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왜 검찰 향해 칼 빼들었나
  • 김지영 기자 (young@sisapress.com)
  • 승인 2010.05.18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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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폰서 검사’ 사건이 결정적 계기…오랜 불만이 쌓인 터라 상설 특검제 도입 등 실천에 옮길 가능성 커

청와대와 정치권이 검찰에 ‘메스’를 들이댔다. 어디서부터 손을 보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검찰이 ‘스폰서 검사’ 사건을 계기로 개혁 대상 0순위로 급부상했다. 정치권은 전방위적으로 검찰을 강하게 옥죄고 있다. 여야는 5월14일 ‘스폰서 검사’ 특별검사 도입에 합의했다. 이보다 앞서 이명박 대통령은 5월9일 검찰과 경찰 개혁을 강하게 주문했다. 11일에는 국무총리실 산하에 범정부 차원의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라고 지시했다. 개혁 대상으로 검찰과 경찰을 동시에 거론했지만, 방점은 검찰에 찍혀 있다.

▲ 이명박 대통령이 범정부 차원의 TF를 구성하라고 지시한 직후 김준규 검찰총장이 ‘반기’를 들어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박은숙·연합뉴스

△상설 특별검사제 도입 △검찰의 기소독점주의를 완화하는 기소심의제 도입 △고위 공직자 비리 수사처(공수처) 신설 △검찰의 수사권 일부를 경찰로 넘기는 방안 등이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스폰서 검사’를 계기로 자체 개혁안을 마련하던 검찰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김준규 검찰총장은 ‘반기’를 들었다. 김총장은 5월12일 사법연수원 특강에서 “(검찰의) 권한과 권력을 쪼개서 남을 주든지 새 권력을 입히는 것은 답이 아니다. 검찰이 요즘 시련을 맞고 있지만, 검찰만큼 깨끗한 조직은 없다”라며 정치권 외부로부터의 개혁에 대해 우회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냈다(38쪽 상자 기사 참조). 이대통령 지시에 ‘항명’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 것이다. 그러나 김총장의 발언은 여론의 거센 역풍을 맞으며 오히려 검찰 개혁의 필요성을 각인시켜주는 역효과만 불렀다.

검찰 개혁의 필요성이 제기된 것은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금 불거지고 있는 개혁안을 보더라도 신선함이 떨어진다. 이미 지난 노무현 정부에서 논란을 빚었던 사안들이다. 그것이 재탕·삼탕되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시점에서 이대통령이 검찰에 대한 개혁 의지를 강하게 피력하고 나선 까닭은 무엇일까. 일단은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는 ‘스폰서 검사’ 사건이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이 사실이다. 촛불 집회를 촉발한 MBC <PD수첩>의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위험’ 보도 사건과 한명숙 전 총리의 뇌물 수수 의혹 사건 등 사회적으로 주목되었던 시국 관련 사건들이 무죄 판결을 받은 것도 이대통령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을 가능성이 크다. 검찰에 대한 불만이 차곡차곡 쌓였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검·경에 대한 이대통령의 오랜 불신도 무시할 수 없다. 검찰의 고위 간부는 “한 번쯤 검찰에서 혼쭐났던 정치인이나 기업인 가운데 누가 검찰을 좋아하겠느냐. 현대건설 사장 출신인 이대통령도 선거법 위반으로 국회의원 배지를 떼야 했던 시절이 있었고, 대선 과정에서는 ‘BBK 의혹’ 수사 등으로 검찰에 대한 감정이 그리 좋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대통령의 심중에 검찰에 대한 ‘앙금’이 남아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야권·검찰 안팎, “여권의 지방선거 전략 아니냐” 지적

여권의 검찰 개혁 구상이 6월2일 지방선거를 불과 20여 일 앞둔 시점에서 크게 불거진 점도 주목된다. 야권과 검찰 안팎에서 여권의 지방선거 전략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이유이다. 이대통령의 ‘범정부 차원의 검·경 TF 구성’과 관련해서도 ‘개혁 TF=전시용 임시 기구’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처음에는 맹형규 행정안전부장관과 이귀남 법무부장관, 권재진 청와대 민정수석 등이 참여하는 별도의 TF를 구성하기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청와대의 핵심 실세’가 개입하면서 이를 국무총리실 산하에 두는 것으로 결정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개혁안이 제대로 나올 수 있을지에 대해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여권의 한 인사는 “TF에 장관 몇 명과 민정수석이 모여 무슨 개혁안을 낼 수 있겠느냐”라고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특히 TF를 국무총리실 산하에 둔 것을 놓고도 이런저런 말들이 나오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도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와 관련해 TF를 국무총리실 산하에 둔 적이 있다. 하지만 별다른 성과 없이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이번에도 총리실 산하에 두면서 결국 이런 전철을 되밟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는 지방선거 전략으로 검·경 개혁 방안과 관련된 보고서를 청와대에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내부에서도 비슷한 관측이 나오고 있다. 검찰의 한 고위 간부는 “검찰의 자체 개혁안이 나온 다음에 그것이 미진하다면 다른 방법을 찾으면 된다. 그런데 범정부 차원의 검·경 개혁 TF를 만들어 손을 보겠다는 것은 순리가 아니다. TF가 지방선거를 겨냥해 국민 정서에 영합하려는 포퓰리즘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대통령이 강경하게 검·경 개혁을 지시한 만큼 과거처럼 대충 지나가지는 못할 것이라는 관측 역시 만만치 않다. 이번만큼은 어떤 식으로든 검·경을 손보고 넘어갈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다만, 백화점식으로 줄줄이 나열된 검찰 개혁안들 가운데 일부만 ‘빛’을 볼 수 있을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그 가운데 이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상설 특검제 도입이 유력해 보인다. 하지만 ‘상설 특검’이라는 용어부터 손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항상 설치되는 ‘상설’과 특별한 경우에만 도입된 ‘특별검사’의 뜻에 모순이 생긴다는 지적이다. 그만큼 상설 특검의 역할과 위상, 구성 등을 처음부터 검토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당장 도입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과 검찰의 반발 누르고 성공할 수 있을지 주목

공수처 신설 역시 검토되고 있지만 과거처럼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국회 법사위의 한 관계자는 “노무현 정부에서도 공수처 설치 여부를 놓고 논란이 뜨거웠지만 결국 없던 일로 되고 말았다. 국민들은 공수처 설치가 필요하다고 보겠지만 ‘살아 있는 권력’과 정치인 입장에서는 여간 신경 쓰이는 기관이 아닐 수 없다. 자칫 자신들이 만들어놓은 공수처가 부메랑이 되어 자신들의 목을 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논의는 무성하겠지만 실제로 만들어지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라고 말했다.

검찰 내부 분위기도 실현 불가능 쪽으로 기울어 있다. 법무 당국의 한 관계자는 “공수처를 논의하기 이전에 청와대나 감사원 등이 암행 감찰을 제대로 수행했는지, 각 행정 부처의 감사 기능이 제대로 이루어졌는지부터 살펴보아야 한다. 무조건 제3의 기구를 만드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공수처가 만들어졌다 치자. 만약 검찰에서 수사하다 고위 공직자 비리가 불거지면, 공수처로 사건을 넘겨야 하는 것인가? 그런데 공수처의 수사도 결국 검사가 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 공수처와 검찰의 관계가 애매하다. 솔직히 감이 오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공수처가 ‘옥상옥’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그동안 검찰의 비대해진 권력에 대해 우려하고 비판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실제 개혁의 메스를 들이대려 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정치권과 검찰의 반발로 번번이 실패했다. 이번에는 현실화할 것인가.

 

▲ 5월12일 사법연수원에서 특강하는 김준규 검찰총장. ⓒ연합뉴스
“(사람들이 나에게) ‘곱슬머리가 맞느냐’라고 물어본다. 원래 곱슬머리이다. 파마를 안 한 것이라고 매번 얘기해도 ‘너 파마했느냐’라고 물어본다. 인식한 것으로 사실을 받아들인다. 그런 식으로 답을 정해놓고 세상 현상이 답에 맞추어지길 바라는 것이 많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시민들의 머릿속에 있는 검사는 목에 힘주고 반말 비슷하게 하는 사람으로, 아주 부정적이다. 현실의 검사는 인정 안 하고 자기 생각으로 검사를 판단한다. 대부분의 오해는 검사의 권한을 실제 가진 것보다 크게 본다는 점이다. 모든 문제를 해결
해주는 해결사로, 밑에서 다 해주고 검사는 도장만 찍는 것으로 생각한다. 현실 검사라는 직업은 나쁜 것이 더 많다. 평검사 하는 동안 가정을 돌볼 기회가 없다.

검사는 과거 지향적이다. 과거의 나쁜 행적을 캐는 것이 수사이다. 거짓말 속에서 산다. 검사실에 오는 피의자, 피해자, 목격자 등이 전부 진실을 이야기할까. 거짓으로 둘러싸여 있다. 결국, 검사는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기 위해 의심과 수사만 생각한다. 나는 의식 못해도 의심이 많아진다.

그럼 왜, 나는 무엇이 좋다고 검사를 하는가. 좋은 것이 있다. 권한이 크다. 판사는 주어진 케이스만 하지만 검사는 혐의만 찾으면 모든 영역이 가능하다. 사회적 지위도 높다. 바르게만 하면 칭찬을 듣는다. 검사가 좋다는 이야기이다. 검사 생활에 후회는 없다. 다만, 다시 태어나면 검사는 안 할 것이다.

이번 사태(‘스폰서 검사’)는 자긍심에 큰 타격을 주었고, 수치심까지 느끼는 상황으로 간다. 잘잘못을 떠나 국민의 기대치가 무너진 것 같다. 제도와 문화를 과감하게 바꿀 것이다. 지금도 그런 흔적이 남아 있다면 싹을 도려낼 것이다. 

정치권에서 특검 얘기가 나오는데 어떤 상태가 되어도 과거 얘기에 대해 정직함으로 나가야 국민들이 이해해줄 것이다. 내가 취임해서 수사 패러다임 등 변모를 많이 했는데 이제는 다시 태어나야 할 것 같다. 

권한이랄까, 권력이랄까. 권력을 쪼개 남을 주든지 새 권력을 입히는 것은 답이 아니다. 견제가 들어가는 것은 맞다. 검찰만큼 깨끗한 데를 어디서 찾겠나. 결국, 견제는 권력의 원천에서 오는 수밖에 없다. 국민이다. 국민의 견제를 받는 제도로 바뀌어야 하지 않느냐. 국민의 통제를 받겠다. 방법은 생각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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