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떠나는 외신기자들
  • 이은지 (lej81@sisapress.com)
  • 승인 2010.01.26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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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사 구조조정 여파로 속속 이임…‘CNN 한국 철수설’도 나돌아

▲ 2001년 11월 한 행사장의 미디어센터에서 취재 중인 외신기자들(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계 없음). ⓒ사진공동취재단


해외 유력 언론사의 주재 기자들이 속속 한국을 떠나고 있다. 언론사의 규모에 관계없이 구조조정의 여파가 강하게 불고 있다. <시사저널> 취재 결과 지난 한 해 동안 5~6명의 외신기자가 벌써 한국을 떠났거나 휴직을 했다. 그 공백은 일본이나 중국 등에 체류 중인 외신기자들이 메우고 있다. 현재 외신기자 한 명이 동북아 전체를 담당하는 언론사도 상당수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까지 구조조정에 들어간 해외 매체는 세 군데 정도로 파악된다. 한국에 13명의 기자를 두었던 블룸버그 뉴스는, 지난해 두 명의 기자를 줄여 현재 11명이 업무를 하고 있다. 한 명은 일본 도쿄로 갔고, 한 명은 회사를 떠났다. 독일 권위지인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너 자이퉁도 한국 사무실이 문을 닫으면서 기자 한 명이 사직한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포스트 한국 주재기자 자리도 현재 공석인 상태이다. 담당 기자가 건강상의 이유로 휴직을 한 이후 대체 인력을 뽑지 않고 있다. 

중국·일본 등 체류 기자가 역할 떠맡아

올해에는 이런 현상이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2008년부터 불어닥친 금융 위기가 원인이다. 언론사들의 수익률이 급감하자 구조조정에 들어갔고, 그 여파가 외신기자에까지 불어왔다.

유력 언론사라고 예외는 아니다. 우선 CNN 한국 지사의 철수설이 나오고 있다. CNN에서 15년간 기자로 활동한 손지애 서울지사장은 현재 G20 정상회의 대변인으로 임명되었다. 손지사장은 “내가 떠나고 난 뒤에 대신할 기자가 올지 안 올지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지사를 철수하는 것도 정해지지 않았다”라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업계 관계자들의 전망은 다르다. CNN에서 일했던 구 아무개 기자는 “CNN이 아시아 시장을 정리하면서 중국과 일본 지사는 그대로 두고 한국에서만 철수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전했다.

CNN은 지난해 10월 ‘뉴스케이블 채널 부문 시청률 꼴찌’라는 수모를 겪으면서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CNN을 소유한 타임워너의 수익률도 급감했다. 지난해 3분기 타임워너의 순이익은 전 해보다 38%가 줄어든 6억6천100만 달러에 그쳤다. CNN이 30개의 세계 지사를 정리해 수익률 악화를 만회할 것이라는 예상이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는 이유이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한국은 물론 일본까지 사무실을 없애고 집에서 근무하면서 아시아 전체를 담당하는 쪽으로 방향을 튼 것으로 알려졌다.

구조조정 여파를 비껴간 외신기자들이라고 해서 상황이 좋은 것은 아니다. 이들은 “경비 감축에 대한 압박이 상당하다”라고 말한다. 한 외신기자는 “사진기자를 두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큰일이 생겨서 사진기자를 하루 고용하면, 그날 다른 사진까지 몰아 찍어서 본전을 뽑아야 한다. 이것마저 눈치를 봐가며 본사에 신청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프리랜서 취재기자를 활용하는 비율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이 역시 경비 절감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일종의 구조조정인 셈이다. 크리스찬사이언스모니터의 도널드 커크(Donald Kirk) 기자는 지난해 프리랜서로 전향했다. 현재는 한국에 뉴스거리가 생길 때마다 본사 지시를 받아 취재를 하고 있다. 

외신기자들이 구조조정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좀 되었다. 하지만 올해 들어 상황이 더욱 나빠져 구조조정이 현실화 단계로 접어든 것이다. 을지대 홍보디자인학과 유재웅 교수는 “외국 언론들이 한국에 특파원을 파견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 따져보기 시작했다”라고 진단했다. 그동안 한국은 세계 유일의 분단 국가로서 북핵 문제 등 국제적 이슈로 주목을 받아온 지역 중 하나였다. 여기에 신흥 경제 대국으로 자리 잡으면서 언론사 주재국으로 분류되었지만, 이제는 그 위치마저 흔들리는 상황에 놓인 셈이다.

외신기자협회장을 지낸 한 인사는 “경영상의 압박과 뉴스 가치가 줄어들면서 한국뿐 아니라 일본에 주재하는 외신기자들도 줄어들고 중국 쪽으로 많이 옮겨가는 추세이다”라고 말했다. 외신기자가 한국을 떠나면 세계에 한국을 알릴 수 있는 기회가 그만큼 줄어들 수 있다. 전문가들은, 억지로 기자들을 붙잡아둘 수는 없겠지만 진행 속도라도 더디게 만드는 대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유교수는 “외국 언론이 관심을 가질 만한 정보를 정확하게 제공하는 능동적인 자세와 체계적인 시스템이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은 멀어 보인다. 외국 언론의 관심이 높은 출입처인 외교부·국방부·통일부 등 핵심 부처에조차 외신 전문 대변인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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