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색 탄환’의 질주와 피겨 한·일전 ‘뜨거운 관심’
  • 신명철 | 인스포츠 편집위원 ()
  • 승인 2010.02.09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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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올림픽 종목별 유망주들과 주목되는 경기 / 흑인과 아시아인의 ‘괄목상대’에 전세계 시선 쏠릴 듯

▲ 제20회 토리노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천m에서 흑인 최초로 개인 종목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미국 샤니 데이비스 선수. ⓒ연합뉴스


눈과 얼음의 잔치인 제21회 밴쿠버 동계올림픽이 전세계 80여 개국, 5천5백여 명의 선수가 출전한 가운데 2월12일(이하 현지 시간) 개막해 2월28일까지 15개 종목에 걸쳐 17일간의 열전을 펼친다. 한국의 김연아를 비롯한 동계 종목 우수 선수들이 이번 대회를 통해 올림픽 스타로 탄생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동계올림픽을 빛낼 국내외 선수들 중에는 누가 있을까.

<스피드 스케이팅> 최고 스타 후보 0순위, 샤니 데이비스  

하계올림픽의 기본 종목이 육상이듯 동계올림픽의 메인 이벤트는 스피드스케이팅이다. 주 종목답게 크로스컨트리 스키 등과 함께 가장 많은 12개의 금메달이 걸려 있다. 이번 대회의 최고 스타도 스피드스케이팅에서 나올 가능성이 크다. ‘빙판 위의 흑색 탄환’이라는 다소 생소한 별명과 함께.

지금부터 꼭 4년 전인 2006년 2월19일 미국의 흑인 선수 샤니 데이비스는 토리노 오발링고토에서 벌어진 토리노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천m 경기에서 1분08초89로 결승선을 통과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1924년 제1회 대회가 샤모니에서 열린 이후 동계올림픽에서 흑인 선수가 개인 종목에서 우승한 것은 데이비스가 처음이었다.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대회에서 보네타 플라워스(미국)와 제롬 이긴나(캐나다)가 각각 금메달을 땄지만 플라워스는 봅슬레이 여자 2인승, 이긴나는 남자 아이스하키 선수였다.

더운 지방에 사는 흑인이 겨울철 종목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영화 <쿨러닝>이 화제가 되었던 까닭이기도 하다. 그러나 미국 또는 겨울철이 있는 나라에서 오랜 기간 살아온 흑인들마저 동계 종목에 적응하지 못한 것은 신기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흑인은 물과 관련된 스포츠, 즉 수영과 빙상에는 약하다는 속설이 이렇다 할 과학적인 근거 없이 오래도록 이어져오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속설도 데이비스의 등장으로 깨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번 대회를 통해 1936년 베를린 하계올림픽에서 미국의 흑인 선수 제시 오언스가 육상 단거리 3개 종목과 멀리뛰기에서 금메달 4개를 차지하며 세계인을 놀라게 했던 것만큼이나 경이로운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데이비스는 애초 5백m와 1천m, 1천5백m, 5천m 그리고 1만m 등 스피드스케이팅의 모든 세부 종목에 출전해 1980년 레이크플래시드 대회 전관왕인 에릭 하이든(미국)의 대기록에 도전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미국스피드스케이팅연맹은 지난 1월28일 “데이비스가 밴쿠버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1만m에 출전하지 않기로 했다. 단거리 종목에 집중하려는 조치이다”라고 밝혔다.

데이비스의 주 종목은 1천m와 1천5백m이다. 이 두 종목에서 세계 최고 기록을 갖고 있다. 모든 세부 종목 출전은 무산되었지만, 한때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로 활약해 순발력이 뛰어난 만큼 단거리인 5백m에서도 금메달을 기대하고 있다. 토리노 대회 1천5백m 은메달리스트이기도 한 데이비스는 이번 대회에서 다시 한 번 다관왕에 도전한다.  

<피겨스케이팅> 2연속 우승 도전하는 아사다는 ‘불안’

1992년 알베르빌 대회의 이토 미도리(일본, 동메달), 1994년 릴레함메르 대회와 1998년 나가노 대회의 루천(중국, 동메달), 2006년 토리노 대회의 아라카와 시즈카(일본, 금메달).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종목에서 메달을 딴 아시아 선수는 겨우 이 3명이다. 상당수 국내 스포츠팬은 중국이 이 종목에서 이미 올림픽 메달리스트를 배출했다는 사실을, 김연아의 등장 이전에는 알고 있지 못했을 것이다. 어쨌거나 이들 아시아 선수가 나타나기 전까지 세계 여자 피겨스케이팅계는 온통 유럽과 미국 선수들 판이었다. 동계올림픽 초창기 3연속 우승에 빛나는 ‘여자 피겨스케이터의 전설’ 소냐 헤니(노르웨이)에서부터 페기 플레밍(미국)을 거쳐  카타리나 비트(옛 동독)에 이르기까지.   

그러나 최근 세계 여자 피겨스케이팅계는 한국과 일본이 양분하고 있다. 특히 일본은 2010년 2월 현재 국제빙상경기연맹(ISU) 랭킹 20위 안에 아사다 마오(3위), 스즈키 아키코(6위), 안도 미키(7위), 나가노 유카리(15위), 수구리 후미에(16위) 등 5명의 선수를 올려놓고 있을 정도로 선수층이 두껍다. 물론 1위는 김연아이다.

2009~2010 시즌에 고전을 거듭하며 그랑프리 파이널에도 진출하지 못했던 아사다는, 1월29일 전주 화산아이스링크에서 열린 ISU 4대륙피겨선수권대회에서 183.96점으로 금메달을 차지하며 슬럼프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이 점수는 자신의 최고 점수인 201.87점에 많이 못 미치는 데다 김연아의 최고 점수인 210.03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그래도 일본의 희망은 아사다일 수밖에 없다. 4대륙선수권대회 1위까지 더해 일본 선수로는 처음으로 국제 대회 10회에서 우승을 한 자국의 간판 스타이기 때문이다.

<쇼트트랙> 왕멍, ‘중국의 전이경’을 꿈꾼다

중국은 쇼트트랙에서 한국을 끈질기게 따라붙고 있다. 중국이 쇼트트랙에서 획득한 올림픽 메달은 금 3개, 은 18개, 동 16개로 세계 최강 한국의 금 17개, 은 7개, 동 5개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나름으로 실력을 갖추고 있다. 은메달과 동메달이 많은 것은 수많은 1위 싸움에서 한국에게 밀렸기 때문이다. 중국의 금메달 3개는 모두 여자가 땄다. 그 가운데 하나가 2006년 토리노 대회 5백m에서 왕멍이 얻은 것이다. 나머지 2개는 국내 팬들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는 양양(A)이 획득했다. 양양은 토리노 대회를 끝으로 은퇴했다.

왕멍은 토리노 대회에서 한국의 3관왕인 진선유에게 밀렸지만 5백m 금메달 외에 1천m 은메달, 1천5백m 동메달을 차지하며 다음 대회를 기약했다. 왕멍은 2008년 세계선수권대회 여자부 종합 1위에 이어 지난해 3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또다시 종합 1위에 올랐다. 한국 여자 쇼트트랙이 잠시 주춤한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특히 2009~2010시즌 ISU 쇼트트랙 월드컵 시리즈 5백m 종목에서는 4개 대회 연속으로 우승하면서 이번 대회에서 확실한 금메달 후보로 떠올랐다. 왕멍의 강점은 뛰어난 순발력을 바탕으로 한 스타트 그리고 지칠 줄 모르는 체력이다.

왕멍은 2월1일 신화통신과 인터뷰에서 “우리의 목표는 한국을 물리치는 것이다. 4년 전 토리노 대회 때보다 정신력은 물론 체력적으로도 훨씬 강해졌다. 자신 있다”라고 밝혔다. 왕멍의 이 말은 곧 자신이 세계 최고의 여자 쇼트트랙 선수가 되겠다는 뜻이다.

<아이스하키> 캐나다, 아이스하키 종주국의 자존심 세울까

▲ 2009년 12월 세계 주니어 아이스하키 챔피언에 오른 캐나다 대표팀이 우승컵을 안고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역대 동계올림픽 아이스하키 경기에서 가장 극적인 승부로는 1980년 레이크플래시드 대회에서 벌어진 미국 대 옛 소련의 경기가 꼽힌다. 이 대회에 출전한 옛 소련은 1964년 인스부르크 대회 이후 4회 연속 올림픽에서 우승하는 등 당시 최강의 전력이었다. 그 무렵 옛 소련을 비롯한 동유럽 선수들은 사실상 프로 선수들이었다. 그러나 대학 선수들로 꾸려진 미국은 옛 소련을 4 대 3으로 꺾고, 핀란드를 4 대 2로 잡는 등 선전을 거듭한 끝에 1960년 스쿼밸리 대회 이후 20년 만에 정상을 되찾았다. 이 대회에 출전한 미국 아이스하키 선수들의 이야기는 훗날 영화 <미러클>로 제작되기도 했다. 국내의 일부 기록에서는 미국이 옛 소련을 결승에서 꺾은 것으로 전하고 있으나 두 나라는 예선 리그 청(靑)조와 적(赤)조에서 각각 2위와 1위를 한 뒤 결승 리그에서 맞붙었다.    

이번 대회 남자부의 강력한 우승 후보는 홈 링크의 이점을 안고 있는 캐나다이다. 1920년 앤트워프 하계 대회에서 처음으로 치러진 아이스하키에서 우승한 캐나다는 이후 1932년 레이크플래시드 대회까지 4연속 우승하는 등 금메달 7개, 은메달 4개, 동메달 2개라는 성적을 올렸다. 여자부는 1998년 나가노 대회에서 처음 정식 종목으로 치러졌고 캐나다가 두 차례, 미국이 한 차례 우승했다. 

아이스하키 세계 최고 수준의 리그인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는 1917년 몬트리올 캐너디언스와 오타와 새너터스, 토론토 에리어스 등 4개 구단으로 출발해 오늘날 30개 구단으로 운용되고 있다. 2010년 현재 토론토 메이플 리프스, 캘거리 플레임스, 밴쿠버 커넉스 등 캐나다에 연고지를 둔 구단이 6개나 있다. 이번 캐나다 대표팀에는 시드니 크로스비, 마크 안드레 플러리(이상 피츠버그), 패트리스 버게론(보스턴), 코리 페리(애너하임) 등 미국 지역의 NHL 구단에서 활약하고 있는 캐나다 선수들이 여럿 포함되어 있다. 올림픽 초창기 기세를 올리던 캐나다는 NHL 선수들이 처음으로 올림픽에 출전한 1998년 나가노 대회에서 4위에 그쳤지만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대회에서는 1952년 오슬로 대회 이후 50년 만에 정상을 되찾는 기쁨을 누렸다.

이번 대회에서는 캐나다와 같은 7차례 우승에 빛나는 러시아(2009년 세계선수권대회 1위)와 1998년 나가노 대회 우승국 체코, 2006년 토리노 대회 1위 스웨덴 등이 캐나다와 올림픽 챔피언 자리를 놓고 다툴 전망이다.

주류 스포츠 장벽 깨고 내달린 흑인들

흑인은 동계 스포츠 종목에서는 추격자이지만 하계 스포츠 종목에서는 이미 지배자이다. 타고난 유연성과 순발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흑인의 우월함이 돋보이는 대표적인 종목 가운데 하나가 복싱이다. ‘갈색 폭격기’로 불린 조 루이스를 비롯해 플로이드 패터슨, 캐시어스 클레이(무하마드 알리), 조지 포먼 등으로 이어지는 미국의 흑인 헤비급 복서 계보는 그 자체가 세계 프로복싱의 역사이다.

미국의 4개 메이저 프로 스포츠 종목 가운데 아이스하키를 뺀 미식축구, 야구, 농구에서 흑인 선수들은 각 팀의 주력 선수로 맹활약하고 있다. 오랜 기간 백인들의 전유물이다시피 했던 테니스도 1960년대 아서 애시(미국)가 등장하면서 흑인들의 활약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애시는 흑인으로는 처음으로 데이비스컵 미국대표 선수로 뽑혔고 윔블던 등 주요 국제 대회에서 지미 코너스(미국), 비외른 보리(스웬덴) 등 백인 경쟁자들과 싸우면서 수많은 우승 기록을 남겼다.

지난 1월30일 멜버른파크에서 열린 2010년 호주오픈 테니스대회 여자 단식 결승에서 쥐스틴 에넹(벨기에)을 2 대 1로 꺾고 2연속 우승을 차지한 미국의 서리나 윌리엄스는 ‘흑진주’라는 별명대로 흑인이다. 윌리엄스는 이 대회에서만 5번째, 메이저 대회를 통틀어서는 12번째 정상에 올랐다. 이전의 여자 테니스 우수 선수는 빌리 진 킹(미국),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체코) 등 백인 일색이었다.

재키 로빈슨이 1947년 브루클린 다저스(현 LA 다저스)에 입단해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 리그에서 흑백 인종 장벽을 깬 사실은 야구팬이 아니더라도 어지간한 스포츠팬이면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전에 미국의 흑인 야구 선수들은 ‘니그로리그’라는 그들만의 리그를 벌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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