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재가 구름을 뚫은 이유
  • 김형자 | 과학칼럼니스트 ()
  • 승인 2010.04.26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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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슬란드 화산, 빙하 아래에서 물과 섞여 폭발력 급증…마그마가 급격히 식는 과정에서 재로 변해 솟구쳐

▲ 4월21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을 떠나고 있는 비행기. 독일은 아이슬란드 화산 폭발로 며칠간 항공편 운항을 중단했으나 이날 정상화했다. ⓒAP연합

지난 4월14일, 아이슬란드 ‘에이야프얄라요쿨’ 빙하 아래에서 화산 폭발이 일어났다. 몇 달 전부터 자잘하게 입김을 내뿜어왔던 화산은 그동안 참아왔던 성미를 한 방에 마구 쏟아내는 듯했다. 용암은 빙하를 뚫고 콸콸 흘러나와 큰 홍수를 일으킬 만큼 격렬한 것이었고, 화산재는 17km 상공까지 치솟아 구름을 뚫고 유럽 하늘을 뒤덮을 만한 양이었다.

화산재는 바람을 타고 움직이기 때문에 상황이 시시각각 변한다. 처음에는 영국과 북유럽 등으로 이동해 인근 국가들로 하여금 ‘에이야프얄라요쿨’ 화산 폭발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했다. 이어서 제트 기류를 타고 아이슬란드에서 3천5백km 이상 떨어진 러시아 북쪽까지 날아간 뒤 아예 북반구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 ‘항공 대란 도미노’ 왜 벌어졌을까

이로 인해 급기야 유럽 전체의 공항이 마비되는 사상 초유의 항공 대란이 벌어졌다. 2000년 9·11 테러 이후 최악의 항공 대란으로 기록되는 유럽 하늘길의 ‘올 스톱’이다. 대체 화산재가 항공기에 어떤 영향을 주기에 고작 아이슬란드 한 나라에서 발생한 화산 폭발로 유럽 하늘을 거쳐야 하는 세계의 항공기들이 운항을 중단해야 했던 것일까.

이 물음에 사람들은 보통 화산재가 조종사의 시야를 가려 항공기 조종이 힘들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것도 하나의 원인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원인은 화산재가 항공기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화산재에 포함된 작은 암석 조각이나 모래 알갱이, 유리 등이 항공기 엔진에 유입되어 결함을 일으킬 수 있다. 이같은 물질이 항공기 엔진에 빨려 들어갈 경우, 용해점이 낮은 화산재(800~1천200℃)가 항공기 엔진 연소실 내부의 고온(1600~2000℃)에 녹아 터빈이나 냉각 시스템 노즐에 눌어붙게 되면서 터빈이 제대로 돌지 않게 되고, 공기가 냉각되지 않으면 자칫 엔진이 멈춰 대형 사고로 이어진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실제로 1982년 6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를 떠나 호주 퍼스로 향하던 영국항공(British Airways) 여객기의 엔진이 화산재가 유입되면서 모두 꺼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1989년에는 알래스카 리다우트 화산의 화산재를 뚫고 일본으로 비행하던 KLM항공 보잉 747기의 엔진 4개가 모두 동력을 잃어 고도 4천2백70m에서 정지했다가 1천2백20m까지 급강하했다. 다행히 엔진 하나가 정상으로 돌아와 알래스카의 앵커리지 비행장에 비상 착륙했다. 이후로 화산 폭발이 일어났을 때는 항공기 운항을 꺼리는 경우가 많아졌다.

원래 에이야프얄라요쿨의 화산은 지각에 발달한 틈새를 따라 화산재가 많이 생성되지 않는 점성이 작은 현무암질 용암류를 분출한다. 그런데 이번처럼 항공 대란이 일어날 만큼 화산재가 많이 발생한 것은 순전히 빙하(요쿨) 때문이다.

보통 현무암질 화산은 폭발해 분출하기보다는 땅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고온의 마그마가 빙하의 엄청난 양의 물과 섞이게 되면 물이 수증기로 변해 부피가 팽창해지면서 폭발력이 세지고, 차디찬 거대한 얼음덩어리와 만나면 급격히 식어버려 땅에서 천천히 식어 암석이 되어야 할 마그마가 그대로 화산재로 변한다. 유럽 하늘을 뒤덮을 만한 대량의 화산재를 만들어 상공 17km 높이로 날려 보낸 이유가 여기에 있다. 

■ 기상 이변의 원인이 되는 화산재

지구는 아직 젊기 때문에 내부 에너지를 발산하기 위해 화산 폭발이나 지진이 자주 일어난다. 이런 화산 폭발은 기후 변화와도 관계가 깊다. 엘니뇨도 그 하나의 예이다. 엘니뇨는 남아메리카 서해안의 페루 한류 속에 갑자기 따뜻한 바닷물이 침입해 유발되는 현상이다. 그 결과 해양 생태계 교란은 물론 태평양 연안 지역에서 가뭄·냉해·산불 등 광범위한 기상 이변을 유발한다. 그렇다면 화산 폭발이 어떻게 엘니뇨로 이어질까.

화산재가 공중으로 솟아오르면 성층권에서 태양광의 흡수와 반사, 투과에 영향을 미치고 지구 복사도 교란시킨다. 특히 대규모 화산 폭발이 일어난 경우 화산재가 대기를 뒤덮으면서 수개월 또는 수년간 햇빛을 가려 지구의 기온을 떨어뜨린다. 화산재가 대기권에 머무르면서 태양 복사 에너지를 차단함으로써 기후를 한랭하게 하는 것이다. 그 결과 대류권의 순환에 변화가 생기고 해수면의 온도가 바뀌어 엘니뇨가 시작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반면, 화산이 폭발할 때 메탄이나 이산화탄소 같은 온실 가스를 배출하면 지구의 온도가 올라갈 수도 있다. 양면성을 함께 갖고 있는 셈이다.

미국 국립대기연구소 카스파 암만 박사는 지난 400년간의 기상 데이터를 분석해 화산 폭발과 엘니뇨의 발생이 관계가 있음을 알아냈다. 빙하, 산호초, 나이테를 조사해 엘니뇨가 일어난 시기를 추정하고, 이 기간 동안 있었던 화산 폭발 기록을 대조한 결과 화산 폭발이 있고 나서 두 번 중 한 번꼴로 엘니뇨가 일어났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 화산 덕도 보는 아이슬란드

그렇다고 화산이 피해만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온천 관광, 지열 발전을 가능하게 하며, 지하의 칼륨·인 같은 광물질을 지표로 뿜어 토양을 비옥하게 만든다. 아이슬란드는 약 1백50개의 활화산을 가진 화산의 나라이자, 지진과 화산 분출 같은 지각 변동이 매우 활발한 화산 섬이다. 이 나라에서 화산 폭발은 흔한 현상이라 주민들은 자신들의 털모자가 기울어지는 것이 성가실 정도로만 여길 뿐이고, 지진은 아침 식사처럼 약간 흥분된 일일 뿐이다.

동서로 약 5백40㎞, 남북으로 약 3백50㎞ 크기인 아이슬란드는 일부 지역이 지난 2만년 동안 쌓인 용암으로 뒤덮여 있다. 이처럼 활발한 지각 변동 덕분에 아이슬란드인은 지질학적 특성을 이용해 살아간다. 화산 열을 온천이나 지열 발전에 사용한다. 수도 레이캬비크의 거의 모든 가정에서는 화산 온천에서 나오는 물을 난방에 사용하고, 온천수로 작물을 재배하고, 2백?3백℃의 고온 지열수에서 증기를 얻어 전기를 생산하며 살아간다.

화산 폭발은 새로운 지각의 형성에도 기여한다. 대서양 중앙 해령에 위치한 아이슬란드는 국토의 70%가량이 화산 활동으로 생성된 새로운 땅덩어리들이다. 화산이 토해내는 용암으로 인해 과거에 바다가 대륙이나 섬이 되기도 했고, 땅이 다시 침식하기도 했다. 대서양 중앙 해령의 갈라진 틈은 매년 약 15㎝씩 벌어지고 있다. 이 벌어진 틈으로 해양 지각의 하부에서 고온의 마그마가 상승하면서 새로운 지각이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있는 나라, 그곳이 바로 아이슬란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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