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 프리미엄’ 벽 높다
  • 김회권 (judge003@sisapress.com)
  • 승인 2010.01.12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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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기획 시리즈 ‘2010 지방선거 현장을 가다’ <시사저널>·미디어리서치 공동 여론조사 부산시 / 허남식 현 시장 독주 체제…오거돈 해양대 총장, 야권 단일 후보 적합도에서 문재인 전 실장 제쳐

지난 5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뒤 언론들은 부산에 바람이 불지도 모른다고 전망했다. 정치적 무주공산이 된 부산에 노풍(盧風)이 불면 2010년 6월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위험할지도 모른다고 했고, 문재인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한나라당 아성을 무너뜨릴 유일한 ‘부산 사나이’로 지목받았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6개월이 지났다. 부산에는 과연 어떤 바람이 불고 있을까 궁금했다. 2010년 경인년이 막 시작된 지난 1월5일 <시사저널>은 여론조사 기관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부산시장 후보군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서울시, 경기도에 이어 세 번째 지방선거 민심 탐방이다. 부산에 사는  만 19세 이상 성인 남녀 5백명을 대상으로 전화 조사를 실시했으며 신뢰 수준은 95%, 표본 오차는 ±4.4% 포인트이다.

현재 차기 부산시장 선거 구도는 허남식 현 부산시장의 독주 체제로 정리할 수 있다. 허시장이라는 골리앗에 여러 다윗들은 시늉만 할 뿐 쉽게 돌을 집어들지 못하고 있다. 지역 정가에 떠돌던 “어느 의원이 나온다고 하더라”라는 말은 점점 “누구는 뜻을 접었다더라”라는 말로 바뀌고 있다. 한나라당 내에서 허시장에게 돌을 집어들 수 있는 후보로는 권철현 주일 대사, 서병수 의원, 안경률 의원, 정의화 의원 등이 거론된다. 아직 이들 중 명확하게 출마 의사를 밝힌 사람은 없다. 안경률 의원만이 명확하게 불출마 의사를 밝혔다.

▲ (맨 왼쪽부터) 허남식, 오거돈, 문재인, 조경태, 김정길, 안경률.

▲ (맨 왼쪽부터)정의화, 권철현, 민병렬, 서병수, 김석준.

야권에서는 대표 주자로 문재인 전 대통령 비서실장을 꼽는다. 청와대 재직 때부터 ‘정치할 생각이 없느냐’라는 질문에 손사래를 치던 문 전 실장은 지금도 여전히 같은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 2004년과 2006년, 열린우리당 후보로 허시장과 두 번이나 대결했던 오거돈 한국해양대 총장 역시 야권의 후보로 거론된다. 하지만 그는 “나는 정당과는 관련도 없고, 당적도 포기한 지 4~5년이 되었다. 지금은 총장직에 전념하고 있는 사람이다”라며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18쪽 참조). 김정길 전 행정자치부장관 역시 잠재적 후보이다. 민노당에서는 민병렬 시당위원장이 이미 출마 선언을 했고, 진보신당 김석준 시당위원장은 세 번째 부산시장 도전에 나선다.

부산시장 적합도에서 허시장은 33.9%로 1위를 차지했다. 오거돈 총장과 문재인 전 실장이 각각 8.9%와 8.3%로 2, 3위를 차지했다. 그 다음은 조경태 민주당 의원(4.3%), 김정길 전 장관(3.7%), 안경률 의원(2.8%), 정의화 의원(2.7%), 권철현 대사(2.4%), 민병렬 위원장(1.9%), 서병수 의원(1.2%), 김석준 위원장(0.6%) 등의 순이었다. ‘모름·무응답’으로 대답한 부동층은 29.2%로 서울과 경기에 비해서는 높은 편이었다.



허시장 시정 운영에도 긍정적인 평가 많아

이번 조사에서 나타난 특징은 크게 두 가지이다. 일단 다른 한나라당 후보군의 지지율이 매우 낮다는 점이다. 한나라당 후보 지지 계층을 허시장이 독식하고 있는 양상이다. 서병수 의원, 안경률 의원, 권철현 대사 등 여당 중진급 인사들이 야당 후보들보다 못한 지목률을 얻었다. 허시장의 ‘현역 프리미엄’이 수도권 광역자치단체장보다도 훨씬 강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지난해 여러 조사에서 항상 야권 단일 후보로 거론되던 문 전 실장을 제치고 오총장이 여권의 대항마로 올라선 것도 주목할 점이다. 오총장은 차기 부산시장 적합도 조사에서는 문 전 실장과 불과 0.6% 차이였지만, 아권 단일 후보 적합도에서는 18.4%를 얻어 15.0%에 그친 문 전 실장을 제쳤다. 비록 오차 범위 안이지만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같은 듯 다른 두 후보의 지지 계층을 알 수 있다. 김지연 미디어리서치 상무는 “이번 야권 단일 후보 적합도 조사는 모든 응답자들이 답하도록 되어 있다. 오총장이 적합하다는 사람 중에서 허시장 지지층이 상당하다. 반면, 허시장을 지지하는 사람은 문 전 실장 쪽으로 거의 가지 않는다. 즉, 오총장은 허시장과 문 전 실장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라고 말했다.

 

허시장은 정치인이 아닌 행정 관료 출신이다. 행정 관료 출신은 보통 정무적 능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 편이다. 허시장도 예외가 아니다. ‘제2의 도시’라는 대도시 부산의 수장이지만 부산 지역 오피니언 리더들 사이에서는 아쉬움을 토로하는 목소리가 나온다고 한다. 박인호 부산경제살리기시민연대 대표는 “허시장이 시정을 잘 처리하고 있다지만, 부산의 비전 제시나 제2도시다운 격을 높이는 밑그림을 그리는 등 보폭을 넓힐 필요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허시장은 ‘현역 프리미엄’과 더불어 시정 운영에 대한 시민들의 긍정적인 인식을 양손에 무기로 들고 있다. 허시장이 시장직을 잘 수행하고 있는가를 물었더니 ‘매우 잘하고 있다’(6.3%)와 ‘대체로 잘하고 있다’(63.6%) 등 긍정적인 평가가 69.9%로 높게 나왔다. ‘대체로 잘 못하고 있다’(16.6%)와 ‘매우 잘 못하고 있다’(4.8%)라는 부정적인 평가를 합한 것보다 3배 정도 높다. 자영업자(77.2%), 50대(75.0%), 중졸 이하(75.6%)에서 특히 높게 나타났다. 

차기 부산시장 역시 실업 및 일자리 창출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동안 부산의 역대 민선 시장들은 외환위기 이후 10여 년간 부산에 대기업 본사 하나 유치하지 못했다. 부산시민들은 ‘차기 부산시장이 해결해야 할 문제’로 실업(일자리) 문제(50.6%)를 첫손에 꼽았다. 사회적 빈부 격차 해소 및 복지 문제(30.3%), 물가(24.6%), 지역 개발 사업(16.5%) 등이 그 뒤를 이으며, 대부분 경제 문제에 집중되었다. 교육 문제는 13.3%에 그쳤다.

부산 정가에서는 ‘차기 시장 선거가 이대로 끝날 것 같지 않다’라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지난 12월23일 부산 지역 국회의원들이 송년 모임을 가졌는데 이 자리에서 경선 여부를 두고 의견이 오고 간 것으로 알려졌다. 한나라당의 한 보좌관은 “지방선거 전에 친이(이명박)-친박(박근혜) 간 공천을 놓고 주도권 다툼이 벌어질 경우 의외로 부산으로 불똥이 튀어 불타오를 가능성도 없지 않다. 우리가 야당일 때야 허시장처럼 무색무취가 먹혔지만 이제는 (친이냐, 친박이냐) 선택을 강요당할지도 모른다”라고 전망했다. 

<시사저널>은 부산 시민들에게 ‘현재 부산을 대표하는 정치 세력이 어디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보았다. 그동안 부산은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정치적 무주공산’이라고 평가받았지만, 대세는 역시 한나라당이었다. 가장 많은 지목을 받은 쪽은 ‘한나라당 내 친이계’로 43.5%였다. ‘한나라당 내 친박계’도 31.1%가 나왔다. 결과적으로 한나라당 지지가 74.6%나 나온 셈이다. ‘친(親)노무현 진영’은 3.5%에 그쳤다. ‘현재 없다’는 7.3%, ‘모름·무응답’은 12.7%였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친박계’를 지목한 수치이다. ‘대구·경북’이 아닌 ‘부산·경남’에서도 친박계가 상당한 지지세를 확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김지연 상무는 “여론조사에서 구체화된 정당이 아닌 소수 계파를 넣어서 조사했는데도 이 정도 지목도가 나온 것은 놀라운 결과이다”라고 설명했다.  

허시장은 현재 친이·친박 어느 쪽과도 끈끈한 관계는 아닌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초기에는 양쪽 사이에서 중립을 유지했지만, 최근에는 친박 쪽으로 한 발짝 다가선 것이 아니냐는 평가도 나온다. 그러나 겉으로는 여전히 중립을 지키는 중이다. <시사저널>은 여론조사에서 1위를 차지한 허시장과 인터뷰를 시도했지만, 되돌아온 답은 실망스러웠다. 기자가 준비한 14개의 질문 중 허시장측은 “시정과 관련된 내용이 아닌 정치적인 질문에는 일절 답하지 않겠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심지어는 ‘여론조사 1위를 차지한 소감’을 묻는 질문에도 허시장측은 “(정치적으로 민감하기 때문에) 답하지 않겠다”라며 대답을 거부했다. 친이-친박 간 계파 대립 구도에서 가급적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겠다는 허시장의 ‘소심한’ 전략은 그의 재선 가도에 득이 될까, 실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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