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안’ 수술도 고객 맞춤 시대
  • 노진섭 (no@sisapress.com)
  • 승인 2010.06.22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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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 수정체 종류 많아 환자 생활 패턴에 맞게 선택 가능…사람의 수정체에 가깝도록 연구·개발 중

인공 수정체로 백내장 수술을 받기로 한 회사원 이원진씨(43)는 최근 그 종류가 많은 데다 각각 장단점이 있어 선택하는 것이 꽤 고민스러웠다. 드레스 셔츠 단추 크기에 볼록렌즈처럼 생긴 인공 수정체는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단초점과 다초점 인공 수정체이다. 사람 눈은 근거리(40cm 미만), 중간 거리(40~80cm), 원거리(1m 이상) 사물을 보는 데에 무리가 없다. 그러나 단초점 인공 수정체는 말 그대로 초점 거리가 정해져 있다. 근거리에 초점을 맞춘 인공 수정체로 수술을 받으면 먼 곳이 잘 보이지 않는다. 원거리에 초점을 맞춘 인공 수정체로 수술을 받으면 가까운 곳이 잘 보이지 않는다. 어떤 경우에든 안경을 써야 한다. 흔히 선택하는 것은 원거리에 초점을 맞춘 인공 수정체이다. 일상생활에 큰 불편함이 없지만, 근거리 시력이 좋지 않기 때문에 돋보기를 써야 한다. 근거리는 책이나 신문을 보는 정도의 거리를 말한다. 돋보기 사용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단초점 인공 수정체로 백내장 수술을 받는 편이 좋다.

 

▲ 한 여성이 병원에서 시력 검사를 받고 있다. ⓒ 연세세브란스병원 제공

최근 백내장 환자들의 연령이 왕성하게 사회생활을 하는 30~40대까지 낮아지면서 돋보기를 착용하는 것에 불편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 65세 이상 노인이라도 휴대전화나 컴퓨터를 자주 사용하는 편이라면 돋보기가 여간 성가시지 않다. 이런 불편을 개선한 것이 다초점 인공 수정체이다. 원거리는 물론 근거리에도 초점을 맞출 수 있도록 고안된 제품이다. 일반 안과에서 프리미엄 백내장 수술 또는 노안 렌즈 백내장 수술이라고 부르는 것이 다초점 인공 수정체를 사용한 수술이다.

국내 병원에서는 주로 미국산 인공 수정체를 사용한다. 레스토(restor), 테크니스(tecnis), 리줌(rezoom), 크리스털렌즈HD(crystalens HD)라는 제품이 대표적이다. 가장 많이 사용되는 인공 수정체는 레스토이다. 제조사인 알콘(alcon) 사의 한동욱 과장은 “초기 제품에서 원거리와 근거리 초점은 좋지만, 중간 거리 시력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었다. 현재는 중간 거리 초점을 개선한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테크니스라는 인공 수정체는 책이나 신문을 자주 읽는 사람에게 편리하다. 그러나 컴퓨터 모니터를 보는 정도에 해당하는 중간 거리 시력이 떨어진다. 컴퓨터 작업을 많이 하는 사람에게는 단거리보다 중간 거리 초점이 우수한 리줌 제품이 적합하다. 국내 판매사인 HTK 사의 이승엽 주임은 “테크니스는 근거리 작업에, 리줌은 야외 활동에 적합하다”라고 말했다. 컴퓨터 작업에 적합한 제품으로는 크리스털렌즈HD도 있다. 이 인공 수정체는 기존 제품과 다른 방식으로 초점을 맺는다. 가까운 곳을 볼 때는 인공 수정체가 눈 앞쪽으로 움직이고 먼 곳을 볼 때는 눈 뒤쪽으로 이동하는 것이 특징이다. 본래 원거리부터 단거리까지 모든 거리를 뚜렷이 볼 수 있도록 고안된 제품이지만 아직은 한계가 있다고 한다. 수술 후 시간이 지나면서 인공 수정체의 움직임이 둔해져서 본래의 기능이 떨어진다는 평가이다.

 

 

값비싼 ‘다초점’이라 해서 모든 환자에게 좋지는 않아

돋보기를 쓰지 않아도 되는 장점이 부각되면서 다초점 인공 수정체로 백내장 수술을 받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가격이 만만치 않다. 단초점 인공 수정체로 백내장 수술을 받으면 20만~50만원에 가능하지만, 다초점 인공 수정체를 택할 경우 2백50만~5백만원의 목돈이 필요하다.

돈이 인공 수정체를 선택하는 기준이 되기도 하지만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할 것은 독서, 컴퓨터 작업, 운동 등 자신의 주된 생활 패턴이라고 전문의들은 조언한다. 다초점 인공 수정체는 원거리는 물론 단거리 시력까지 확보하고자 고안되었지만, 여전히 단거리 초점이 깔끔하지 않다. 특히 정교한 작업을 주로 하는 사람에게 다초점 인공 수정체는 가격에 비해 매력적이지 않다. 어차피 돋보기를 써야 하기 때문이다. 짬짬이 책이나 신문을 보는 정도라면 굳이 다초점 인공 수정체가 필요 없다. 현준영 분당서울대병원 안과 교수는 “일반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근거리 시력은 0.4~0.8 정도이다”라며 인공 수정체가 사람 눈처럼 뛰어난 시력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다초점 인공 수정체는 빛 번짐, 달무리 현상, 허상, 눈부심 등이 생길 수 있다. 따라서 신경이 예민한 사람은 일상생활에 불편을 느낄 수 있으므로 피하는 편이 좋다. 이성진 순천향대병원 안과 교수는 “야간 운전 등 밤 시간대에 야외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빛 번짐이 있는 다초점 인공 수정체는 적합하지 않다. 난시가 있는 사람도 다초점 인공 수정체로 수술을 받으면 오히려 시력이 더 나빠질 수 있다. 따라서 자신의 생활 습관과 의사의 조언을 종합해서 인공 수정체를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라고 말했다.

인공 수정체마다 장단점이 있으므로 서로 다른 제품을 양쪽 눈에 각각 수술하는 사람도 있다. 이를 믹스 앤 매치(mix & match)라고 하는데 한쪽 눈은 멀리 보고, 다른 한쪽 눈은 가까운 곳을 볼 때 적합한 서로 다른 인공 수정체를 삽입하는 기술이다. 예술 활동을 하거나 골프 등 운동을 즐기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불편할 수 있다. 사물을 한쪽 눈으로 보는 셈이어서 공간감·입체감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과거에 라식·라섹과 같은 시력 교정 수술을 받은 사람은 백내장 수술을 하는 데 각별하게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라식 수술로 인해 각막 모양이 변해 인공 수정체 도수를 계산할 때 오차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를 간과하면 백내장 수술을 한 뒤 심한 원시 또는 근시가 되어 안경을 착용하거나 재수술을 받아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인공 수정체를 산출하는 장비를 갖춘 병원을 선택하고, 의사에게 과거 안과 수술 경력을 밝힐 필요가 있다.

▲ 단초점 인공 수정체 시력(왼쪽), 다초점 인공 수정체 시력(오른쪽) ⓒ HTK

 

영상 왜곡 개선해주는 비구면 인공 수정체 나와…젤 형태도 개발 중

한 번 단초점 인공 수정체로 수술을 받은 사람이 다초점 인공 수정체로 재수술받는 경우도 있다. 이를 인공 수정체 교체술이라고 한다. 이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인공 수정체는 수정체낭 등 인체 조직과 유착된다. 인체 조직이 재수술 과정에서 손상되기 쉬우므로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아예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김봉현 씨어앤파트너안과 원장은 “과거 백내장 수술이 합병증 없이 깔끔하게 잘된 경우, 수정체낭이 잘 보존되어 있는 경우 등은 인공 수정체 교체가 가능하다. 단, 난시가 심하지 않아야 한다. 이런 경우의 수를 조합해 재수술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의사의 노하우이다. 고난도의 기술이 필요한 수술인 만큼 경험이 풍부한 의사를 찾아 충분히 상담한 후에 결정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인공 수정체는 진화하고 있다. 백내장 수술을 한 뒤 수정체낭이 혼탁해지는 것을 후발 백내장이라고 한다. 실리콘 재질의 인공 수정체 수술 후 후발 백내장 발병이 비교적 많다는 연구 결과에 따라 최근에는 아크릴 재질로 만든 제품이 나왔다. 사물의 영상이 왜곡되는 현상을 개선하기 위한 비구면 인공 수정체도 선보였다. 사람의 수정체 모양과 기능에 더 가깝도록 고안된 젤(gel) 형태의 인공 수정체도 현재 개발되고 있다. 김태임 연세세브란스병원 안과 교수는 “검사상으로는 이상이 없어 보여도 사물이 선명하게 보이지 않고, 야간에 빛이 번져 보일 수 있다. 이를 개선하고, 특히 흐린 날이나 야간에 시력의 질을 높이기 위해 비구면 인공 수정체가 고안되었다. 앞으로 인간 눈처럼 원거리부터 근거리까지 자연스럽게 볼 수 있는 인공 수정체가 나올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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