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갈등, ‘파국’이 보인다
  • 감명국 (kham@sisapress.com)
  • 승인 2010.02.23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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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안 찬반 여론 격차 좁아지며 국민투표까지 거론돼…친이·친박, 사활 건 세 확보 경쟁 돌입

 

▲ 국무회의에 참석하는 이명박 대통령을 정운찬 국무총리가 뒤따르고 있다. ⓒ연합뉴스


서서히 지쳐가고 있다. 국민들도 짜증스러워 하고, 정치인들도 피로한 기색이 역력하다. 한때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여겨졌던 ‘세종시’가 이제 ‘계륵(鷄肋)’으로 바뀌고 있다. 마냥 쥐고 있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또 버릴 수도 없는 ‘골칫덩어리’로 전락한 듯하다. 계파를 불문하고 “어떤 식으로든 빨리 매듭을 지어야 한다”라는 목소리가 높다. 

 

정부와 ‘친이계’의 고민이 제일 클 수밖에 없다. 일을 벌여놓은 당사자로서의 책임론 때문이다. 세종시 수정안 처리 문제를 놓고 골머리를 앓는 모습이다. 이미 예상 시나리오는 좋지 않은 상황으로 접어들고 있다. 설 연휴가 지나고 여론의 반등을 노렸으나, 오히려 여론은 더 악화되었다. 설 연휴 직후 MBC와 동아일보가 잇따라 내놓은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에 대한 찬성은 42.8%와 45.0%로 각각 나타났다. 두 언론사가 한 달 전에 실시한 여론조사에 비해 하락한 수치이다. 반면 수정안에 대한 반대, 즉 원안에 대한 찬성은 39.6%와 40.9%로 상승했다. 찬반의 격차가 각각 3.2% 포인트와 4.1% 포인트에 불과하다. 오차 범위에 들었거나 거의 근접하게 좁혀진 수치이다. 지난 1월 많게는 17.3% 포인트(1월11일 한국일보 조사)까지 벌어졌던 간격이 더 벌어지기는커녕 오히려 좁혀진 것이다.

정부와 친이계는 당혹해하고 있다. “향후 찬반의 격차는 큰 변화 없이 지금의 7~10% 포인트 차로 고정될 것이다”라던 여론조사 전문가들의 전망보다 오히려 상황이 더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 지역의 한 친이계 핵심 의원은 “청와대나 당에서 실시한 자체 조사 결과는 또 다르다고 한다. 헷갈린다”라고 고개를 갸웃했다. 그는 “세종시 문제가 자꾸 정치적 문제로 변질되다 보니 제대로 여론 반영이 안 되는 것 같다. 간결하게 수정안의 내용은 이렇고, 원안의 내용은 이렇다 하는 것을 국민들에게 올바로 알리고 정확히 평가받는 작업이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중도 성향으로 분류되는 한 의원은 “국민들이 느끼는 피로감이 반감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이제는 세종시 말만 나와도 짜증난다고 하더라”라며 설 민심을 전했다.

설 연휴 전까지만 하더라도 세종시가 장기 표류할 가능성에 무게 중심이 실렸던 것이 사실이다. 어느 쪽도 양보가 안 되는 사안이고, 또 확실한 승리를 담보하기도 어려운 상황 탓이다. 반대로 패배했을 경우 받게 되는 타격은 엄청날 수밖에 없다. 여권 주류에서도 “세종시 문제가 표류할 경우 발목 잡은 친박계와 야권의 책임론이 불거질 수도 있다”라며 은근히 손해 볼 것 없다는 분위기를 보였다. 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게 돌아가고 있다. 국민들의 피로감과 짜증이 친박계와 야권이 아닌 청와대와 친이계로 쏠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동아일보 여론조사에서도 ‘세종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가장 큰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라는 질문에 38.3%가 이명박 대통령이라고 응답한 반면, 민주당 등 야당은 19.1%,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10.2%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친박계에서는 이참에 승세를 굳히려는 듯 여권 주류의 책임론을 들고 나오는 모습이다. 친박계의 최다선 중진인 홍사덕 의원은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대통령의 입장은 필시 다를 것이다. 그런데 이른바 주변 측근이라는 사람들이 일을 이렇게까지 벌여놓았다. 일을 벌인 사람들이 책임 지고 매듭지어야 한다”라며 정운찬 총리와 대통령 측근들을 비판했다. 그는 “대통령이 타격을 가장 덜 입는 방법으로 가야 한다”라는 말을 덧붙이기도 했다. 대통령을 분리시키면 정부와 친이계가 적당한 선에서 사실상 ‘항복 선언’을 할 수도 있다는 기대감을 드러낸 것이다. 

친이계도 바빠졌다. 소장파 의원들을 중심으로 세종시 문제에 대한 물밑 논의가 활발하다. 친이계의 한 중진 의원은 “어제도 여러 의원들과 이 문제에 대한 논의를 가졌는데, 마냥 지켜볼 것이 아니라 어떤 식으로든 빨리 정리를 해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하더라”라고 전했다. 최근 들어 부쩍 국민투표 가능성이 거론되는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 2월1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의원들이 세종시 수정안과 관련해 토론회를 갖고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국민투표로 세종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라는 주장을 제일 먼저 공식적으로 제기했던 심재철 의원은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많은 의원이 국민투표의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그 시기에 대해 좀 망설이는 것 같았다. 우선 다른 방법들을 먼저 찾아보고, 정 안 될 때 마지막 카드로 국민투표를 써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다른 방법들이 가능할 것 같지 않다. 결국, 국민투표 말고는 이 난국을 해결할 방법이 없다는 확신이 든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청와대에서도 지금 국민투표에 대해서 신중하게 검토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거듭 밝혔다. 상황에 따라서는 큰 파장을 일으킬 수도 있는 언급이었다. 이에 대해 청와대와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한 친이계 핵심 의원은 “청와대에서 비서관들이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염두에 두면서 당연히 그런 검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오히려 (그런 생각을) 안 하는 것이 더 이상하다”라며 큰 의미를 부여할 내용이 아니라는 뜻을 내비쳤다. 그는 “원론적인 입장인데, 자꾸 무언가 시나리오가 있는 것처럼 의혹 쪽으로 몰아가면 안 된다”라고 덧붙였다.

 

실제 청와대에서는 국민투표 가능성에 대해 다소 회의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사견임을 전제로 “국민 여론이 절대적으로 그것을 원한다면 모르겠지만, 국민투표로까지 가져가기는 좀 부담스럽지 않나 싶다”라고 밝혔다. 친이계 내부에서도 국민투표에 대한 반대 의견이 만만찮다. 자칫 일이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설령 세종시 문제로 성격을 명백히 국한한다 하더라도 일단 국민투표가 실시되면 세종시 문제는 뒷전이고, 이는 완전히 정권 심판론으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 너무 위험 부담이 크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국민투표 카드는 당분간 살아 숨쉬리라는 전망이다. 국회 정치력의 한계를 부각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청와대로서도 어느 정도 매력을 느낄 만하다는 얘기도 들려온다. 앞에서 언급한 친이계 인사의 전언처럼 청와대나 당에서 자체 여론조사를 실시하고 있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국민투표 가능성을 염두에 둔 때문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최근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국민투표에 대한 국민들의 찬성 여론이 높다(오른쪽 상자 기사 참조)는 점도 ‘국민투표론자’에게는 좋은 명분이 될 수 있다. 

친이계 핵심 인사로 통하는 정두언 의원은 1월19일 기자와 만나 “국민투표도 분명히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 전에 국회에서 무언가 시작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나. 국회에서 토론조차 못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원칙에서 벗어나는 것 아니냐”라며 친박계를 겨냥했다. 그는 “토론에 참가하지 않겠다는 의견도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안 하면 안 하는 대로, 참가하는 사람들만이라도 토론을 해야 한다. 정치권에서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고 그래도 안 되면 국민투표도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 2월1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의원들이 세종시 수정안과 관련해 토론회를 갖고 있다. 2월19일 서울 영등포 타임스퀘어에서 개최된 한나라당 전국위원회에서 소속 위원들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한나라당, 당론 변경 밀어붙이며 중도파에 선택 강요하기도

친이계 의원들이 말하는 국민투표 전의 방법은 ‘당론 변경’ 추진 쪽으로 모아지는 분위기이다. 국민투표로 갈 때 가더라도 그 전에 명분은 최대한 확보해야 한다는 차원인 것으로 풀이된다. 당론은 소속 의원들의 표결로 정해진다.

이 때문인지 최근 한나라당 주변에는 이른바 ‘편 가르기’ 싸움이 본격적으로 불붙은 양상이다. 올 연초 한 정치평론가가 “앞으로 여당에 더 이상 ‘중도’는 존재하기 어렵다. 이쪽이냐, 아니면 저쪽이냐 하는 명확한 선택을 강요받게 될 것이다”라고 한 전망이 현실로 다가오는 셈이다. 

중도 중에서도 가장 확실한 중도로 평가받는 한 초선 의원은 며칠 전 사석에서 기자에게 이런 얘기를 들려주었다. “요즘 기자들이 날더러 친박계에 가까워진 것 아니냐는 얘기들을 한다. 친박계 주변에서 내 이름이 부쩍 자주 거론된다는 것이다. 가만히 보니 내 주변에 자주 어울리는 친박계 의원이 많기는 했다. 얼마 전에는 평소 친하게 지내는 한 친박계 의원의 권유로 한 행사장에 따라갔는데, 그 자리에 모두 친박계 의원들만 있어서 행사 내내 자리가 불편했다”라는 것이다. 하지만 말과는 달리 이 의원은 기자와의 대화 도중 이따금씩 친박계에 대한 우호적인 입장을 감추지 않았다. 

한때 친박계의 좌장으로까지 일컬어졌던 김무성 의원은 지난 1월 말 친이계 의원의 스터디모임인 ‘아레떼’에 참가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그의 참가를 권유한 것으로 알려진 한 친이계 의원은 “그저 공부하는 모임이기 때문에 김의원에게만 권유한 것이 아니고, 다른 의원에게도 다 했다. 너무 계파적 시각으로 보지 말아달라”라고 밝혔다. 하지만 김의원이 최근 들어 눈에 띄게 친박계에서 친이계로 무게 중심을 옮긴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세종시와 관련한 그의 제안을 박근혜 전 대표가 “고려할 가치가 없다”라고 딱 자르는 바람에 두 사람 사이에 원심력은 더 커졌다. 원조 소장 개혁파로 상징되는 ‘남·원·정’(남경필·원희룡·정병국 의원)과 ‘민본21’ 등 중도 개혁파로 분류되는 인사들에 대한 친이계의 손길도 뜨거운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는 곧 명분 싸움이라는 말이 있다. 명분을 쌓기 위해서는 세(勢)가 필요하다. 앞으로 양 계파 간의 세 확산 경쟁이 노골적으로 전개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정부와 친이계가 지금의 정국 난항을 타개하기 위한 회심의 방안으로 국민투표라는 카드를 내밀 경우에도 명분이 뒷받침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세종시 논쟁은 당분간 더 계속될 전망이다.

 국민 여론은 ‘국민투표’가 대세

세종시 수정안을 국민투표에 부치자는 주장은 수도권 친이계 의원들을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다. 여기에 일부 한나라당 지도부가 동참하면서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되었지만, 아직 소수 의견에 그치고 있다. ‘국민투표론’이 힘을 얻으려면 결국 여론의 뒷받침이 필요하다.

최근 설 연휴를 전후해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를 살펴보면 ‘국민투표론’은 힘을 얻고 있는 모양새이다. 2월9일 ‘문화일보-디오피니언’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투표에 찬성하는 의견이 51.8%인 반면, 국회의원들의 표결로 결정해야 한다는 의견은 31.0%에 불과했다. 다른 조사 결과도 비슷하다. 2월10일 여론조사 기관 ‘리얼미터’가 실시한 조사에서도 국민투표에 찬성하는 의견(50.7%)이 국회 표결 의견(38.0%)보다 높았다. 2월12일 여론조사 기관 ‘매트릭스’의 조사 역시 국민투표(60.3%)와 국회 의결(31.4%) 사이에 큰 격차가 나타났다.

동아일보의 조사도 비슷한 흐름이다. 설 연휴가 끝난 직후인 지난 2월16일 ‘코리아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조사에서 국민투표에 찬성하는 의견(45.9%)이 국회 표결에 찬성하는 의견(24.3%)보다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2월17일 MBC 조사 역시 국민투표 의견(47.5%)이 국회 처리 의견(38.5%)보다 많았다.

국민투표 의견이 많은 이유로는 세종시 문제가 중대한 문제라는 국민적 인식이 깔려 있다는 점과 정치권의 문제 해결 능력을 더 이상 국민들이 믿지 못한다는 점이 주로 거론된다. 설령 국민투표가 이루어지더라도 국민투표를 주장하는 측의 바람대로 수정안이 통과될지는 미지수이다. 이전 조사보다 수정안 찬성 의견은 줄어든 반면, 원안 고수 의견이 늘어난 것 또한 최근 여론조사에 나타난 흐름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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