.

▲ 지난 7월2일 일본 시바 현 이수미 마을의 농장 길가에 세워진, 민주당의 소비세 인상에 반대하는 내용의 정치 포스터 옆으로 농부들이 걸어가고 있다. ⓒEPA

간 총리가 지난 7월11일 참의원 선거에서 위험 부담이 큰 소비세율 인상 문제를 이슈화한 데는 정책적 신념과 그의 지나치게 낙관적인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었다. 선거 캐치프레이즈는 강한 재정, 강한 경제, 강한 사회보장이었다. 출발점은 재정 건전화였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증세가 필요했고, 결국 소비세율 인상에 방점을 찍었다.

하지만 결과는 참패였다. 역대 선거에서 소비세 인상 문제를 선거 이슈로 제기한 정권은 하나같이 참패의 길을 걸었다. 선거에서 소비세 인상을 주장하기에 앞서 정치와 행정 부문의 낭비성 예산을 삭감하려는 노력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2백조 엔이 넘는 특별회계에 대한 철저한 삭감 노력도 보여주지 못했다. 간 총리는 소비세율 인상 문제로 코너에 몰리자 저소득층에게 호소력이 있는 안을 제시했다. 식료품 등 필수품의 세율을 낮추고 저소득층에게는 부담이 되지 않도록 소비세를 환급해주겠다고 공약했다. 하지만 환급 대상의 연 소득 기준이 2백만 엔에서 3백만 엔, 4백만 엔으로 바뀌는 등 근거가 명확하지 않은 발언을 해 비난을 받았다. 또, 여론의 향배에 따라 말이 바뀌었다. 소비세율 인상분에 대해 “10%를 공약이라고 해도 무방하다”라고 했다가 여론이 좋지 않자 “야당과 협의하는 것이 공약이다”라고 말을 바꿨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가 좋지 않자 당장 실행하는 것이 아니라 2~3년 후에 실시한다고 한 발짝 물러서기도 했다.

야당의 선거 해법은 간단하고 명확했다. ‘소비세율 인상 절대 반대’였다. 제1 야당인 자민당은 먼저 국회의원 수와 행정의 불필요한 예산 낭비를 줄이겠다고 공약했다. 거기서 생긴 돈으로 성장을 위해 투자를 하고 그 후에 소비세를 인상한 뒤 인상분은 전액 사회보장을 위해 쓰겠다고 공약했다. 유권자가 원하는 답을 준 것이다. 좌파 성향인 사회당이나 공산당 입장에서는 소비세 인상을 당연히 반대할 수밖에 없다. 저소득층에게 부담이 가고 경기가 더 침체된다는 논리에서다. 민나노당(모든 이들의 당)도 행정 개혁을 통해서 불요불급한 예산을 줄이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선거는 소비세율 인상에 반대한 자민당, 민나노당, 사회당, 공산당의 승리로 결론이 났다.

‘리얼타임으로 보는 일본의 재정 적자’ 통계에 따르면 일본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의 부채는 8백35조 엔으로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1경원이 넘는다. 국민 1인당 6백55만 엔 정도이다. 국가 부채는 GDP(국내 총생산)의 1백80%가 넘는다. 정부의 단기 증권을 포함할 경우 일본 전체 채무는 1천1백7조 엔에 이른다. 문제는 이 수치가 좀처럼 낮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2010년도 일본의 국가 예산은 93조 엔인데, 이 가운데 세수는 겨우 37조 엔이고 나머지는 국채를 발행해서 메우고 있다. 베이비붐 세대들이 정년 퇴직을 하기 시작해 본격적으로 연금과 의료 혜택을 받게 되면서 재정 수요는 지속적으로 증가할 수밖에 없다. 소비세 인상 문제는 일본의 현실을 보여준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