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 튀는 ‘사랑받는 악역’의 탄생
  • 하재근 | 대중문화평론가 ()
  • 승인 2010.04.20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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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보다 ‘신데렐라’가 욕먹고…‘된장녀 부태희’는 귀여움받고

드라마에는 악역이 나온다. 악역들은 대체로 시청자의 미움을 받는다. 최근 그렇게 미움을 받는 대표적인 악역으로는 <수상한 삼형제>의 태실장을 꼽을 수 있겠다. 태실장이 뺨을 맞자 통쾌하다는 댓글이 산을 이룰 정도로 대중은 그녀를 미워한다. 반대로 어떤 악역은 시청자의 사랑을 받는다.

<선덕여왕>에서 가장 사랑받은 캐릭터는 악역인 미실이었다. <추노>에서는 천지호가 제작진도 놀랄 정도로 사랑받았다. 대길도 악랄한 추노꾼이어서 악역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역시 사랑받았다. <신데렐라 언니>는 문근영의 악역 변신으로 화제를 모았다. 그런데 아무도 문근영을 욕하지 않았다. 오히려 착한 역할을 맡았다는 서우가 시청자의 비난을 한 몸에 받았다.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것일까? 왜 같은 악역이면서 어떤 악역은 욕을 먹고, 어떤 악역은 사랑을 받을까. 왜 <신데렐라 언니>에서처럼 착한 역할이 비난받는 일이 생길까?

최근 가장 사랑받는 악역인 <부자의 탄생> 부태희의 경우를 보자. 부태희는 재벌 2세로 허영덩어리에 명품 쇼핑에 파묻혀 사는 ‘된장녀’이다. 된장녀에 대한 한국인의 혐오가 얼마나 강한지는 ‘루저녀’ 파동을 통해서도 알 수 있고, <개그콘서트> ‘남보원’의 인기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부태희는 악역이다. 악역들은 대체로 타인을 무시하거나 능멸한다. 부태희도 자기가 부자라고 남을 업신여긴다. 확실한 악역이다.

하지만 욕을 먹기는커녕, 가장 사랑받는 캐릭터가 되었다. 부태희를 통해 이시영도 재평가되고 있다. 비호감에 가까웠던 이시영이 부태희를 소화하면서 찬사를 받고 있는 것이다. <신데렐라 언니>에서 착한 역할인 효선을 맡은 서우가 밉상 아이콘이 된 것과 극적으로 대비되는 일이다. 한국의 시청자들이 갑자기 착한 사람을 미워하고 악인을 사랑하게 된 것일까?

그렇지 않다. 부태희는 악한 캐릭터이지만 시청자에게는 선한 캐릭터로 느껴진다. 그녀는 남을 무시하는 것 같지만 불쌍한 어린아이의 청을 뿌리치지 못한다. 보육원에 쓸쓸히 맡겨진 아이를 위해 그 아버지를 찾아나서기도 한다. 이런 에피소드를 통해 시청자는 악해 보이는 그녀가 실은 여린 마음의 소유자라는 것을 알게 된다.

부태희는 강자처럼 보이지만 강자가 아니다. 처절하게 망가지고 당하는 것은 언제나 그녀의 몫이다. 그녀는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 작은 소동을 일으키다 스스로 자멸하고, 케이크를 폭식하며 분을 삭일 뿐이다. 그러므로 시청자에게 그녀는 귀엽게만 느껴진다.

반면에 <수상한 삼형제>의 태연희 실장은 타인의 가정을 태연히 짓밟는다. 자신의 감정이 다쳤다는 이유 하나로 남의 인생을 망가뜨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한 냉혹함과 공격성으로 실제로 남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다. 또, 태실장은 가식적이고 이중적이다. <수상한 삼형제>에서 불쌍한 도우미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인 남편을 가식적인 웃음으로 유혹한다. 이런 캐릭터에게 시청자는 가증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신데렐라 언니> 초반에 서우의 배역인 효선이 욕을 먹은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다. 효선이 착한 역할이라고 하지만, 시청자에게는 자기가 사랑받는 것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캐릭터로 느껴졌다. 효선은 타인을 배려하지 않았다. 오로지 사랑받으려고만 할 뿐이다. 문근영이 맡은 은조가 가장 필요로 하는 엄마조차 효선이 독점했다. 드라마는 은조가 엄마를 필요로 할 때마다 효선이 엄마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렇게 자기밖에 모르고 좋은 것을 독차지하는 캐릭터를 시청자는 악역으로 인식하게 된다. 게다가 효선은 계속해서 귀엽고 밝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악역이 귀엽게 행동하는 것은 시청자에게 가식적이라는 느낌을 준다. 최악의 악역이다. 그래서 초반에 착한 역할이라는데도 그렇게 욕을 먹은 것이다.

악역이 ‘보살펴주고 싶은 느낌이 들도록’ 시청자 마음을 흔드는 이유

반면에 문근영의 은조는 표면적으로는 악역이지만 시청자에게는 착한 역할로 느껴졌다. 왜냐하면 은조가 엄마를 배려하는 모습이 여러 차례 보였기 때문이다. 은조는 말은 독하게 하지만 상대가 실제로 해를 입을 상황이 되면 자기가 희생하더라도 상대의 안전을 지켜준다. 효선은 자기 상처를 감싸 안아달라고 남들을 못살게 굴지만, 은조는 자기의 상처를 혼자 감당할 뿐이다. 그녀도 효선 못지않게 사랑을 갈구하지만 남에게 그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저 쓸쓸히 홀로 서 있다. 이러면 시청자에게는 보살펴주고 싶은 착하고 불쌍한 아이로 인식된다.

악역이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인간적인 상처를 적절히 드러낼 때도 시청자의 공감을 받는다. <선덕여왕>의 미실은 신분의 한계를 뛰어넘어 황족의 특권에 저항했다.
<하얀거탑>의 장준혁은 비록 출세밖에 모르는 인물이었지만, 그가 싸웠던 대상은 의사 귀족들이었다. 모두 강자와 싸운 약자였다. 시청자는 미실이나 장준혁이 출세하기 위해 투쟁하는 것을 기득권층에 의해 소외받았던 자신들의 울분을 대변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이런 점에서는 선한 역이었다. 미실은 지도자로서의 카리스마를 보여주면서 나약한 덕만과 대비되는 매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의외로 많은 악역이 사랑받는다. 그래서 이제는 전통적인 선악 구분이 무너졌다는 분석들이 나온다. 그런 측면도 있지만 100% 그런 것만은 아니다. 대중은 여전히 선인을 사랑하고 악인을 미워한다. 다만, 상황이 조금 더 복잡해졌을 뿐이다. 겉과 속이 모두 착한 스테레오 타입이 아닌, 악역의 탈을 쓴 선한 역들이 나오고 있다. 아무리 악역이 사랑받는다고 해도 진짜로 악독하고 냉혹하기만 한 인물이라면 대중은 등을 돌린다.

악역은 자신의 욕망을 그대로 표출한다. 이것은 가식적인 것과 대비되는 시원시원함과 당당함이라는 미덕을 느끼게 한다. 진짜로 악독하지는 않은, 마음속에 타인을 생각하는 마음이 있거나 사실상의 약자인 악역이 솔직하게 욕망을 표현할 때 시청자의 사랑을 받는 악역이 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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