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상회담, 상반기에는 어렵다
  • 양무진 | 경남대학교 북한대학원 교수 (sisa@sisapress.com)
  • 승인 2010.02.09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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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6자회담 복귀 문제·국내 정치 일정 등 장애물…너무 앞선 공론화로 혼란 부르지 말아야

▲ 현지 지도를 하고 있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가운데). ⓒ로이터


올해 들어 그 어느 때보다 남북 정상회담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1월29일 영국 BBC 방송과의 인터뷰를 통해 “김정일 위원장을 연내에 만날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말한 이후, 다음 날 CNN 인터뷰에서 “그랜드바겐에 대해 협의할 수 있다”라고 밝힌 것은 주목된다. 남북 정상회담의 일방 당사자가 단지 그 가능성을 넘어 협의 의제까지 구체적으로 언급한 셈이다.

사실 지난 1, 2차 남북 정상회담은 남북 관계의 특수성을 반영하듯 극비리에 합의하고 이벤트성으로 추진된 측면이 있었다. 2000년 1차 남북 정상회담은 남북 관계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하지만 정상회담 개최에 따른 사전 대가 문제와 정상회담 이후 증폭된 남남 갈등으로 얼룩졌다. 2007년 2차 정상회담은 너무 늦게 추진됨으로써 합의에 따른 후속 조치가 제대로 진행되기도 전에 정권이 교체되는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이전과는 여러모로 다르다는 점에서 남북 정상회담의 전망을 더욱 밝게 하고 있다.

먼저 남북 관계 차원에서 살펴보자. 그동안 이명박 정부는 북핵 문제의 선 해결과 남북 관계의 원칙만을 강조해왔고, 북한 역시 자존심 대결로 일관했다. 결국, 이제는 양측 모두 꼬일 대로 꼬인 남북 관계를 푸는 길은 정상 간 만남밖에 없다는 데 어느 정도 공감하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집권 3년차에 접어든 이대통령도 남북 관계를 발전시켜나가기 위해서는 올해밖에 시간이 없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 이대통령이 6자회담과 남북 대화를 통해 이른바 평화 구도를 정착시키겠다고 야심차게 공표한 ‘그랜드바겐’ 및 ‘한반도 신평화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남북 정상회담은 필수적이다. 특히 여러 언론에서 분석하고 있는 바와 같이 올해는 지방선거라는 정치 일정이 있고, G20 서울총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하는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서 한반도 신평화 구상의 밑그림을 조속히 그려나갈 필요가 있다.

북한 역시 남북 정상회담의 수요가 그 어느 때보다 크다. 로켓 발사와 핵실험 이후 유엔의 제재 조치로 국제 투자는 위축되고 무역저조에 따른 만성적인 경제난이 심화되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체제 유지와 주민 통제를 위해 단행한 화폐 개혁은 물가 불안과 공급난을 가중시켜 성공 여부가 불투명하다. 이대로라면 신년 공동 사설에서 두드러지게 강조한 ‘인민 생활에서의 결정적 전환’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정치적으로도 2012년 강성대국 건설과 후계 구도를 조기에 확립하기 위해서도 남북 관계에서 분위기를 유화적으로 조성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국제적으로도 6자회담 재개가 가시화되고 있다. 미국 입장에서도 6자회담이 장기간 답보하는 것은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다. 특히 4월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주도하는 핵 안보정상회의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올려야 한다는 측면에서 분위기 반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겉으로는 북한이 조건 없이 6자회담에 복귀하기를 기대하는 모습이다. 북한이 최근 들어 평화 협정 문제를 부각시키는 목적은 결국 6자회담의 공이 북한으로 넘어가 있고, 6자회담 복귀가 임박했으며, 이에 따라 사전에 의제를 선점하려는 의도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김정일 위원장으로서는 6자회담 복귀의 명분을 감안할 때 빠른 시일 내에 중국을 방문해 의향을 밝히고, 6자회담 복귀 및 남북 정상회담으로 이어지는 수순을 저울질할 가능성이 크다.

남북 정상회담의 시기와 관련해 여러 가지 시나리오가 나오고 있지만, 상반기 추진은 어렵다고 보여진다. 일단은 북한의 6자회담 복귀가 선행되어야 하며, 핵 문제와 관련된 분위기도 무르익어야 한다. 국내 정치 일정뿐 아니라, 실제 회담 준비 일정 등을 감안해도 그렇다. 6월 지방선거 이전에 세종시 문제, 한나라당 내부 갈등 등 정치 현안이 산적해 있으며, 정상회담 추진에 따른 보수 세력의 반발을 어떻게 희석시키느냐 하는 것도 변수이다.

남북 간 산적한 현안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자리 되어야

▲ 다보스포럼에 참석한 이명박 대통령이 영국 BBC 방송 앵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각에서는 “남북 정상회담이 단순히 6자회담의 재개와 관련된 정치적 이벤트가 되어서는 안 된다. 실질적으로 남북 관계의 진전을 이루기 위한 진정성 있는 회담이 되어야 한다”라고 강조한다. 남북 대화가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당연히 추진되어야 한다. 그러나 북핵 문제는 역사적으로 북·미 간 갈등의 산물이다. 6자회담이 재개된다 하더라도 북·미 간 신뢰 관계가 일순간에 형성되기는 어렵다. 이것은 남북 관계를 통해 6자회담을 견인하는 데는 어느 정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방증한다. 따라서 남북 정상회담은 남북 고유의 산적한 현안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남북 정상회담은 납북자·국군 포로·이산 가족 문제 등과 같은 인도적 문제를 제도적으로 해결해야 함과 동시에, 과거사 화해 및 상호 존중의 문제와 같은 정치 사안, 서해 해상에서의 긴장 완화를 포함한 군사적 신뢰 구축의 문제 등 안보적 문제에 대한 해법도 동시에 찾아나가야 한다. 이미 이대통령이 제의한 바 있는 상주연락사무소 설치 문제도 남북 간 합의를 제도화해나가는 기반이 된다는 점에서 반드시 관철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편, 북한이 그 어느 때보다 남북 정상회담 개최를 갈망하고 있기 때문에 정상회담을 위한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는 식의 해석은 곤란하다. 북한이 실질적으로 남북 관계의 진전을 바라고 남북 정상회담에 접근하고 있는 것인지, 단지 핵 문제나 납북자 문제 등을 빌미로 경제 지원을 이끌어내려는 숨은 의도가 있는지를 냉철하게 따져보아야 한다. 따라서 세 번째를 맞는 남북 정상회담은 현재 북한의 상황과 남북 정상회담 이후의 남북 관계를 앞서 내다보는, 즉 단순히 ‘그랜드바겐’을 넘어 ‘그랜드 플랜’을 제시하는 대계(大計)를 만들어내야 함은 분명하다.

현재 남북 정상회담과 관련된 공식적인 움직임이 없음에도 시기와 장소, 의제 등이 산발적으로 거론되는 등 국민을 혼란스럽게 하는 측면이 있다. 남북 정상회담이 추진되기도 전에 정치권과 진보·보수 세력들 간에 소모적인 논쟁과 갈등을 유발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이대통령도 정상회담에서의 ‘원칙’과 ‘비(非)대가성’을 강조하는 등 이미 보수층의 반발을 의식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남북 정상회담이 한반도 평화의 새로운 지형을 그리고 북핵 문제 해결과 남북 관계 진전에 획기적인 성과를 거두기를 진정으로 바라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차분하고 신중한 접근과 대응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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