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통합의 기초 공사 ‘왕실 간 통혼’
  • 조명진 | 유럽연합집행이사회 안보자문역 ()
  • 승인 2010.03.09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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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나라와 동시다발적으로 행해 상위 지배층 결속 강화…유럽인들이 갖는 동질성의 배경 되기도

 

ⓒ연합뉴스


유럽 통합을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나타난 전후 복구 체제의 하나로 보는 것은 단편적인 시각이다. 유럽인들이 갖는 동질성의 기원은 먼저 로마 제국에서 찾을 수 있다. 고대 로마 제국은 지금의 지중해 인접 국가를 비롯해 영국과 독일을 포함한 서유럽 대부분의 지역을 통치했다. 또한, 2백년에 가까운 십자군 전쟁(1095~1291) 동안 유럽의 왕실과 귀족들이 선봉에 나서 연합군을 결성했다. 유럽인들이 동질성을 느끼는 바탕에는 이처럼 통치 방식, 종교·언어의 유사성 그리고 상위 지배층으로부터의 결속 강화 방식인 왕실 간의 통혼이 있다.

유럽의 통혼이 동양과 다른 점은 양자 간 통혼이 아닌, 여러 나라와의 동시다발적 통혼이라는 것이다. 유럽의 다각적 통혼은 집권층 사이에 동질성을 느끼게 만들었다. 유럽에는 현재 입헌군주국 형태인 11개 국가의 왕실이 있다. 유럽에서 왕족 또는 귀족이 국가 원수로 있는 나라는 안도라, 벨기에, 덴마크, 리히텐슈타인, 룩셈부르크, 모나코, 네덜란드, 노르웨이, 스페인, 스웨덴, 영국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유럽 왕실 간의 방만한 통혼이 평화를 보장해주지는 않았다. 대표적 전쟁으로는 100년 전쟁(1337~1453), 가톨릭(구교)과 프로테스탄트(신교) 왕국 간의 30년 전쟁(1618~48), 크리미아 전쟁(1854~56), 보불 전쟁(1870~71), 그리고 1차 세계대전(1914~18)이다. 이 전쟁들은 유럽 왕실 입장에서 보면 친·인척 간의 싸움이었다. 현존하는 유럽 왕실의 통혼을 독일과 프랑스 혈통을 통해서 살펴보자.

영국의 하노버 왕가와 프러시아 왕실의 관계는 빅토리아 여왕의 남편인 알버트 공이 프러시아 왕실 출신이라는 점에서 서로 돈독하다. 알버트 공은 프러시아의 삭스~코부르 고타 가문 출신이다. 신성 로마 제국에서 떨어져나온 프러시아(1701~1918)는 프레드릭 1세(1701~13)에서 시작해서 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빌헬름 2세(1888~ 1918)까지, 지금의 독일 일대를 지배한 유럽의 강국이었다. 빌헬름 2세는 빅토리아 여왕의 아들 에드워드 7세의 조카가 된다. 그리고 빅토리아 여왕의 손녀인 엘리자베스 페오도로브나는 러시아 황제 알렉산더 3세의 동생인 세르게이 알렉산드로비치 백작과 혼인을 통해 영국과 러시아 왕실의 우의를 다졌다.

에드워드 7세는 삭스~코부르그 고타 가문 출신으로 처음 영국 왕위에 오른 것이다. 이 가문은 알버트 공을 통해서 지금의 영국 왕실을, 네오폴드 1세의 후손을 통해서 벨기에 왕실을 이어가고 있다. 영국 왕실은 조지 5세 재임 기간에 1차 대전을 일으킨 독일에 대한 반감을 이유로 1917년 윈저 왕가(Windsor Dynasty)로 이름을 바꾸었다. 조지 5세는 러시아 니콜라스 2세의 조카이고, 둘째아들 조지 6세가 왕위를 이었다. 조지 6세는 현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아버지이다.

왕위 계승할 스웨덴의 빅토리아 공주는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고손녀

▲ 지난해 12월 영국 의회 개회식에 참석한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왼쪽)와 그리스 출신인 남편 필립 공. ⓒ연합뉴스

현재 스웨덴 왕통인 베르나도트 가(House of Bernadotte)는 나폴레옹의 장군이었던 쟝 밥티스트 베르나도트(Jean~Baptiste Bernadotte)에서 시작된다. 프랑스 출신인 베르나도트 장군은 1818년에서 1844년까지 찰스 14세로서 스웨덴과 노르웨이의 왕으로 재임하며 북유럽에 새로운 왕가를 열었다. 2대는 찰스 14세의 아들 오스카 1세이고, 찰스 15세의 외동딸 루이스 공주는 덴마크 프레드릭 8세의 왕비가 되었다. 찰스 15세는 네덜란드의 루이스 공주와 결혼해 그 사이에 오스카 왕자를 두었고, 오스카 2세가 왕위를 계승했다. 

찰스 15세의 손녀 메르타 공주는 노르웨이 울라프 5세의 왕비가 되었고, 또 다른 손녀 아스트리드 공주는 벨기에 레오폴드 3세의 왕비가 되었다. 베르나도트 왕가 6대손인 구스타프 아돌프 6세의 셋째딸 잉그리드 공주는 덴마크 프레드릭 9세의 왕비가 되었고,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증손녀가 된다. 이와 같이 찰스 14세 이후 프랑스 혈통인 스웨덴 왕실의 공주들은 네덜란드, 덴마크, 노르웨이, 벨기에 왕가와 통혼하며 유럽 왕실 간의 관계 증진에 기여했다.

현재 스웨덴 왕 칼 구스타프 16세는 구스타프 아돌프 6세의 손자이고, 1973년에 왕위에 올랐다. 1972년 뮌헨올림픽에서 통역을 맡았던 독일 평민 실비아와 결혼해 1남2녀를 두었다. 장녀 빅토리아 공주는 왕위 계승 헌법 개정에 따라 왕위를 계승하게 된다. 빅토리아 공주는 베르나도트 가의 8대손이 된다.

빅토리아라는 이름은 먼 고조할머니가 되는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에서 따온 것이다. 실제로 빅토리아 공주는 영국 왕위 계승 서열 1백94번째이다. 왜냐하면 빅토리아 공주의 할아버지인 구스타프 아돌프 공의 어머니가 빅토리아 여왕의 손녀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빅토리아 공주는 스페인 카를로스 1세와 덴마크 여왕 마가레타 2세와도 친척 관계가 된다. 카를로스 1세는 프랑스의 부르봉 혈통이다. 이렇듯 유럽 왕실은 서로 간의 혼인을 통해 서로 혈연 관계로 얽혀 있다.

빅토리아 공주는 현재 미혼이지만 유럽 여러 왕실의 대모 역할을 한다. 구체적으로 노르웨이 알렉산드라 공주, 네덜란드 카트리나 아말리아 공주, 덴마크 크리스티안 왕자 그리고 벨기에 엘레노오레 공주의 대모 노릇을 하고 있다. 빅토리아 공주는 올 6월19일에 헬스클럽의 트레이너인 다니엘 베슬링과 스톡홀름의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릴 예정인데, 유럽 왕실에서 오랜 만에 여왕이 될 공주의 결혼식이어서 벌써부터 분위기가 들떠 있다. 빅토리아 공주가 여왕이 되면 유럽 왕실의 여왕은 영국, 덴마크, 네덜란드에 이어 4명으로 늘어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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