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죽박죽 경제’, 탈출구 있나
  • 임을출 |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
  • 승인 2010.05.04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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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화폐 개혁 전후한 경제 조치들, 후계 구도와 밀접 관련…식량 공급 다시 나빠져 전망 불투명

▲ 지난 4월6일 중국 상하이에서 선보인 북한의 엑스포 전시관. ⓒ연합뉴스

남북 관계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천안함 침몰이라는 초유의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하고, 북한의 금강산 부동산 동결, 몰수 조치 등이 이어지고 있다. 더구나 북한은 개성공단 사업의 ‘전면 재검토’를 경고하고, 남북 육로 통행에 대한 군사적 보장 합의 이행 문제도 정식 검토하겠다고 밝히면서 심상치 않은 기류가 흐르고 있다. 이런 흐름과는 대조적으로 북한은 ‘대풍국제투자그룹’ ‘국가개발은행’ 등을 통해 외국인 투자 유치를 적극 모색하고 있다. 이런 북한의 모순된 행보는 우리에게 적지 않은 당혹감을 안겨준다. 일각에서는 이 상반된 행위들에 화폐 개혁의 실패에 따른 정책 혼선이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분석한다. 또한, 다른 한편에서는 권력 승계 수업을 받고 있는 김정은의 경험 미숙이 빈번한 판단 착오와 정책 실패를 불러오고 있고, 이런 시행 착오가 정책의 강경 보수화를 부추기고 있다고 평가한다.

어쨌든 북한의 최근 경제 정책은 김정은 후계 구축 작업과 밀접히 연계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화폐 개혁을 전후한 경제 정책 및 제반 조치들은 후계 구도를 위한 기반을 마련하고 경제적 치적을 쌓는 차원에서 추진된 것으로 추정된다. 경제 부문에서 후계자의 통치 기반을 강화하고 내부적으로는 정부의 국가 경제에 대한 통제력을 복원하고 공식 경제 부문의 회생 및 지속적인 성장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작업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대외적으로는 대규모 외자 도입을 통해 사회간접자본(SOC) 위주의 경제 개발을 추진하고, 주요 거점 도시를 중심으로 경제특구를 건설해 외국 기업을 유치함으로써 성장 동력으로 삼겠다는 의도를 보여주고 있다.

북한은 후계 체제 구축과 맞물린 2012년 경제 강성대국 건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모든 힘을 쏟고 있다. 북한의 현 경제 정책의 목표는 ‘주민 생활 향상’으로 요약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쌀밥에 고깃국, 비단옷에 기와집’으로 요약되는 김일성 주석의 ‘유훈’을 관철하지 못했음을 시인하며, 주민 생활 개선에 ‘올인’하겠다는 뜻을 반복해서 밝히고 있다. 노동신문 등 북한 매체는 ‘김위원장이 지난해 정초부터 원산과 대안, 흥남 등을 찾은 것은 주민 생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라고 설명한다. 김위원장이 처음으로 2·8 비날론연합기업소 준공 경축 군중대회에 참가해 김일성 유훈 사업을 충실하게 실행하고 있음을 강조한 것도 이전과 달리 주민 생활 향상 목표가 공허한 정치적 구호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런 정책이 가시적인 성과를 내려면 막대한 투자와 재정 지출이 필요하다. 이것은 북한 지도부에게 적어도 향후 2~3년은 내·외자 동원에 정권의 사활을 걸어야 하는 ‘경제 비상 시국’임을 뜻한다. 북한은 부족한 재정을 국내에서는 강제 저축 형식의 화폐 교환을 통해서, 외자는 남한과 중국과의 경제 협력을 통해 메우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북한이 지난 시기 대남 유화 제스처를 취했던 것도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인도적 지원을 비롯해 금강산 관광 재개, 개성공단 근로자 임금 인상 등을 강하게 주장했던 것도 북한 내부에서 점증하는 재정 수요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남북 관계가 개선될 조짐을 보이지 않자 북한은 한국 정부를 압박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정책 기조 변화를 도모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화폐 개혁 실패는 재정 수입 조급히 늘리려는 북한의 절실함 반영

▲ 지난 4월28일 남쪽으로 귀환하는 금강산 관광업체 관계자들. ⓒ연합뉴스

또한, 북한 당국이 지난해 11월30일 전격적으로 단행한 화폐 개혁은 여러 목적 가운데 재정 수요와 지출의 불균형을 개선하려는 데 중점을 둔 것으로 보인다. 식량 및 생필품 공급 문제 대비책을 마련하지 않은 상황에서 화폐 개혁, 시장 철폐, 외환 유통 금지 등 매우 파괴력이 큰 정책을 한꺼번에 연속적으로 실시했다. 이로 인해 경제 정책의 실패를 자초하기는 했으나, 실상은 북한 지도부의 재정 수입을 단기에 올리기 위한 절실함과 조급함을 잘 보여준다.

북한은 화폐 교환 조치로 재정 기반을 공고히 하고 인민 생활을 안정·향상시키기 위해 농민들에 대한 우대, 가격 조정, 사회적 노력 자원 확보, 화폐 유통 체계 확립 등의 후속 조치를 보강하고 있다. 특히 물가 안정을 도모하고, 국가 유통망을 통해 계획적으로 상품을 공급해 국민 생활을 안정시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일부 식료품 가격을 낮게 책정하고 비효율적인 지출을 줄이면서, 경공업 및 서비스 부문에서 여성의 직장 활동을 장려하고, 화폐 교환 체계를 개선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 실제 경제난 이후, 사실상 국영 상점을 대신해 시장이 공산품 거래까지 장악했던 과거와 달리, 북한에서는 다시금 시장 대신 국영 상점을 통한 공산품 거래가 활발해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러나 향후 북한 경제 상황을 파악하는 데서 가장 주목할 대목은 북한 내 쌀 가격 동향과 배급의 정상화 여부이다. 이는 북한 주민 경제의 전반적인 상황, 나아가 북한 체제의 안정성을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북한에서는 배급을 정상화하고 시장통제를 완화하는 것만이 가장 효과적인 민심 수습책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런 노력들은 안정적인 재정의 뒷받침이 있어야 효과를 볼 수 있으나, 대내외적 여건은 그리 녹록지 않아 보인다. 4월부터 평양 및 대도시에 대한 식량 공급 전망이 불투명해진 것을 기점으로 쌀 가격이 상승세로 돌아서고 있어 북한 내부에 다시 긴장감이 돌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 당국은 대남 협력 기대를 완전히 접고 중국과의 협력에 매진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중국도 동북 지역 개발을 촉진하기 위해 북한과의 협력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다. 중국으로서는 낙후한 동북 3성의 경제 발전을 촉진할 수 있고, 북한으로서는 라진항을 물류 중심지로 육성함으로써 이를 거점으로 경제 회생의 길을 모색하는 ‘윈윈 게임’이 가능하다. 중국 당국은 2009년 여름을 계기로 ‘군사 분야와 단순 경제 분야의 교역을 구분해 대처한다’는 원칙을 세웠으며, 지난해 8월 국무원의 비준을 거친 ‘창지투(長吉圖. 장춘-길림-두만강)’ 개방 선도구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창지투 사업은 지린(吉林) 성의 창춘(長春)에서 지린, 두만강 유역으로 이어지는 경제 벨트를 구축해 1단계(2012년)와 2단계(2020년)를 거치면서 지린 성의 GDP를 현재의 네 배 수준으로 늘리는 것이 골자이다. 이 사업의 성패는 북한이 ‘동해 길’을 얼마나 열어주느냐에 달려 있다. 이에 부응해 북한 당국은 올 들어 라선(라진+선봉)을 특별시로 지정하고 국가개발은행 설립 등을 통해 대외 개방을 확대하는 한편, 투자 여건을 개선하는 데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결과를 낙관하기에는 일러 보인다. 핵 문제 해결이 극히 불투명할 뿐만 아니라, 미국이 북한의 2차 핵실험 이후 유엔을 중심으로 강력한 대북 경제 제재를 유지하고 있고, 천안함 사태로 인해 현재 남북 관계가 최악의 상황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향후 북한 경제의 진로는 김정일 위원장의 중국 방문 실현, 6자회담 복귀와 비핵화 진전 그리고 북·중 정상 간의 경제 협력 내용 등에 크게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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