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의 거목들, 숲을 이루다
  • 이춘삼 | 편집위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0.04.13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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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기획 시리즈 - 한국의 신 인맥 지도 | 중앙대②

▲ 중앙대학교 서울캠퍼스 법학과 건물. ⓒ중앙대학교 제공


중앙대가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학과로는 약학대학 약학과와 예술대학의 문예창작과, 미디어·공연·영상대학의 연극과가 대표적이다. 현재의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문예창작과의 뿌리는 서라벌대학 문예창작과이다.

한국전쟁이 채 끝나기 전인 1953년 5월 서울 용산구 후암동에서 문을 연 서라벌예술학교는 1956년 4월 성북구 돈암동에 3층짜리 교사를 지어 이전했다. 이후 1957년 9월 ‘서라벌예술대학’이라는 이름으로 2년제 초급대학 승격 인가를 받아 신입생 3백명이 입학했다. 이때부터 서라벌예대는 예술대학의 대명사처럼 불렸다. 그중에서도 서라벌예대를 대표하는 학과는 단연 문예창작과와 연극영화과였다. 문예창작과는 서울대 문리대와 더불어 ‘문인 사관학교’라고 불릴 만큼 막강한 문맥을 자랑하며 기틀을 다져나갔다.

서라벌예대는 1972년 3월 중앙대에 합병되었다. 같은 해 학교 교사도 돈암동에서 흑석동으로 이전하면서 ‘미아리 시대’는 막을 내렸다.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의 학풍을 고스란히 이어받아 인수·합병된 두 학교는 하나의 줄기로 정리되었다. 서라벌예대 졸업장을 받았더라도 중앙대 문예창작과 동문으로 인정되고 중앙대 동창회 명부에 ‘○회 졸업생’으로 등재된다.

서라벌예대가 그만큼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숨은 공로자가 있었다. 두 학교를 통틀어 명실상부한 사부로 꼽히는 소설가 김동리가 그 주인공이다. 서라벌예술초급대학 시절부터 후학을 가르치기 시작해 중앙대 예술대학장까지 역임한 김동리 선생은 전국 고등학교의 문재들에게 장학금을 주며 유치에 힘을 쏟아 문예창작과의 명성을 크게 높였다. 그동안 학생들을 지도한 교수진의 면면을 보면 화려하기 이를 데 없다. 소설 부문에는 김동리 선생을 비롯해 유주현·조연현·손소희·이범선 씨가 포진해 있었고, 시 부문에는 서정주·박목월·구상·김수영·김구용·박재삼 씨 등이 있었다.

문예창작과의 ‘흑석동 시대’는 10년으로 마감되었다. 그리고 중앙대가 경기도 안성에 제2캠퍼스를 마련해 예술대학이 1982년부터 그곳으로 옮겨가면서 ‘안성 시대’가 열렸다. 연극영화과는 연극과와 영화과로 나뉘었고, 2007년 제2캠퍼스의 예술대학과 분리해 다시 흑석동의 제1캠퍼스로 옮겨와 신문방송학과와 함께 ‘미디어·공연·영상대학’으로 통합되었다.

그동안 배출한 문인은 단일 학과로 최대 규모이다. 소설가로는 김주영(7), 김원일(8), 송상옥(6), 이문구(9), 한승원(9), 오정희(6), 유현종(9), 조세희(9), 하일지(31·본명 임종주), 송기원(36) 씨 등이 우리 문단을 탄탄하게 이끌어왔다. 1958년 같은 해에 입학한 김주영·김문수·천승세·유현종·이근배 씨의 위세는 대단했다. 김주영씨는 역사소설의 주체를 서민으로 잡고 그들의 애환과 풍속을 집중적으로 다룬 장편 <객주> <화척> 등으로 많은 독자와 친숙한 작가이다. 그는 서라벌예대-중앙대 문예창작과 총동문회장을 지냈으며, 2005년 3월부터 지금까지 파라다이스문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이 재단은 문화 예술계를 지원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

천승세 작가는 희곡과 소설에서 재능을 보였고 유현종 작가는 현대소설과 역사소설을 망라해 왕성한 필력을 과시한다. 60학번인 김원일 작가는 남북 분단의 실상을 구체적으로 조명하는 사실주의 문학을 추구한다. 61학번에는 이문구·조세희·한승원 작가가 있다. 이문구씨는 우리말의 보고(寶庫)를 종횡무진 넘나든 멋쟁이로서 <관촌수필> <우리 동네> 등 연작 단편을 통해 농촌 사회의 붕괴 과정을 적나라하게 묘사했다는 평을 듣는다. 조세희씨는 글을 아낀 과작(寡作) 작가로서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통해 산업 사회에서 소외된 노동자와 도시 빈민의 실상을 고발했다. 

한승원 작가는 남도 지방의 어촌 풍경과 그 정서를 묘사하는 작품을 썼다. 큰아들 한동림씨와 딸 한강씨가 소설가이며, 한강씨의 남편 홍영희씨가 문학평론가인 문인 집안이다. 65학번인 이동하 중앙대 문예창작과 교수는 <장난감 도시>에서 서정적인 문체로 소시민의 소망을 소묘했으며, 오정희 작가는 완벽한 구성과 일물일어(一物一語)에 집착하는 문장으로 단편소설의 미학을 추구한다는 평을 듣는다.

 

뛰어난 동문 문인들 수두룩…사진학과 출신들도 강세

시 분야에는 서정주 선생에게 지도를 받은 신중신(8), 송수권(8) 씨를 필두로 윤금초(12), 임영조·김형영(13) 시인 등의 작품이 돋보인다. 시조 시단의 좌장으로 불리는 이근배씨도 문예창작과를 나왔다.

흑석동은 한 시대를 풍미한 베스트셀러 작가 4명을 낳았다. <소설 토정비결>의 이재운(33)과 <남자의 향기>의 하병무(37), <가시고기>의 조창인, <눈물꽃>과 <가슴에 새긴 너>의 김민기씨가 그들이다. 장안의 화제작이었던 TV 드라마 <서울 1945년>의 작가 정성희씨(43)와 <주몽>의 작가 정형수씨(46)가 대학 시절 소설과 시를 썼던 일은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서라벌 시대가 낳은 극작가 윤혁민씨의 대를 잇는 안성 캠퍼스 출신의 후배로는 이대영·김윤미·장성희·김지연 씨 등이 있다.

학과의 역사가 반세기를 넘기는 동안 단일 학과로서는 가장 많은 시인과 소설가, 극작가와 방송작가 및 아동문학가를 배출했는데 동기생 중 80~90%가 등단한 학번이 있어, 그 명성이 신화로 전해진다. 1966년 졸업식이 열릴 즈음 선후배를 포함한 13명이 한꺼번에 등단해 주위를 놀라게 한 적도 있다. 중앙대 문예창작과는 1970년대 말까지 국내 유일의 학과여서 고교 때 각종 백일장을 석권했던 학생들이 가장 선망하는 학과로 손꼽히기도 했다

중앙대 문예창작과는 문단사에 남을 두 가지 기록을 세웠다. 하나는 1994년부터 1997년까지 4년 연속 조선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 당선이라는 기록이다. 이듬해를 거르고 1999년 당선자도 중앙대 문예창작과에서 나왔다(1994년 박은철, 1995년 강만진, 1996년 정지아, 1997년 류시영, 1999년 나유진). 또 하나의 기록은 2006년 세계일보 시·소설·문학평론 3개 부문 공모에서 전 부문을 석권한 일이다. 2009년에는 국내 주요 문학상 5개 모두를 문예창작과 출신 시인과 소설가가 휩쓸었다. 황순원문학상 박민규, 이상문학상 박민규, 김동리문학상 박상우, 구상문학상·이육사문학상을 김형영 씨가 차지해 “과연 중대 문창과로구나!”하는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연극과 출신들 중에는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만한 연기자들이 수두룩하다. 이들은 연극 무대, 영화 스크린, 안방 극장을 종횡무진으로 누비며 관객들에게 웃음과 감동과 애환의 짜릿함을 선사한다. 연극과 동문 가운데 선배 그룹인 박인환·윤문식·선우용여 씨가 1964년 입학 동기이고 배윤식·서인석 씨가 그 뒤를 따른다. 1970년대 동문에는 유인촌·유지인 씨가 있고, 정보석·이재룡·손창민·손현주 씨가 80년대 초반 입학생이다. 박중훈·전인화·김희애 씨는 85학번 동기이고, 이홍렬·신애라·배종옥 씨는 87~88학번이다. 1990년대에 들어서는 고소영·염정아·박상아·김희선 씨가 차례로 연극과를 졸업했다. 30세 전후의 김규리·현빈·장나라·박예진 같은 신예들의 활약도 두드러진다. 이처럼 중앙대는 동국대나 서울예술대학과 함께 국내 연예인의 공급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은 때때로 경쟁 관계에 놓이기도 하지만 서로 밀어주고 당겨주면서 동문·끼리의 끈끈한 정을 나눈다.

중앙대 출신 법조인은 그리 많지 않다. 고등고시 행정·사법 양과를 합격한 박병일 동문(법학 8)이 검사 생활을 거쳐 11대 국회에 진출한 적이 있고, 이기문 동문(법학 26)이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변호사 생활을 거쳐 15대 국회에서 의정 활동을 했다. 현재는 민주당 소속으로 인천시장 선거에 도전장을 내놓은 상태이다. 이상경 동문(법학 19)은 오랜 법관 생활을 거쳐 헌법재판관까지 지냈으며, 지금은 법무법인 이우의 대표변호사로 있다. 그 밖에 김성곤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법학 34)와 이동호 전 광주지검 순천지청장(법학 34)이 활약하고 있다. 검찰에 몸담았던 권성동 전 청와대 법무비서관(법학 35)은 강릉 지역 재·보선에서 당선되어 금배지를 달았다.

중앙대 신문방송학과는 나름으로 꾸준히 언론인을 배출하는 학과로 알려져 있는데, 현재는 숫자가 그리 많은 편은 아니다. 한때 MBC 밤 뉴스 시간 앵커를 맡아 미성(美聲}으로 인기를 끌었던 추성춘 동문(신문 20)은 현재 모교인 중앙대 객원교수로 재직 중이다. 임순만 동문(문예창작 35)은 국민일보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해 현재 편집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중앙대에서는 전통적으로 예술대 사진학과가 강하다. 많은 사진학과 동문들이 각급 언론 기관과 잡지사 등에서 현장을 발로 뛰는 사진기자로 활약하고 있다. 김문권 경향신문 출판사진팀장(사진 15), 김상천 목포KBS 방송부장(사진 17), 정재두 한국일보 사진부장(사진 18), 김용해 동아일보 사진부 차장(사진 20), 김광식 대구MBC 카메라취재부 차장(사진 20), 최재영 중앙일보J&P 월간중앙사업부문 사진팀장(사진 27), 풍천 KBS비즈니스 팀장(사진 29), 김종섭 전주MBC 영상제작국 부국장(사진 33), 정기택 매일경제 사진부장(사진 34), 이병국 MBC 중계촬영부장(사진 37), 장문기 경기신문 편집부국장(사진 42), 정현석 매경TV PD(사진 44) 등이 곳곳에서 중앙대 사진학과의 저력을 떨치고 있다.

역대 중앙대 총장 자리는 서울대 법대 출신인 7대 이재철 총장 임기를 제외하고는 모두 중앙대 출신들이 맡아오고 있다. 6대 문병집, 8대 하경근, 9대 김민하, 10대 이종훈, 11대 박명수, 12대 현 박범훈 총장 순이다. 이에 대해 사학의 속성상 그럴 수밖에 없다는 시각이 있는가 하면, 비중앙대 출신들 사이에서는 “지나치다”라는 불평이 나오기도 한다. 실제로 11대 총장 선출 때 교수 투표에서 1위를 한 김성훈 교수(전 농림부장관)를 제치고 박명수 총장이 선출된 적이 있다. 박용성 이사장이 취임하고 난 뒤에는 총장 선출 방식이 ‘직선’에서 ‘이사회 임명’ 방식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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