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술 번복 발언에 재판장도 ‘화들짝’
  • 김회권 기자·김인현 인턴기자 (judge003@sisapress.com)
  • 승인 2010.03.23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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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숙 전 총리 수뢰 혐의 공판 현장·주변 취재기 / 재판장과 검사 사이 험악한 분위기도 노출

 

ⓒ시사저널 임준선


누가 죽는가. 검찰-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한명숙 전 총리 사이에서 양보 없는 법정 공방이 불꽃을 튀기고 있다. 자신의 혀끝에 모든 시선이 다 모아지는 것이 못내 부담스러운 듯 우물우물하는 곽 전 사장, 뜻하지 않은 곽 전 사장의 진술 번복에 바짝 예민해진 검찰 그리고 마치 승기를 잡은 듯 미소를 지어보이는 한 전 총리측. 이들의 삼각 구도 외에도 법정 안팎에서는 많은 일이 일어났다. 3월8일 시작된 첫 공판에서부터 3월19일의 7차 공판까지 <시사저널> 기자가 전 과정을 참관하면서 생생하게 목격한 현장의 분위기를 전한다.

#1 3월8일 첫 공판, 법정 소란 이어져

3월8일 1차 공판이 열린 서울중앙지법 311호 법정 안은 긴장감이 팽팽했다. 한 전 총리가 먼저 모습을 나타내고 뒤이어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이 휠체어에 의지한 채 피고인석으로 향했다. 하지만 긴장된 분위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엄숙할 것만 같았던 재판정은 때로는 냉소로, 때로는 항의로 가득 찼다. 특히 방청석의 반응은 재판정의 긴장감을 깨기에 충분했다. 검찰은 “곽 전 사장으로부터 받은 5만 달러가 피고인과 그의 가족의 해외 체류 경비나 아들의 보스턴 어학연수 비용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라고 주장하며 한 전 총리에게 비용 출처에 대한 소명 자료를 제출할 것인지 명확하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검찰의 말이 끝나자마자 방청석은 소란스러워졌다. 한 방청객은 “검찰이 해야 할 일을 떠넘긴다”라며 큰소리로 항의하다 김형두 부장판사에게 정숙을 요구받기도 했다. 한 전 총리 변호인측에서도 문제 제기를 하자 김부장판사가 즉시 컴퓨터를 이용해 형사소송법을 확인하는 장면도 보였다. 그리고 “검찰측이 먼저 입증하면 자연스럽게 변호인측에서 방어권이 생겨 자료를 제출하게 될 것이다”라며 양측 입장을 조율했다.

#2  유시민 전 장관의 ‘활약’

3월8일 첫 공판이 열린 서울중앙지법은 오후 내내 사람들로 북적였다. 특히 친노무현계 인사들이 눈에 띄었다. 노사모 대표를 지낸 노혜경 <라디오21> 진행자는 현장에서 인터뷰를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장관이 도착하자 사람들의 시선은 일제히 그에게 쏠렸다. “제가 어제 잠이 잘 안 와서 세 시 넘게 잠을 못 잤습니다. 제가 이럴진대 우리 한명숙 총리 당사자는 마음이 어떠실까 생각도 들고, 무슨 일이 있어도 함께 지켜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노혜경씨가 들이댄 마이크에 대고 유 전 장관은 ‘큰 누님’의 공판을 앞둔 소회를 이렇게 밝혔다.

첫 공판이 끝난 뒤 한 전 총리측의 분위기를 대변한 사람은 유 전 장관이었다. 재판이 끝나고 나오면서 대기하고 있는 사진기자들에게 “좋은 위치에서 찍게 해줄 테니 잠시 기다리시라”라고 말할 정도로 여유 있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유 전 장관의 말대로 되지는 않았다. 한 전 총리가 예상외의 동선으로 법원을 빠져나가려고 하면서 혼란이 일어났다. 나가는 모습을 찍으려는 사진기자, 빠져나가려는 한 전 총리 일행, 한 전 총리의 지지자들이 서로 뒤엉켜 아수라장이 되었다. 일부 지지자가 기자들을 향해 “이게 뭐하는 짓이냐”라며 카메라를 뺏으려고 하면서 다툼이 일어나기도 했다. 한 전 총리가 빠져나간 뒤에도 일부 기자들은 갑작스런 동선 변화에 화가 난 듯 거친 소리를 내뱉기도 했다.

#3  취재기자와 법정 경위, 자리 싸고 말다툼

취재기자들도 고역이었다. 취재기자들은 짧게는 여러 시간, 길게는 10시간이 넘는 공판 내내 발언 내용을 수첩에 적느라 고개를 파묻은 상태로 지내야 했다. 이들에게 자리 전쟁은 필수였다. 앞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미리 줄을 서야 했고 재판정 문이 열리자마자 달려야 했다. 곽 전 사장의 목소리는 조금만 뒤에 앉아도 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을 뿐만 아니라, 수첩에 메모하는 데 편리한 팔걸이 책상이 앞자리에만 비치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휴정하는 동안 자신의 자리를 뺏긴 한 일간지 기자는 법정 경위와 말다툼을 벌이기도 했다. 정숙해야 하는 법정의 특성상 쪽지를 통해 필담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증언에 따라 ‘검찰에 불리’ 등 의견이 쓰인 쪽지들이 기자들 사이에서 오갔다.

거의 매일 열리다시피 하는 공판이 진행될수록 피로 역시 심해졌다. 지난 3월18일 6차 공판이 진행되던 날, 저녁 식사 시간을 이용해 여러 명의 기자들이 몸을 뻗은 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재판 당사자인 한 전 총리 역시 이날은 재판정 앞에서 “나는 피곤해서…”라고 말하는 것이 목격되었다. 피로는 방청객에게도 찾아오기 마련이다. 꾸벅꾸벅 조는 방청객은 새삼스럽지 않았다. 게다가 갈수록 방청객의 수도 점점 줄어들었다. 1백2명이 꽉꽉 들어찬 311호 형사법정도 7차 공판에서는 빈자리가 듬성듬성 보였다. 판사도 예외일 수 없다. 5차 공판이 열린 지난 3월17일 김형두 부장판사는 남은 증인 신문을 24일 오전으로 미루면서 “오늘은 저녁 재판을 안 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4  곽영욱 전 사장, 재판 도중 링거에 피 역류하기도

▲ 1차 공판을 끝내고 돌아가는 한 전 총리 주위를 기자들이 둘러싸고 있다. ⓒ김세희 인턴기자

자기 신상과 관련한 것 외에 발언이 거의 없었던 곽 전 사장은 3월11일 2차 공판부터 재판정에 파란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발언은 검찰을 당황스럽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곽 전 사장은 김부장판사를 두 번 깜짝 놀라게 했다. “(한 전 총리, 정세균 당시 장관, 강동석 전 장관과 내가) 동시다발적으로 나가며, 제가 조금 늦게 나가면서 인사를 하고 나갔다. 봉투를 의자에 놓고 나왔다”라며 ‘돈을 직접 건네주었다’라는 기존의 주장과 다른 진술을 했다. 그의 말에 그동안 법정 공방을 지그시 바라보던 김부장판사가 깜짝 놀라며 “뭐라고요?”라고 반문할 정도였다. 이때가 방청객의 웅성거림이 가장 컸던 때였다.

검찰의 ‘압박 조사’를 이야기하며 “죽게 생겨서. 몸이 너무 아팠고, (검찰이) 묻지는 않았지만 12시 넘어서 또 면담을 계속했다” “새벽 2~3시에 (구치소로 가는) 차가 오니까 구치소 도착하면 3시나 3시 반이 되었다”라는 발언은 재판장의 이목을 끌었고, 반대로 검사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검찰은 재판장과 곽 전 사장 심문 사이에 끼어들며 해명에 나섰다. “낮에 조사받는 동안에 몸이 안 좋다고 해 안 나오기도 했지 않나. 몸 안 좋은데 강제로 끌고 나온 적 있나?”라며 압박 조사를 하지 않았다고 설명하느라 진땀을 뺐다. ‘검찰-한 전 총리’가 이루던 힘의 균형은 2차 공판부터 무너졌다.

심장계 질환 치료를 이유로 휠체어를 타고 등장한 곽 전 사장은 실제로 괴로워했다. 3월15일 4차 공판, 김부장판사의 질문에 대답한 뒤 피고인석으로 휠체어를 끌고 돌아오는 곽 전 사장의 링거에 갑자기 피가 역류했다. 간호사들이 와서 바로잡는 동안 곽 전 사장에게 관심을 보여주는 이는 검사들이 유일했다. 검사들은 모두 서서 곽 전 사장 쪽으로 목을 빼며 바라보았는데 곽 전 사장의 병세가 생각보다 좋지 않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듯했다. 18일에 열린 6차 공판에서는 공판이 시작되자마자 곽 전 사장측 변호인이 재판장에게 곽 전 사장의 건강 문제를 거론하며 대질 신문은 중요한 증인들만 하게 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5  김부장판사, 검사와 일촉즉발 언쟁도 벌여

김부장판사의 표정도 하나의 관전 포인트였다. 근엄한 표정을 보일 것이라는 세간의 인식과 달리 빙긋이 웃으며 법정 공방을 지켜보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검사와 곽 전 사장의 질의·응답 중 그런 표정을 지을 때가 많아 방청객 중에서는 “재판장도 어이가 없나 보다”라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나왔다. 김부장판사가 곽 전 사장에게 직접 묻는 경우도 적지 않았는데, 대부분 검찰의 논리 중 미흡한 부분을 지적하는 경우가 많았다. 골프채 선물에 대해 집중 심문이 있었던 3차 공판에서도 김부장판사는 “한 전 총리는 모자만 받았다고 하고 곽 전 사장은 골프채 세트를 사줬다고 하는데 이야기가 너무 다르다. 장관을 하는 사람이 평일에 나와서 골프채를 사서 갔다는 것이 이상하다”라며 의구심을 나타내기도 했다.

김부장판사도 미소만 짓고 있지는 않았다. 3월19일 7차 공판에서는 김부장판사와 권오성 부장검사 사이에서 언쟁이 벌어졌다. 검찰측에서 한 전 총리의 의전비서인 조 아무개씨에게 “한 전 총리의 아들이 MBA를 다니는데 5만 달러 이상이 들것 같지 않느냐”라고 묻자, 김부장판사가 “학비가 ‘얼마나 들 것 같은데’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의견을 말하는 것 아니냐”라며 이견을 말한 것이 시작이었다. 재판장의 말에 권부장검사가 “재판장님, 그것은 누구나 아는 것 아닙니까”라고 반론을 제기하면서 둘 사이에 언쟁이 오고 갔다. 결국, 김부장판사가 “한 전 총리 아들이 다니는 학교의 학비가 얼마인지 이런 것들을 다 계산해서 말하자는 것이다”라며 정리를 했지만 “사법부와 검찰 사이의 요즘 관계를 보는 것 같다”라는 수군거림이 들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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