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 불법화 논란에서 길 잃은 10대 임신부들
  • 박현이 | 서울시립 아하! 청소년성문화센터 기획부장 ()
  • 승인 2010.03.16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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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현장에서 드러난 ‘말 못할 고민’ 심각…학업 등에 문제 많아

 

ⓒ시사저널 박은숙

만약 10대인 딸이나 아들이 “엄마, 아빠! 나 임신했어요”라고 한다면? 10대 임신 문제를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게 해주었던 영화 <주노>의 부모님처럼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임신한 16세 딸의 비타민부터 챙기고, 세상의 편견에 든든한 방패막이가 되어주며, 딸의 선택을 지지하고 도와주는 <주노> 부모의 모습은 한국의 상황과 대비된다. 청소년의 성 행동이 일탈로 인식되는 한국에서 10대의 임신은 가정과 사회에서 충격적인 일일 것이다. 하지만 10대 임신과 출산은 현실에서 충분히 벌어질 수 있는 일이고, 또 동시에 대안을 찾아야 할 과제이다.

최근 프로라이프 의사회의 낙태 고발과 낙태 불법화 논란으로 인해 산부인과 병원으로부터 낙태 수술을 거부당한 상담 사례가 종종 들어오고 있다.

“18세 딸을 둔 엄마인데, 딸이 17세 남학생과 성관계를 해 아이를 갖게 되어 수술을 하려고 병원에 문의했으나, 수술을 해주는 곳이 없어서 답답해 전화를 했어요. 남학생 부모로부터 ‘내 아들의 아이인지 어떻게 아느냐? 수술비 못 준다. 딸 단속 잘해라’라고 협박(?) 전화가 왔고요. 나도 싱글맘이라서 직장 다니면서 아이 둘을 키우기도 버거워서 아이를 낳으라고 말도 못할 상황입니다. 아기를 봐주고 싶어도 키우기가 힘든 상황인데 어찌 해야 할지….”(18세 여성의 부모)

또한, 임신 중절 수술 이후 수술 후유증에 대한 상담도 있었는데, 최근 낙태 불법화 이슈로 인해 불법 시술과 이후의 후유증 등으로 초래되는 10대들의 건강권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될 것으로 예상된다.

“고2 여학생인데 남자친구와 성관계를 한 뒤 임신 중절 수술을 받았어요. 그 후 하혈을 하는데, 뭉글뭉글 피가 나왔어요. 수술한 병원에 갔더니 문제 없다고 해서, 다른 병원에 문의했더니 임신 중절 수술 부작용이라고 하네요. 그래서 2차 큰 병원으로 옮기려고 하는데, 낙태가 불법이라서 ‘의뢰 처방전’을 안 해준다고 하는데… 어쩌죠?” (고2 여학생)

이번 낙태 불법화와 관련한 논의에서 임신이나 출산에서, 성인 여성보다 더 취약한 위치에 있는 10대들의 목소리는 별로 들리지 않는다. 청소년성문화센터에 접수된 10대의 ‘임신·피임·낙태’ 관련 상담 건수는 2007년 1백8건(전체 성 상담의 8.0%), 2008년 1백60건(8.3%), 2009년 2백5건(10.5%)으로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10대들의 연애와 데이트가 보편화되고, 성에 대한 인식도 점점 개방적으로 바뀌면서 출산과 양육을 선택한 ‘10대 엄마’의 숫자도 늘어나고 있다. 보건복지가족부 자료에 따르면, 19세 미만 청소년 출산의 경우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총 1만7천1백72건으로 해마다 3천5백여 명의 10대 엄마가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임신한 10대들은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임신이라는 상황을 접하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한 심정으로 상담소 문을 두드린다. 임신한 10대는 당장 학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고, 사회적 낙인에 대한 두려움, 경제적 이유 등으로 보건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해 건강을 해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은 남자친구나 동성 친구와 임신 문제를 의논하고 개인적인 차원에서 ‘문제’를 해결하려다 보니 이들은 교육과 사회복지의 사각지대에 갇히게 된다.

“학생이다 보니 학원에, 공부에…. 자꾸 미루게 되고, 돈도 없어서 여태까지 미루다 어제 병원에 갔어요. 근데 벌써 5개월이 시작되었대요. 정말 어제는 남자친구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답답하고 해서 그냥 집에 와서 울기만 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남자친구도 그렇고 저도 부모님께 말했다가는 집에서 쫓겨날 거예요. 저도 그냥 수술만 할 수 있다면 좋겠는데…. 아직 중학교 3학년인데 이대로 인생 망치는 것 같아 도망가고 싶지가 않아요. 진짜 지금 죽고 싶은 마음뿐이에요. 도와주세요….”(중3 여학생)

임신한 10대들은 주변의 부정적인 시선으로 인해 대부분 임신 사실을 알리지 않고 조용히 임신 중절 수술로 해결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수술을 결심하더라도 돈이 없는 데다 보호자의 동의서가 필요해 고민하는 사례가 많다. 이들이 수술을 하려는 이유는 학교에 다녀야 하고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아이를 낳아서 키울 수 없으며, 임신과 양육 등 부모 역할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지원 네트워크·정책 대안 마련 시급

임신한 10대 여학생과 그 부모들은 학업을 계속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임신과 출산 기간 동안 휴학을 했다가 다시 복학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학교 현장에서는 10대 임신을 보호와 배려의 대상이 아닌 풍기 문란으로 본다. 그렇다 보니 학생이 자퇴하거나 퇴학당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임신한 10대에게 학습권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애매한 학칙으로 인해 학교로부터 쫓겨나는 경우가 대부분이거나 학교에 알리지 않고 위험한 불법 시술로 해결하려는 상황이 반복될 것이다.

“딸이 고3인데 현재 임신한 상태이며 지난해에 중절한 적이 있는데 이번에는 남자친구도 함께 아이를 낳겠다고 해서 허락했는데요. 11월 달에 출산 예정인데 학교 문제로 고민입니다. 일단 휴학을 하고 내년에 학교에 가고 싶다는데, 휴학이 가능한지 또는 자퇴를 해야 하는지 알고 싶어요.”(고3 여학생의 부모)

임신한 10대들도, 그 부모들도 10대 임신 문제에 대해 별 대책이 없다. 10대 임신 사례를 접하는 상담소나 학교 교사, 종교 지도자도 적절한 대응 방안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그동안 실제로 특별한 경우(보호자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경우) 교사나 청소년 지도자들이 수술에 동행하기도 했지만, 현재는 낙태 불법화로 인해 원천봉쇄된 상황이다.

▲ 지난 3월9일 아하! 청소년성문화센터에서 열린 10대들의 낙태 관련 토론회(위)는 많은 주목을 받았다. ⓒ아하! 청소년성문화센터

임신한 10대들이 좀 더 안전하게 문제를 해결해 갈 수 있도록 가정·학교·의료·법적·경제적 측면에서 이들을 돕는 지원 네트워크와 정책 대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임신과 낙태, 출산을 선택한 10대들을 바라보는 사회적인 편견을 없애고 이들을 지원할 수 있는 사회적인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

 

‘임신한 10대들을 위한 학습권, 건강권을 위한 의료적인 지원, 양육비 등 경제적인 어려움 해소를 위한 지원, 체계적인 성교육’ 등에 대한 정책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10대들은 불가피하게 불법적이고 위험한 낙태를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조만간 임신한 10대 여성이 자살하거나 유아를 유기하는 사건 등 충격적인 일이 나타날까 두렵다. 만약 임신한 10대 여성이 학업과 진로,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임신 중절 수술을 원할 경우, 안전하게 의료적인 서비스를 받아서 후유증이 없도록 ‘선택적으로 낙태를 허용하는 것’도 필요하다.

또한, 임신이 여성이 감당해야 하는 문제로 결부되는 경우가 많다. 임신은 당사자인 남녀 모두 함께 책임져야 할 문제이다. 남성의 ‘의료비와 양육비’ 지원을 현실화할 필요가 있으며,  10대 남성일 경우 그 부모가 책임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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