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뚫고 아르헨티나 막고 나이지리아 압박하라
  • 한준희 | KBS 축구해설위원 ()
  • 승인 2009.12.15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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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남아공월드컵 본선 B조에 속한 한국 대표팀의 ‘16강 해법’

▲ 2010 월드컵 본선 조 추첨에서 제롬 발케 FIFA 사무총장이, 대한민국이 적힌 쪽지를 들어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전세계가 숨죽여 지켜본 2010 남아공월드컵의 조 추첨이 완료되었다. 대한민국은 아르헨티나, 나이지리아, 그리스와 더불어 B조를 구성했다. 조 편성에 관해 총평을 하자면 우리의 점수는 대략 80점은 된다는 생각이다. 강호 아르헨티나가 틀림없이 가장 앞서 있으나 나머지 팀들 간 전력의 차는 미세한 정도라 할 만하기 때문이다. 우리 입장에서 쉬운 팀은 없지만, 그렇다고 희망을 잃을 만큼 악조건인 조는 결코 아니다. 북한이 속한 G조의 모습을 보자. 우승 후보 브라질, 아프리카 최강권의 코트디부아르, 호날두를 앞세우는 포르투갈이 포진한다. 44년 만에 월드컵 나들이를 하는 북한에게는 실로 가혹한 조합임에 틀림이 없다. 북한뿐만이 아니다. 독일·세르비아·가나와 D조를 구성하게 된 호주나, 네덜란드·덴마크·카메룬과 E조에 소속된 일본도 지극히 어려운 조를 받아들었다. 그들은 아시아 팀들 중 가장 나은 조에 속한 우리를 부러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 스피드 살리고 세트플레이 조심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한 판은 뭐니뭐니해도 첫 경기인 그리스전이다. 우리의 월드컵 도전사를 돌아볼 때 첫 단추를 잘 끼우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해 보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액면가의 전력을 고려할 때에도 그리스는 우리가 16강 꿈을 달성하기 위해 꼭 넘어야 할 대상이다.

우선 그리스는 2004 유럽선수권에서 우승했던 시절만큼의 짜임새 있는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선수들의 면면이 그때에 비해 많이 나빠졌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당시의 깜짝 우승을 이끌었던 가장 큰 원동력인 수비력이 다소간 퇴보했다. 경기에 따라 포백과 쓰리백을 병용하고 있는 것은 여전하나, 수비수들 간의 간격이 그때만큼 확실하게 유지되지 못하는 데다 측면 뒷공간을 커버하는 데에서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다. 세이타리디스, 토로시디스와 같은 윙백들의 공격 가담이 이루어지는 순간을 역으로 잘 활용할 경우 그리스의 골문을 열어젖히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그리스와의 대결에 임하는 우리의 키워드는 사실상 ‘스피드’이다. 다소간 하향세에 있는 그리스의 미드필드를 상대로 기동력 싸움에서 예봉을 꺾어야 하는 것은 물론, 빠르고 정확한 패스 전개와 공격수들의 기민한 움직임을 통해 그들의 덩치 큰 수비진을 무너뜨려야만 한다. 경기가, 그리스가 원할 법한 다소 지루한 템포로만 흘러가게 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벤치는 변화하는 상대 수비 전술에 따라 그때그때 맞춤형 공격 전술로써 대응할 필요가 있겠다.

하지만 그리스전에서 가장 유의해야 할 대목은 우리의 수비이다. 특히 세트플레이 수비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리스는 다소간 단조로운 패턴의 필드플레이를 펼치는 반면, 신체 조건을 앞세운 세트플레이 공격에서는 강점을 지닌 팀이기 때문이다. 공격수 카리스테아스, 사마라스뿐 아니라 키르지아코스, 파파도풀로스, 모라스, 파파스타토풀로스 등의 수비수들이 모두 1백90cm 전후의 신장이다. 여기에, 세트플레이 키커인 미드필더 카라구니스의 중거리포도 주의할 필요가 있다. 그는 그리스에서 ‘깜짝 골’을 터뜨릴 만한 잠재력을 지닌 세 명의 선수들-카라구니스, 사마라스, 게카스-가운데 하나이다.

■ 아르헨티나는 달라질 수 있다

▲ 10월10일 그리스 대표팀이 라트비아와의 예선 경기 직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B조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인 아르헨티나는 알려진 대로 남미 지역 예선에서 전통 강호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꽤나 비틀거렸던 팀이다. 특히 ‘선수 때 실력과는 판이한 지도자 실력’을 드러내온 마라도나의 지휘력에는 여전히 신뢰가 가지 않는다. 좀 더 구체적으로, 아르헨티나의 후방에는 불안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고 이는 사실상 본선까지도 이어질 수 있는 그들의 골칫거리이다. 많은 선수를 어지럽게 기용해 온 아르헨티나가 본선에서 그 어떠한 수비 조합으로 나온다 해도, 현재의 아르헨티나에는 전성기를 달리는 특급 수비수가 기본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까닭이다. 수비 조직의 향상이 어디까지 이루어질 수 있을 지도 다소간 의문이다.

하지만 이 모든 사실에도 아르헨티나가 강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산이다. 무엇보다 아르헨티나는 세계 정상급으로 분류될 수 있는 재능 넘치는 공격진을 보유한 팀이다. 마라도나에 의해 한동안 외면당한 이구아인이 마침내 대표팀 유니폼을 입게 되었으며, 유용성 높은 공격수 밀리토는 인터밀란에서 쾌조의 컨디션을 이어가고 있다. 여기에 ‘에이스’ 메시, 테베스 등이 더해지면 웬만한 팀들을 상대로 대량 득점을 터뜨릴 수 있는 잠재력이 아르헨티나에 충분하다고 말해야 옳다. 메시 한 사람에게 너무 무거운 짐이 지워지는 형국으로부터 조금만 탈피한다면 아르헨티나의 공격력은 가히 우승 후보의 그것이라 할 만하다.

우리는 아르헨티나와의 두 번째 경기를 해발 1천7백m가 넘는 요하네스버그에서 치르게 된다. 혹자들은 남미 예선에서 아르헨티나가 고지대 원정에서 부진했던 점을 들어 우리에게 유리한 점이 있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희망사항에 불과하다. 아르헨티나가 지역 예선 때와는 달리 충분한 시간 동안 적응을 마치고 경기에 임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의 지역 예선 성적은 어쩌면 앞으로 그들이 올라오는 일만 남아 있음을 알려주는 것일 수도 있다. 어찌되었건 아르헨티나를 상대로도 우리는 나름으로 최선의 결과를 얻어내는 것이 좋다. 이 조가 막판에 이르러서는 골 득실, 다득점 등에 따라 복잡해질 수 있음을 잊지 말자.

■ 조직력으로 승부하라

그리스·아르헨티나 전에서 나름의 나쁘지 않은 결과를 얻어낸다 해도 우리는 결국 마지막 나이지리아전에 운명을 걸어야 할 공산이 크다. 물론 여기까지 오기 위해서라도 앞의 두 경기를 괜찮게 치러야 한다는 전제가 따르기는 하겠지만 말이다. 최근의 나이지리아는 아프리카 대륙의 최강권에서는 다소 밀려난 상태이다. 특히 베테랑 수비수 요보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수비진의 불안감이 가장 눈에 띈다. 부상으로 경기 감각이 저하된 중앙 수비 및 오른쪽 측면 수비가 문제이다.

그러나 나이지리아는 적어도 B조에서 아프리카 관중의 성원을 받는 ‘홈 팀’이 될 공산이 크다. 게다가 나이지리아가 보유한 특유의 탄력과 유연성, 운동 능력은 우리에게는 여전히 위협적인 요소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위험 지역에서 가급적 나이지리아 공격수와의 일대일 상황이 초래되지 않도록 상대의 패스 길목을 사전에 차단하는 한편, 효과적인 협력 수비를 펼칠 필요가 있다. 또한, 나이지리아의 플레이메이커인 미드필더 미켈을 봉쇄하는 데에도 혼신의 힘을 쏟아야 한다.

나이지리아는 현재 감독 교체에 대한 자국 여론이 비등하고 있는 데다 선수들의 일부도 지역 예선과는 다소 달라질 여지가 있는 팀이기에, 1월에 벌어질 아프리칸네이션스컵을 면밀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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