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층’ 띄우는 부산 ‘제2의 두바이’ 되나
  • 반도헌 (bani001@sisapress.com)
  • 승인 2010.02.27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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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8백28m(1백62층) 초고층 빌딩 버즈 칼리파는 한때 부흥하는 두바이 경제를 상징하는 랜드마크였다. 그러나 완공된 지 한 달이 조금 넘은 시점에서 버즈 칼리파는 오히려 흔들리는 두바이 경제의 우울한 현재를 대변하고 있다. 부산시에서는 100층 이상 초고층 빌딩 3개가 한꺼번에 건설되고 있다. 초고층 빌딩 3개가 완공되면, 부산은 100층 이상 초고층 빌딩 3동이 세워지는 세계 유일의 도시가 된다. 초고층 빌딩은 부산시 경제 부흥의 시발점이 될 것인가, 아니면 쇠퇴를 앞당기는 무리수가 될 것인가. <시사저널>은 부산 초고층 빌딩 공사 현장과 부동산시장 동향을 취재해 초고층 빌딩 프로젝트가 부산 경제에 미칠 영향을 살펴보았다. 

부산시에서 추진되고 있는 100층 이상 초고층 빌딩 프로젝트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도시를 상징하는 랜드마크를 만들어보겠다는 의욕이 앞서다 보니, 현실적인 문제들을 뒤로 미루어놓은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부산이 국내 제2의 도시이기는 하지만, 100층 이상 초고층 빌딩 3개를 수용할 수 있는 여력을 갖추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분양과 임대가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아 공실률이 높아질 경우 자칫 유령 건물로 슬럼화될 가능성도 있다. 도시 핵심 지역에 위치한 초고층 랜드마크 건물이 텅텅 비게 된다면 이미지에서 오히려 역효과만 나타난다.

초고층 빌딩은 건축비가 일반 고층 건물보다 2~3배 높기 때문에 경제성 측면에서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다. 분양가와 임대료가 높게 책정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를 상쇄할 만한 확실한 이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미국계 부동산서비스업체 콜드웰뱅커코리아의 김남웅 부산지점장은 “랜드마크에 입주해 얻는 장점이라면 상징적 이미지와 길 안내가 편리하다는 정도이다. 센텀 지구 등 부산 지역에 새롭게 들어서는 건물들의 공실률이 8%에 달하는 상황에서 조건이 특별하게 좋지 않고 임대료가 비싸다면 굳이 들어갈 이유가 없다”라고 말했다.

 

 

초고층 빌딩 프로젝트가 실패로 돌아갈 경우 지역 경제에 미칠 악영향은 크다. 건물을 올리기 전에 사전 작업을 충분히 해야 하는 이유이다. 안정적인 재정을 확보하고 키테넌트(핵심 임차인)를 유치하는 등 구조와 분양에 대한 계획을 구체화하지 않고 일단 지어놓으면 어떻게든 되겠거니 하는 생각이면 실패할 확률이 크다. 부산에서 올라갈 예정인 초고층 빌딩에 우려의 눈길이 쏟아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초고층 빌딩 안에 무엇을 채울지에 관한 계획이 구체적이지 않다. 작은 규모의 건물과 달리 초고층 빌딩에는 키테넌트가 필수적이다. 중심이 되는 키테넌트가 확보되어야 나머지 공간에 상업 시설을 유치하는 것이 용이하다. 대표적인 것이 쇼핑몰이다. 대형 쇼핑몰이 들어서면 부수적으로 들어오는 상업 시설들이 상당 부분을 채워준다. 글로벌 기업의 해외 거점도 좋은 키테넌트이다. 서울 여의도에 올라갈 예정인 서울국제금융센터에, 시행 초기 들어올 것으로 기대되었던 AIG 아시아지역본부가 대표적인 예이다. 하지만 부산시에서 초고층 빌딩을 계획 중인 사업자들은 아직 키테넌트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경제성에 대해 확신을 주지 못해 건설회사 유치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청사진은 그럴듯하지만 투자자 확보 등 ‘안갯속’ 

부산 해운대 해변에 위치하게 될 해운대 관광리조트는 1백17층에 5백10m로 지어질 예정이다. 대형 실내 워터파크, 아쿠아리움, 호텔 등 위락 시설을 유치해 해운대를 여름 한철 관광지에서 4계절 관광지로 바꾸어놓겠다는 계획이다. 해운대 관광리조트의 핵심이 될 실내 워터파크는 투명한 개·폐형 돔으로 지어져 자연적인 모습을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든다. 숙박 시설을 유치하기 위해 글로벌 호텔 기업들과도 접촉하고 있다. 청사진은 이렇게 멋들어지지만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현재는 해풍에 의한 영향을 줄이기 위해 유선형으로 설계를 변경하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상황이다. 해운대 관광리조트 사업자인 트리플스퀘어 김영완 상무는 “설계 변경 외에 아직까지 밝힐 만한 것이 없다. 구체적인 계획이 나오게 되면 우리가 먼저 알릴 것이다”라며 진척 상황에 대해 언급하기를 꺼렸다. 부동산개발 컨설팅업체 관계자는 “사업 주체인 청안건설 임원 가운데 초고층 빌딩 프로젝트에 대해 조예가 있는 이가 없어 시행착오를 거듭하고 있다. 투자자 확보도 명확하지 않아 이 프로젝트가 당초 계획대로 진행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라고 말했다.

 해운대 센텀 지구에 들어서는 월드비즈니스센터(WBC) 솔로몬타워는 지상 1백8층에 4백20m 높이로 지어질 예정이다. 같은 시행사에 의해 앞쪽에 지어지고 있는 51층 건물 2개동은 2007년 분양이 마무리되어 내년 11월에 준공할 예정이지만, 초고층 빌딩은 아직 착공되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건설사를 확정짓지 못했기 때문이다. 구종균 솔로몬그룹 마케팅팀 부장은 “100층 이상 건물은 건축비가 상대적으로 많이 들다 보니 분양가가 높아져야 한다. 수요자가 감내할 수 있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규모가 크고 상징성은 있지만 수요자나 투자자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 이 점 때문에 건설회사가 선뜻 나서지 않고 있다”라고 말했다. 솔로몬타워는 판매 시설 비중을 축소했다. 아시아 최대 규모인 신세계백화점과 지하로 연결되는 상황에서 쇼핑 관련 키테넌트를 확보할 필요성과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분양하지 않고 임차 형태로 판매 시설을 직영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 소규모 상점이 중구난방으로 들어오면 초고층 빌딩의 상징성과 동떨어진 이미지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구종균 부장은 “키테넌트로 6성급 호텔을 유치하기 위해 해외 유명 체인과 접촉 중인데 쉽지 않다. 부산 지역에 있던 특급 호텔 다섯 개 중 하나가 없어질 만큼 사정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라며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주거 시설 허용 추진해 자금 조달 문제 해결 노리기도 

▲ 부산광역시 광복동에 위치한 제2롯데월드 벤치마크타워. 현재 롯데백화점은 영업 중이고, 초고층 건물은 착공 전이다. ⓒ시사저널 임영무

부산시 중앙동에 들어설 부산롯데타운 내 초고층 빌딩은 상대적으로 키테넌트에 대한 부담이 적다. 롯데그룹이 백화점, 마트, 놀이동산, 호텔, 멀티플렉스 극장 체인 등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부에서 유치하지 못하더라도 자체적으로 채워나갈 여력이 있다. 지난해 12월18일 이미 백화점이 개점했고, 대형 마트와 멀티플렉스 극장은 올 중반에 완공될 예정이다.  

초고층 빌딩 사업 추진에서 가장 이슈가 되고 있는 것은 주거 시설 허용이다. 해운대관광리조트, WBC 솔로몬타워, 부산롯데타운 모두 당초 목적과 달리 주거 시설을 허가받기 위해 전력투구해왔다. 지난해 주거 시설 허용을 추진했다가 좌절된 부산롯데타운은 올해 재신청할 예정이다. 주거 시설 문제가 허용되기 전까지 구체적인 계획 수립도 유보된 상태이다. 박노경 부산롯데타운 CP프로젝트총괄팀장은 “초고층 빌딩에 주거 시설이 들어가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이다. 높은 분양가를 감당할 만한 사람이 있을지는 걱정이지만, 주거 시설이 들어가야 유지가 된다”라고 말했다.

결국,  부산시는 지난해 12월1일 해운대 관광리조트에 최고 9백95세대까지 아파트를 지을 수 있도록 허가했다. 전체 연면적의 45%에 해당하는 규모이다. 당초 관광 시설로 허가가 났지만, 부산시가 도시 계획까지 변경하면서 주거 시설을 허용한 것이다. 같은 달 24일에는 해운대 센텀지구에 들어설 월드비즈니스센터(WBC) 솔로몬타워에도 연면적의 40%까지 아파트를 지을 수 있도록 허가했다. 시행사측이 자금 조달 문제로 어려움을 겪으면서 지지부진한 사업에 활로를 뚫어주겠다는 것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이 과정에서 특혜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WBC 솔로몬타워 주거 시설 허용은 민간위원이 배제된 상태에서 고위 공무원들로만 구성된 시정조정위원회가 결정했다. 이에 대해 강성태 부산시의원은 “시장 의도대로 움직이는 실·국장들로 구성된 시정조정위원회에서 심의한 이유에 대해 의혹을 떨칠 수가 없다”라고 말했다. 해운대 관광리조트에 주거 시설 허용을 결정한 도시계획심의위원회에는 전·현직 공무원, 시의원, 시 연구 기관 출신 연구원 교수들이 전체 25명 중 15명을 차지한다. 이 중에서는 이 사업의 민간 시행사인 트리플스퀘어 감사와 용역을 발주받은 교수도 포함되어 있다. 반면, 시민단체를 대변하는 심의위원은 단 한 사람도 없다. 손동호 부산참여자치시민연대 사무처장은 “부산시 건설본부장을 지냈던 트리플스퀘어 감사는 재임 중 수뢰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던 인물이다. 12월1일 회의에서는 빠졌다고 해명했지만, 그날 빠졌다고 이 문제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았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주거 시설 허용이 회의 시작 30분 만에 결정되었다는 것도 사전에 확정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라고 주장했다.

특혜 의혹을 제쳐두고라도 주거 시설 허용이 초고층 빌딩 사업을 구원해줄 것인가에 대해 확신하기는 어렵다. 초고층 빌딩에 들어설 주거 시설은 아무래도 분양가가 높을 수밖에 없다. 평당 최소 2천만원에서 많게는 5천만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형 평수의 호화로운 주택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입지 조건이 좋다고 하더라도 절대적인 비용이 높다면 그곳에 입주할 여력이 있는 수요층에는 한계가 있다. 구종균 솔로몬그룹 부장은 “부산 전체 경기가 안 좋지만 해운대구는 사정이 조금 다르다. 부산이냐 해운대냐로 구분하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100층 건물 아파트라는 상징성과 희소성 때문에 충분히 승산이 있다. 주 고객층은 부산 시민들이지만 부산을 연고로 하는 다른 지역 사람들도 잠재 고객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사실상 구 도심에 위치한 부산롯데타운은 경쟁자로 생각하지 않는다. 해운대 관광리조트와 경쟁할 텐데 생활 공간이라는 면에서는 우리가 더 경쟁력이 있다”라고 덧붙였다.

부산 상징 ‘해운대’ 망쳐 놓을 것이라는 주장도 나와

초고층 빌딩 시행사들은 주거 시설 분양에 희망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부산 지역 아파트 최고 입지인 마린시티를 중심으로 대규모 주거단지가 마련되어 있는 상황에서 낙관적으로만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일본인을 중심으로 하는 외국인의 세컨드하우스 수요에도 기대고 있지만, 그러기에는 분양가가 너무 높아 보인다. 상업 시설 유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시행사들이기 때문에 주거 시설 분양이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으면 자금 확보에 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일단 지어놓고 보자는 식으로 자금을 끌어모았다가 분양에 실패할 경우에 그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엄청나다. 몇 년 전 버즈 칼리파와 비슷한 모양을 가진 건물이 무너지는 모습으로 음주 폐해를 보여주려던 캠페인 광고가 물의를 빚었던 적이 있었다. 상업 시설 확보와 주거 시설 분양에 실패할 경우 캠페인 광고가 보여준 충격적인 이미지가 현실화될 수도 있다.

시민단체와 일부 시의원을 중심으로 초고층 빌딩이 부산을 상징하는 해운대를 망쳐놓을 것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교통 문제, 환경 문제 등을 야기할 것이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교통 체증이 심한 해운대 지역에 주거 시설을 허용한 초고층 건물이 들어서면 교통 문제가 심화될 것이다. 특히 여름 성수기에는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해운대 관광리조트가 쏟아낼 엄청난 하수가 해운대 해변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환경 영향 평가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전일수 부산시의회 의원은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안선을 가진 해운대가 난개발 위기에 봉착해 있다. 무분별하게 초고층 빌딩 건설을 허용하는 것은 해운대를 망가뜨리는 짓이다. 처음부터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잘못되었다면 원점에서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라고 주장했다.

 

▲ ⓒ시사저널 임영무

 또 다른 걸림돌 ‘문현 금융단지’

문현 금융 중심 단지 조성은 현재 부산시가 가장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핵심 사업이다. 현지 지역 언론들도 초고층 빌딩보다는 문현 금융단지 조성 사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문현 금융단지는 지난해 1월21일 정부로부터 파생상품 및 해양 관련 특화 금융 중심지로 지정되었다. 한국거래소, 기술신용보증기금, 부산은행 등 금융 기관과 한국자산관리공사, 한국주택금융공사 등 부산으로 본사를 옮기는 금융 관련 공공 기관들이 입주할 예정이다. 부산시는 국제 금융도시로 거듭나겠다는 목표로 문현 금융단지를 성공적으로 조성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문현 금융단지가 위치해 있는 서면 지구를 활성화시켜 도시 개발 파급 효과도 노리고 있다.

문현 금융단지 조성 사업은 지난 1년간 별다른 진척 없이 지지부진했다. 부산파이낸스센터 통합 개발을 둘러싸고 일부 금융 기관 간에 이견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한국거래소가 아직 입주를 확정 짓지 않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부산시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섰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는 만큼 핵심 사업을 추진해 가시적인 결과를 얻어내기 위해서다. 부산시는 지난 2월19일 ‘부산파이낸스센터 발전위원회(가칭)’를 구성한다고 발표했다. 문현 금융단지 입주 금융 기관과 사업 시행자인 부산도시공사, 부산시 금융 중심지 기획단, 현대건설 등이 참여하고 허남식 부산시장과 김정훈 한나라당 국회의원이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문현 금융단지 조성 사업은 초고층 빌딩 사업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주요 임대업체인 금융 기관들이 문현 금융단지에 몰리면서 초고층 빌딩 사업자들로서는 주요 임대업체를 빼앗긴 꼴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사업 성공에 핵심이 되는 키테넌트(핵심 임대업체) 유치에 난항을 겪고 있는 초고층 빌딩 사업자들로서는 잠재 고객을 잃은 것이 앞으로 큰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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