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밤의 대통령’, 어디로 샜나
  • 정락인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10.03.09 20:5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칠성파 두목 이강환, 경찰 코앞에서 포위망 뚫고 유유히 잠적해 뒷말 무성…겉으로는 은퇴, 실제로는 ‘수렴청정’

 

▲ 칠성파 두목 이강환씨의 과거 사진. ⓒ연합뉴스

공갈·협박·폭행 등의 혐의로 체포영장이 발부된 부산 칠성파 두목 이강환씨(67)가 경찰의 포위망을 뚫고 유유히 잠적해 뒷말이 무성하다. 경찰은 이씨를 공개 수배했다. 부산 연제경찰서는 지난 2월22일 20여 명의 수사관을 동원해 이씨를 에워쌌지만 이씨는 어디선가 걸려온 전화를 받은 후 휠체어를 탄 상태에서 홀연히 사라졌다. 누가 경찰의 검거 정보를 알려주었을 가능성이 크다.

부산 지역의 최대 폭력 조직인 칠성파는 지난 반세기 동안 부산의 암흑가를 주름잡아왔다. 지난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난 이후 전국이 황폐화되었지만 ‘해방 특구’인 부산은 전쟁의 참상에서 비켜갈 수 있었다. 오히려 ‘전쟁 특수’를 톡톡히 누렸다.

부산 경제는 연일 호황이었고, 전국 곳곳에서 돈이 몰려들었다. 이런 틈을 타고 면세유 유통과 유흥업소 관리 등의 이권에 개입하면서 한몫을 챙기려는 폭력 조직이 생겨났다. 바로 칠성파이다. 1957년쯤 지금의 두목인 이강환의 손위 동서가 ‘세븐 스타’라는 명칭으로 결성했다. 그 후 칠성파는 무서운 속도로 부산의 암흑가를 장악하기 시작하며 지역 맹주로 떠올랐다.

▲ 이씨를 수배한 경찰의 수배 전단.

국내 3대 폭력 조직인 ‘서방파’와 ‘양은이파’ ‘OB파’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가 되자 칠성파는 1980년대 후반에 새로운 보스를 맞이했다. 그가 바로 이강환이다. 이씨가 조직을 물려받은 후 칠성파의 세력은 더욱 강성해졌다. 그는 먼저 부산의 군소 조폭들을 깨뜨리거나 흡수하는 방식으로 조직의 덩치를 키웠다. 

그렇다고 다른 전국구 조직처럼 중앙 무대를 욕심내지는 않았다. 대신 부산 지역에서는 철저하게 자신들만의 세력을 구축했다. 1988년에는 일본 야쿠자 가네야마조와 사카스키 의식을 통해 의형제를 맺는 등 국제 조직과의 연대도 강화해갔다. 이렇게 해서 칠성파는 1980년대까지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지하 세계를 장악한 이강환은 조폭 세계의 대부로 추앙받으며, 부산 지역에서는 ‘밤의 대통령’으로 군림했다.

하지만 무소불위의 힘을 자랑하던 이강환도 1990년 ‘조직 폭력과의 전쟁’을 비켜갈 수는 없었다. 이때 이강환과 칠성파의 간부급 조직원들 대부분이 검찰에 구속되면서 사실상 조직이 와해된 것이나 마찬가지가 되었다.

그렇다고 칠성파의 뿌리가 죽은 것은 아니었다. 칠성파와 이씨의 추종 세력들은 ‘칠성파 재건위원회’를 만들며 조직 재건을 시도했다. 이씨는 매일같이 중간 보스를 교도소로 불러들여 옥중에서 몰래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이씨는 1999년 1월에 출소하기 전까지 꼬박 8년간 옥살이를 했다.

이강환은 교도소에서 나온 뒤에도 호화 사치 생활을 하며 황제처럼 살았다. 부산 지역에서는 이강환과 관련한 유명한 일화가 전해 내려온다. 이씨는 1999년에 출소한 후 7개월 만에 약 2억원짜리 벤츠 승용차를 구입했다고 한다. 그런데 승용차 대금을 전액 1만원권 현금으로 지불해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장수로는 2만장에 달한다.

이씨는 또, 부산 중구에 있는 코모도호텔 사우나를 수시로 출입했다고 한다. 이때 그는 항상 경호원들을 대동했는데, 이들이 90˚ 각도로 인사를 하며 옷과 양말까지 벗겨주었고, 커피숍에 갈 때도 문 앞에 경호원 두 명이 항상 보초를 섰다는 것이다. 

이씨는 2000년에도 부산의 한 나이트클럽 지분 싸움에 연루되어 검찰에 구속된 후 3년을 복역했다. 부산 동래구 온천동 ㅅ나이트클럽 대표를 협박해 나이트클럽 운영권 지분 등 2억여 원을 갈취한 혐의이다. 

이씨는 2003년에 출소한 후 수사 기관의 감시를 피할 수 없게 되자 조직 세계에서 전격 은퇴를 선언했다. 겉으로는 은퇴한 것처럼 보였으나, 실제로는 심복인 권 아무개씨를 ‘바지’로 내세우고 ‘수렴청정’을 하면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칠성파의 조직은 본부와 지부로 나누어진 형태를 띠고 있다. 이른바 ‘기업형 구조’로 재편된 것이다. 군대로 말하면 총사령부 산하에 각 사단들이 일정 지분을 가지고 포진해 있는 형국이다. 이를테면 이강환이 총사령부라면 지역 보스가 있는 연산칠성파, 온천장칠성파, 광안리칠성파, 완월동칠성파 등이 지역에 포진하고 있다. 칠성파의 정예 조직원은 100~1백50명 정도이며, 전체 패밀리를 합치면 조직원이 5백명에 달한다고 알려졌다.

 부산 지역 내 정보망과 정보원 ‘빵빵’  

▲ 영화 의 주인공이었던 조직폭력배 준석(유오성 분)의 모델로 알려진 폭력 조직 칠성파의 전 행동대장 정 아무개씨의 결혼식이 열린 부산의 한 호텔 정문. ⓒ연합뉴스

이씨가 어느 정도 영향력을 갖고 있는지는 지난 2007년 4월에 있었던 이씨 아들의 결혼식을 통해 확인되었다. 결혼식은 부산 서면 롯데호텔에서 열렸다. 이날 하객은 1천100명 정도였는데, 이 중 5백명이 패밀리들이었다.

 전국의 유명 폭력 조직의 간부나 원로 등도 결혼식장의 하객으로 참석했다. 국내 조폭계의 원로인 ‘신상사파’ 두목 신상현씨를 비롯한 전국구 패밀리 조직원들도 결혼식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칠성파의 반대파들도 행사장에 나타나 축하를 해주는 등 이날은 ‘전국 조폭들의 단합대회’나 마찬가지였다.

이날 결혼식에서 주목받았던 것 중의 하나가 주례 선생과 연예인 하객들이었다. 당시 보도를 보면 이강환씨와 친분이 있는 인기 개그맨과 인기 가수 등의 축하 공연이 있었고, 유명 연예인들의 화환 80여 개가 놓여 있었다고 한다. ‘연예인과 조폭’의 공생 관계를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는 장면이다. 게다가 이날 사회는 부산 지역 라디오 프로그램의 진행자가 맡았고, 주례는 다름 아닌 김동길 전 연세대 교수였다.

이씨는 부산 지역에서는 암적인 존재였다. 그의 악행은 끊이지 않았다. 주로 기업인 등이 먹잇감이 되었다. 지난 2005~07년까지 부산 지역 중소 건설사 대표인 박 아무개씨를 협박해 4억원가량의 금품을 빼앗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씨는 당시 건설업체를 운영하던 박씨가 부산의 한 재개발 지역의 공사를 따낸 사실을 알고, 투자금 10억원을 강제로 맡기고 배당금을 요구했다. 이씨의 협박을 받은 박씨는 이씨로부터 투자금 10억원을 받아 매달 배당금을 주었다. 이씨는 배당금과는 별도로 용돈 등의 명목으로 10여차례에 걸쳐 4억원가량을 빼앗았다. 만약 말을 듣지 않을 때는 부하 조직원들을 동원해 박씨를 납치한 후 폭행을 가했다.

부산 지역에서 이씨의 정보망과 세포 조직(정보원)은 방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관리한 정보원들이 정계·관계·사정 기관 등 곳곳에 숨어 있다는 것이다. 김진성 부산일보 사회부 기자는 “부산 지역에서는 칠성파의 두목 정도 되면 정보력이 상당할 것이다. 경찰이 칠성파 조직 내에 첩보원을 심어놓은 것처럼 경찰 등에도 첩보원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라고 전했다.

경찰은 현재 이씨의 행적에 대한 단서를 잡지 못하고 있다. 부산 최대 폭력 조직의 대부와 경찰이 쫓고 쫓기는 숨바꼭질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강환은 당뇨병 등 지병으로 인해 하루에 약을 한 주먹씩 먹을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이다. 이 때문에 휠체어에 의지해서 다니고 있다.

부산 연제경찰서 관계자는 이강환의 수사 상황을 묻자 “수사 중이어서 일체의 코멘트를 할 수가 없다”라며 말을 아꼈다.

한편, 올해는 약 4년 전 경찰의 대대적인 조직폭력배 소탕 작전 때 검거되었던 칠성파와 반칠성파의 조직원들이 대거 출소를 앞두고 있다. 이에 따라 부산 지역의 지하세계는 어떤 식으로든 재편되는 것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