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의 축소판’ 봉하마을 가는 곳마다 ‘인간 노무현’의 유산
  • 김해·김회권 ()
  • 승인 2009.12.22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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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객 발길 여전히 이어져…노 전 대통령의 오리농법 전수한 친환경 농사 면적은 10배 이상 늘어

▲ 경남 김해시에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형 걸개 그림 앞을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봉하마을은 예쁘게 단장 중이다. 노 전 대통령의 생가는 복원되었고, 생가 옆에는 방문객들이 커피 한잔을 마시며 방명록을 기록할 수 있는 쉼터가 생겼다. 쉼터 옆에는 재단법인 ‘아름다운 봉하’(이하 봉하재단)가 운영하는 가게가 있다. 사진집, 노트, 달력, 티셔츠 등 노 전 대통령과 관련 있는 각종 기념품을 팔고 있다. 경북 경주에서 온 정성윤씨(55)는 “봉하마을을 세 번째 방문하는데 올 때마다 조금씩 외관이 정돈되어가는 느낌이다”라고 말했다. 

방앗간도 새로 생겼다. 이 자리는 지난 영결식 때만 해도 주로 언론사나 관계자들이 주차장으로 사용했던 곳이었지만, 이제는 노 전 대통령의 얼굴이 새겨진 ‘봉하 오리쌀’ ‘봉하 우렁쌀’을 가공하는 곳으로 바뀌었다. 친환경 농업은 노 전 대통령이 봉하마을로 돌아온 뒤 추진했던 일이다. 이제는 유업으로 남았다. 사람들은 방앗간을 가리켜 ‘봉하마을에서 가장 큰 건물’이라고 말한다. 무엇보다 큰 변화는 노 전 대통령이 잠든 자리가 생겼다는 점이다. 노 전 대통령은 태어나고 자란 봉하마을에 자리를 잡았다. 지금 봉하마을은 생가와 묘역, 즉 노 전 대통령의 처음과 끝 모두를 품고 있다. 

봉하마을의 모습은 변해가도 그 충격의 흔적이나 아픔을 가진 사람들까지 쉽게 변할 리는 없다. 김정호 영농법인 봉하마을 대표는 “그게 어디 쉽게 없어지겠는가. 사람들 속에 내면화되어 있다”라고 말했다. 김경수 전 비서관은 “마을 사람들이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를 쉽게 꺼내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한 동네 주민은 “적적했다”라고 말하며 ‘오리’에게 배춧잎을 먹이로 주었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의 권유로 오리농법 농사를 짓고 있다. 올해 작황은 풍작이었지만 추수할 때는 오히려 그리움이 컸다고 했다. “차 한잔 하고 가라”라며 기자의 손을 잡는 그의 집 거실 한쪽에는 가족사진이 걸려 있을 법한 자리에 노 전 대통령의 취임식 사진이 걸려 있다. 그는 “시간이 지나 마을 사람들도 안정을 찾는 것 같지만 묘비를 지날 때마다 살아계실 때 한 번씩 보던 노 전 대통령의 얼굴이 생각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라고 말했다.

영면한 자리를 찾아 국화꽃 한 송이를 놓는 발길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김해시청의 통계에 따르면 서거 이후 지난 11월까지 평일에는 평균 1천여 명, 주말에는 2천~3천여 명 정도가 봉하마을을 찾는다(봉하마을측은 주중 평균 2천~3천명, 주말 5천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정확하지는 않더라도 대략이나마 짐작을 가능하게 했던 이 통계도 이제는 집계되기 어려워졌다. 12월부터 공공근로 사업이 종료되면서 봉하마을 방문자를 세던 사람들도 일자리를 잃었다.

관광객들, 전직 대통령 묘역으로는 초라한 모습에 씁쓸해하기도

▲ 봉하마을을 찾은 참배객이 노 전 대통령의 묘역 앞에서 헌화하면서 참배하고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노 전 대통령은 작은 비석 하나만 세워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땅 위에 수평으로 드러나 있는 비석은 현재 하얀 천으로 덮여 있다. 묘역에서는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이다. 비석에 ‘대통령 노무현’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지 않다면 전직 대통령의 묘역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황량하다. 산악회원들과 함께 경북 구미에서 왔다는 유영배 씨(52)는 안타까움부터 토로했다. “지지자건, 지지자가 아니건 누구나 한 번쯤은 올 수 있는 곳 아니냐. 묘역이 너무 허름해서 마음이 아프다”라고 말했다. 한 마을 주민은 “묘역이 평지에 있다 보니 비가 많이 오는 여름에는 혹시나 빗물이 들어갈까 걱정하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봉하재단에서도 묘역 조성은 가장 시급한 과제이지만 난관에 부딪힌 상태이다. 전직 대통령의 묘역이지만 정부 지원에 대한 정해진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서거한 전직 대통령들은 노 전 대통령을 빼고는 모두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김경수 전 비서관은 “묘역을 찾아온 참배객들이 노 전 대통령의 가치를 보고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려고 한다. 내년 1주기 이전까지는 묘역 공사를 완료할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봉하마을에는 이곳에서 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공존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기억으로 묶여 있기에 가능하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는 한 전경은 “서거 당시에는 잠잘 시간도 없을 정도로 바빠서 잘 몰랐는데, 시간이 흐른 지금에서야 노 전 대통령의 서거가 현실로 와 닿는다”라고 말했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을 전경들에게도 고개 숙여 인사해주는 인간다운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ID ‘토르’를 쓰는 자원 활동가(33)는 방앗간에서 일하고 있다. 처음에는 하루 이틀 자원봉사를 할 생각으로 봉하마을을 방문했지만 벌써 1년째 머무르고 있다. 그는 “새벽에 길을 가다 우연히 노 전 대통령을 만난 적이 있는데, 그때 소탈하게 웃으며 인사해주시는 모습에 한눈에 반했다. 그래서 서거 이후에도 봉하마을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은 봉하마을에 ‘오리’와 ‘우렁이’를 남겼다. 오리농법과 우렁이농법으로 생산된 친환경 쌀은 노 전 대통령의 얼굴이 새겨진 상자에 담겨져 소비자에게 전달된다. 방앗간 창고에는 수확한 유기농 쌀이 비축되어 있다. 이 쌀들은 건조와 가공 과정을 거쳐 포대에 담긴다. 친환경 농사를 이끌고 있는 김정호 대표는 청와대 기록관리비서관 출신이다. 자신이 농사를 지을 것이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지만 올해 결과를 놓고 보면 이미 전문 농사꾼 반열에 올랐다.

“친환경 농사를 짓는 면적이 지난해 2만4천6백평에서 올해 24만평으로 늘었다. 작목반원도 14명에서 50명으로 늘었고, 수확량도 50t에서 4백20t으로 증가했다. 친환경 농사에 대한 인식이 10배 정도 확산된 것이다.” 올해 봉하마을에서 수확한 쌀은 이미 절반가량 판매되었다. 인터넷을 통한 주문이 대부분이다.

노 전 대통령은 친환경농법으로 봉하마을을 생태형 마을로 만들려고 했다. 살기 좋은 농촌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고, 봉하마을은 그 실험 모델이었다. 친환경농법으로 만든 봉하의 쌀은 다른 곳의 수매가와 비교할 때 30~60% 더 받을 수 있다. 올해에는 억대 수익을 올린 농군도 두 명이나 나왔다. 농촌에서도 도시에 버금가는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였다. 김경수 전 비서관은 봉하마을을 “참여정부 균형발전의 축소판이라고 볼 수 있다”라고 평가했다. 노 전 대통령은 생전에 전국적으로 봉하마을 모델을 확산시키고 네트워크를 만든다면 살 만한 농촌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12월 봉하마을의 추위는 매서웠다. 그럼에도 개개인은 분주했다. 생태마을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분주한 방앗간 사람들과 오리를 돌보면서 과거를 추억하는 주민들, 두꺼운 방한복을 걸치고 묘역으로 향하는 참배객들은 모두 ‘대통령 노무현’이 남긴 자취를 좇아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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