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가면 또 멀어지는 황금종려상
  • 칸·라제기 | 한국일보 기자 ()
  • 승인 2010.05.31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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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 영화제 속 한국 영화의 위상, 그리고 칸 영화제에 대한 오해와 진실

 

▲ 5월26일 귀국 기자회견을 가진 의 이창동 감독과 주연 배우 윤정희씨. ⓒ시사저널 임준선

지난 5월23일 오후(현지 시간) 제63회 칸 국제영화제 시상식에 참가한 인사들이 속속 뤼미에르 극장에 입장하자 영화제 기자실은 술렁였다. 태국 기자들은 자국의 아피차퐁 위라세타쿤 감독이 손을 흔들며 나타나는 모습이 TV를 통해 전해지자 박수와 함께 환호성을 보냈다. ‘꼭 큰 상을 타라’라는 격려였다. 이창동 감독과 배우 윤정희가 등장하자 한국 기자들도 자리에서 일어나 기대감을 표시했다. 기자실은 올림픽 경기를 지켜보는 관중석을 방불케 했다.

■ <시>의 황금종려상 불발에 외신 기자들도 불만 표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은 아피차퐁 감독의 <전생을 기억할 수 있는 분미 삼촌>에게 돌아갔다. 태국 영화 최초이자 1997년 이란 영화 <체리 향기>와 일본 영화 <우나기>가 공동 수상한 이후 아시아 영화로는 13년 만이다. 아시아에는 경사이지만 한국 영화계로서는 서운하기 그지없는 수상 결과이다.

각본상을 수상한 이창동 감독의 <시>는 현지 언론으로부터 유력한 황금종려상 수상 후보로 꼽혔다. 기자시사회 이후 외신 기자 반응이나 영화 전문지의 리뷰도 호평 일색이었다. 부정적인 견해는 “예술영화 전용관에서만 상영될 영화이다”라는 정도였다. 적어도 최우수 여자배우상은 거머쥐지 않겠느냐는 낙관적인 전망이 한국 영화계 인사들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시>의 완성도만 기대치를 높이지 않았다. 지난 10년간 한국 영화의 성과를 감안한 전망들도 많았다. 한국 영화는 2000년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이 경쟁 부문에 첫 진출한 이후, 2002년 <취화선>(감독 임권택)이 감독상을, 2004년 <올드보이>(감독 박찬욱)가 심사위원 대상을, 2007년 <밀양>(감독 이창동)이 최우수 여자배우상을, 2009년 <박쥐>(감독 박찬욱)가 심사위원상 등을 수상하며 위세를 드높여왔다. 영화계 한 관계자는 “큰 상을 이번에 안 주면 한국 영화계가 토라지리라는 사실을 칸도 잘 알 것이다”라며 기대감을 부풀렸다. 중국과 일본에 이어 동북아의 대표 국가인 한국이 이제는 받을 차례가 되었다는 ‘국력 신장론’을 내세운 인사도 있었다.

수상식이 끝난 뒤 많은 외신 기자들은 <시>의 황금종려상 수상 불발에 불만을 표시했다. 미국의 프리랜서 기자 스테파니 코넬은 “<시>가 황금종려상감인데 이해할 수 없는 수상 결과이다”라고 말했다. 이창동 감독은 “영화제가 올림픽이 아니다”라고 했지만, 올림픽 못지않은 희열과 아쉬움이 기자실을 채웠다.

■ 모든 상은 비밀 투표로 결정…특성상 객관적일 수 없어

호평을 받았는데도 <시>가 각본상을 수상하는 데 그친 이유는 무엇일까. 판타지영화를 주로 연출해 온 팀 버튼이 심사위원장 자리에 앉아서 그런 것일까. 영화제 포스터 모델이자 프랑스의 얼굴인 줄리엣 비노쉬의 최우수 여자배우상 수상은 이미 정해졌었다는 소문은 사실일까. 여느 해처럼 수상 결과에 대한 추측과 분석이 엇갈렸다.

칸 영화제는 정치적이다. 여러 영화제와의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꼼수도 마다 않는다. 신진 감독을 발굴해 자신들의 감독으로 키우고, 유명 감독을 종종 초청해 자기 편으로 만든다. 영화제 수상 결과에 뒷말이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칸은 나눠먹기로 상을 수상한다’ ‘정략적이다’라는 따위의 말은 진실보다 오해에 가깝다. 지난해 심사위원이었던 이창동 감독에 따르면 심사위원단에는 100% 심사권이 부여된다. 경쟁 부문 진출작 선정을 제외하면 심사위원단이 무소불위의 힘을 갖는다는 것이다. 심사위원장의 힘도 절대적이지 않다. 심사위원단의 토론을 주재하고,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는 정도이다. 모든 상은 비밀 투표에 의해 결정된다. “황금종려상 수상작을 먼저 정하고 심사위원 대상작을 선정하는 순으로 이어진다”라고 이감독은 전했다.

한국 영화계로서는 아쉬움이 남겠지만 <전생을 기억할 수 있는 분미 삼촌>은 분명 황금종려상감이다. 유령과 인간이 소통하고, 과거와 현재가 경계 없이 이어지는 이 영화의 탐미적인 내용과 형식은 영화예술의 최전선을 지향해 온 칸의 전통에 알맞다.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프랑스 영화 <신과 인간의>(감독 사비에르 보부와)도 말이 필요 없는 수작이다. 좋은 작품들끼리 최종 경합을 벌여 미세한 차이로 <시>가 밀렸다고 보면 옳은 분석일 것이다.

 시상식이 끝난 뒤 한국의 영화 기자들 사이에서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차라리 올림픽이라면 명확하지 않을까.” 객관적인 기록으로 수상자를 결정할 수 없는 영화제의 특성을 지적한 발언이다. 황금종려상 수상은 참 멀고도 험하다. 

 

 

 춘향에게 반한 방자는 주인인 몽룡보다 먼저 춘향을 품는다. 하지만 신분 상승을 원하는 춘향은 다시 몽룡의 품에 안긴다. 그리고 몽룡은 방자와 춘향의 관계를 알게 된다. 그래서 파국이 오느냐? 그렇다면 꽤나 단순한 치정극이 되었을 법한데, 각본과 연출을 도맡은 김대우 감독은 원전의 진행을 따르며 파국을 유예한다. 한양에 간 몽룡이 과거를 보는 동안 춘향과 방자의 불안한 행복을 보여줌으로써 방자의 사랑에 비극적 의미를 부여한다.

감독은 방자를 전면에 내세워 모두가 알고 있던 춘향의 지고지순 러브스토리를 화끈한 남성적 러브 판타지로 뒤집었다. 곡절의 주인공 방자는 마침내 파국을 맞은 사랑을 구하고, 춘향의 이야기를 모두가 알고 있는 형식으로 바꾸어 쓰게 함으로써 자신은 역사의 뒤로 숨는다. 안쓰럽고도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동양화 같은 예쁜 화면에 담긴 이야기는 흥미롭다. 각기 춘향과 몽룡, 방자가 된 조여정, 류승범, 김주혁의 연기도 제 몫을 충실히 해낸다. 평범할 수도 있었던 사랑 이야기에 유머를 더하는 마노인 역의 오달수나 변학도 역의 송새벽은 완벽한 씬스틸러이다. 입을 열 때마다 시쳇말로 ‘빵 터지’게 만드는 그들의 연기는 관람을 즐겁게 만드는 1등 공신이다.

그러나 자신의 욕망이 아니라 주변의 욕망을 따르는 인물이 되어버린 춘향 캐릭터의 변화나 그저 소유의 다른 이름으로 그려진 영화 속의 사랑 묘사는 다소 불편하다. 새로워진 향단 역시 몽룡의 질투와 좌절을 위해 소비될 뿐이니, 여성 관객 입장에서는 마냥 즐거운 영화이기는 어렵지 싶다. 6월3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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