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중원 ‘뿌리’ 논쟁 다시 불붙었다
  • 노진섭 기자·강애란 인턴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0.01.05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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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병원·연세의료원, 서로 ‘전신’이라고 주장…서양식 의료 기관 역사 1백25주년 맞아 ‘자존심 대결’로

▲ 한국 최초 근대식 의료 기관인 제중원. ⓒ연합뉴스


서양 의술을 갖춘 한국 최초의 의사가 백정(白丁) 출신이라는 사실이 흥미롭다. 소설이나 TV 드라마 소재감이다. 국내 최초 서양식 의사는 1908년 제중원의학교 1회 졸업생 일곱 명이다. 이 가운데 한 명이 백정의 아들인 박서양이다. 그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과 TV 드라마 <제중원>이 나오자 일반인들의 관심이 제중원에 쏠리고 있다. 1885년 고종이 설립한 국내 최초의 근대식 의료 기관인 제중원의 적통(嫡統)이 어디로 이어지고 있는지가 관심사이다.  

▲ 연세대에 복원되어 있는 제중원의 전신 광혜원. ⓒ시사저널 임준선

연세의료원과 서울대병원은 제중원이 각각 자기네 뿌리라고 주장한다. 수십 년 동안 묵혀 있던 이른바 뿌리 논쟁이 최근에 다시 물 위에 떠오르고 있다. 이 논쟁이 과거에는 학계 차원에서 진행되었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일반인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데다 서양식 의료 기관의 역사 1백25년을 계승하는 문제여서 연세의료원과 서울대병원의 자존심 대결로까지 비치고 있다. 심지어 지난 2007년에는 제중원 기념식을 각자 진행하는 웃지 못할 일까지 벌어졌다. 한 조상을 두고 두 후손이 제사를 지내는 광경이 일반인에게는 볼썽사납다. 뿌리 논쟁의 핵심은 제중원의 설립 배경과 관계가 깊다. 조선 말기에 고종은 근대식 의료 기관을 설립할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내정 간섭을 하던 일본에 의료 기관 설립을 맡기고 싶지는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1884년 갑신정변 때 자객의 칼을 맞아 사경을 헤매던 민영익을 미국 선교 기관 소속 의사인 호러스 알렌(Horace Allen)이 살려낸 것이 계기가 되었다. 조선 정부의 신임을 받은 알렌은 근대식 병원 설립을 고종에게 건의했다. 고종이 알렌의 건의를 받아들여 1885년 4월15일 서울 재동(지금의 헌법재판소 부근)에 설립한 근대식 병원이 광혜원이다. 광혜원은 1주일 만에 제중원으로 이름을 바꾼다.

조선 정부는 제중원의 운영 경비를 부담하고 관리자를 파견했다. 지금의 외교통상부장관이 당시 제중원 운영의 총책임을 맡았다. 즉, 정부 기관으로 설립된 것이다. 의료·교육 등 의학적인 기능은 알렌과 그를 지원하는 미국 선교 기관에 위임했다. 부지를 확장하면서 제중원은 1887년 지금의 을지로입구에서 명동성당에 이르는 부지로 이전했다. 이후 조선 정부의 재정이 악화되고 일본의 간섭이 심해지면서 고종은 제중원의 운영을 미국 선교 기관에 맡겼다.

제중원은 1894년 조선 정부와 무관한 사립 의료 병원으로 재편되었다. 운영과 관리권이 조선 정부에서 미국 선교 기관으로 넘어갔다. 병원 명칭, 위치, 의사 등 모든 면에서 달라진 것은 없었다. 1900년 미국의 부호 세브란스가 1만 달러를 제중원에 기부했다. 미국 선교 기관은 1904년 제중원 건물과 토지를 정부에 돌려주고, 병원을 남대문 밖 복숭아골(지금의 서울역 맞은편 세브란스빌딩 자리)로 옮기면서 명칭도 세브란스병원으로 바꾸었다. 이후 한동안 제중원은 연세의료원의 뿌리라는 통설이 지배적이었다. 서울대병원이 1978년 이에 이의를 제기했다. 제중원은 조선 정부가 미국 의사들을 고용해서 설립한 국립병원이라는 주장이었다. 이후 거듭되어온 뿌리 논쟁은 2007년에 절정을 이루었다. 제중원 1백22주년 기념식을 연세의료원과 서울대병원이 각각 거행한 것이다. 성상철 서울대병원장은 이날 “서울대병원은 국내 서양 의학의 효시인 제중원과 대한의원의 정신을 이어받은 국가 중앙 병원이다”라고 말했다.

‘빈민 의료’라는 설립 정신 잇고 있는지 의문

▲ 서울대병원에 있는 대한의원. ⓒ시사저널 이종현

이에 대해 학계 내·외부에서 비판이 일자 서울대병원은 최근 제중원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내놓고 있다. 이 시각은 제중원 설립 후 9년간의 역사에 정조준되어 있다. 1885년 설립 때부터 미국 선교 기관으로 운영권이 넘어간 1894년까지이다. 이 시기의 제중원은 정부 기관이므로 연세의료원의 역사에 포함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특히 1904년 병원 명칭을 제중원에서 세브란스병원으로 변경한 것은 제중원과의 분리를 의미한다는 입장이다. 김상태 서울대병원 병원역사문화센터 교수는 “설립 후 9년 동안의 제중원은 국립 의료 기관이므로 연세의료원의 전신으로 보기 어렵다. 따라서 제중원을 어느 한 병원의 뿌리라기보다는 국내 서양 의학 전체의 뿌리로 보는 것이 옳다. 단군이 한 가문의 뿌리가 아니라 우리 민족의 조상인 것과 같은 이치이다”라고 말했다.

이 시각에 연세의료원은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제중원이 국가 기관으로 출발한 점은 인정하지만, 연세의료원의 뿌리라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 박창일 연세의료원 의료원장은 소설 <제중원>에 적은 추천사를 통해 “연세대와 세브란스병원의 전신이자 뿌리인 제중원을 모티브로 한 소설을 전하게 되어 기쁘다”라며 제중원에 대한 연세의료원의 입장을 밝혔다. 여인석 연세대의대 의학사연구소장도 “설립 후 9년 동안 제중원이 정부 기관이라는 점을 부인하지 않는다. 다만, 제중원 운영이 조선 정부에서 미국 선교 기관으로 넘어갔을 뿐, 의료 행위 자체는 그대로 이어졌다. 기업의 주인이 바뀌었다고 해서 그 회사가 다른 회사가 되는가. 이 뿌리 논쟁은 토론의 대상이 아니다. 뿌리 논쟁에 불을 댕긴 서울대병원이 매듭지어야 할 문제이다”라며 강경한 태도를 고수했다. 

이런 상황에서 소설과 TV드라마 <제중원>을 본 일반인은 혼란스럽다. 혼란스런 역사를 후손에게 물려주는 듯해 헛헛하기까지 하다. 두 의료 기관의 팽팽한 평행선을 일치시키는 작업은 현 세대의 몫이라는 일부 학자들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주진오 상명대 역사콘텐츠학과 교수는 “조선 정부가 설립한 국립병원이라고 해서 제중원이 서울대병원의 뿌리라고 보기는 힘들다. 또, 제중원 운영에 미치는 조선 정부의 영향을 지나치게 축소하면서도 의료 활동의 주체가 미국 선교사라는 점을 강조하는 연세의료원도 문제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제중원이 누구의 뿌리인가가 아니라, 제중원의 설립 정신을 누가 제대로 계승하는가이다. 제중원의 설립 정신은 빈민 의료이다. 연세의료원과 서울대병원은 빈민 의료에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라고 강조했다.

2006년 작고한 역사학자 이광린 서강대 교수는 생전에 “1904년 세브란스병원이 설립되면서 제중원은 소멸했다”라고 했다. 제중원 뿌리 논쟁에서 벗어나 훌륭한 의술로 백성을 구제하라는 제중원 설립 정신이 이 말 속에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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