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은의 ‘공격 경영’, 무엇을 노리나
  • 이석 (ls@sisapress.com)
  • 승인 2010.02.02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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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유엔아이를 그룹 정점에 세우고 지배 구조 개편 착수…현대건설 인수에도 적극적

ⓒ연합뉴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그룹 지배 구조 재편에 나섰다. 그룹 지배 구조의 정점에 현대유엔아이를 배치했다. 현대유엔아이는 지난 2005년 설립된 정보기술(IT) 서비스 업체로 비상장 업체이다. 현대유엔아이는 지난해 6월과 12월 두 차례에 걸쳐 현대택배 지분 24.5%를 인수했다. 현대택배는 주요 계열사인 현대엘리베이터와 현대상선을 자회사와 손자회사로 거느리고 있다. 이로써 현대유엔아이→현대택배→현대엘리베이터→현대상선으로 이어지는 출자 구조가 만들어졌다. 매출 6백억원에 불과한 IT 서비스업체가 현대택배, 현대엘리베이터, 현대증권, 현대상선으로 이루어진 그룹사의 지주회사로 부상했다.

현대유엔아이의 최대 주주는 현정은 회장이다. 지분 68%를 보유하고 있다. 맏딸인 정지이 현대유엔아이 전무도 지분 9%를 보유하고 있다. 오너 일가 기업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현회장은 현대택배 지분 12.61%도 보유하고 있다. 현회장은 자신이 안정 지분을 확보한 비상장 계열사를 그룹 지배 구조의 정점에 올린 것이다. 그룹 안팎에서는 비상장 계열사 움직임을 눈여겨보고 있다. 비상장 계열사 두 곳을 상장하고 이로 인해 끌어들인 자금으로 주력 회사 지분을 추가 매입하거나 현대건설을 인수한다는 시나리오까지 나오고 있다. 

현대그룹은 ‘계열사 경영난 타개 조처’라고 설명한다. 현대상선이 적자를 보전하고자 자사가 보유한 현대택배 지분을 현대유엔아이에게 넘겼다는 것이다. 이와 달리 그룹 안팎에서는 현대유에아이가 그룹 경영권을 안정시키기 위해 전략적으로 키우는 업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숙질의 난’(2003년)과 ‘시동생의 난’(2006년), 금강산 및 개성 관광 중단(2008년), 주력 계열사 실적 악화(2009년)가 잇따랐다. 지배 구조가 취약하다 보니 적대적 M&A(합병·매수) 위협이 상존하고 있다. 정재규 한국기업지배 구조센터 평가조정실장은 “현대그룹은 그동안 은행권 등 우호 지분을 통해 M&A 위협을 막아왔다. 하지만 이들과의 계약 만기가 다가오면서 지배 구조 문제가 노출될 개연성은 얼마든지 남아 있는 상태이다”라고 지적했다.

현대유엔아이는 그동안 그룹 계열사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급성장했다. 계열사들의 지원에 힘입어 지난 2008년에는 4백50억원, 2009년에는 6백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번 돈으로 핵심 계열사 지분을 꾸준히 매입했다. ‘실적 악화를 보전하기 위한 조처’라고 치부하기에는 석연치 않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오너 일가가 최대 주주인 회사에 일감을 몰아주는 것은 자칫 계열사 밀어주기로 오해받을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최영태 참여연대 조세개혁센터 소장도 “SK그룹과 현대·기아차그룹은 각각 비상장 계열사인 SKC&C와 글로비스에 일감을 몰아 급성장시킨 사례가 있다”라고 말했다.

현대유엔아이 대표이사는 이기승 현대그룹 기획총괄본부장이 맡고 있다. 이기승 본부장은 은행 출신으로 현회장 체제 이후 영입된 첫 외부 인사이다. 그동안 그룹 수익 구조를 개선하고 지분 구조를 정리하는 일을 주도하면서 경영권 안정화 작업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대유엔아이는 현회장이 그룹 지배 구조와 관련해 새 판을 짜는 데 핵심 역할을 담당하리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로써 정몽헌 회장 타계 이후 흔들렸던 지배 구도를 안정화하고 2세 승계까지 감안한 새 틀을 완성해 명실상부한 ‘현정은표’ 현대그룹이 완성될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현대유엔아이는 최근 컨설팅회사인 현대투자네트워크와 광고회사 아이에스엠지코리아를 인수했다. 현대투자네트워크 지분 20%를 현회장의 외아들인 정영선씨가 보유하고 있다. 현회장은 현대유엔아이가 보유했던 현대투자네트워크 지분 30%를 넘겨받았다. 현대투자네트워크는 계열사 사옥 매입을 자문하는 것을 통해 매출을 높이고 있다. 현대유엔아이가 지분 40%를 보유한 아이에스엠지코리아도 그룹의 전폭적인 지원을 업고 급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경제연구소 관계자는 “각 계열사의 광고 매출만 합해도 상당한 액수가 나온다. 비상장 계열사들이 몸집을 불려, 오너 일가의 또 다른 수익원으로 떠오를 수도 있다”라고 전망했다.

흩어져 있던 계열사들도 한자리에 모아

▲ 지난 2006년 8월4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가운데)과 임직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금강산에서 고 정몽헌 회장 3주기 추모제가 열리고 있다. 왼쪽은 정지이 전무. ⓒ사진공동취재단

이와 함께 현회장은 계열사 간 결속력을 높이려는 조처를 단행했다. 현대그룹은 오는 3월 서울 종로구 연지동 신사옥에 입주한다. 그동안 계열사들은 계동 사옥, 광화문, 여의도 사옥에 흩어져 있었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연지동 사옥에 계열사들을 모은 것은 계열사 및 직원의 역량을 결집시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라고 말했다.

그룹 숙원 사업인 현대건설 인수전에도 참여하겠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현대건설은 현대그룹의 모태이기에 앞서, 대북 사업에 키를 쥐고 있는 회사이다. 대북 경협 사업이 본궤도에 오를 경우 현대아산과 함께 북측 SOC(사회간접자본) 사업에 참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현대증권, 현대상선, 현대택배, 현대엘리베이터 등 그룹 계열사와 연계해 사업 다각화를 모색할 수도 있다. 현회장 역시 현대건설을 인수하는 것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올해 신년사를 통해 “현대건설 인수는 그룹의 미래를 위해 포기할 수 없는 신성장 동력이다. 매각이 시작될 때 차질 없이 인수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라고 당부할 정도였다.

현회장이 공개적으로 현대건설 인수 의지를 내비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신년사에서도 신성장 사업을 발굴하는 차원에서 현대건설 인수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그동안은 관심 수준에 머물렀다. 이번과 같이 현대건설 인수가 우선 과제라고 분명히 밝힌 적은 없었다. 이는 현대그룹이 처한 환경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현대건설은 현재 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현대상선의 지분 8.3%를 보유하고 있다. 이 지분을 인수해 그동안 문제로 지적되어왔던 그룹의 지배 구조를 완성하겠다는 노림수가 있다는 것이 그룹 안팎의 시각이다. 좋은기업지배 구조연구소의 한 연구원은 “현대상선만 인수하면 그룹 계열사 대부분을 손에 넣게 되기 때문에 그동안 적대적 M&A 시도가 끊이지 않았다. 현대건설 인수는 계열사 간 시너지 효과 증가와 함께 안정적인 지배 구조를 완성하는 계기가 된다. 이를 통해 현정은 회장은 정통성을 회복하고 그룹에 대한 장악력을 높이려 하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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