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저울추는 ‘유시민’
  • 이철희 |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컨설팅본부장 ()
  • 승인 2010.03.09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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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권 뭉치면 오세훈·김문수 ‘아성’도 불안…유 전 장관 경기도 출마 여부가 승패 분수령 될 듯

 

▲ 지방선거 수도권 판도가 요동치고 있다. 위는 유권자들이 선거 유세장에서 후보의 유세를 지켜보는 모습. ⓒ연합뉴스


“전략·전술도 선거에서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후보의 자질에 비하면 부차적일 따름이다. 나는 필생의 후보 빌 클린턴을 가지고 이 사실을 입증했다.” 클린턴 진영의 전략가였던 폴 베갈라(Paul Begala)의 말이다. 그렇다. 선거에서 후보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지난해 10월28일 재·보궐 선거가 있었다. 이때 한나라당의 지지율은 민주당을 압도하고 있었다. 또,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도 50%를 넘어 고공비행 중이었다. 그런데도 여권은 수도권 선거에서 ‘허무하게’ 졌다. 인지도가 높은 박찬숙 전 의원을 내세운 수원에서도, 그리고 잦은 탈당 이력에도 불구하고 높은 지지율을 보인 송진섭 전 시장을 내세운 안산에서도 졌다.

그 원인을 두고 해석이 분분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후보 문제였다. 당시 대통령을 필두로 여권이 제시하고 있던 중도·실용과 친서민 개념에 조응하지 않는 후보들이었다는 것이다. 노선과 후보의 미스매치이다. 무릇 후보의 경쟁력을 볼 때는 지금 당장의 인지도나 인기도가 아니라, 쟁점 구도나 여론 흐름, 당시 분위기에 적합한 후보 정체성에 주목해야 한다.

후보는 그냥 ???의 이름 석 자를 가진 개인 인격체가 아니다. 당의 노선과 시대 분위기, 대중적 열망을 담아내는 복합적 실체이다. 후보가 곧 정책이고, 이념이고, 비전이다. 이런 점에서 후보 구도가 어떻게 짜여지느냐 하는 것은 선거의 향배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를 가늠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변수라고 할 수 있다.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되던 국민참여당의 유시민 전 장관이 경기지사 출마로 방향을 틀었다. 중대한 변화이다. 지난 2월9~11일 더피플의 조사를 보자. 서울시장 후보 가상 대결에서, 오세훈 시장 46.1%, 한명숙 전 총리 24.8%, 유시민 전 장관 10.5%,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 4.5%의 지지율 분포를 보였다. 하지만 가상 대결에서 한 전 총리가 야권 단일 후보로 나설 경우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오시장 47.2%, 한 전 총리 38.1%의 구도였다. 결국, 야권의 후보가 단일화 내지 민주당 등 범친노 진영이라도 단일화해야 그나마 해볼 만한 구도가 된다는 것이다. 유 전 장관이 서울시장이 아니라 경기지사로 방향을 튼다면 이처럼 ‘해볼 만한’ 구도가 가시권 안에 들어오게 된다.

물론 이 구도만으로 승부가 예측불허의 판도로 바뀌는 것은 아니다. GH코리아가 지난 2월26일부터 28일까지 실시한 조사에 의하면, 오시장과 야권 단일 후보 한 전 총리의 가상 대결에서는 51.1% 대 37%로 오시장이 14%포인트 이상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 정도는 역대 지방선거에서 야당이 강세를 보인 전례와 각종 여론조사에서 안정론보다 높게 나타나는 견제론, 단일화의 시너지 효과 등을 감안할 때 얼마든지 뛰어넘을 수 있는 차이이다. 참고로, 지난 2월22일 실시한 한국갤럽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지방선거와 관련해 안정론(여당 후보 지지)이 41.4% 견제론(야당 후보 지지)이 49.9%를 기록했다.

여론조사 가상 대결로 확인되는 야권 후보 단일화 효과

야권 후보 단일화의 효과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GH코리아의 조사를 보자. 단일화하지 않았을 때의 한 전 총리는 20대에서 2.1%포인트 차로 근소하게 앞서는 것 외에 나머지 연령대에서는 오시장에게 턱없이 밀리고 있다. 그러나 단일 후보로서의 한 전 총리는 20~30대에서는 오시장을 앞서고, 40대에서도 박빙의 승부를 펼치게 된다. 또, 직업별로도 상승세가 뚜렷한데, 특히 화이트칼라의 경우 6.9%포인트 열세에서 6.5%포인트 우세로 바뀌었다. 단일 후보 효과는 정당 지지층의 결집에도 영향을 미쳤다. 개별 후보로서의 한 전 총리에게 민주당 지지층이 보인 결집도는 58.3%에 불과했으나, 단일 후보가 되면 75.3%로 대폭 상승했다. 심지어 노회찬 대표 지지층의 60.4%를 견인하는 효과까지 보여주었다. 이처럼 유 전 장관의 ‘이탈’로 인해 야권, 특히 민주당이 누릴 반사 이익은 제법 크다. 단일화 또는 그 흐름의 효과로 민주당 지지층의 결집도가 올라가고, 여기에 견제론에 호응하는 부동층이 가세하고, 40대 이하 연령층의 투표율이 상승한다면 지금 한나라당 후보가 누리고 있는 우위는 그야말로 ‘포말’로 끝날 수도 있다.

한편, 한나라당 후보 구도는 다시 혼미해졌다. 일반 여론조사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달리던 오세훈 시장에게 적신호가 켜졌다. GH코리아 조사에서, 서울시장 교체론에는 ‘공감한다’는 의견이 50.1%로, ‘공감하지 않는다’ 41.8%보다 높게 나왔다. 또, 디오피니언이 3월3일 서울에 사는 한나라당 중앙위원 4백6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서울시장 후보 적합도’ 조사에서 원희룡 의원이 40.8%의 지지를 얻어 오시장(29.2%)과 나경원 의원(8.2%)을 크게 앞선 것이다. ‘민심은 오시장, 당심은 원의원’ 구도이다.

유 전 장관의 가세로 인해 경기지사 선거의 판도 역시 상당히 바뀔 가능성이 크다. 여론조사의 추이만 보면 경기도는 가히 김문수 지사의 아성이라고 할 만하다. 누구와 붙어도 50%가 넘는 지지율을 보여주고 있다. 수도권 규제 완화나 행정부처 이전 반대 등 경기도의 이해를 대변하는 목소리를 집요하게 표출한 데 따른 후과로 보인다. 또한, 그가 누리는 후보 구도의 이점도 적지 않다. 오랫동안 출마를 준비해 온 민주당 김진표 의원의 경우, 반MB 전선의 후보로는 무언가 어색한 점이 적지 않다. 최근에 뛰어든 이종걸 의원은 인지도가 워낙 낮다. 심상정 전 의원의 경우에도 당세가 미약한 진보신당 출신이라 아직은 역부족이다. 이런 후보 구도가 김지사에게 상당한 이점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유 전 장관으로 인해 이런 구도가 무너질 가능성이 없지 않다. 야권 단일화가 이루어지면 금상첨화이겠지만, 꼭 그렇지 않더라도 인지도 높고 정체성에서 일체감이 높은 유 전 장관이 반MB의 구심으로 자리매김 될 수도 있다. 앞서 언급한 더피플 조사에서 김지사와 야권 단일 후보 김진표 의원이 각각 53.6%, 30.7%의 지지율을 받았는데, 이 대결 구도에서 유 전 장관을 대입할 경우 격차는 많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2월 <시사저널>이 한국사회여론연구소에 의뢰해 실시한 조사에서 김지사는 46.5%, 유 전 장관은 26.9%를 기록했다. 김진표 의원은 13.8%, 심상정 전 의원은 3.8%였다. 김문수-유시민-심상정 구도로 경기지사 선거가 치러진다면 시너지 효과를 빼고 단순 계산만으로도 유 전 장관은 40.7%를 얻는다고 할 수 있다. 차기 대선 주자 지지율에서는 유 전 장관이 김지사를 크게 앞서고 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 2월 조사에 따르면, 김지사가 2.6%, 유 전 장관이 4.5%를 기록했다. 리얼미터의 2월 조사에서는 양자 간 격차가 더 크다. 김지사 5.9%, 유 전 장관 12.6%였다.

 

 

또 하나 유추할 만한 데이터로는 연령대별 지지율이 있다. 김지사는 20~30대에서 상대적으로 약하다. 반면, 유 전 장관은 20~30대에서 지지율이 상대적으로 높다. 김진표 의원이나 이종걸 의원 모두 여론조사상으로는 김지사에게 역부족이다. 격차가 너무 크다. 또, 민주당 지지층의 결집도도 40~60%에 불과하다. 따라서 민주당 지지층이 김지사와 자웅을 겨뤄볼 만한 대안을 모색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만약 유 전 장관이 이 대안으로 위치한다면 그의 경쟁력은 대폭 상승할 것이다.

서울이나 경기에 비해 인천에서는 한나라당 후보가 상대적으로 약세이다. 교체 공감도도 55.6%로 매우 높다. 따라서 야권이 단일 후보를 낸다면 수도권 단체장 선거 중에서 가장 승산이 높아 보인다. GH코리아 조사는 현재 거론되는 후보, 예컨대 문병호·김교흥·유필우·이기문 전 의원에 대해서는 공히 민주당 지지층의 결집도가 60%대 초반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송영길 의원이 출마할 경우 결집도는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민주당 후보 적합도에서 송의원이 17.1%로 6% 아래의 다른 후보들을 압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 지지층에서도 송의원 선호도가 2위 후보에 비해 네 배가량 높다. 20~30대에서도 송의원이 강세여서 이 연령층에서 상대적으로 약한 안상수 시장과 대비된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송의원의 등장은 인천시장 선거 판도에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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